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너는 작열하는 태양보다도 더한 밝음과 열기였다. 일자로 다물린 입술마저 사랑스러웠고 둥그런 콧망울에 매일마다 눈을 맞추고 싶었다. 굶주림은 더욱 깊어졌고 너를 갈망하는 마음 또한 짙어졌다. 그랬다. 네가 뜨거워질수록. 채광을 내뿜을수록. 나는 아사할 듯 허덕였고 느릿하게 손을 뻗었다.
불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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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 자를까. 덤덤하게 내뱉어졌다. 작은 체구와는 달리 깊이 있는 목소리였다. 그것은 제가 도경수에게 있어 가장 좋아하는 것들 중 하나이기도 했다. 고개를 돌려 도경수를 바라보았다. 엄지 손가락과 검지 손가락을 맞붙힌 채 살짝은 길어진 앞머리를 매만지고 있다. 눈썹을 덮은 앞머리가 답답한 모양이었다. 자를까 말까. 검은 눈동자가 저를 향한다. 손바닥으로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말이다. 나는 저 둥그렇게 다듬어진 이마를 만지고 싶었다. “자르지 마.” “왜.” “아깝잖아.” 도경수에게 불필요한 존재. 그것은 잘라내어진다. 불현듯 묻고 싶어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네게 필요한 사람인지. 도경수는 눈썰미가 좋았다. 단숨에 물어왔다. 할 말 있니. 고개를 젓고선 대답했다. 아니, 라고. 그리고 느꼈다. 제 목소리가 이토록 볼 품 없었나. 땅 밑으로 꺼질 듯한 무게를 지녔다. 학창시절의 도경수는 지금과 별 반 다를 것없는 아이였다.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종잡을 수 없는 커다란 눈은 항상 창밖을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저는 그런 도경수를, 늘 뒷편에서 응시했다. 창으로 스며드는 햇빛이 뜨거웠다. 차라리 비가 내리면. ‘천둥 소리가 저 멀리 들려오고. 구름이 끼어 비라도 내리지 않을까. 그러면 너를 붙잡을 수 있을 텐데.’ 만엽집의 오래된 시가처럼.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 마자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에 자리하니 도경수의 작은 등은 더욱 작아보였다. 또한 느꼈다. 발끝부터 간질거리는. 도경수를 처음 봤을 때부터 항상 가져오던 감정. 손가락을 들어 앙증한 녀석의 어깨를 두드렸다. “안 뜨거워?” 햇빛을 오롯이 쬐고 있는 네가 걱정스러웠다. 그럴 리 없었지만. 혹여 네가 열병이라도 걸릴까봐. “안 뜨거워.” “그래.” “너는 뜨거워?” 네가 뜨겁다. “아니. 안 뜨거워.” “그래.” 때론 접어두어야 할 감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간이 흐를 수록.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어렸던 몸이 성장할수록 그것은 더욱 뼛속 깊이 와닿았다. 제가 도경수에게 느끼는 감정은 결코 우정같은 게 아니었다. 오랜 시간 전부터. 아니. 아마 처음 눈을 마주쳤을 때부터. 나는 도경수를. 지금과 다름없는 학창시절의 도경수. 거꾸로 말하자면 학창시절과 다름없는 지금의 도경수. 자그마한 체구도 변하지 않았고 커다란 눈동자도 변하지 않았다. 너와 나의 관계도 변한 것이 없다. 그다지 묽지도 진하지도 않았다. “경수야.” 이름을 부를 때마다 불주사에 데인 듯 화끈거리는 것도 여전했다. 팔뚝 대신 가슴 부근이 쓰라렸다. 응, 도경수는 이내 대답했다. “그냥.” “그냥?” “비라도 내릴 것 같아서.” 바람 빠진 웃음을 짓는다. 그의 한숨 섞인 혼잣말이 공간을 채웠다. 그러게. 먹구름이 잔뜩. 우산 안 들고 왔는데. “비 내리면.” “응.” “네 우산 씌워줘.” 아무렇지 않게 잔잔히 미소지어 보인다. 그에 가슴이 철렁하는 나를. 너는 알까. 그랬다. 너와 나는 변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 내가 너를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열기를 머금고 다가온 불주사는 또 한 번 흉터 자국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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