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사이
w.아웃트로
" 누나 화났겠다. 그쵸? "
" 아마도, 아 태형아 너 흐른다. "
무슨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차가운 침대 보텀에 웅크려 누운 태형은 고개를 휙 돌려 멀찌감치 서서 담배를 피우던 석진을 노려봤다. 관계가 끝나고도 한참을 부둥껴앉고 태형에게 입 맞추던 석진은 힘들어서 눕고 싶다는 태형의 밀어냄에 겨우 떨어져서 바지 버클을 잠그고 멀찌감치 서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고등학생인 태형이 담배 냄새를 싫어할 거라는 생각에 작은 배려였다. 까만 피부에 하얀 석진의 것이 웅크린 다리 사이로 흐르니 확연히 티가 나는 게 야했다.
태희가 화내도 그 화를 다 받아낼 사람은 석진이니까 태형은 여유롭게 손장난까지 했다. 태희는 화나면 유독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특히나 석진의 하나를 꼬투리 잡아 질질 물고 늘어졌는데 석진은 그때마다 피곤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그 태도 때문에 몇 번이나 헤어질뻔한 걸 토닥거리고 달래며 예뻐해 줬더니 아무래도 자기가 갑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석진이 태희와 결혼까지 선택하게 된 건 무지함과 그녀 자신이 석진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었다. 생각 없이 들어오는 행동이 석진을 답답하게 했지만 잠깐씩의 외도를 눈치 못 채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고 어쩌다가 그 외도를 들켜도 처음엔 미친 듯이 화를 내고 욕하며 사라졌지만 하루도 못가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 난 오빠 없으면 안된다고 돌아오라는 오열하는 애원을 석진은 가볍게 받아들였다.
" 교복 입을래요. 주워주면 안 돼요? "
" 왜 벌써 입으려고. 보기 좋은데 그냥 있지. "
" 와, 형 완전 변태다. "
침대 밑으로 손이 닿지 않는지 손가락을 움찔거리는데 석진이 다 핀 담배꽁초를 비벼 끄며 마이와 드로즈, 바지까지 차례대로 주워와 태형의 옆에 앉았다. 잔뜩 구겨진 태형의 바지가 그들의 정사가 얼마나 급하고 빨랐는지 보여주고 있었다. 석진은 자신의 옆에 교복을 두곤 손을 뻗어 티슈곽을 집었다. 이런 몸을 하고 집에 어떻게 가나.. 멍하게 침대 헤드를 쳐다보던 태형은 다리 사이로 쑥 들어오는 부드러운 감각에 놀라 허리를 일으키니 석진이 티슈를 두어 장으로 흐르고 있는 자신을 것을 닦아내고 있었다. 이거 정리하기는 좀 아까운데 그냥 두면 다 젖잖아. 진짜 아쉬움 가득한 말투로 무심한 듯 말하는 석진의 모습이 왠지 귀여워 보여 태형이 발가락으로 석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또 채워주면 되죠. 아무것도 아니라는 목소리로 내뱉는 태형의 말에 석진이 어이없으면서도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태형을 바라보니 어깨를 으쓱하며 미소짓는 얼굴이 잠이 오는 모양이었다. 자지마, 태워다 줄께. 밑을 정리하고선 태형을 앉혀서 손수 드로즈까지 입혀주는 석진이 태형의 머리를 쓸어주니 눈을 감고 기대오는 표정이 꼭 갸릉대는 고양이 같았다. 뒤집어진 바지를 다시 정리해 하얀 양말이 신겨진 발에 한쪽을 끼워주니 침대 위에서 석진을 내려다보는 태형의 까만 가슴팍에 티가 날 만큼 붉은 자욱들이 가득했다. 너무 많이 물고 빨았나 싶어서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것이라고 낙인을 새겨놓은 것 같아 가슴 속에서 올라오는 묘한 쾌감이 석진은 좋았다.
