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민/세슈/슈총] 철부지부자들끼리 연애하는 학원물 0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a/6/a/a6a6874752d26722ebd595ff4e723a06.jpg)
남자는 자신의 손을 쳐다보았다. 푹신하고 감촉이 좋은 화이트컬러의 고급스러운 쇼파는 남자의 등과 허리를 안정감있게 감싸주고 있었고, 빈티지하면서도 고풍있는 복잡한 무늬의 커다란 쿠션은 남자가 곰인형 안듯 끌어안고 있었다. 그는 똑같은 디자인의 다른 쿠션 하나를 신발을 신은채로 아무렇지도 않게 밟고 있었다. 천진난만하게 발장난을 치며, 남자는 하얗고 가느다란 자신의 네번째 손가락을 내려다본다. 여자라고 해도 믿을 만큼 작고 하얀손에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부담스럽지 않을 정도의 다이아몬드 장식이 멋스럽게 꾸며져있고, 남자의 이니셜중 하나인 m이 새겨져있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 반지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했다. 일반 사람들이 몇년을 꼬박 일하고 모아도 저 반지에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그리고 그 값어치에 누구보다도 어울리는 진짜 '주인'의 손에 끼워져 있기 때문에, 더욱더 빛나 보였다.
빛나다. 눈부시다. 반짝이다. 돋보이다... 모두 다 남자를 형용하는 말, 남자를 위한 말이였다. 그는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부와 권력, 톡톡 튀는 젊음과 아름다움, 태생부터의 고귀한 자태 모두를 갖추고 있었다. 신은 공평하다는 말이 새빨간 거짓말이란 것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0.001% 안에 드는 가장 높은 로얄 상류층.
완벽에 가까운 그에게 단 한가지 단점이 있다면 바로 그의 더러운 성격이다. 하지만 주변의 이들이 그의 괴팍함을 받아들이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절대적인 강자를 약자는 용서할 수 밖에 없으니까. 이기적이고 자비롭지도 못한 악마같은 성질을 가졌어도, 부자니까 괜찮아. 다 가졌으니 성격쯤이야 안좋을 수 있지. 그게 다수의 생각이였다.
우리나라에서 그보다 위에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직 열여덟밖에 먹지 않았어도 그랬다. 유치원 다닐때 부터, 또래고 뭐고 선생, 원장까지 다 남자의 아래였으니까. 그럴수록 자칫 권태로움을 간직하기 마련인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성격 자체는 못된 것만 떼어놓고 보면 나쁘진 않은 성격이랄까. 그게 무슨말이냐고? 꽤 방방뛰고 발랄하다. 그와 오분이라도 함께 있어본 사람은 그가 귀엽고 상큼하다는 느낌을 받곤한다. 남자의 부모는 솔직하게 말하면 그를 키워왔던 어린 시절부터 그에게서 무뚝뚝한 아들의 모습보단 새침한 딸의 모습을 더 많이 발견했다. 비슷한 나이의 남자아이들 답게 운동이나 게임을 즐겨하긴 커녕, 땀나고 더러워서 싫다며 몸을 움직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차라리 푹신한 쇼파에 누워 명작 영화를 보며 감명을 받거나 패션잡지를 보며 맘에 안드는 모델이나 디자이너를 향한 시시콜콜한 독설하기를 좋아했다.
원하는 건 뭐든지 손에 넣어야하기 때문에, 붙잡고 떼를 쓰고 억지를 부리는것이 주특기였다. 그렇게 그가 억지를 부리기 시작하면, 일단 그 어떤 불가능한 일이라도 가능하게 만들어 내는게 그 집 사람들의 철칙이자 숙제였다. 아름다움에 굉장히 민감해서 매일매일 피부마사지사를 부르고 세계 곳곳의 레어한 명품들을 싹쓸어와 그의 옷방 전체가 백화점을 방불케한다. 그리고 그의 손이 닿는, 눈길이 닿는 모든 것은 아름다워야하는데, 그래서 청결에도 아주 신경을 쓰는 편이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모순이게도 자기가 물건을 정신없이 어질러 놓고선, 그걸 보고 하녀를 불러 왜 치워놓지 않았냐고 득달같이 화를 낸다.
