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내용은 허구사실이며, 실제 사실과는 전혀 관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 | ||
김성규x남우현 봄에 서 있을게 w.우월 학도병 전원 기상. 찬 기가 묻어나오는 강압적인 말투에 우현이 몸을 단숨에 일으켰다. 얇디얇은 천조각을 몸에서 거둬내고 주위를 둘러보자 저를 제외한 모든 학우는 달아나려는 잠을 오히려 붙잡으려 애쓰는 중이다. 소대장을 도와 다른 학우들을 깨우고, 세수를 하기 위해 재빨리 병실을 나와 화장실로 달려가는 우현의 팔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병원을 개조해서 만들었대. 여기는 화장실도 미국식이란다.’ 처음 이곳에 온 날, 제 옆에 앉았던 사내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전쟁이라는 중압감에 눌려 바들바들 떨고 있는 제게 마치 전쟁터가 노리개라도 되는 듯, 웃음까지 섞어가며 얘기하던 그 사내. 이른 새벽의 찬 공기가 얇은 반팔티 사이로 숨겨진 우현의 품을 파고든다. 결국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저를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던 그 사내는, 며칠 전 이곳을 나갔다고 했다. ‘제가 왜 이곳에 지원했는지 아십니까!? 저는 빨갱이 새끼들과 맞서 싸우려고 여기 왔습니다. 근데 이게 뭡니까. 제가 겨우 이런 병원에 처박혀 있어야 합니까! 군인이, 대대장님 허락 없인 총 한번 쏴보지 못한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전 여기 더이상 못 있겠습니다. 당장 이곳을 벗어나서 혼자서라도 전쟁터에 뛰어들겠습니다!’ 그 말에 대대장인 성규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거렸다고 했다. 말려야 하는 거 아니냐며 성규의 어깨를 잡아오는 소대장의 손도 뿌리치고는 그대로 뒤를 돌아 사내를 두고 나갔더랬다. 그 소란 속에서도 우현을 포함해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던 몇몇 이들은 다음 날 영문도 모른 채 극기훈련을 받았다. 평소보다 배는 힘들었던 그 훈련을 다시 떠올리려니 몸이 부르르 떨린다. 이곳에 오기 전만 해도 보송보송하던 피부가 그새 많이 거칠어졌다. 차가운 물로 졸음을 씻어내리는 우현의 뒤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가까워져 오는 걸 보니 제 학우들도 모두 잠에서 깨난 모양이었다. ‘잘 다녀와야 한다. 네 목숨은 네가 부지해야 해. 알았지?’ ‘어머니….’ ‘…하유, 내 새끼. 너를 전쟁터에 어찌 보낸단 말이냐 흐윽,’ 징용차가 거리에 나돌기 시작할 즈음, 대한민국의 수많은 어머니는 이제 막 앳된 티를 벗어난 제 자식들을 마른 몸 뒤로 숨기기 바빴다. 허나 우현은 그 품을 뿌리치고 나왔다. 오롯이 제 의지였다. 일제 강점기 시절, 끌려갔던 부대에서 두 다리를 잃고 돌아오신 아버지께서 극구반대를 외치셨지만, 우현은 쥐고 있던 연필을 미련없이 내려놓았다. 속옷 몇 벌과 평소 우현이 좋아라하던 전을 보따리에 싸매는 고운 어미의 손을, 우현은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더랬다. 손등 위로 떨어지던 투명한 눈물을 애써 못 본 척 하며 뒤를 돌았던 지난날의 제 모습이 물과 함께 하수구 밑으로 빨려 들어간다. “다 씻었으면 그만 나와주지?” “어? 어어, 그래….” 머리칼 끝으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이 우현의 어깨 소매를 적신다. 화장실을 나서는 우현의 얼굴 위로 복잡한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오늘 훈련은 또 얼마나 힘들까. 어머니 아버지는 잘 계실까? 이곳에 있을 날도 머지않았는데 과연 내가 실전에 나가서도 잘할 수 있을까? “어이, 거기!“ “…….” “야 인마!” 우현을 애타게 부르는 성열의 표정에 짜증이 확 번진다. 반쯤 걸쳐 있던 화장실 문에서 빠져나와 우현에게로 달려가 그를 붙잡는다. 우악스런 손길로 우현의 몸을 빙그르 돌린 성열이, 놀랐는지 눈만 깜빡이는 우현에게로 시선을 맞춘다. 너 이거 두고 갔잖아. 길쭉한 성열의 손가락과 마른 우현의 손가락이 겹친다. 한눈에 보아도 익숙한 모양새를 우현의 손아귀에 쥐여준다. “이야,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땅콩만 하네.” “…….” “왜, 쬐끄맣다 하니까 기분 나쁘냐?” 대꾸할 가치가 없다고 느낀 우현이 뾰로통한 얼굴로 뒤를 돌았다. 훈련 중 이따금 제 뒤로 수군대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다른 학우들에 비해 월등히 체구가 작은 우현이었다. 나이도 다른 이들에 비해 어렸고, 똑같은 총인데도 우현이 든 총만 월등히 커 보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지고 싶지 않았다. 꼬맹이 네가 할 수 있겠냐며 비아냥대는 학우들을 뒤로한 채, 우현은 앞만 보고 달렸다. 훈련이 끝나면 그대로 바닥에 엎어져 숨을 고르기에 여념 없는 학우들 틈에서도 우현은 결코 엎어지는 법이 없었다. “야! 땅코, 아니, 야!!”