" 있잖아요, 설마 영화처럼 지금이 우리의 마지막. 앞으로는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고 쳐다만 보는 그런 관계 되는거예요? "
" 왜, 그런게 궁금해? "
" 난 형이 좋은데. 형은 우리 누나가 더 좋을 수 있잖아요. 사랑하나? "
바지까지 입혀주고 와이셔츠 단추를 잠궈주는 석진의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태형이 중얼거렸다. 누나랑 나 되게 비슷하게 생겼는데.. 아마도 태형의 말 속의 뜻은 자신과 태희는 비슷하니까 대신 장난으로 만나도 된다. 뭐 이런 뜻일꺼 같았다. 단추를 잠그던 석진의 손이 멈추고 태형을 바라보니 이제보니 영락없이 어린 티 나는 학생이구나 싶어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넌 어떻게 하면 좋겠는데? 목 끝까지 단추를 다 잠궈준 석진이 으챠, 하고 태형을 안아 제 무릎위에 앉히니 얼굴을 만져오는 손길에서 미련이 가득했다.
" 처음엔 장난이었는데, 그냥 누나 핸드폰에 있는 형 사진이 멋져서. 보고싶어서. 그게 다였는데.. "
" 다 였는데? "
" ... 이렇게 좋을 줄 몰랐어요. "
" 나도. "
석진의 대답에 태형이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쳐다봤다. 지금 좋다고 한거 맞죠? 태형이 석진의 볼을 잡고 가픈 숨으로 물어오는데 석진은 그저 웃으며 태형의 뒷통수를 잡고 입을 맞췄다. 처음 했던 키스와는 다른 다정한 키스였다. 입안을 간질간질하는 혀가 좋아서 태형이 석진의 볼을 톡톡 쳤다. 제게만 이렇게 다정하기를, 태형은 아쉬워하는 입술을 떼어내곤 아랫입술을 핥짝였다. 형 입술이 너무 좋아요.
" 이런 변태인줄 알았으면 키스하라고 허락도 안 해줬을꺼야. "
관계 중에 태형이 쾌락에 못 이겨 다 잡아 이리저리 뻗쳐버린 석진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며 태형은 웃었다. 네가 허락 안 해줘도 그 뒤에 어차피 내가 해버렸을 텐데. 허리에 손을 둘러 태형을 껴 안은 석진이 귓가에 속삭여주자 끙, 하고 불퉁하게 입술을 내밀어버린 뒤 석진의 목에 팔을 둘러 깊게 안겼다.
자신을 다정하게 안아주는 이 남자가 태형은 좋았다. 이제껏 태형을 예뻐해주는 사람은 많았다. 엄마도 아빠도 친척들도, 예민하고 직설적인 태희보다는 애교도 많고 많이 웃는 태형을 예뻐했다. 그래서 딱히 무언가에 욕심을 가져본 적도 가질 기회도 흔치 않았다. 어차피 태희가 다 태형에게 양보해야 될 것이었으니까. 가끔 누나가 누나잖아, 하면서 둘이 다툴 때 태형의 자존심을 깎아내리는 말을 할 때 빼곤 태형은 그저 그냥 그랬다. 누나란 건 피곤한 존재구나ㅡ 정도.
둘의 이야기의 시작은 예상외로 너무나 단순했다. 야자를 끝내고 돌아온 태형이 이층으로 올라와 태희의 방을 지나칠 때, 엉엉 울며 사랑한다고 버리지 말라고 오열하는 태희의 모습을 문틈으로 지켜본 태형이 가져버린 궁금증. 그게 시작이었다. 누가 지나치게 도도하다 못해 주제에 맞지않게 싸가지도 없는 김태희를 저렇게 만들었을까? 태희가 잠깐 밖에 나간 사이 태형은 핸드폰을 뒤져보며 휘파람을 불었다. 누굴까.. 누굴까? 입가에 퍼진 환한 미소가 발랄했다. ' 석진오빠♥ ' 0104563.. 손쉽게 자신의 핸드폰으로 번호를 옮긴 태형이 이번엔 갤러리를 훔쳐봤다. 넓은 어깨, 단정한 이마, 여유로운 웃음. 태형의 맘에 쏙 든 모습이었다.