"민석 도련님."
어떤 곳에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항상 주인공을 독차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돋보이려고 노력을 딱히 하지 않아도 이미 주위의 모든 이들이 주목하고있는. 남자가 그런 사람이였다.
유치원 다닐 나이부터 아직 어린 지금까지, 동갑이고 어른이고 할 것없이 그의 하인이 되는걸 자처했다. 원치 않아도 항상 남자의 곁엔 그를 떠받드는 이들로 가득했으니. 자연스럽게 그는 주인공과 스포트라이트에 익숙해졌다. 모든게 그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가 원하는대로 되어갔다.
제멋대로인 폭군이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그게 그에게 가장 어울린다는 것엔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으니까.
남자, 민석은 여전히 반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의 빛을 받아 영롱히 반짝이는 작은 보석. 하얀 손가락. 다이아몬드에 빛이 반사되 마치 별처럼 반짝반짝 빛이났다. 쿠션을 끌어안고 있던 두 팔에 순간 힘이 꽉 들어갔다 풀린다. 민석은 쿠션에 얼굴을 묻고 자는듯 가만 있는다. 쿠션에 닿아 헝클어진 머리칼이 부르르 떨리기 시작한 몸에 부드럽게 흩어진다. 잔뜩 웅크린 그의 몸이 계속해서 작게 들썩였다. 그가 울고있는지 웃고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 쿠션에 파묻혀 고갤 들지 않던 민석은 도련님, 하는 낮은 목소리에도 미동조차 않았다. 도련님. 여전히 반응이 없다. 들썩임은 여전하다. 다시 한번 민석의 집사가 그를 부르려는 순간 민석의 고개가 서서히 들어올려진다. 눈가가 빨갛다.
집사는 거칠게 반지를 손가락에서 빼내 바닥에 힘껏 던져버리는 민석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반지가 데구르르 굴다가 침대 밑으로 들어갔지만 민석도, 집사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빨갛게 달아오른 눈을 손등으로 비비며 민석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왜."
"...루한 도련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2,3층이 전부 민석의 방이었다. 본가에서 나와 민석이 혼자 살고 있는 이 집은 3층까지 있는 복층구조의 아파트이고 1층은 소수의 하녀들과 집사들이 살았다. 민석의 집은 서울에서 가장 비싼 단지 중에서도 제일 가는 고층아파트의 로얄 38층이였다. 운동장 처럼 넓은 2층은 거실, 서재, 또 손님을 맞이하는 응접실 정도로 사용되고 있다. 민석은 그 중에서도 2층의 한 중앙에 놓여져있는 커다란 쇼파를 좋아한다. 어린 아이들처럼 푹신푹신하고 부드러운걸 좋아하는 민석을 위해 일본에서 공수해온 쇼파였다.
"꺼지라고 해."
"...."
민석은 쇼파에서 벌떡 일어나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걸어가는 그의 밑으로 햇빛에 그림자가 길게 진다. 침실과 드레스룸으로 쓰이는 3층으로 사라져버린 민석의 뒤로 집사가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한번 숙였다.
***
이곳은 LX그룹 호텔 지하에 위치한 bar이다. 미성년자들은 술을 마실 수 없는게 일반적이지만, 부자들의 세계에서는 예외다. LX그룹의 손자인 루한과 그의 부자친구들은 누구의 저지도 없이 그 곳을 마음대로 들락날락거릴 수 있다.