말없이 저를 지나치는 우현을, 어이없는 듯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성열의 입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턱, 다물린다. 짜증을 내며 뒤를 도는 성열의 표정이, 누구인지를 확인하는 순간 그대로 굳는다. “…너 눈곱 꼈다.” “…….” “아침부터 소란스럽게 하지 말고, 씻기나 하지?” 화장실 쪽으로 성열을 밀쳐낸 성규가 하품을 하며 그대로 스쳐 지나간다. 그 뒤로 열심히 감자를 먹이던 성열이, 갑작기 뒤를 돌아보는 성규에 황급히 뒤를 돌아 화장실로 직행한다. 보일듯 말 듯한 웃음이 성규의 입술에 스민다. 어리다, 어려. ‘청주는, 학도병 군단이 맡는다.’ ‘…예?’ ‘성규 네가 잘 지켜내리라 믿는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날이다. 아니, 그러길 빌었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도 여전하고 바람결에 휘날리는 운동장의 모래가루도 여전한데, 이 여전함은 언제 사라질지 몰랐다. 그래서 더더욱 잃고 싶지 않았다. 제게 주어진 임무, 학도병들, 청주. 피난민들은 이미 정점을 향해 도달해가고 있었고, 전쟁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불리한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저는 못합니다…,’ ‘넌 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져라.’ ‘사령관님…!’ “대대장님, 학도병 77명 전원 운동장에 집합 완료했습니다!” “…….” 성규의 고개가 천천히 들린다. 고막이 찢겨나갈 정도의 커다란 총성 소리가 성규의 머리를 울린다. 가까워져 오는 유리문 입구 너머로 시시콜콜한 장난을 치는 학도병들의 모습이 드러난다. ‘청주는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여러분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학도병임을 잊지 않길 바란다.’ 한결 더 무더워진 날씨에 벌써부터 목 뒤에 땀이 샘솟았다. 그동안 자르지 못해 부슬거리는 머리가 텁텁한 바람에 나부낀다. 성규의 등장에 약속이라도 한 듯, 전부 다 입을 합 다물고는 고개를 떨군다. “오늘 오전은 숲으로 들어가 훈련한다.”
숲, 이라는 말에 모두의 얼굴에 먹구름이 낀다. 빈번히 내리는 비 탓에 땅이 질어 훈련하기 어려울 텐데도, 성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출발을 외쳤다. 앞으로 가! 소대장의 외침에 마지못해 헛, 둘! 하는 기합소리와 함께 학도병들의 무거운 발이 오늘 훈련의 첫걸음을 내딛는다. 맨 뒤에서 주변을 살피며 열을 뒤따르는 성규의 뒤로 병원 입구가 점점 멀어진다. “일동, 정지!” “…….” 숲 내음이 가득했다. 다 해진 군화의 앞 코에 붙은 질퍽한 진흙을 떼어내는데 여념인 학도병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성규가 모자를 푹 눌러썼다. 전원 집중! 눈치만 살피던 소대장이 차렷 자세로 경례를 취하자 그제야 다른 이들도 하나둘씩 어설프게 손을 올린다. “오늘은, 1열과 2열이 각각 한 소대로 나뉘어 실전 연습을 한다.” “…….” “대답 안 하나?” “ㅇ, 예! 알겠습니다!” 실전 연습이라니. 학도병들의 수군거림이 숲 내음을 타고 번진다. 커다란 바위에 올라앉아 그런 그들을 바라보기만 하던 성규의 시선이 날카롭게 변한다. 탁탁탁, 그 소리에 학도병들의 고개가 어둠 속에 파묻힌 숲 속 저편으로 돌려진다. 정적이 흘렀다. 총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발소리에 꿀꺽 침을 삼키는 우현의 턱밑으로, 언제 맺혔는지 모를 땀방울이 도르륵 굴러간다.
