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
"안녕"
경수는 어이가 없었다. 인사를 건네며 자신의 옆자리 의자를 꺼내 앉는 종인은 경수와 같은 반도 아니었고,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도 아니었으며, 며칠 전까지만 해도 경수를 죽을 만큼 괴롭히던 아이였다.
종인이 갑자기 왜 이러나 깊게 생각하던 경수는, 종인이 자신을 괴롭히는 새로운 방법을 며칠 간 생각하다 그 해결점을 오늘에서야 찾았고, 지금 자신에게 이러는 거라 단정 지었다.
"안녕"
다시 한번 종인이 인사를 건넸다. 인사를 받아줘야 할까? 받지 말아야 하는 걸까?
"인사, 안 받아?"
인사 안 받느냐는 종인의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든 경수는 "안녕"이라고 대답했다. 종인이 자신을 괴롭히는 방법을 바꿨다면 경수 자신도 거기에 맞게 괴롭힘 당해야 한다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겼다.
경수의 대답이 느린 것에 대해 맘에 들지 않았던 건지 종인은 인상을 찌푸렸지만, 경수의 답인사에 "그래"라고 말한 뒤 자기 반으로 사라질 뿐, 아무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종인이 경수를 괴롭히는 방법은 한 달이 지날 때마다 바뀌었다. 새 학년을 시작하던 3월에는 다른 사람 눈에 친구처럼 보이면서 교묘하게 경수를 괴롭히기도 했고, 만우절로 시작하던 4월에는 그동안 괴롭혀서 미안하다며 꼭 사과하고 싶다고 방과 후에 불러내서는 경수를 죽지 않을 만큼 때리기도 했다. 그렇게 4월 내내 경수는 종인에 불려 다니며 맞고 다녀야 했다.
5월에 들어선 오늘, 평범한 방법으로 자신을 괴롭히지는 않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종인의 행동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이가 없었다.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인사라니.
솔직히 경수는 처음부터 종인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다.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경수와 종인은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되어본 적이 없었고, 반이 위치한 건물 또한 달라 복도에서도 마주칠 일이 없었다. 3학년이 된 지금도 옆 반일뿐 종인과 경수를 묶어두고 있는 부분은 딱히 없었다.
그렇다고 경수가 종인에게 밉보일 짓을 했던 것도 아니다. 경수는 그저 3월의 어느 날, 하교하던 길에 옆 반에서 나오던 종인과 마주쳤을 뿐이고, 단 한 번의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종인의 괴롭힘은 시작되었다.
하긴 인사를 나누고 괴롭힘을 당하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될 일이었지만..
- 주말, 어린이날, 석가탄신일 꿈같은 빨간 날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고3인 경수에게는 모두 학교 가는 날일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경수는 종인과 계속 마주쳐야 했고, 언제 괴롭힘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해야 했으며, 눈만 마주치면 건네는 종인의 인사에 한 박자씩 느리게 답인사를 했다.
5월의 중반에 들어선 어느 날, 종인의 인사가 엄청 불편해지기 시작한 경수는 조금이라도 종인의 눈에 덜 띄기 위해 점심, 저녁도 먹지 않는 등 교실 밖으로 나가는 행동을 최대한 줄여나가고 있었다. 경수의 친구들이 같이 밥을 먹으러 나가자고 며칠 동안 수없이 설득했지만, 경수는 꿈쩍하지 않았다.
고3인 자신의 상황에 오히려 잘 되었다고 생각한 경수는 점심, 저녁시간마다 틈내서 공부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공부도 편하게 되질 않았다. 자신 때문에 밥을 못 먹으러 가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종인은 매점에서 먹을 걸 사 들고 와 굳이 경수의 옆자리에서 먹기 시작했다.
과자 봉지 뜯는 소리에 경수가 종인을 쳐다보기라도 하면 종인은 "줄까?"라며 과자나 빵을 내밀곤 했다. 경수가 고개를 젓고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리면 종인은 소리 내어 먹으면서 경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결국 종인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한 경수는 그 날 저녁부터 다시 친구들과 함께 밥을 먹었다. 그래도 경수는 불편했다. 자신의 옆자리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아무렇지 않게 떠들며 밥을 먹고 있는 종인이 신경쓰였기 때문이다.