그들은 고가의 와인을 익숙하게 음미하며 그들만의 이야기에 한창 들떠있었다. 이야기의 화두는 역시 그들이 다니고 있는 한국 최대의 명문학교, 제일사립고에 재학 중인 그들 또래의 재벌 아이들에 대한 가쉽, 스캔들, 뒷담화 등 이였다. 얼마전에 a랑 사겼던 b가 사실은 c랑 오래전부터 양다리를 걸쳤다더라. 여자애들이 한정판 명품백을 두고 머릴 쥐뜯고 싸웠다더라. 작년에 학년회장이였던 애의 아버지 회사가 망했는데 어마어마한 등록비를 낼 수 없어 결국 전학을 갔다더라. 인물도 그 종류도 다양한 소문을 가지고 침튀어가며 열심히 대화를 나누던 중에 아득히 먼 옛날처럼 느껴지는, 까맣게 잊혀졌던 낡은 이름이 하나 나왔다.
"근데, 김지현 한국 온다더라?"
김지현. 그가 누구던가. 김지현. 가쉽을 찾는 하이에나들에게 던져진 파격적인 한 이름에 일제히 눈빛에 생기가 가득해진다.
"김지현? 내가 아는 그 김지현?"
"미국 갔는 김지현?"
"헐. 그새끼 평생 안돌아올것처럼 가버리더니.. 대박. 진짜야?"
"어 진짜. 걔네 엄마랑 울엄마랑 친구잖아. 엄마가 말해줬어. 존나 지금 짐 다 싸놨대.. 다음주에 한국 오신댄다."
"대박이다... 그럼 설마 학교도 컴백?"
"에이~ 설마."
모두 말도 안된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진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울학교로 다시 전학온댄다. 그에 경악한 친구들 때문에 순식간에 테이블이 난리가 나며 소란스러워졌다. 제정신이냐며 욕을 하는 이가 있는 반면에, 새학기부터 재밌는 일이 있겠다고 즐거워하는 이도 있었다. 어쨋든 그 이름의 등장으로 인해 굉장히 쇼킹한 것은 사실이였다. 그러다 유독 조용히 있는 한사람에게 문득 약속이라도 한듯 시선이 쏠렸다. 그리고 모두 입을 합 다물고는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그 시선들에도 루한은 아랑곳 않고 그저 담배를 깊게 빨아마셨다. 겁없는 찬열이 히죽히죽 웃으며 루한에게 말을 걸었다.
"김지현 온다잖아."
"관심 없어."
"관심 없는거 아닐텐데~"
놀리는 목소리에 루한은 고갤 들어 찬열을 지긋이 노려보았다. 내가뭐?라는 표정의 찬열에게 스페인와인을 홀짝이며 여태껏 지루해하며 대화에 전혀 참여치 않고 있던 세훈이 묻는다.
"김지현이 누구더라."
"미친. 너 김지현도 기억 못하냐?"
"이름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거같은데. 기억이 안나."
"작년에, 루한. 이거."
찬열이 새끼손가락을 흔들며 작게 말했다. 세컨드,세컨드. 루한이 테이블 아래 찬열의 정강이를 걷어찬다. 갑작스런 고통에 찬열이 악!!! 소리를 내며 억울하게 소리쳤다. 맞잖아!
"세컨드는 뭔 세컨드야. 씨발놈아."
"그럼 김지현이 세컨드지 퍼스트냐?? 엉???"
"미친새끼."
"아~ 그렇구나! 김민석이 세컨드였어?"
"씨발. 박찬열..."
닥쳐라. 루한이 목소릴 내리깔고 그르렁댔다. 찬열은 흥, 콧방귀를 뀌었다. 다 맞는 얘기면서 꼭 화내더라, 어이없게. 그 와중에 세훈은 생각이 난듯 아아, 한다.
"기억났다. 루한 세컨드까진 아니고... 엔조이지. 엔조이."
"에이, 야! 오세훈 니가 뭘 모르네. 이때까지 루한 저 색마가 원나잇한 년놈들이 몇트럭인데, 걔들이 엔조이고. 김지현은 엔조이가 아니지. 루한이랑 사겼잖아."
"씨발새끼야 진짜 안닥치냐? 김민석이 있는데 사귀긴 뭘 사겨. 씨발 존나 개소리 짓껄이지말고 술이나 처먹어."
