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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또 익숙치 않은 우리의 신혼집에 잠시 잊고 있었던 심란함이 생각나며 알 수 없는 마음속 답답함과 함께 한숨이 나와 한숨을 쉬었다.
물론 오세훈 몰래. 괜히 내 한숨소리에 깼을까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봤지만 새근새근, 아직 잘 자고 있다.
내가 어땠는지, 내가 왜 이사람과 결혼을 했는지, 무슨 미래를 보는것도 아니고, 왜 갑자기 10년 후인지,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는 있는것인지,
이 사람을 좋아해서 결혼한건지, 이 사람은 몇 살인지, 좋아하는 음식은 무엇인지, 내가 아침마다 아침밥을 차려 줬는지.
큰 일들부터 작은 일들까지 나를 머리아프게 했다. 나는 과연 이 사람한테 평소와 같은 척을 해도 될까. 많은 고민을 하고 있던 중,
뒤에서 이불소리와 잔뜩 잠긴 오세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도 꽤 섹시하네.
"밥"
아침밥은 내가 항상 차려줬나보다.
*
'이거보세요, 윤기 좔좔 흐르는것좀 보세요. 이 허브향. 맡아지세요? 으음-'
햇볕이 내리쬐는 오전이 따분해 쇼파에 멍하니 앉아있으니 오세훈이 내 옆에 앉아 티비. 라는 한마디를 하니, 신기하게도 티비가 팟- 하고 켜졌다.
공중에서 손가락을 지휘하듯 옆으로 한참 넘기던 오세훈이 오리고기 홈쇼핑에서 손가락을 잠시 멈춘다. 티비에서 오리고기 냄새도 나네. 신기하게
"냄새 죽인다, 살까? 맛있겠지"
"어...어 맛있겠다. 사자, 나도 먹고 싶었어"
라고 말 하자 또 씩 웃더니 주문. 이라고 말한다. 아니 참 신기해, 불과 그저께까지만 해도 상상만 하던 일들이었는데.
나에겐 별로 흥미 없는 축구를 그렇게 집중해서 본다. 나는 축구보단 티비의 기능이 더 신기해서 쳐다보고 있었다.
오세훈의 손가락에 따라 축구장이 이리저리 회전하지를 않나, 관객의 소리를 아예 끌 수도 있다. 무슨 티비가 이렇게 좋아. 하고 넋놓고 보고있는데
내 귀에서 벨소리가 들린다. 세훈이는 안 들리는거 같은데, 나한테 전화가 온건가 하고 손등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통화. 거절. 무음 이라는 세 버튼이 있었다.
나는 통화를 누르고 방에 들어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야 OOO-! 뭐 하냐"
"수정이?"
"그래 나 아니면 누구야, 오서방하고는 잘 지내? 아가는 어떻고! 배는 좀 부른거 같냐?"
"수정아!!!!!!!!!!"
"어우 이년이 왜이렇게 소리를 질러, 오서방은 잘 지내냐고!"
"아니 잘 지내고 뭐고 너 진짜..너 다행이다"
"뭐가 다행이야, 잠깐만, 이건 이렇게 하면 안되지, 다시 디자인 해 와. 이번이 마지막이다. 여보세요?"
"어, 어. 야 암튼..!"
"아, 진짜 이게 아니라니까 그러네. 여보세요? 미안해 OO아. 지금 일이 좀. 나중에 문자할게!"
하며 전화를 뚝 끊는다. 정수정 이년 전화 막 끊는건 10년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아.
수정이는 중고등학교 동창으로 나랑 제일 친한 친구였다. 대학이 갈라졌지만 우리는 여전히 제일 친한 친구로 지냈었고, 지금도 마찬가지인가보다.
다행이야, 수정이라도 있어서. 얼른 수정이를 만나고 싶다. 디자인과에 들어가서 자기는 꼭 교수가 되겠다고 자꾸 강조해서 비웃었는데, 진짜 됐나보네.
그러고보니 나는 내 직업도 모르네, 에전에 내 꿈은 그저 좋은 엄마였다. 내 꿈을 말 할 때마다 친구들은 돈벌이가 돼야지, 좋은 엄마는 무슨. 하고 비웃었다.
그럼 나는 야, 좋은 남편을 만나면 되지. 하고 깔깔 웃어넘기곤 했다.
축구경기가 모두 끝난건지 오세훈은 예전 일, 아니 한 달도 채 안된 일들을 회상하는 내 허리를 뒤에서 꼭 껴안고 말 한다. 밥 먹자.
