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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블루




0.


혼자는 언제나 외롭다. 여주의 아빠가 도망가 혼자 여주를 낳던 여주의 엄마가 그랬고, 혼자 남게 된 여주가 그랬다. 여주는 마을의 고아였다.


여주를 업어 키운 건 할머니였고 먹여 살린 건 사냥꾼이었다. 살생을 업으로 하는 사람만이 유일하게 배를 곪던 어린아이를 거둬주었다. 사냥꾼은 술을 마시면 불콰해진 얼굴로 이 아이러니함을 읊조리곤 했다. 옆에서 우유를 마시며 여주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줬다. 


여주는 사냥꾼에게 추운 겨울 산을 타는 법도 배웠고 총을 쏘는 법도 배웠다. 사냥꾼은 여주가 총을 잡는 걸 늘 못마땅해 했다. 함께 일을 갔다 오는 길에도 나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고 투덜거렸다. 사람을 죽이는 걸 업으로 살면 팔자가 드세진다며 걱정하면서도 어떻게 사물을 조준해야 하는 지, 언제 호흡을 멈추고 방아쇠를 당겨야 하는 지, 권총이나 소총을 다루는 법을 자세히 알려줬다. 


사냥꾼은 언제나 모순적인 사람이다.


1.


라고 여주는 생각했지만, 사실 사냥꾼이 여주에게 총을 알려준 건 여주가 총 부분에 대해 타고난 천재였기 때문이다. 여주가 의뢰에 끼면 일도 일찍 끝나고 뒤처리도 깔끔했다. 다르게 말하면 돈을 잘 벌었다. 


입이 늘어나면 돈이 배로 느는 법이었다. 사냥꾼은 여주가 총을 잘 쏘는 게 불만인 현실주의자였다.


아무튼 여주는 다른 사냥꾼들과 거대 문어도 잡고, 트롤도 잡고, 조금 다르지만 드래곤 문제도 해결한 적이 있었다.



2.


여주가 눈앞의 꼬마에게 재차 물었다.




“진짜 네가 드래곤이라고?”


[방탄소년단] 판타지 블루 01 | 인스티즈

“마자!” 



요새 마을에 산멧돼지가 습격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의뢰를 받고 해결에 나선 건 당연히 사냥꾼이었고 여주는 사냥꾼을 쫄래쫄래 따라나선 참이었다. 둘이 흩어져서 수색하던 와중에 동굴이 보여 잠시 쉬어갈 생각으로 들어갔더니… 웬 어린 남자애가 바닥에 뒹굴고 있었다. 낯도 안 가리는 지 여주를 보고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아이에게 여주는 자신의 식량을 건넸다. 야생동물들이 서식하는 산이라 위험하다며 안전한 곳으로 가자고 했지만 아이는 해맑게 이곳이 우리 집이라고 했다. 어리둥절해진 여주가 스무고개하듯 한참을 묻자 아이가 답답한지 가슴을 통통 두드리며 정체를 밝혔다.




“난 드래곤이란 마라!”

“거짓말하면 못써.”

“아냐! 진짜야!”




씩씩거리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힘을 끙 줬다. 똥 싸는 거 아닌가… 여주의 시선이 엉거주춤 서서 힘을 주고 있는 아이의 엉덩이로 향했다.



3.


뭉실뭉실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진짜 드래곤으로 변했다. 얼마 안 가서 다시 뿅 풀리긴 했지만. 고사리손으로 턱을 괴고 아이는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또 풀려써...




“근데 왜 사람 모습을 하고 있는 거야?”

“배고파서.”




아까 아이가 해치운 음식은 성인기준 세끼 정도는 해결할 수 있는 양이었다. 그걸 모조리 먹은 것도 놀라운데 아직도 배가 고프다니. 문득 여주의 머릿속으로 한가지 가설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며칠 전에 감자밭에 있는 감자 모조리 캐먹었다는 게 너야?”



기억을 되짚는 지 꾸깃하게 인상을 쓰던 아이가 인상을 풀고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웅.”