" 되게 잘생겼다. 영화배우 같이 생겼어. "
누나는 늘 이래서 문제야, 나랑 취향이 똑같으니까 매일 양보하게 되잖아. 갖고 싶다는 아니었지만 궁금하다는 생각이 반짝 태형의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태희가 집 문을 열고 들어오는 소리에 핸드폰을 제자리에 두고 자신의 방으로 쏙 들어간 태형이 태희의 페이스북을 통해 손쉽게 석진의 공방 주소를 찾아냈다. 그리고 만났다. 자신의 매형이 될 사람을. 저를 바라보는 석진의 눈빛이 좋았다. 누가 저를 이렇게 미칠 듯이 갈구하는 눈빛을 보낸 적이 있었나. 태형은 몸이 달아올랐다. 갖고 싶었다, 저 남자를. 제게 안달 나서 저 없이는 살 수 없게 만들고 싶었다. 자신이 그렇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버렸으니까. 태형은 제 눈앞에 있는 잘생긴 매형, 아니 저 잘생긴 남자를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 태희랑 내가 파혼했으면 좋겠어? "
" 아뇨. 미쳤어요? 청첩장에 식장까지 다 예약해놓고.. "
태형이 침대 끝에 놓인 제 마이를 들고일어났다. 허리가 시큰거렸다. 그래도 태형은 기분이 좋았다. 이 고통보다 태희를 동정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느껴야 될 감정이 더 달콤했으니까. 바닥에 떨어진 촌스러운 색깔의 넥타이를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든 태형이 제 입술을 핥짝이곤 뒤를 돌아 석진을 향해 넥타이를 흔들거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 어울리는 색깔인데 누가 무슨 생각으로 이런 걸 선물해줬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넥타이를 제가 하나 선물해줘야겠단 생각이 들어 태형은 공방 쓰레기통에 넥타이를 툭 떨어뜨렸다.
" 어, 형 미안해요. 내가 버려버렸네. "
" 그 행동 아주 못됐네. 그거 네 누나가 준건데. "
" 아 그래요? 그럼 더 잘 됐다. "
" 맘에 안 들어? "
" 응, 색깔이 너무 구려요. 저거 우리 아빠같은 아저씨도 안 맬 색깔인데.. "
태형은 코트와 차키를 챙겨든 석진의 앞으로 다가가 목에 손을 둘러 아무것도 걸리지않은 석진의 와이셔츠 넥라인을 만지작거렸다. 내가 준 넥타이가 여기에 걸리면 되게 섹시하겠다 형. 유유히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는 태형의 목소리에 석진이 눈을 질끈 감았다. 그 거칠던 섹스에서는 얌전한 아가씨처럼 수줍어 하더니 또 그새 이렇게 변해서 제게 아양부리는 꼴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 내가 준 거 상견례할때 꼭 매고 나와요. 나 그럼 되게 기분 좋을 꺼 같아. "
" 왜, 결혼식때 매라고 하지? "
" 그건 누나한테 너무 잔인하니까. 음, 사실 그것도 생각했었어요. 나 나쁘죠? "
" 응, 나쁘네. 처남. "
" 매형만 하겠어요? 아 매형 품에서 잠들고 싶다. "
살랑, 방울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사뿐하게 뒤로 돈 태형이 쇼파에 놓인 제 가방을 들고 가게 유리창의 버티컬을 걷어냈다. 갑자기 들어오는 밝은 노을 빛에 태형이 인상을 찢부렸다. 저녁이면 더 좋을 텐데, 무서운 척 매형 집에서 자고 가게. 심술 났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한 태형이 뒤를 돌아 턱을 까딱댔다. 얼른 오라는 소리였다. 아프니까 빨리 자고 싶기도 하겠지. 석진은 입꼬리를 올리며 태형의 곁으로 가서 허리를 감싸 안았다. 가자 처남. 장난스럽고도 못된 그 목소리에 태형이 석진의 가슴팍을 톡하고 아프지 않게 쳤다. 귀여운 앙탈, 뭐 그런 거였다.
