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아니에요. 내가 그런거 아니야"
"학생"
"야 말좀 해봐....너 거기있었잖아 내가 그런거 아니잖아!!!"
"...맞잖아 니가 그런거"
"...뭐? 나 거기 있지도 않았어. 왜 거짓말해!!!"
"거짓말은 니가 하고있잖아 . 이여주"
"내가 도경수 죽인거 아니에요...내가그런거 아니란말이야..."
"학생. 이제 빼도박도 못해"
"내가그런거...
진짜 아니에요..."
15년, 내가 너를 잃어버린 시간
탕
탕
탕
.
귓가에 멍하니 총성이 들려온다. 지은이 한손을 여유로히 주머니에 넣고 하늘에서 날아오는 작은 핀을 명중시킨다. 한발의 오차도없이 바닥에 가루가 되어 떨어지는 핀을보며 그저 이 상황이 당황스러울 뿐이였다. 마치 영화에서보는 한 장면처럼 지은이 큰 회사 건물에 들어서자마자 검은 정장을 입은 이들이 90도로 숙여 인사를 하지않나, 익숙하다는듯 수백개의 총이 진열된 곳에서 하나를 꺼내 사격을 하질 않나. 내가 그 남자를 죽일 수 있을거라는 가능성이라도 심어주는것 마냥 지은이는 15년동안해온것들을 말없이 보여주었다.
"이거. 못맞추면 핀이 몸에 꽂혀. 여기 어깨."
지은이 수트의 오른쪽어깨를 내렸다. 적나라하게 보이는 짙은 흉터. 여주가 약간 인상을 찌푸리자 지은이 곧 다시 옷을 올렸다. 양손으로 옷을 대충 추스린다음 여주의 옆에 나란히 앉았다. 뭐하자는거야 이게. 딱딱한 여주의 말투에 약간의 조소를 흘리곤 멀리 떨어져 여주에게로 날아오는핀을 명중시켰다.
"뭐하자는거겠어 이게.
우리 이렇게살긴 너무 억울하잖아?
잔뜩 겁에질린 여주를 천천히 안아준다. 여주의 시선 끝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핀이 지은의 뒤통수를 향해 날라왔고, 순간 지은의 손에있던 총을 빼냈다.
탕 ㅡ
바스라진 핀이 바닥에 떨어지고, 지은이 여주에게서 떨어져 일어섰다. 어깨를 으쓱해보이더니 사격훈련 정지버튼을 눌렀다. 벙찐 표정을 하며 총을 테이블위에 올려놓았다. 그저 이게 다 거짓말이였으면,했다
"우리 유전자가 어디 가겠어"
"지은아"
"지금시작해도 안늦어."
"아무리생각..."
"할수있어. 내가책임져"
나는 죽이지 않았다.
나는 도경수를 즉이지 않았다.
그리고 나를 제외한 모든사람들이
나를 살인자라 욕했다.
15년전, 내가 14살밖에 되지않았던 아주 어린. 지금은 그때 기억마저 흐릿해졌을때. 무수한증언과 증거와함께 나는 내 단짝친구를 죽인 살인자가 되었다. 김종대도그랬다. 거짓말은 내가 하고있는거라고. 복부를 관통한 단도의 끝은 내 지문으로 범벅이되있었고, 신발자국은 내 신발의 것이였으며, 도경수의 손에서 발견된 몇가닥의 머리카락도 모두 내것이였다. 다만 중요한것은 그때의 기억이 리셋된것처럼 하얗게 지워버렸다는점, 그날 내가 도경수와 심하게 씨웠던 날이라는 점. 모든 경우에 딱 들어맞는 모든것들과함께 나는 15년을 감옥에서 썩어들어갔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려할수록 머리는 지끈거렸고, 밤마다 꿈에서나타난 도경수가 날 괴롭혔다. 미성년자의 15년의 형. 누군가의 뒷거래로 성사된 최초의 10년 이상의 형. 지은이와 내가 '그 남자' 라 칭하는것도 그다.
감옥에서 그 모든 청춘을 썩히고 스물 아홉이 되어서야 뒤늦은 꽃을 피우려던 참이였다. 적어도 지은이가 내게 그런 제안을 하기 전 까지는말이다. 그를 죽이자는 달콤한말과, 본인이 국내에서 가장 큰 조직의 일원이라는점. 이미 '살인자'라는 꼬리표를 달고 사회에 나온 나로써는, 사람 죽이기를 일삼듯이 하는 이 비윤리적인 인간들과 한 통속이 된다는건 어쩌면 그 무엇보다 매력적인 꾐이였다.