“포도밭도?”

“웅.”

“당근밭은?”

“당근은 시러해.”




천진난만한 답에 여주가 마른세수를 했다. 멧돼지가 아니라 드래곤이었다니.




“하지만 사람이를 괴롭히는 건 좋은 거랬어. 그래야 멋진 용이 된대.”

“멋진 용?”

“여기 내가 적어놨어.”




아이가 바지 주머니 쪽을 턱짓했다. 호주머니에서 삐죽 튀어나온 것을 빼낸 여주가 꼬깃꼬깃한 종이를 펴서 읽었다.



<머찐 욤이 데는 범>


1. 사람이를 게로핀다

2. 요덩이를 게로핀다.

3. 동물이를 게로핀다.

4. 나머지들를 게로핀다.


-끗-




어린아이가 쓴 것처럼 들쑥날쑥한 글씨와 내용 사이의 거리가 아스트랄 했다.




“이거 네가 쓴 거야?”


[방탄소년단] 판타지 블루 01 | 인스티즈

“응!”




아이는 뿌듯한 듯 활짝 웃었다. 되게 잘 썼지? 마지못해서 미소를 지은 여주가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바닥에 앉았다.




“드래곤아. 너 이름이 뭐야?”

“태형이.”

“태형아.”

“응.”

“누군가를 괴롭히는 게 왜 멋진 용이 되는 거야?”

“누가 알려줬어.”

“누가?”

“그건 나도 잘 몰라.”




악당이라도 만났나. 아니면 사기꾼? 곰곰이 생각해봤지만, 용을 사주할 만한 사람은 떠오르지 않았다. 머리를 쓸어넘긴 여주가 태형과 눈을 마주했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진 않은데.




“누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괴롭힘당하는 쪽은 괴롭히는 쪽을 멋지게 생각하지 않아. 네가 쓴 대로 다 괴롭히고 다니면 누가 널 멋있게 생각하겠어.”

“…그런 거야?”




태형이 입을 벌리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어려서 그런가 가감 없이 감정이 드러난다.




“응. 멋있는 건 지켜줄 때가 멋있는 거야. 그러니까 다신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애들 괴롭히지 않는 거다?”

“…알겠어.”




손가락까지 걸어가며 태형은 결연히 약속했다. 밧줄을 풀어주겠다고 여주가 다가갔지만 태형은 괜찮다며 힘을 줘 밧줄을 끊어냈다.




“약속을 어기면 목이 뎅강 잘리는 거 알지?”

“목?”




태형이 눈을 땡그랗게 뜨고 목을 감쌌다. 


사냥꾼은 왕년에 꽤나 거칠게 놀았고, 그 여파로 여주의 농담이나 말투 역시 간혹 거친 구석이 있었다. 그리고 여주는 태형이가 처음으로 대화해본 인간이었다.




 “…인간이들 정말 무섭구나…”

“넌 어리니까 뿔로 봐줄게.”

“고마어...”



이게 농담이란 걸 태형이 이해한 건 몇년이 지난 뒤였다.



4.


그 이후로 드래곤이 다신 마을을 습격하는 일은 없었다. 대신 여주는 종종 과일이나 고기를 가지고 동굴에 찾아갔다.



5.


의뢰를 맡고 집을 나선 사냥꾼이 며칠째 돌아오지 않았다. 일주일, 한 달이 넘어가자 의뢰 도중 죽었다는 소문이 마을이 퍼졌다. 그녀의 마지막을 본 사람도, 시체를 본 사람도 없었지만 소문은 어느새 기정사실화되었다. 


여주는 마을의 소문에 넌더리가 났다. 여주의 엄마를 목매게 한 것도 온갖 추잡스러운 소문이었다. 당장에라도 마을을 떠나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꾹 눌렀다. 언제 사냥꾼이 돌아올지 몰랐다.



6.