* * *
" 어디 다녀왔어? "
" 놀러, 누구 좀 만났어. "
" 여자친구 생겼니? "
" 어, 애인 생겼어. "
집 앞에 차를 세워놓고서도 한참이나 태형과 석진은 입을 맞췄다. 헤어지기 아쉬워요. 태형이 석진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풀 죽은 듯이 속삭이자 참지못하고 석진이 시작한 것이었다. 그대로 차에서도 한번 치를 뻔 했지만 간신히 뜯어말려 돌려보낸 뒤, 집으로 들어온 태형을 향해 태희는 짜증나게 밝은 목소리로 물어봤다.
내 애인? 그게 누군지 알아? 니 예비 남편이야. 금방이라도 태희에게 그 비밀을 다 털어놓고 싶었지만 태형은 참았다. 애인이 생겼다는 말에 들어오는 놀란 표정으로 보는 태희를 향해 태형이 미소 지었다. 웬일이니, 대박이다. 계단을 올라가는 태형의 뒤에서 졸졸 쫓아오며 누구냐고, 예쁘냐고, 몇 살이냐고, 귀찮게 물어오는 태희를 밀어버리고 싶단 생각을 하던 태형이 인상을 쓰자 태희는 그런 것에도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태형의 팔을 잡아당겨 자신의 방에 데리고 들어왔다.
귀찮게 왜 이래? 태형이 화를 내며 팔을 잡은 태희의 신경질적으로 손을 잡아 빼자 태희는 태형을 침대에 앉히며 화장대 의자를 끌고 와 태형의 앞에 앉았다. 어떤 애야? 언제부터 만났어? 지치지도 않고 물어오는 태희의 말에 태형은 징글징글하단 표정을 지었다.
" 예뻐, 엄청. 오늘부터 만났어. "
" 어머! 오늘부터 1일이야? "
" 어, 내가 엄청 좋데. 내 행동 하나에 안절부절 못해. "
" 니 매형도 나한테 그러는데! "
웃기고 있네. 피식, 비웃는 표정으로 웃은 태형이 태희를 바라보자 태희는 갑자기 들뜬 표정으로 제 화장대에 있던 립스틱 하나를 제 앞에 가져와 보여주었다. 빨간 립스틱이었다. 이거 네 매형이 준거야, 나한테 어울릴 것 같다고 줬는데. 달칵, 립스틱 뚜껑을 열어 색깔을 보여주는 태희의 표정이 행복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아니꼽게 그 립스틱을 바라보던 태형이 언제 그런 표정을 지었냐는 듯이 웃으면서 태희를 바라봤다.
누나, 좋아? 활짝 웃으며 어느새 거울을 바라보며 제 입술에 립스틱을 발라보던 태희의 뒷모습을 보며 태형이 묻자 태희가 밝은 목소리로 너무 좋다고 대답한다. 나는 기분 거지 같은데. 그대로 튀어나올 것 같은 그 말을 꾹꾹 누른 태형은 몸을 일으켜 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에 가방을 던져버린 태형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석진의 번호를 찾았다. ' 내꺼' 후, 태형은 한숨을 내 쉬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신호가 두번 가자 받는 전화에 태형이 기분 좋아 웃었다. 빠르네 형.
" 누나한테 그렇게 거지같은 선물 받고 좋아서 립스틱 선물해줬어요? "
" 무슨 말이야, 왜 태희가 자랑해? "
" 어, 완전 짜증나. 나도 선물해줘요. 립스틱. "
" 넌 남잔데? "
" 남자는 립스틱 받으면 안돼? 줘요, 그거 바르고 키스해요. "
태형의 깜찍한 발언에 석진이 참지 못하고 웃었다. 왜 웃냐며 틱틱대는 태형의 목소리가 귀여웠다. 알았어, 선물해줄게. 못 이긴다는 목소리로 석진이 대답하자 태형이 좋다며 흐흥 거리며 웃다가 샤워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신호가 빨간 불인 사이에도 석진은 태형의 귀여운 투정을 생각하며 한참을 웃었다. 유턴 신호가 뜨고 석진은 차를 돌려 백화점으로 갔다.