“헥…, 대대장님, 탄피 통 가져왔습니다!” 드러나는 모습이 너무나도 익숙한 군모와 군복인지라, 경계태세를 감추지 못하던 학도병 전원의 얼굴에 안도감이 피어오른다. 깜짝 놀랐잖아, 새끼야! 금세 왁자지껄해진 부대를 가라앉힌 성규가 수고했다며 그들의 어깨를 다독였다. 마지막으로 도착한 인원까지 확인하고는 들고 온 탄피 통의 뚜껑을 열어젖힌다. 반절쯤 차있는 탄피를 한 손에 쥐었다가 우르르 뱉어낸다. 이제야 실감이 났는지, 탄피가 눈앞에 나타나자 그제야 모두의 입이 닫힌다. “1인당 다섯 발씩 지급한다. 쏘는 방법은 다들 배워서 알고 있지?” “…….” “1열부터 차례대로 나와.” 탄피를 받아내는 사내들의 표정엔 두려움 반, 신기함 반이었다. 오랫동안 묵혀있던 탄피의 쇳내가 콧속 깊이 스며들었다. “총에 있던 탄피 전부 꺼내. 내 허락 없인 절대로 장전하지 마. 배급 마쳤으면 2열은 저쪽, 1열은 이쪽으로 이동!” “이러다 빨갱이 새끼들 쳐들어오면 그땐 어쩐답니까? 탄피도 없이…. 그대로 묵사발 날 텐데.” “…일단 내 명령에 따른다. 탄피 빼!” 딱히 제대로 된 답을 내지 못하는 성규를 보며, 차례로 나무 뒤에 숨는 사내들의 표정이 그새 또 풀어진다. 마냥 신이 나서 떠드는 그들을 보며 성규는 한숨을 지었다. 군모를 고쳐 쓰는 우현의 표정도 썩 좋지만은 않다. 이곳에 온 지 일주일. 머지않았다는 뜻이었다. ‘네 목숨은 네가 부지해야 해. 알았지?’ 1열부터 쏜다, 알았나? 탄창 속 탄피들을 굴려대는 우현의 손이 뚝 멎는다. 우현은 2열 소속이었다. 아무리 고쳐 써도 헐렁이는 군모가 우현의 눈가를 덮었다. “쏴!!” 탕, 탕. 우현의 귓가로 여러 발의 총소리가 지나갔다. 나무 뒤를 벗어나 군모를 들어 올린 우현의 눈에 환한 빛이 쏟아진다. “그만! 그만!” 사실 그만이랄 것도 없었다. 탄피는 여전히 허리춤에 묵직한 채로 남아있었다. 그러나 우현의 귓가엔, 여전히 총성이 난무했다. 옆에선 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죽는 척 쓰러지는 제 학우들이 낄낄대며 웃고 있었다. 웃고 떠들며 즐거워하는 그들의 모습에 우현은 울화가 치밀었다. “왜 실탄을 장전하지 않는 겁니까!!” 모두가 자지러지는 와중에, 누군가의 외침이 크게 울렸다. 입으로 탕, 탕 소리를 내며 장전하는 폼을 내세우던 1열의 움직임 또한 멎었다. 멍하게 서 있던 우현이, 소리가 난 쪽으로 서서히 고개를 돌린다. 오른손을 쭉 뻗고 있는 사내의 눈이 올곧이 성규를 향해 있는 걸 보면, 배짱이 두둑한 녀석임이 분명했다. “이게 어딜 봐서 실전연습입니까? 다들 웃고, 장난만 치고…. 실제 전쟁터에서도 이런답니까?” 우현의 미간이 찌푸려진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이야, 가까이서 보니까 진짜 땅콩만 하네.’ ‘왜, 쬐끄맣다 하니까 기분 나쁘냐?’ 우현의 눈이 크게 뜨인다. 분명히 아침에 본 그 녀석이었다. 제게는 크기만 한 군복이 몸에 꼭 맞춘 것 마냥 잘 들어맞는 사내. 성규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침에 본 눈빛과는 사뭇 달라서 우현은 말없이 눈만 깜빡였다. “실탄을 쏘게 해주십시오!” “…….” “자신 있습니다, 믿어주십시오!” “…너, 이름이 뭐냐?” “이성열입니다!” “좋다. 지금부터, 여기 이성열을 포함해서 실탄을 쏘고 싶은 사람은 탄피를 장전해도 좋다.”