집배원이 여주에게 봉투를 하나 건넸다. 주소를 쓴 글씨체도 익숙하고, 보내는 사람의 이름도 익숙한 것이었다. 여주는 그 자리에서 곧장 봉투를 뜯어 편지를 읽었다.




[미안해. 일이 조금 꼬여서 오래 걸렸어.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빨리 써서 보내는 건데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네. 일주일 정도는 나 말고 집배원이 느린 탓으로 돌려줘. 

각설하고, 이곳 영주가 날 마음에 들어 해서 아마 백작 밑에서 일하게 될 것 같아. 네가 원한다면 여기로 와서 함께 지내도 좋아. 아니면 네가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고.

혹시 돈이 걱정이라면 지금까지 네가 일한 몫을 따로 보관해뒀어. 거실 카펫 밑 마루를 뜯어봐. 아마 네가 생각한 것보다는 많을 거야. 

사실 내 몫도 조금씩 떼서 같이 넣어놨거든. 


PS. 내가 보고 싶다면 언제든 이곳으로 와.]



독립의 기회는 갑작스레 왔다.




7.


여주는 윤기를 찾아갔다. 윤기는 으리으리한 저택에 혼자 살았다. 원래부터 이곳에 살았던 건 아니었다. 갈 곳 없던 윤기는 여주와 함께 사냥꾼에 집에서 하루 지낸 적이 있었다. 얼마 못 가 뛰쳐나가 버렸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윤기는 며칠 뒤 마을 제일 부자가 살던 저택에서 지내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도박판을 휩쓸었다는 것 같았다. 하루 만에 돈을 그만큼 번 건 아니고, 탈탈 털고 흥분한 부자가 집문서를 내놨다고. 부자를 반 죽여 협박했다던가, 사생아라던가 하는 말 중에선 가장 그럴싸한 추측이었다.




“그래서, 무슨 일로 온 건데?”




푹신한 서재 소파에 파묻혀 (어떻게 보면 끼어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있던 윤기가 고개를 까딱였다. 맞은편 소파에 앉아 과자를 오물거리던 여주가 답했다.




“나 학교에 갈 거야.”

“가고 싶으면 가.”

“같이 가자.”

“난 됐어.”




윤기가 고개를 젓자 초록빛 머리칼이 흔들린다. 바람이 불어오는 들판의 풀처럼 싱그러운 빛깔이었다.




“왜?”

“갈 필요를 모르겠어.”




학교는 사회성과 지식을 가르치는 곳이다. 지식은 먹고 살기에 충분할 정도로 알고 있었고 사회성은 별로 기르고 싶지 않았다. 윤기는 다른 이들과의 접촉이 피곤했다.




“재밌을 거야. 같이 가자.”

“싫어.”




여주는 끈질겼고 윤기는 냉정했다. 창과 방패의 싸움에서 이긴 건 자본력이었다. 윤기는 징징거리는 여주를 고용인을 시켜 밖으로 내보냈다.




8.


한편 마을에는 또 다른 소문이 돌았다. 영주인 남작이 결혼할 사람을 찾는다는 소문. 그리고 각 지역에서 젊은 처녀를 보내야 한다는. 나이가 60살이 넘어가는 할아버지면서 젊은 처녀를 찾다니. 이번이 몇 번째 재혼인지도 셀 수 없었다. 


소문에 쉽게 흔들리는 사람들답게 마을 분위기는 부쩍 흉흉해졌다. 얼마 없던 젊은 여자들은 급히 결혼할 사람을 찾아다녔다.


 여주는 영주가 결혼하든 아이를 낳던 관심 없었지만, 이장은 찾아와 굳이 소문이 사실이란 걸 확인시켜줬다.




“우리 마을에선 여주 네가 신부로 가게 될 거야.” 



설득도 부탁도 아닌 통보였다. 이미 이름까지 올렸다고 한다. 삐딱하게 서서 올려다보는 여주에게 이장은 으름장을 놨다. 이름이 올라간 상태에서 도망치면 수배령이 떨어질 거라며.




9.




“나 결혼한대.”

