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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복색과 전혀 맞지않는 하얀색 이어폰을 꼭 눌러낀채
터널터널 바닥만 보고 걷다 은근하게 느껴지는 빗방울의 스침에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봤다.

겨우 하교시간인데도 어두컴컴해진 하늘이 나를 집어삼킬듯이
감싸왔다. 그러고는 얼마 되지도 않아 투둑 투둑 볼에 차가운
입김이 나에게로 흘러내렸다.


그와중에도 선명하게 들리는 어떤가수의 목소리가 너무 아프게만
느껴져 나오려는 울음을 참고 또 참으려다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에 몸을 맡긴채 내안의 비를 토해내버렸다.


뚝.. 뚝..

볼위로 스치는것들이 차가운건지 볼아래로 흐르는것들이 시린건지도
모른채 앞으로 한발 한발 나아갔다.

힘없는 컨버스운동화 끈이 풀려 빗물에 젖어 더러워졌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은채로 앞만보고 뛰다싶이 걸었다.


나는 네게서 도망치고 싶은걸까. 내 안의 비를 피하고 싶은걸까.
아니면, 너를 만나고 싶은걸까.

타닥타닥

바닥과의 마찰로 인한 소리가 노랫소리와 섞여 키스의 파열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는 너의 얼굴이 선명하게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너를 따라가고 있었다.



내 안의 비. 나의 과거.
w.에픽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밖보다 더한 싸늘함이 나를 반겼다.
혼자산다고는 하지만 사막처럼 횡한 집에 몸을 떨며 곧장 욕실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거울로의 나의 모습은 말라비틀어진 고목처럼
죽어있었다.
차갑게 젖어버린 와이셔츠를 단숨에 풀어헤치고는 바닥에 무신경하게
내려놓았다.

젖은 흰반팔티 안으로 비치는 흉한 상처들과 다시 마주하는것이
달갑지 않아 곧장 욕조에가 뜨거운물을 튼뒤 그저 뒤로 누웠다.



하..



고독의 한숨이 흘러 욕실안을 울렸다.
습관처럼 찾는 담배처럼 중독성강한 그 소리가 계속 귓가에 맴돌았다.


쏴아..

뜨거운 물줄기가 차가웠던 내 몸을 식혀주며 조금은 아프게 와닿았다.
누군가의 질책을 온몸으로 받는듯한 느낌에 잠시 손이 떨려왔지만,
정신을 다시금 붙잡고 그 질타를 눈감고 받아들였다.


마치 그 아이가 나를 세게 때리는것만 같은 착각에 차가운 조소가
입가에 잠깐 맺혔다 바로 사라졌다.


아직도 뽑지 않은 이어폰 사이로 반복해서 나오는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그 목소리가 너무 아파서 뜨거운 물의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다.


순간 물이 차오르는것을 자각하고는 이어폰과 휴대전화를 꺼내들고는
세면대에 던지듯 올려놨다.

겨우겨우 마음을 잡은 그 공간들이 쉴새없이 움직이며 정신이
혼란스러워져 갔다.


그때도 비가 왔었는데..
그때도 나는 너의 목소리를 들었고, 욕조에 누워 뜨거운 죄책감을 받아들였지.

다시 얼굴이라도 볼수있을런지 모르겠다.


이미 과거의 일은 모두 잊고 유명인이 된 너도,
그 과거에서 도망쳤던, 너에게서 멀어졌던 나도,

우리 둘중 누구도 그 과거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사람은 없어.

그 순수하고 맑은 감정사이의 틈을 만든건 나였지.
그 틈을 이용해 어떻게든 빠져나가려고 했던것도 나.

결국 그 틈사이에 비춰진건 차마 내가 지키지 못한 너의 모습.
모두의 질타를 받은것도 너의 본질.


그래. 매일매일 하는생각이지만 다시 한번 인정할게.


다 내잘못이야.

너를 두고 도망친 비겁한 내 탓이야.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꽤 큰 사이즈의 욕조에 물이 흘러넘칠듯했다.
자연스럽게 얼굴까지 잠겨 숨쉬기가 곤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숨을 참았다.

너가 겪은 고통들에 비하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니까.


하아.. 하아..

한계에 찼는지 물속에 빠져나와 깊은 숨을 들이 마쉬었다.
마셔도 마셔도 부족한 공기가 또 너를 떠올려 주먹을 세게 쥐었다.


넌 지금쯤 뭘하고 있을까.







"수고하셨습니다."

밝은 미소의 소년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인사했다.
미소만큼이나 밝은 머리색이 그와 자연스레 조화되었다.