방금 먹었는데? 하고 창 밖을 보니 벌써 어둑한게 저녁을 먹을 시간인가보다. 배꼽시계는 정확하네 오세훈.
보글보글끓는 된장찌개에 꼭 내가 다정한 와이프가 된거같아 뿌듯하다. 식탁에 얌전히 앉아 내가 차리는 밥상을 기다리는 오세훈을 상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든다,
정말 내가 좋아하긴 했나봐,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감정이 들고. 뭐 물론 저 남자가 잘 생기긴 했다만 그렇다고 이런 호감을 느끼는 나는 전혀 아니었다.
내가 고등학교때 철벽녀로 유명했는데, 변백현은 어떻게 꼬셨는지 몰라. 그러고보니 오세훈도 날 꼬신거네? 능력자네, 둘 다.
"너도 먹어"
"고마워, 멸치조림 먹어봐. 새로 한거라 따뜻해서 맛있을거야."
"맛있네, 결혼은 진짜 잘 했다니까"
"푸흐, 무슨."
오세훈이 밥 먹다가 말고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밑에 있는 발을 장난하자는 듯이 툭툭 친다. 나도 거기에 대응해 서로의 발을 엉켜가고 배시시 웃으며 행복해하고있다.
[2시까지 xx카페, 너 집 근처로 했으니까 또 임신한 사람한테 멀리 오게 한다고 뭐라하지마!]
참, 정수정한테 대하는건 10년전이랑 지금이랑 똑같나봐. 정수정한테 이 말도 안되는 모든걸 모두 말 할 생각으로 오세훈의 어디가? 라는 말을 뒤로한채 문 밖을 나왔다.
"딸랑"
기분 좋은 종소리가 울리고 나는 고개를 돌려 수정이를 찾았다. 저깄네, 예뻐졌구나, 옷이 날개라는 말이 사실인가보다. 옷도 진짜 잘 입네, 분위기도 많이 바뀌고.
화장을 고치느라 내가 들어온것도, 자신을 찾는것도 모르길래 워! 하고 그 앞자리에 앉았다.
"야! 애 떨어질뻔 했잖아"
"떨어질 애는 있냐?"
"어머 애 있다고 지금 자랑하는거냐? 부럽네, 부러워. 누구는 시집도 못가고.."
"야, 다 잘 될거야. 그건 그렇고 우리 관계가 10년전이랑 똑같지?"
"무슨 10년전, 아 너 변백현이랑 사귈때?"
"어..응..백현이랑 사귈때. 암튼 그 때랑 똑같은거 맞지?"
"그렇지, 다를거 없지. 그래."
"내가 진짜 미친 얘기 하나 해줄까?"
하며 수정이에게 이 사건을 다 말했고, 너 지금 몰래카메라 찍는거냐며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며 절대 안 믿던 수정이는 진짜야, 진짜라니까. 오세훈이 누군지도 모르겠어.
라는 말에 진짜? 하고 넘어왔다. 한 순간에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더니 자기가 대충 알려주겠다며 나한텐 전부인것을 알려줬다.
첫째, 오세훈은 부자다. 아버지가 회사에서 큰 싸움이 나셔서 씩씩대며 나오시고 홧김에 사업을 차리셨는데, 그게 대박났다고 한다. 그래서 출근을 안 했구나, 우리 둘 다.
둘째, 오세훈은 날 미친듯이 좋아한다. 오세훈은 날 일 년이나 졸졸 쫒아다니면서 사귀자 사귀자 했는데 그때 내 철벽이 장난아니었다고 한다. 이유는 자기도 이해가 안갔다고 그랬다. 왜 그랬을까
셋째, 변백현이랑은 변백현이 군대를 갈때, 나 기다리게 하기 싫다고 눈물을 머금고 헤어졌는데 제대를 하고 나서도 처음엔 연락하다가 자연스럽게 멀어졌다고 한다.
넷째, 변백현은 지금 잘나가는 회사 이벤트팀의 팀장이고, 워낙 잘생긴탓에 여자도 많다고 한다. 그렇지만 솔로라고 한다.
다섯째, 그 이유는, 아직 변백현은 날 못 잊었다는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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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2화가 완성되었습니다! 맞춤법 틀린게 있으면 지적 해주세요! 혹시 궁금한거 있으면 질문도 막 하세요!! 아무래도 시간이 한 번에 훅 뛰어서 이해안가시는 부분이 있을수도 있어요ㅠㅠ 분량은 점점 늘려가는걸로 하겠습니다! 오늘도 감사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