"그럼 니가 김지현 명품 사다주고 데이트하고 김지현 집에서 동거까지했는데, 그게 사귄게 아니면 뭐냐? 너 원나잇하는애들한텐 그렇게 안하잖아."
"내가 아니라는데 니가 왜 자꾸 지랄이야, 쌍놈이."
"딱봐도 그때 김민석보다 김지현 좋아하는게 보였으니까 하는말이다, 병신아."
이 마지막 말을 끝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난 루한이 찬열에게 달려들었고, 금새 난장판이 되었다.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화나게 했는진 모르겠지만 누가봐도 굉장히 격렬한 몸싸움이였다. 다른 친구들은 둘을 말리고 떼어놓느라 진땀을 뺐다. 세훈은 와인의 마지막 한모금을 천천히 마시며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겨우 그딴 얼굴도 잘 기억안나는 새끼 하나 때문에 순식간에 품위를 잃고 동물의 본성을 드러낸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오늘은 이만 여기서 쫑이 날것같아, 흥미를 잃고 세훈은 바를 나왔다. 경호원들이 호텔 입구에 지키고 있다가 모습을 보이는 세훈에 서둘러 주차된 차로 뛰어간다. 차에 탄 세훈은 의자에 앉아 한참 가만히 앉아있었다. 어디로 갈까요, 기사의 질문에 답을 않은 채 그는 창문 밖을 보며 턱을 매만졌다. 클럽에 갈까, 아니면 그냥 바로 들어갈까. 그렇게 생각에 잠긴 듯 있던 세훈은 넌지시 물어오는 조심스러운 물음에 몹시 심기가 불편해져 미간을 찌푸렸다.
"회장님께선 이제 그만 본가에 들어오시라고..."
"내가. 그 얘기 꺼내지 말랬지."
주제넘어.
싸늘한 세훈의 소리를 듣고 뒷목이 서늘해진 경호원이 바로 고개를 수그렸다. 호텔로 가. 짧은 지시에 기사가 차를 운전하기 시작했다.
본가에서 가출하듯 나온지 이제 거의 세달이 되어간다. 이젠 집보다 호텔룸이 익숙해진 세훈은 예전에도, 앞으로도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 집에 오회장과 함께 살기는 죽기보다 싫었고 끔찍했다. 계속해서 본가로 돌아오라 연락이 오는 오회장이였지만 세훈은 일절 무시해왔다. 매일매일 술에 진탕 취하고 여자들과 함께 밤을 보내 외로울 틈도 없었고, 현재 생활에 몹시 만족하는 세훈이였다.
"...."
"도, 도련님!"
하지만 몇달째 묵고있던 호텔에 도착한 세훈은 오회장이 보낸 사람들을 마주쳤다. 그들은 회장님의 지시이니 이제 그만 돌아오시라는 말을 하였다. 여기서도 돌아가, 저기서도 돌아가. 머리 끝까지 짜증이 난 세훈은 뒤도 안돌아보고 호텔을 빠져나와버렸다. 허둥지둥 세훈의 뒤를 따라오는 경호원에게 이제 호텔 방 빼. 라고 명령 했다.
오로지 아들에게 갖는 관심사라곤 회사를 이을 후위. 대중들에게 보여질 이미지 따위가 전부인 허울뿐인 아버지는, 자신도 필요 없었다. 새어머니라고 부르기도 지긋지긋한 그 여자도, 약혼을 추진 중인 JSJ그룹 회장의 외동딸도 모두. 세훈은 이렇게 숨막히고 자신을 괴롭게 하는 이런 것이 가족이라면, 차라리 고아이고 싶었다.
자신이 제 발로 숨막히는 그딴 집으로 돌아갈린 절대로 없을 거라 생각하는 세훈이였다.
***
"씹쌔끼 진짜. 아 왜 얼굴을 치냐고."
"니가 존나 시비를 걸었으니까 그렇지."