하얀 피부와는 대조되게 고된 콘서트준비로 턱밑까지 내려온 다크서클이 애굣살과 겹쳐져 순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 김민석씨! 내일 최종 리허설은 오전 11시부터 하시면 될것 같습니다."

"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콘서트홀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진입하자마자 겨우 버텼던 몸이 휘청거렸다.
축쳐진 어깨가 고된 하루일과를 보여주듯했다.

아.. 역시 너무 무리했나.

뚜벅뚜벅 걸어나가는 발걸음이 여간 시원찮아 걸음을 멈추고는 가볍게 스트래칭을 했다.
옆의 코디와 매니저가 나누는 대화는 자연히 음소거가 되어 멍하게 만들었다.




드디어 내일이구나.
4월 20일. 생에 첫콘서트.

여기까지 올라오기위해 저가 한 노력들이 하나하나 생각나기 시작하며 즐거웠던 일들을 추억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는 정말 죽을것만 같았는데 나한테도 이런날이 오기는 하는구나.

걷다보니 도착한 벤을 타고는 팬이 선물해준 목베게를 둘러 뒤로 기댔다.




그래.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

과거일들이 하나하나 새록새록 생각날때마다 기분좋은 은근한 웃음이 새었다.
우연처럼 겹쳐진 모든일이 행복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게 깊은 더 깊은 과거로 들어가면 갈수록 표정은 밝아졌다.

너를 기억하기 전까지..

바쁘게 지내면서 겨우 잊고있었던 얼굴이 뇌리에 스쳤다.
심장을 찌르는듯한 아픔과 그날들의 악몽이 겹쳐져 등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과거따위 생각하는게 아니었는데.

달리고 있는 차안에서 뛰쳐나가고 싶을정도로 답답해져왔다.
그와중에 밖에 보이는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다운 야경은 얄밉게 창가에 비쳐졌다.

그리고 그 창가의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 눈빛이 나를 과거로 이끌듯 위태롭게 만들었다.

그 위태로운 과거를 만든 장본인 그의 선한 눈빛까지는 마주하기는 싫어 질끈 눈을 감고는 평소 즐겨듣던 노래를 틀었다.


아련한 멜로디의 발라드가 차안을 울리고, 그 울림이 내 고막을 찢을듯이 다가왔다.


한번 생각나니 지울수 없는 그때의 나날들이 치가 떨려왔다.

개새끼...

연예인이 되고 난후 생각한적도 없는 욕지거리가 머릿속을 가득채웠다.

찢어죽이고 싶다는 이성적인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모습들이 하나하나 생각나면 날수록 두근대는 심장소리가
아련한 발라드에 어울리지 않아 앙다문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내 인생의 최악의 기억이자 최고의 추억인 그자식이 아직도 그립다는 걸 이미 인정해버린 나로써는 어쩔수 없었다.

혹시라도 내일 콘서트에 와줄까하는 바램에 중학교 동창놈들을 vip석으로 전체초대를 해놓은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지만,
우습게도 최악의 선택까지 하려했던 그날들의 나와는 다르게 그 놈들은 이미 잊어버리고, 유명인이 된 자신을 추양할 뿐이었다.

인생 참 쉬운거구나.
그저 그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나를 경멸하던 그 눈빛들이 선망의 눈망울로 바뀔때의 역겨움.
그리고 절대 날 떠나지 않는 그 한마디한마디 한단어한단어 들의 악몽.

그저 그뿐이니까.



그래. 그래도 나도 도망친건 마찬가지니까.
그상황이 너무 싫어서 결국 끝까지 나와버린건 나니까.

어쩌면 너에게 뭐라고 타박할수도 없는지도 몰라.

우리 둘다 어렸으니까.
아무것도 책임질수 없었으니까.


그 울타리로 다신 들어갈수없게 막아버린게 나니까.
욕할 자격이 없는지도 몰라.

솔직하지 못했던 나는 저 역겨운 종족들과 같은 과일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자각하지 못했던 눈물들이 창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과 부딪혀 싸늘한 느낌이 들었다.
역시나 아름다운 서울의 야경이 더욱 나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언제또 비가 왔었는지 축축한 공기가 나를 적셨다.



나의 눈물들이 나를 적셨다.
나의 과거들이 나를 적셨다.
나의 그날들이 나를 적셨다.


그가 나를 적셨다.
루한이 나를 적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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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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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ㅜㅜㅠㅠ이해가안가지만,슬프다ㅜㅜㅜㅜㅜㅜㅜ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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