일층에 들어서자마자 코를 찌르는 화장품 냄새에 빨리 나가고 싶어 그대로 앞에 보이는 브랜드를 향해 걸어갔다. 늘씬하고 길게 빠진 석진이 매장에 들어서자 점원이 발랄하게 다가와 말을 걸기 시작했다.
" 뭐 찾으세요 손님? 누구 선물 하시려고 오셨나봐요? "
" 아, 네. 애인이 립스틱 갖고싶다고 투정을 부려서요. "
" 어머! 애인이 갖고싶다고 선물사러 오시고.. 다정하시네요~ "
석진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립스틱 하나를 들어 손등에 발라 색깔을 보여주며 구구절절 말하는 목소리가 석진에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 귀여운 애인에게 무슨 색깔이 어울릴까. 태형은 피부가 까만 편이니 좀 진한 색이 어울리겠지 싶어 점원이 들고 서 있는 바구니에 립스틱을 골라 담았다. 어머, 이렇게나 많이 사시게요? 점원이 놀라 석진을 쳐다보자 젠틀하게 웃어 보인 석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에 볼이 붉어진 점원이 계산대로 가서 립스틱을 포장하기 시작했다.
" 애인분께서 너무너무 좋아하실꺼예요. "
" 그래야죠. 그래서 선물해주는건데. "
" 이렇게 잘생기시고 다정하신분을 애인으로 두시다니 애인분이 부럽네요~"
다 포장해진 립스틱이 넣어진 작은 쇼핑백을 건네받은 석진이 카드를 건넸다. 여기 사인 좀 해주세요. 쇼핑백 안을 슬쩍 보던 석진이 대충 사인을 하고 카드를 받았다. 이걸 언제 주나.. 고민하던 석진이 핸드폰을 들어 태형에게 문자를 보냈다. 문자는 간결했다. 자신의 집 주소와 함께 내일 시간 날때 오라는 내용이었다. 보나 마나 립스틱을 주려는 것을 다 알아차리고 좋아할 얼굴을 생각하자 석진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사실 태형은 립스틱보다 석진의 집 주소에 더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 * *
" 어, 그래서 오늘은 공방 안 열어. "
ㅡ 치이, 우리 침대 다 만들었다며! 그럼 나 제일 먼저 보여줘야 되는거 아니야?
" 미안미안, 내가 좀 바쁘다. 태희야.
ㅡ 오빠가 뭐가 그렇게 바쁜데! 내가 결혼준비는 다 하는데.. 짜증나게..
그 침대 니 동생이랑 먼저 썼어. 백번이고 말하고 싶던 말을 석진은 숨긴 채 태희를 달래주기 시작했다. 미안해, 응. 달래주면 또 달래주는대로 패악을 부려대니 이제는 석진은 어떻게 이 전화를 끊어야 할까 고민을 했다. 그 순간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
" 태희야, 오빠 전화 끊어야겠어. 손님왔어. "
ㅡ 그 손님은 누구길래 그렇게 따로 집에서 봐? 여자야?
" 아니지, 남자야. 중요한 분이어서 오빠가 좀 세심하게 봐 드려야하거든. "
재빨리 현관으로 나가서 문을 열자 환하게 웃는 태형이 석진의 품으로 안겨들려고 하자 전화기를 톡톡 가리키면서 석진이 입 모양으로 쉿 해 보인다. 태형이 눈을 흘기면서 집 안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갔다. 아, 형 냄새난다. 공방에 처음 왔을 때도 그랬지만 태형은 참 냄새에 예민한 것 같았다. 그때도 가구 냄새 맡고 내 냄새 맡으면서 좋아했는데, 석진이 전화를 받으면서 벽에 기대어 태형을 보자 태형이 소파에 털썩 앉아서 고개를 까딱거렸다. 아무래도 석진의 통화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석진은 끝도 없이 말하는 태희의 말을 막으며 내일 휴일이니까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로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하얀 후드에 부슬부슬한 태형의 머리가 살랑살랑 거렸다. 그대로 석진이 태형의 뒤로 가서 머리를 두어 번 톡톡 쳐주니 고개를 뒤로 젖혀 눈을 느리게 깜빡거리는데 드러난 목선이 매끄럽게 어깨 선으로 떨어졌다. 형, 나 목말라요. 넋을 놓고 태형을 바라보던 석진이 태형의 볼을 한번 쓸어주곤 부엌으로 들어가 오렌지 주스를 한 컵 따라서 가져왔다.