“…”

“이미 결혼식 날짜까지 지들끼리 잡아 놨더라. 아주 북 치고 장구 치고 지랄들 났어.” 




마을 사람들은 뻔뻔하게 나왔다. 다른 이들은 가족이 있으니 남은 혈연이 없는 여주가 가야 한다나 뭐라나. 특히 이장이 제일 재수 없더라. 시발놈. 욕을 중얼거리며 고개를 든 여주는 흥건한 태형의 얼굴에 흠칫 떨었다.




“너 울어?”

“아냐. 당황해서 눈에서 약간 식은땀이 약간 나는 거야.”

“약간이 아닌데.”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콧물도 주르륵 흐른다. 태형 자신도 왜 울고 있는지 몰랐다. 서럽고 슬픈 감정만이 엉겨 붙여 태형을 우울하게 했다. 




태형은 이제 막 성인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사랑보다 먼 우정보단 가까운. 그런 미묘한 감정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고, 실연의 아픔에는 면역이 없었다.




10.


결혼식 날짜는 하염없이 가까워져 왔다. 그동안 여주는 드레스도 맞추고, 피부관리도 받고, 머리 손질도 하며 바쁘게 지냈다. 여주가 똥 씹은 표정이든 말든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영주의 마음에 들까 고민이었다. 콩고물이라도 주워먹고 싶은 듯 했다.




11.


여주는 매주 주말마다 윤기의 집에 찾아와 귀찮게 굴었다. 쫓아내도 창문으로 기어들어 오는 바람에 고용인도 지치고 윤기도 지치고 여주만 쌩쌩하더라. 하는 수 없이 저 하고 싶은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윤기야.” 

“학교 안 가.”




여주의 부름에 윤기가 쳐다보지도 않고 답한다. 아무리 그래도 학교는 안돼. 아주 틈이 없다며 여주는 입술을 비죽거렸다.




“그게 아니라 내일 결혼식 올 건지 물으려 했거든?”




그제야 귀한 얼굴을 돌려준다. 금테 안경이 하얀 코끝에 걸려있었다. 누워서 책을 읽고 있어 그런가 안경이 삐뚤하다. 여주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맘 바뀌면 내일 아침까지라도 말해줘. 결혼 파투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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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됐네. 결혼식 파투 날 일은 없겠어.”




윤기의 철벽에 여주는 혀를 내둘렸다. 황소고집이 따로 없어 진짜.





12.



윤기는 마법사의 아들이다.


마법사는 인간을 사랑했다. 인간과 함께하고 싶었지만 인간들은 그를 싫어했다. 그는 툭하면 이용당하고 쫓겨났다. 그렇지만 이기적인 인간의 변덕스러움까지도 사랑했다. 매일 울던 그는 결국 직접 자신과 함께할 인간을 만들었다. 다행히 그는 뛰어난 마법사였고, 별문제 없이 일은 착착 진행됐다. 마지막에 그는 검정버섯 대신 네 잎 클로버를 넣었다. 아이에게 언제나 행운이 따르길 바라면서. 윤기의 머리색은 네 잎 클로버와 똑 닮아 있었다. 마법사의 기도 때문인지, 아니면 네 잎 클로버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윤기는 언제나 운이 좋았다.


마법사는 자신의 가르쳐줄 수 없는 인간의 영역을 윤기가 배우길 바랐기에 마을의 학교에 윤기를 보냈다. 운 좋은 윤기는 똑똑하기까지 했다. 그게 문제였다. 


윤기가 어떤 일을 (매우 잘) 해낼 때마다 아이들은 질투했고 아이들의 부모는 윤기를 못마땅해 했다. 사람들은 윤기의 행운을 싫어했다. 즐거움은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더니. 전부 거짓말이었어. 윤기는 책을 펴 위의 속담이 나온 부분에 엑스 표를 했다. 그리고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에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13.