따끔한 입술을 매만지며 볼멘소리를 하는 찬열에게 종대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찬열이 억울한 표정으로 종대를 쳐다 보았다. 그러고선 말한다. 야, 맞는 말만 한게 시비냐?! 썅 존나 억울해!! 종대는 앞에 앉아 있는 찬열이 한심하다는 듯이 쯧쯧 혀를 찼다.
"니가 그때 거기에 없어서 그래. 나 정말로 맞는말만 했다고! 루한 새끼 지가 찔리니까 괜히..."
"얌마. 루한 앞에선 김지현이란 세글자 자체가 금기어잖아. 몰라?"
"...씨발, 지가 뿌린 씨앗 지가 거두는거지. 금기어는 지랄."
"안봐도 뻔하다. 맞는말이라면서 또 루한 속 박박 긁어놨겠지 너."
"씨발... 그렇게 들을때마다 당당하지 못할거 애초에 바람은 왜 폈대?"
찬열이 씩씩거리며 말했다.
"그게 루한 고질병인거 모르냐? 그 놈은 영원히 정착 못할거다 아마."
"차여서 존나 폐인 된 놈이. 병신... 바람을 왜피워."
"그러게 말이다. 그때 김민석이 헤어지자고 통보 날리고 전화번호도 바꿔버리고. 만나주지도 않아서 루한새끼 그때 거의 정신이 나갔었지. 울고불고 난리 피우고... 김민석 집앞에 맨날 찾아가고... 너 없으면 못산다, 콱 죽어버릴거다 소리지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아오 그때 확 깨졌어야하는건데. 존나 구라는 잘까요 개같은놈."
"김민석도 그때 진짜 안그래도 성격 개드러운앤데... 장난 아니였지. 김지현 학교생활 아예 파탄내고... 존나게 살벌했다. 김지현이 걸려도 한참 잘못 걸렸어."
"근데 이번에 울학교로 다시 컴백한다니, 제정신이 아닌게지. 걸레새끼."
아까부터 루한과 김지현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찬열을 종대가 가늘게 가자미눈을 뜨고 보았다.
"암튼... 루한은 그때 김민석 이별통보사건 이후로 김지현 이름만 나와도 존나 지랄하는 놈인데, 박찬열 너 왜그랬냐?"
"왜그랬긴 뭘 왜그래. 내맘이다, 새끼야"
"너 아직도 김민석 못잊었냐?"
그대로 찬열은 빨대로 마시고 있던 하와이안소다를 뿜었다. 바닥에 찬열이 내뱉은 액체가 흥건하다. 고개를 수그려 켁켁 기침을 하면서도 못들을 말을 들었다듯이 종대를 노려본다. 사레가 들려서인지 다른 이유인지 목과 귀까지 시뻘개진 찬열이 소리쳤다.
"뭐라는거야 미,미친놈이!!!!"
"작년부터 모른척 해줬지만 너무 티난다, 박찬열."
"....허? 지랄. 헛소리 집어치워."
내가 김민석을? 찬열이 어이가 없다는듯 크게 실소를 터트린다. 하지만 눈동자가 정처없이 흔들렸고 목소리 또한 퍽이나 어색했다. 다 안다는 표정으로 미소를 짓고 있는 종대에 찬열은 더더욱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찬열의 얼굴이 점점 더 빨개졌다.
"농담이야 임마."
"....씨발. 농담도 뭐 그런 농담을."
"박찬열이 김민석을 좋아했었다는게 말이 되냐, 하긴. 존나 원수지간이였는데."
찬열은 종대가 하는 말이 정말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가서 표정관리가 안됐다. 아무도 모를거라고 생각했는데.