" 누나도 여기 와봤어요? "
" 당연하지, 왜 질투나? "
" 조금, 근데 내 선물은? "
" 선물 받으려고 온거야? "
" 빨리 주기나 해요. 산거 다 알아. "
석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방안으로 들어가자 들고 있던 컵을 내려놓은 태형이 따라서 방으로 들어왔다. 방이 되게 어른 같아요. 미술품을 감상하듯이 방 문에 기대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다가 침대로 다가가 누워버린 태형은 서랍에서 작은 쇼핑백을 꺼내는 석진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석진의 냄새, 석진의 모습이 가득 찬 곳에 누워있으려니 꼭 약에 취한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져갔다. 흐흥, 코웃음을 내버리자 석진이 뒤를 돌아 태형의 옆에 앉았다.
너 누가 여기 누우래? 석진이 태형의 이마를 꾹 누르며 짖굳게 물어오자 태형이 앉아있는 석진의 허리에 고개를 묻은 채 눈을 감아버렸다. 다 내껀데, 누우면 안되는거예요? 웅얼웅얼, 입에 뭐라도 물고 말하는 사람처럼 작고 뭉퉁한 발음으로 말해오는 태형의 뒷머리를 석진이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 일어나, 니가 사달라고 해서 립스틱을 다섯개나 사왔어. "
" ... 뭘 그렇게 많이 사왔어요? 난 하나면 되는데. "
" 뭐가 어울릴지 몰라서. "
" 그냥 빨간색, 그게 좋아요. "
고개를 들어 석진을 바라본 태형이 미소 지었다. 반대쪽에 놓인 쇼핑백에 손을 뻗어 가져온 태형이 안에 있는 것을 꺼내 이것저것 색깔을 확인하다가 새빨간 색을 꺼내 석진의 손에 쥐여줬다. 머리를 갸웃하며 받아든 석진이 태형의 턱을 간질이자 꺄르르 웃던 태형이 립스틱을 쥐고 있던 석진의 손을 자신의 입술로 가까이 가져왔다. 발라줘요, 형이 예쁘게. 살짝 핑크빛이 도는 태형의 입술에 닿은 립스틱이 자극적이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한참이나 태형의 입술을 쓰다듬던 석진이 태형의 턱을 들어 립스틱을 발라주기 시작했다. 얌전하게 감긴 눈, 살짝 벌려진 입술 그곳에 발라지는 붉고도 단단한 감촉의 색깔에 태형의 턱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다 발랐네. 아이의 본연의 입술색이 없어지고 새빨간 색깔만이 입술을 덮고 있었다. 입술에서 립스틱이 떨어지고 그와 동시에 느리게 떠지는 태형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다. 검은 피부인데도 빨간 립스틱이 잘 어울렸다. 형, 예뻐요? 도톰한 입술이 움직이며 말을 만들어 냈다. 안에 살짝살짝 보이는 혀가 말캉해 보였다. 석진의 목울대가 한번 크게 울렁이고 그걸 빤히 바라보던 태형이 입을 다문 채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아무래도 예쁜 모양이었다.
" 이거 천천히 다 발라봐, 형 앞에서. "
" 형이 나중에도 발라줄꺼예요? "
" .... 어, 발라줄께. "
" 나중엔 이거, 이거 발라줘요. 이쁘다. "
오렌지 색깔을 집어든 태형이 석진의 눈 앞에서 립스틱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석진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 순간, 그대로 태형이 석진의 위로 올라타 배 위로 가볍게 앉았다.