- 5월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여전히 종인은 경수를 볼 때마다 인사를 건넸고, 그런 경수는 종인이 불편했다. 종인을 피하려고 해도 언제 어디서든 경수의 옆에 나타났고 경수는 거의 포기 상태에 접어들었다.
종인과 경수 사이의 이상한 기류를 눈치챈 몇몇 아이들은 종인이 경수가 사귀는 것 같다는 소문을 퍼트리기 시작했고, 그런 소문이 경수의 귀에 들려오면서 경수는 종인이 자신을 어떻게 괴롭히려고 했는지에 대해 결론을 내렸다.
'근거 없는 소문'
어쩌면 가장 흔한 괴롭힘의 방법이겠지만, 그 근거 없는 소문의 정체가 동성 간의 연애라면, 특히 그 동성에 경수가 포함된 거라면 경수의 남은 학교생활은 끔찍했다.
종인이야 근거 없는 소문에 대해 원인을 제공 했지만, 3월의 어느 날 처럼 친해서 그랬다고 변명하고, 은근슬쩍 "근데 경수는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았더라"며 이 일에서 빠지면 되는것이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경수는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친구들을 뒤로하고 종인을 먼저 찾아 나섰다. 복도 끝, 종인이 느릿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뻐른걸음으로 종인을 앞질러 앞에 선 경수는 종인을 노려봤다. 급식실로 가려던 종인은 갑자기 나타난 경수에 잠시 놀란듯했으나, 다시 평소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모든 학생들이 급식실에 모여 있는 점심시간, 종인과 경수만이 복도 끝에 남아 마주 서 있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래?" 경수는 침묵을 깼고, 종인은 침묵을 유지했다.
"차라리 때리고 밟고 욕해! 괜히 이상하게 행동해서 나중에 사람 혼자 곤란하게 만들지 말고 확실하게 하란 말이야!" 경수는 소리쳤지만, 종인은 무표정으로 침묵을 지켰다.
"처음부터 다른 누구에게 너한테 괴롭힘 당하고 있다고 신고할 생각 없었으니까. 이상한 소문 퍼지게 얌전히 행동하지 말고 그냥 괴롭혀!" 경수는 제발 평소처럼 자신을 괴롭혀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정말 경수는 다른 누구에게 자신이 종인에게 괴롭힘 당하고 있다고 말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1년만 버티면 대학 때문에 멀어질 것이었고, 누군가에게 알려도 해결되지 않을 문제란 걸 알기에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다.
"난 너 괴롭히는 거 오래전에 그만뒀어" 종인이 침묵을 깼다. 경수는 어이가 없어 따지려고 했지만,
"난 나름대로 너한테 좋아한다고 티 낸 건데... 불편했으면 미안해" 한 박자 빠르게 종인이 깬 침묵에, 경수는 침묵해야 했다.
경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잔뜩 괴롭혀 놓고 지금 무슨 말하는 거냐고 따지고 싶은 거 알아. 거기에 대해서는 입이 열 개라도 나는 할 말 없어. 네가 무슨 말을 나한테 하든 다 옳다고 대답해줄게."
경수는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고, 곧 행동으로 옮겼다. 종인을 지나쳐 최대한 멀리 도망쳤고, 달리는 걸 멈추었을 때 한 달전 종인에게 맞아 멍이 들었던 왼쪽 가슴 부분의 통증이 다시 시작되었다.
完 ************************************************************************************************** 제목 때문에 달달한 글로 오해하셨을 분들 계실 텐데.. 낚으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그냥 5월에 맞지 않는 내용으로 카디 글을 써보고 싶었어요. 번외 편 내용까지 생각은 해두었는데.. 제 글이 번외 편을 써도 될 만큼 대단한 글인지도 모르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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