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은 가장 돌아가고 싶은 날이 있어요?」
늦은 밤, 정국에게서 짧막한 문자 메세지 한 통이 도착 했다. 지잉, 짧게 울리는 휴대폰에 물기가 축축히 젖은 수건을 털어내던 손길이 바빠졌다. 새까맣던 화면에 퍼뜩 불이 들어옴과 동시에 작게 새겨진 글자는 녀석의 이름 이었다. 지독하게 정직하게도, 어떠한 문자 하나 붙지 않은. 성씨 까지 적어내린 딱딱한 이름 석 자.
「글쎄. 왜?」
「사람이 살다 보면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하고 그렇잖아요. 그냥.」
전 정국은 가끔씩 나이와 맞지 않게 지나치게 진지한 구석이 있었다. 한창 딱딱한 공을 몰고 다니며, 운동장을 뛰놀아야 할 나이에 모든것을 깨달아버린 것이다. 정국의 하얗게 질린 얼굴을 본 순간 숨이 턱 멎었었다. 녀석을 위해 감춰두려 애를 쓰던 어떠한 치부를 고스란히 보여준 기분이었다. 조금 과격하고 상스러운 표현을 빌려 나타내자면, 당시에는 몹시 좆 같았다. 급히 뻗은 팔을 뿌리치는 입매가 너무나도 굳건해서, 대롱 대롱 매달려 미안하다 목 놓아 울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금방이라도 연락을 끊고 어디론가 흘러가 버릴것만 같았는데, 정국은 제 곁에 남아 주었다. 물론 그 시점을 계기로 하여 전과 후의 태도가 미묘하게 변화 하기는 하였지만 그것에 연연할 여지는 없었다. 잘못한 건 제 쪽 이었다. 어린 아이를 궁지에 내 몬, 병신 같은 어른.
「왜 답장이 없어요. 무슨 생각해요?」
「그런 거 아냐. 잠깐 씻고 왔어.」
「난 또. 내가 잘못 말 했나 싶었죠. 어려서 머리를 거치고 말이 나오는 성격이 못 되요.」
「이럴때만 어리다니? 핑계야. 하여튼.」
입술을 깨물었다. 가엾은 아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짐작 할 수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니, 너? 대놓고 묻기에도 매우 난감한 상황이 아닌가. 건물 옥상의 난간에 걸터앉아 아슬 아슬하게 웃음 짓던 그 순간 까지도 아무렇지 않게 물음을 건내던 정국 이었다. 무어라고 했더라. 명확히 기억 해내지는 못하겠지만, 아마도 괜찮냐 물었던 것 같다. 빗물에 축축히 젖어 떨어져 내리는 꽃 잎 마냥 애처로운 모양새를 하고선, 괜찮냐니. 그 때 태형은 휴대폰을 내 던졌다. 어른이라는 수식어가 초라 해지는 것만 같아서 화가 났다. 그리고, 후에는 슬퍼졌다. 말갛던 웃음을 앗아간 것은 제가 아니던가. 이런 생각을 했다. 나쁜 것은, 오로지 저 뿐이라는 생각.
「ㅋㅋㅋ 그래서 대답은 멀었구요?」
「몰라. 돌아가고 싶은 순간? 두서 없이, 갑자기 왠.」
「그냥. 지금 힘들어하고 있을 것 같아서요.」
축축한 뒷 머리를 탈탈 털어내던 태형이 비죽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신경 쓰지 말라면서, 정작 신경 쓰고 겁 먹게 하는것은 지나친 배려가 넘쳐나는 열 여덟 소년의 말 한마디라는 것을 알 리 없는 정국은 아직도 많이 어리다고 생각했다. 물론 제가 그 앳된 어른스러움에 대하여 이렇다 저렇다 할 처지가 되지 못하지만 말 이다. 제법 물기가 젖은 수건을 바닥에 떨어트린 태형이 다시금 휴대폰을 손에 쥐었다. 10시 31분. 무엇을 시작 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이 제 눈앞을 어른 거렸다.
「내가 애도 아니고, 됐어.」
「그렇긴 하네요. 너무 두서 없었나.」
「알면 됐어. 왜, 넌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있냐?」
무언갈 시작하기엔 애매한. 무언갈 끝내기에도, 애매한. 쉽게 매듭 지어지지 않는 어중간한 시간은 태형을 애태웠다. 똑딱 똑딱. 조용한 거실에 작은 탁상 시계의 초침 소리가 크게 들리었다. 그 소리가 반복 되면 반복 될수록 바짝 말라가는 입술을 혀로 축여낸 태형은 기약 없는 예전을 회상했다. 푸른 들판. 새 하얀 반팔티를 걸쳐 입고, 이곳저곳 바삐 달려가던 전 정국. 어린 소년의 이마에 땀방울이 흥건하게 내려 앉을수록, 시간은 흘렀다. 그 때 태형은 처음으로 시계를 멈췄으면 했다. 허나, 그것이 쉽진 않았다. 지금와서 돌이켜 보건데, 붙잡아 뒀어야 했던 것이다. 어렵지만 서도. 타들어가는 입술에 새카만 액정 속에 퍼뜩 불이 켜 졌다.
「있죠. 당연히.」
「오, 언젠데?」
「형을 만나기 전. 그냥, 그랬음 해요.」

인스티즈앱
결혼비용 아끼려다 싸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