트롤 때문에 갑작스레 집이 무너지는 가운데에도 행운은 십분 발휘됐다. 그 뛰어난 마법사조차 무너지던 벽돌의 파편에 죽어갔지만, 윤기는 큰 상처 없이 살아남았다. 거대 트롤의 습격에도 살아남은, 마을을 통튼 유일한 생존자. 


그날 이후로 윤기는 자신의 행운이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고 믿었다. 의도하든 의도치 않든.




14.



멀끔하게 차려입은 윤기는 문 앞에서 잠시 말을 골랐다. 여러 후보 중 가장 임팩트 있고 명쾌한 문장으로 결정한 뒤, 힘차게 문을 열었다.




“이 결혼 반대…”




답지 않게 큰소리를 내려던 윤기는 답지 않게 당황했다. 꽥꽥 소리 지르는 사람들, 박살이 난 벽과 천장, 주교 앞에 서 있는 신부, 드래곤이 움켜쥐고 있는 신랑. 


내가 사랑하는 건 남작이라고 외친 드래곤은 날개를 펴고 날아서 유유히 사라졌다. 날갯짓의 파동으로 거친 바람이 불어도 사람들의 넋은 돌아올 기미가 없었다. 혼자 여유로운 표정으로 식장을 훑어보던 여주가 윤기를 발견하고서 환하게 웃었다. 윤기는 파도처럼 밀려오는 피곤함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민윤기!”




드레스를 입고서 불편하지도 않은지 흰 비단길을 냅다 뛰어온다.




“윤기야!  결혼식 막으러 온 거 맞지?”

“아니. 길을 잘못 들었어.”

거짓말 하지 마. 여기서 어떻게 길을 잘못 들어?”




결혼식장은 영주의 저택이었다. 뒤는 산, 앞으로는 거대한 호수로 둘러싸인 저택.




“믿든가 말든가 난 간다.”




윤기는 미련 없이 돌아서서 집으로 가버렸다.




15.


남작을 납치한 드래곤의 요구는 단순했다. 나랑 결혼을 바라진 않을 테니 다른 누구와도 결혼하지 말 것. 발정 난 남작은 ‘자신의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안 된다’ 하다가 드래곤의 발톱이 들어오니 알겠다며 엉엉 울었다.




16.


영주는 옷이 너덜너덜해져 반쯤 헐벗긴 했으나 다친 데 없이 무사히 돌아왔다. 그리고 영지에는 추문이 돌았다. 드래곤에게 몹쓸 짓이라도 당한 게 아니냐고. 자극적인 데다가 안 그래도 영주를 싫어하던 사람이 많았기에 소문은 평소보다 몇 배는 빨리 퍼져나갔다. 그 덕에 바스러진 영주의 멘탈은 산산조각이다 못해 곱게 가루가 되었다.




17.


정신적 충격을 받은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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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이… 내가 안 한다고 했잖아.



…근데 그러면 여주가 결혼을 했을 테고… 음…




18.


여주는 개학에 맞춰 도착해야 했기 때문에 사건이 수습되자마자 곧장 떠나야만 했다. 학교까지 걸어가야 하므로 시간이 빠듯했다. 몇 장 없는 사진과 옷가지를 챙기고 돈은 몸 여러 군데에 분산해서 넣었다. 빠진 게 없나 꼼꼼히 점검한 뒤 여주는 대문을 열었다. 설레기도 했고, 솔직히 조금 무서웠다. 사냥꾼과 함께 의뢰 때문에 떠난 적은 있어도 사냥꾼 없이 마을을 벗어나는 건 처음이었다. 




“김여주.”

“민윤기?”




언제부터 있었는지 윤기는 대문 앞에 서 있었다. 말이랑 같이.




“가는 길 멀어. 이거 타.” 




말 고삐를 받아든 여주가 눈을 깜빡였다. 척 봐도 잘 길든 말로 보였다. 이 정도 말이면 집 한 챗값은 너끈히 할 텐데.




“고마운데… 왜 두 필이야?”

“나도 타야하니까.”




윤기가 당연하다는 듯 여상한 목소리로 답했다. 




