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 선결혼 후연애
W_웰츠
"그래, 좀 있다가 봐."
이른 아침부터 울린 진동 소리에 눈을 비비적 대던 백현이 이제 막 뜬 해보다 밝은 액정을 들여다 보았고, 그것이 경수임을
알았을 때 눈을 감은 채로 핸드폰을 뺨에 올리고서 전화를 받았다.
오늘 특별히 하는 일 없으면 만나자고 하길래 학교 수업 끝나는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보기로 했다. 그리운 마음도
홀가분한 마음도 아닌 애매하기만한 학교에 간다니 나름 떨리는 듯 했다.
꺼진 휴대폰을 다시 들어 시간을 확인하니 7시가 조금 넘었고, 일찍 일어난 김에 찬열을 깨워볼까 싶어 침대에서 떨어지듯
일어섰다. 방문을 열자 고요하기만한 거실이 눈 앞에 보였고 망설임도 없이 코너를 돌아 찬열의 방 문 앞에 섰다.
똑똑. 예의상 해주는 노크도 잊지않고.
"일어나요, 형."
"..."
"7시 넘었어요!"
아무리 흔들고 불러봐도 묵묵부답으로 시체마냥 누워있는 찬열이 답답해 급기야 톤을 높여 부르자 그제서야 미간을 찌푸린다.
그리고서는 백현을 한 번 확인한 뒤 다시 이불을 덮는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올리기가 무섭게 다시 이불을 내려버린
백현이 다시 한번 깨우자 부스스하게 자리에 앉는 찬열이다.
"뭐야, 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
"어쩌다보니 깼어요."
"어제 낮잠자느라 늦게 잔 것 같은데 좀 더 자, 알아서 챙겨서 나갈게."
"아니에요, 잠 안와요."
어제 찬열의 제법 부끄러운 얘기에 줄행랑 치듯 제방으로 뛰어나간 백현은 잠이 오질 않아 새벽이 넘도록 온 집안을 헤집어다녔다.
낮잠도 낮잠이지만 그런 낯부끄러운 말을 감성 충만한 새벽녘이 다되가는 밤에 던져댔으니 생각이 안날래야 안날 수가
없었다. 사실 좀 피곤한 감이 없지않아 있었지만 요즘 계속 늦잠 자느라 찬열을 제대로 마중이며 아침밥이며 챙겨주질
못했다는 생각에 오늘은 아내? 집사람? 뭐, 하여간 그 노릇 좀 확실하게 해보려고 충혈된 눈을 부릅 떴다.
찬열이 씻는 동안 아침밥을 준비하고, 무슨 수트를 입을지 모르지만 왠지 입었으면 좋겠다싶은 남색의 단정하지만
캐주얼스러운 수트를 다림질해놓자 머리를 털며 찬열이 화장실에서 나왔다. 맛있는 냄새나네. 수건으로 머리를 털던
찬열이 집안가득한 음식냄새에 손길이 급해졌다.
"뭐입을지 몰라서 제일 잘 어울리는걸로 다림질 해놨어요."
"아, 그래? 고마워."
방안으로 들어오는 찬열에게 잘 다려진 남색 수트를 건냈다. 머리를 드라이기로 반쯤 말리던 찬열이 와이셔츠와 수트 바지를 입고서
서랍을 열어 수많은 벨트 중 짙은 브라운색의 고급스러운 벨트를 골랐다. 그리고 한 손에는 수트 자켓을 들고서 후다닥
식탁에 앉아서 차려놓은 밥을 먹기 시작하자 그 모습을 보던 백현이 찬열의 허전한 모습에 아차싶어 넥타이를 물어보자
밥에 집중한 듯 '너가 알아서 골라줘.'라는 말만 남긴채 허겁지겁먹는다.
찬열의 장농 문을 열자 수십개의 값비싼 넥타이들이 가지런히 나열되어있었다. 그 중 백현의 눈에 들어온 넥타이는 수트색과
비슷한 남색 계열에 얇은 흰 줄이 쳐있는 부드러우면서 캐주얼한 넥타이였다. 넥타이를 고르는 동안 밥을 다 먹은건지
현관문 앞 전신거울에서 수트 자켓을 입고서 신발을 고르며 신고있는 찬열이 보였다. 손에 들고있던 넥타이를 건내자
눈썹 한 쪽을 올려보인다.
"왜요? 마음에 안드세요?"
"아니."
"..."
"이런건 원래 아내가 해주는거 아닌가?"
부드러운 미소를 띄우며 고개를 살짝 오른쪽으로 틀어 내려다보는 찬열이 문득 잘나보였다. 그에 백현은 찬열의 손에 쥐어준
넥타이를 다시 뺏어서 와이셔츠에 걸어 단정하게 메어주자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덜 마른 듯한
찬열의 젖은 머리카락이 흩날리자 백현이 한참 손을 뻗어 찬열의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애교? 아니면 유혹인가?"
제법 진지한 얼굴로 아직도 머리카락을 정리하는 백현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찬열이 백현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갔다. 짖궃은 소리도 잊지 않고서. 한바탕 소동을 치룬 듯한 기분에 급 피로함을 느낀 백현이 쇼파 위로 몸을 던졌다. 으으으.
시간은 어느새 8시를 향해있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났는데 아직 한시간밖에 안지났다니.
"저기 실례하지만 이건 여기에 버리면 되나요?"
집안 청소를 하던 백현이 재활용과 음식물쓰레기를 버리러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재활용을 분리하는데 뒤에서
나즈막한 음성이 들려 뒤를 돌아보니 두 팔 가득 상자를 안고있는 남자가 보였다.
남자가 들고있는 상자의 안을 살펴보니 재데로 분리되지않는 재활용이 가득있었다. 어쩔줄 몰라하는 남자의 표정을 보니
도와줘야겠다싶어 남자의 상자를 받아들어 땅에 내려놓은 백현이 재활용의 달인마냥 순식간에 분리를 했다.
"아, 정말 감사해요."
"아니에요. 수고하세요."
"저기."
경수를 만나기로했기 때문에 서둘러 집으로 올라가려는데 뒤에서 다시 부르는 목소리에 대답없이 고개만 돌리자
사람좋은 미소를 짓고있다.
"이 근처에 사세요?"
"저 바로 여기 살아요."
"아, 전 이 쪽이요. 앞으로 자주 뵈요, 그럼."
남자의 질문에 손가락을 들어 집쪽을 가리키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유유히 사라지는 남자의 뒷모습만
보고있던 백현이 얼떨떨한 기분에 어깨를 들썩이다 집으로 들어갔다. 희한한 남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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