사실 지은이가 보여주는것들이 그다지 낯설거나, 무섭다던지. 그런 이질감은 느끼지 못했다. 감옥에 들어온 날카롭게생긴 여자들이 매일매일을 일삼던 이야기였으니까. 물론 그여자들은 조직의 피래미같은, 감옥에 들어가봤자 별 쓸모도없는 이들이였다. 단지 자꾸만 멀어져만가는것같은 내 쌍둥이동생 지은이를 보며, 15년의 세월동안을 이런곳에서 살게한 내탓이 더 커지는것 같았다. 이 시커먼 양복을 입은 사람들 틈에서 그 많은 상처를 온 몸에 남기면서까지 이곳에 남으려했던 이유가 대체 뭔지ㅡ. 그렇게 여리디 여린 아이가 그 오랜세월동안 총상을 만들어내며, 칼자국을 남겨내게 만든 이곳에서 우뚝 선 그 중간과정의 피튀김이, 끝이 떨리는 지은이의 말을 대변해주었다.
"하자 우리."
"..정밀?"
"응. 정말"
잘생각했어. 지은이 여주를 안았다. 팔을 천천히 올려 지은의 등에 포개어 잡아준다. 눈을 감았다. 제발 우리에게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나는,
도경수를 죽이지 않았으니까.
ㅡ
"내가 뭐. 너그렇게 자꾸 이유없이 삐지면 내가 뭘해주길 바라는데?"
"너진짜....."
"이제 우리반 찾아오지마. 짜증나"
나빠. 못돼처먹은 나쁜 도경수. 난 초등학교때부터 도경수랑친했다. 껌딱지처럼 떨어질줄도모르고 매일 숙제도 같이하고, 놀러도 같이가고. 먹을거로 싸우고, 질투하고 화내고. 철없이 5년가까이를 지내오다가, 내가먼저 도경수를 좋아해버렸다. 엄연한 실수였다. 사실 도경수가 날 좋아하길 바랬던건 아니다. 곧 마음 접고 계속 친한친구로 지내고싶은데 ㅡ 이게 전부였다. 철없던 14살, 도경수가 옆반 여자애랑 사귄다는 이야기가 허다하게 퍼졌고, 어쩐지 요새 날 본채만채도 안하더라. 그 애랑 이야기를 더 많이 하더라. 심지어 그애랑 사귄다는 이야기를 수군대는 이야기틈에서 들었을때, 정말 도경수와 한참 멀리 떨어진것같은 기분때문에 서운함이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그날도 도경수의 반에가서 가져오지않는 체육복을 빌리러 갔다가, 그거 지수가 가져갔는데. 하는 도경수의 말에 폭팔해버린거다. 왜 걔를 빌려주는데? 하는 유치한 물음과, 먼저왔으니까 빌려줬지. 하는 당연한 도경수의 대답이 맞부딪혔다.
하굣길, 이제 지수랑 같이 하교하기로했다는 말에 토라져 대답도 않고 도경수를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곧 짜증나니까 반에도 찾아오지말라는 도경수의 날카로운 말이 귓가에 맴돌았고, 그게 내가본 도경수의 마지막 모습이였다.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살인자가 되었다.
생각해보면 도경수는 잘못한게 없는것 같은데. 내 마음을 몰라준게 조금 괘씸하긴하지만, 그래도....정말 유치하기 짝이없는 싸움이 내가본 도경수의 마지막이 되버렸다.
그렇게나 잘 웃어주던 애였는데.
정말 나한테...
왜그랬어?
ㅡ
일주일 후쯤 지나, 은경이와 수정이의 눈을 피해 지은이와 함께 금화그룹에 출근했다. 지은이의 직속 비서로 있으면서 하루종일 이사실에 처박혀있다 가끔 지하 훈련실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 잠깐 로비에서 지은이를 기다리다가.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ㅡ 하는 우렁찬 목소리와함께 검은 정장을 입은 사람들 틈에서 보이는 남자를 보며 물어보고싶었다.
"도경수. 도경수!!!!창문좀 내려봐. 야!!!!!"
왜그랬어 경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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