둘은 고등 1학년 처음 봤을 때 부터 서로를 괴롭히려 안달나있었다. 마치 서로에게 시비를 걸려고 학교를 오는 것 처럼, 그들은 매일같이 싸우는 걸로 유명했었다. 찬열은 민석같이 싸가지가 없는, 그러니까 자기 밖에 모르는 그런 성격을 처음 보았다. 장난끼가 심하긴 하지만, 늘상 두루두루 잘 지내고 누구에게나 친화력 있게 다가가는 찬열은 안하무인 김민석을 이해할 수 없는게 당연했다. 일단 첫만남부터 그랬다. 조그맣고 귀엽게 생긴 뽀얀 남자애를 보고 그저 아무 이유 없이 말이 걸고 싶었다. 웃으면 더 귀여울 것 같은데 입을 꾹 다물고 냉랭하게 앉아있는 모양이 찬열의 장난끼 다분한 성격에 근질근질하기도 했고. 부모님은 어디 쪽 사람인지 어느 집안 아이인지 외동인지 아닌지 그냥 전부 다 궁금했다. 그래서 가볍게 안녕? 하고 말을 걸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민석도 재수 없긴 마찬가지였지만 어쨌든 김민석은 나름 대답 정도는 해주었다. 아주 짧고 귀찮게. 뭐? 라고.
-이름이 뭐야?
-....................김민석.
-난 박찬열.
말을 걸어온 상대가 궁금할 만도 한데 민석은 여즉 폰만 뚫어지게 바라보며 대답만 툭툭 던졌다. 그것도 폰에 정신이 팔려서 한참 뒤에나 민석은 귀찮다는 듯이 내뱉었다. 무슨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저렇지. 찬열은 속으로 생각했다. 관자놀이에 힘줄이 빡하고 생긴 기분이였다. 적어도 사람을 마주할때는 휴대폰을 내려놓는게 예의 아닌가. 어디 집안이길래 가정교육을 저렇게 받은걸까 싶었다. 하지만 인내심을 가진 찬열의 질문은 계속되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봐?
-..............카톡.
-아~ 카톡. 누구랑 하는데?
카톡답장 온 내용이 굉장히 마음에 안드는지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그 미간을 바라보며 덩달아 심각한 표정이 된 찬열이 응? 하고 한번 더 물었지만 민석은 정수리만 보인채 카톡에 뭐라 다다다 친다. 무시 받는데 익숙하지 않았던 찬열은 그런 행동들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찬열이 민석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한마디 하려는 순간, 어깨에 올린 손에 순식간에 따끔한 느낌이 있었다. 상황 파악이 안되 멍하니 있던 찬열은 그제야 민석이 제 손을 쳐냈다는 걸 알았다. 민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급하게 어디에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자신의 손이 내쳐졌단 충격에 잠시동안 멍을 떄리고 있다가, 찬열이 짐짓 화가 난듯 민석의 전화기를 뺐었다.
그에 눈길 한번 주지 않던 민석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표정은 정말 살벌할 정도로 차가웠다. 남들이 보면 오금이 저릴 정도로 뿜어내는 독기가 어마어마 했으나, 찬열 또한 친화력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어디가서 무시당하는 성격이 아니라 오히려 한 성깔 한다는 소리를 듣는 편이라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게 약 5초간 무시무시한 분위기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중 찬열의 손에 들린 민석의 폰에서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다. 찬열이 입을 떼려는 순간 민석이 찬열의 뺨을 내리쳤다. 익숙치 않은 볼의 얼얼함과 돌아가있는 자신의 고개에 찬열은 손이 내쳐졌을때 보다 더 강한 쇼크를 받아야했다. 지금, 나에게, 저 꼬맹이 같은 자식이, ...뺨을 때렸다? 어이가 없어 하, 하고 어이없는 실소를 터트린 찬열에게 민석이 자신의 휴대폰을 거칠게 빼았으며 라스트팡을 날렸다.
-짜증나게 하지말고 꺼져.