"짜식, 아닌 척 튕기더니." 




여주가 능글맞게 눈썹을 까딱거렸다. 윤기는 질색했다.




19.




“근데 나 말 못 타는데.

“그럴까 봐 마차도 준비했어.”




민윤기 당신은 대체…!




20.




여주는 말 고삐를 잡고 걷고 윤기는 말을 타고 윤기네 집까지 갔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인영이 가까이 갈수록 뚜렷하게 보였다. 얼굴이 점차 확실해지자 여주가 우뚝 멈춰 섰다.




“…마부 고용한 거야?”

“아니. 모르는 사람인데.”




말에서 내린 윤기가 침착하게 답했다. 침착한 게 아니라 별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마부석에 앉아 있던 남자는 유독 티존이 선명했다. 어디서 많이 본 입체적인 이목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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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같이 갈거야.”




태형은 평소와 달리 분명한 어조로 똑똑히 말했다. 입술을 앙다물고 있는 거로 보아하니 삐졌거나 삐졌거나 둘 중 하난데. 아마 제대로 인사 안 하고 가려고 해서 서운했나 보다. 어릴 때처럼 빵빵해진 볼에 여주가 한숨을 쉬다가 피식 웃었다. 




“태형아 너 마차 몰 줄 모르잖아. 일단 내려와.”

“교감할 수 있어. 마음으로 말 걸면 돼.”




21.



말 한 마리는 숲으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날뛰다가 윤기의 손짓에 겨우 진정했다.


그나마 윤기의 운이 작용해 한 마리라도 남은 것이었다. 



22.


세 명이 탄 마차를 끌고 가기엔 한 마리는 무리였다. 태형은 기가 죽어 웅얼거렸다.




“미안해. 초록 인간.”

“괜찮아. 걸어가면 되지.”




윤기는 체념했다.




23.


윤기의 넓은 아량에 감동한 태형은 드래곤으로 변한 뒤 윤기와 여주를 등에 태워주었다. 금방 지친다며 드래곤으로 변하는 걸 꺼리는 태형에겐 나름의 빅딜이었다. 안색이 파리해진 채 태형의 비늘을 힘껏 쥐고 있던 윤기는 시간이 지나자 나름 여유가 생겼는지 문득 여주에게 물었다.




“학교 가면 뭐 할 거야.”

“모르겠어. 일단 하고 싶은 걸 찾아보려고.”

“그게 제일 어려운 건데.”

“그런가?”




여주는 콧잔등을 살짝 찡그리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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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뭐... 좋은 목표야.”




윤기가 씩 웃었다.



24.


마법사는 윤기에게 모든 걸 아낌없이 주었다. 제 목숨까지도. 마법사는 윤기를 감싸 안으며 쏟아지는 붕괴의 잔해물들을 대신 맞았다. 마법사는 언제나 자신이 윤기가 인간이기에 사랑했다고 믿었으나 그 순간 그저 자신은 윤기 그 자체를 사랑했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의 몸은 덧없이 부서지겠지만, 후회는 없다. 마법사가 바르작거리는 아이의 몸을 더 꽉 껴안았다. 이 아이가 생을 이어갈 수 있다면…



25.


파편과 마법사의 몸에 끼여 깔렸던 윤기를 발견한 건 여주였다. 모두가 살아 있는 게 기적이라고 했다.



26.


윤기는 마법사의 축복을 받아 행운이 따르는 아이였다.





--




+마이 리틀 판타지를 썰식으로 조금 가볍게 바꿔 풀어보려고 합니다(전글은 비워뒀습니다)

이 방식이 저도 편하고 독자분들도 읽기 더 편할 것 같아서요!

(아니라면 봐주세요...ㅠ)

+중간에 영주와 관련된 추문은 일부러 성추행을 하던 남자가 역으로 소문에 당하는 전개로 썼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분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모쪼록 달라진 글도 재밌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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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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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너무너무 좋아요ㅠㅠ 오래오래봐요 작가님!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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