누나한테 어제 애인 생겼다고 그랬어요. 태형이 웃으며 석진의 코 끝을 검지로 톡 쳤다. 더 말해보라는 듯이 석진의 손이 태형의 허벅지를 꽉 잡자 그런 석진의 손에 자신의 손을 포갠 태형이 그 손을 더 올려서 자신의 목에 감싸 쥐게 했다. 누나가 예쁘냐고 해서 너무 예쁘다고 해줬죠. 눈에 즐거움을 가득 담고 바라보는 눈이 반짝였다. 태형의 목을 쥔 손이 살짝 느슨해지자 이번엔 자신의 후드티 안으로 손을 가져가 배에 올려놓았다. 말랑거리는 태형의 배가 소리 내 웃는 바람에 움찔거렸다. 형, 내 애인 좀 예뻐요. 다시 석진의 손을 잡아끌어올려 자신의 볼에 댄 태형이 가만히 눈을 감고 석진의 손을 느꼈다.
석진의 강하고 단단한 이 손이 제 얼굴에 닿을 때, 태형은 뭔가 좀 울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왜 난 벼랑 끝에 선 느낌일까. 불륜을 저지르는 사람들은 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가 싶어서 가만히 있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아, 결혼하지 말라고 떼쓰고 싶다. 물론하지도 못할 말을 태형은 혼자서 삼켰다.
" 무슨 생각해, 아가. "
" 형 생각이요. 어떻게 하면 잘 구워먹을까 싶어서, 푸흐. "
" 진짜? "
" 아뇨, 다른 생각하는데 그냥 그렇다고 거짓말한거예요. "
" 무슨 생각인데, 말해봐. "
" 말하면 좀 놀랄텐데. "
" 괜찮아, 말해. "
태형은 석진의 몸 위로 엎드려서 눈을 감았다. 버릇처럼 제 입술을 핥았는데 립스틱 때문인지 맛이 이상해 태형은 인상을 찢부렸다. 김태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흘러가듯이 아무렇지 않게 뱉은 태형의 말에 석진이 웃어버렸다. 솔직한 태형의 말에 석진은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괜한 남매 사이를 망쳐놓은 건가 하는 생각에 갸웃하다가도 태형과 태희의 행동을 보면 그다지 사이좋았던 남매는 아니었던 거 같아서 그걸로 나름 위안 삼았다. 어차피 언젠가 반드시 태형을 만났어도 이렇게 되었으리라 생각하면서.
고개를 들어 석진을 바라보던 태형이 씩 웃으면서 몸을 타고 내려갔다. 깔끔한 형 벨트. 작게 중얼거리며 벨트를 푸는 태형의 손길에 석진이 상체를 일으켜 앉으려 하자 태형이 손을 뻗어 다시 눕혔다. 쓰읍, 가만히 있어봐요. 기분 좋게 해줄게. 달칵달칵, 벨트를 푸는 소리가 이렇게 야하게 들릴 수도 있는 걸까. 석진이 손을 뻗어 바쁘게 움직이는 태형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석진이 상체를 일으켜 제 드로즈를 잡아 내리는 태형의 턱을 손가락으로 들어 올려 묻자 태형이 빨간 입술을 하고 웃었다.
아무래도 저거 그만 바르게 해야겠네, 시도 때도 없이 달려들 거 같아서. 석진이 빨간 태형의 입술을 엄지로 쓸어내리자 까만 피부 위로 빨간 색이 흩어졌다.
그니까 제 상상 속의 석진이와 태형이는 이래요. 다음편에는 우리 태형이가 석진이꺼 물고 시작하겠네.. (철컹철컹)나는 주로 이 사진들을 보면서 글을 쓴다. ![[방탄소년단/진뷔] 잔인한 사이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c/7/ac7ebe89b01675ab045ba2d411eb7af0.jpg)
![[방탄소년단/진뷔] 잔인한 사이2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6/d/a/6da1a7be7c9f458c1e82bb0bed17be08.jpg)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