그 날 그 사건 이후로, 찬열은 민석을 볼때마다 으르렁거렸고, 관심 없는 것엔 기억을 두지 않는 민석의 입장에선 처음 보는 찬열이 툭툭 시비를 걸어오니 똑같이, 아니 2배 3배 더 심하게 되갚아주었다. 서로를 괴롭히는 방법은 방법도 강도도 가지각색이였는데, 일단 만나면 욕부터 내뱉고 비난과 헐뜯음은 기본이였고, 길가다가 발을 걸어 넘어지게 하는 것 부터 찬열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그애의 친구들에게 찬열의 안좋은 소문을 퍼트려서 깨지게 만들거나 민석의 엽사를 페북에 올려 민석이 직접 고소를 걸기 직전까지 갔던 일까지 다양했다. 뒤늦게 알고보니 처음에 민석이 자신을 씹으면서 열나게 카톡을 해댔던 상대가 루한이였고, 루한과 민석은 제일사립고에 들어오기전 제일사립중에 다니던 16살때부터 사겨온 커플이였다. 이 사실을 처음 알았을때 찬열은 진심으로 경악했다. 여자를 밥먹듯이 갈아치우는 루한이라 당연히 길게 사겨온 애인이 있을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었고, 그게 다른 누구도 아닌 민석이라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자존심에 그 성격에, 자신이 봐왔던 그 어떤 사람들보다 단언컨대 가장 성격이 제멋대로인 민석인데, 대놓고 바람피는 애인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음의 연속이였다. 루한이 죽지 않고 여태껏 살아있는게 용했다. 어쨋든 이 얘기는 제쳐두고, 민석은 루한과 찬열이 친하게 지내 무리를 형성했다는 사실이 끔찍이도 싫었다. 찬열은 그것을 알고 일부러 민석의 앞에서 루한과 붙어있곤 했다.
하지만 이렇게 죽도록 미워하는 관계에서도 처음 보았을때 그 귀여웠던 모습이 잊혀지지 않아서일까. 그땐 김민석의 성격도 몰랐으니 더 귀여워보이기에 충분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민석은 딱 찬열의 타입 그 자체였다. 그래서 쌩판 남이였떤 그때도 선뜻 친해지고 싶어 먼저 말을 걸었던 것이고 말이다. 귀엽고 새침하면서 도도하고 조금은 (사실 엄청 많이지만)싸가지없는 스타일. 어쨌든 찬열은 민석이 신경쓰였다. 그냥 지나갈때도 신경쓰였고 시비를 걸어도 신경쓰였고 루한과 함께 있을때는 제일 신경쓰였다. 매사에 마음대로 행동하는 민석은 사실 루한에게도 남친이라 예외를 두진 않았다. 하지만 아예 남에게 그렇게 구는 것과 연인사이인 그에게 대하는 것은 차이가 있었고, 루한 또한 그런 민석의 성격을 다루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루한에게 민석이 애교를 부리는 것을 토가 나온다고 표현했던 찬열이지만, 그런 장면을 볼때마다 찬열의 마음 속엔 불구덩이가 마구 떨어지는 기분이였다. 민석이 너무 깜찍해서 설레는 마음과 천하의 김민석의 애교를 아무렇지도 않게 받을 수 있는 루한을 보는 질투심. 두개의 마음이 찬열의 안에 공존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김민석을 애인으로 두고도 넘치는 바람끼를 주체못하는 루한이 짜증나 미치겠는거다. 민석 성격에 안헤어지고 내버려두는것은 오래 전 부터의 미스테리이니 그렇다 치고, 민석을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주제에 매일같이 클럽에 드나드는 이중적인 제 친구놈을 볼때면 금방이라도 주먹이 부들거리곤 했다. 놔주지도 않을꺼, 잘해주기도 하란 말이야.
이런 찬열의 마음을 눈치 빠른 종대는 진즉에 알고 있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겠냔 말이다. 김민석과 박찬열. 박찬열과 김민석.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앙숙인 둘이다. 하지만 종대는 찬열이, 민석을 골려주면서도 늘 끝머리엔 무언가 미묘한 표정을 짓는것을 알고있었다. 조금 심한 장난을 치고 나면 꼭 뒤를 돌아보며 민석을 힐끔거렸다. 얼굴에 나 신경 쓰여요 라고 떡하니 적혀 있었는데, 못알아채면 병신이지. 게다가 두사람의 싸움은 항상 찬열이 살짝 져주는 것으로 종결되곤 했다. 민석은 정말 혼심을 다해 찬열을 괴롭히지만 찬열은 민석에게 항상 도가 넘는 괴롭힘이 아닌 소소한 장난만을 쳐왔고, 그마저도 전전긍긍해했다. 그리고 종대는 찬열이 참 안타깝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것도 모르고 앞으로도 민석은 찬열을 죽도록 싫어하기만 할테니 말이다.
"어? 저거 어디서 많이 보던 머리카락인데..."
"뭐?...어? 야, 오세훈!"
혼자 의자에 기대앉아 폰을 보고 있던 세훈은 갑자기 들려오는 자신의 이름에 고개를 들었다. 이런 이른 시간에 브런치가게에서 부지런하게 브런치를 즐길 위인은 아닌지라, 찬열과 종대는 신기해했다. 그것은 세훈도 마찬가지였다.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세훈은 호텔 요리가 먹고싶지 않았고 예전에 종대와 한번 와봤던 괜찮은 브런치가게에 와본것인데, 친구놈들이 있을 줄이야.
"그때 루한이랑 잘 싸웠냐?"
"그러고보니 새끼야. 너 그때 언제 빠져나갔어."
"존나 뒹굴고 싸우길래 쪽팔려서 나갔지."
세훈이 찬열과 종대가 앉은 테이블에 합석하며 말했다. 찬열과 입씨름을 하던 세훈을 보다가 종대가 문득 들은말이 떠올랐다.
"너 요즘 아파트 알아보고있단 소문이 돌더라?"
"그딴 소문은 도대체 어디서부터 퍼지는거야?"
"모르지. 이 바닥 소문 빠른거 알잖아. 진짜야?"
어. 세훈이 무신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새끼 집보다 호텔이 좋아서 호텔에 살림차린 새끼 아니였나. 갑자기 왜.
"본가는 들어가기 죽어도 싫고... 호텔은 질리고... 호텔밥도 지겹다."
"회장님이 들어오라고 하셔?"
"짜증날 정도로."
"그렇다고 집을 사냐, 그렇게 덜컥."
"돈만 있으면 다되는데 뭐가 어때."
전세계 순위안에 꼽힐정도로 돈이 많은, 우리나라 최고의 재력을 가진 세훈의 집안이였다. 하지만 금새 집에서 사는게 질린다며 변덕을 부리고 나와버릴 세훈을 예상 가능하기에 하는 말이였다. 세훈을 오래 봐온 종대는 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세훈은 완강했다. 이미 계약까지 끝마쳤다고 한다.
"어딘데?"
"**동 *****. 38층."
"거기 존나 비싸고 좋은덴데."
"잠깐만, *****?"
그 아파트라면... 찬열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아파트 이름에 갸우뚱했다. 누가 거기 살던 것 같은데.. 누구였지. 무슨 이유인지 그 아파트의 이름이 굉장이 익숙했다. 뭐, 딱히 중요하지 않은가.
"지금 가구랑 인테리어 중이야. 집에 영화관 하나 만들려고. 그거 내 로망이였거든. 나 집에 있을때도 수영장, 당구장, 골프장, 볼링장 다 본가에 있는데 영화관만 없었어."
"니네 아부지가 전국에 갖고 있는 영화관이 몇갠데, 로망 한번 좋다."
"아, 또있다. 로망."
"또 뭐."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사촌이 낫다는 말도 있잖아. 그것도 내 로망 1순위."
내 경우엔 가족보다 가까운 이웃사촌, 이겠지만. 세훈이 덧붙였다. 이웃사촌... 이웃사촌. 그 단어가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퍽이나 안어울려, 세훈은 실실 웃음이 나왔다.
제목을 도저히 뭘로해야될지 모르겠ㅇㄷ어서 ㅠㅠㅋㅋㅎ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십걸 블레어 + 스킨스 미셸 = 김민석
가십걸 네이트 + 스킨스 토니 = 루한
가십걸 척 = 오세훈
잘어울린다 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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