생각지도 못한 말이 떨어졌다. 학도병 대부분이 신이 난 얼굴로 탄피를 끼워 넣는 반면에, 우현은 왠지 쉽사리 탄피를 끼워 넣지 못했다. 떨리는 손으로 그러쥔 탄피를 느릿하게 잡아올렸다. 이미 우현의 옆에선 장전을 끝마친 학우들이 장난스레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 그런 학도병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성규의 입에서 한숨 섞인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바위에서 내려와 크게 기지개를 켰다. 나뭇잎이 바람에 휘날리는 걸 지켜보던 성규가 크게 손짓을 했다. “1열은 모두 2열 뒤로 가서 준비한다. 2열은 정확히 나무 몸통 정 가운데를 노려서 쏜다! 알겠나!” 나무 뒤로 숨어 있던 1열 학군들이 탄피를 손에 쥔 채 후다닥 달려가 2열 뒤로 향한다. 벌써부터 나무를 향해 총구를 겨눈 학군들이 성규의 명령만을 기다렸다. 하나, 둘, 셋…. 성규의 입술에 걸려있던 희미한 웃음이 모습을 감춘다. 일흔다섯. 두, 세번을 세도 수는 변함없이 일흔다섯이다. 모두 동작 그만. 다시금 무겁게 내려앉은 성규의 목소리가 사내들의 욕지거리와 웃음소리에 묻힌다. 그 틈에 섞여 천천히 탄피를 끼워 넣던 우현의 손이, 쩌렁하게 울리는 성규의 목소리 탓에 놀라 그대로 멈춘다. “동작 그만!!! 1열, 2열!! 전부 총 내려놓고 내 앞에 선다.” 성규의 낯빛의 점점 더 어두워진다. 성규의 앞으로 집합한 학도병들은 영문도 모른 채 궁시렁대기만 했다. 하나, 둘, 셋…. 다시 세봐도 그 수는 변함없다. 채워져 있어야 할 1열의 맨 끝 두 자리가 비어있다. ‘헥…, 대대장님, 탄피 통 가져왔습니다!’ “거기 1열 맨 뒤,” “…….” 저를 가리키는지도 모르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사내 녀석을 향한 성규의 손끝이 바짝 선다. 네 뒤에 녀석들 어디 갔어. 낮게 깔리는 성규의 목소리에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듯, 학도병들의 입이 기계처럼 턱 닫힌다. 사라졌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잡고 눈을 감았다. 풀 내음 가득한 숲 속에 희미하게 번진 담배냄새. 성규의 눈이 뜨임과 동시에 멀리서 탕! 하는 이질적인 총소리가 울렸다. “…….” 모두의 다리가 주저앉는다. 뻣뻣하게 돌아가는 성규의 고개, 후들거리는 우현의 다리. 군모를 더욱 깊숙이 눌러쓰며 주위를 살피는 학도병들의 몸이 바르르 떨린다. 쉿, 길쭉한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댄 성규가 총성 소리가 난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어깨에 메고 있던 총을 풀러내 총체를 감싸 쥐었다. 무언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 “허억, 허억…!” 우어억! 한켠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사내에 놀란 학도병들이 소리를 질렀다. 끝까지 총구를 치워내지 않던 성규가, 새파랗게 질린 제 부하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그제야 총을 내려놓는다. 주머니 밖으로 비죽 튀어나온, 사납게 짓눌린 담뱃갑. 여전히 코끝에 스미는 미미한 담배 향. 굳은 표정의 성규가 천천히 다가가 사내 앞에 쭈그려 앉으며, 담뱃갑 끝을 집어 올린다. 그 모습을 멍하게 바라보는 우현의 눈에도, 성규의 손에 들린 담뱃갑이 담긴다. 뒤늦게 코를 킁킁이는 우현의 눈썹이 찌푸려진다. “…분명히 압수했던 담배가, 왜 네 주머니 속에 있지?” “…하아.” “대답 안 해, 이 새끼야!” 거세게 내려쳐진 사내의 얼굴이 볼품없이 옆으로 꺾인다. 어디서 헤매고 온건지 다리엔 수풀이 잔뜩 엉겨 있었고, 눈동자엔 초점이 없었다. 그 초점 없는 눈동자와 얼결에 시선이 마주친 우현이 얼른 시선을 돌린다.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아 부르르 떨렸다. “이, 일범이가….” “…….” “일범이가, 빨갱이 새끼한테…” 퍽. 땅에 내리 꽂아진 총이 기우뚱, 기울더니 이내 곤두박질친다. 제 분에 못 이겨 씩씩대는 성규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성규의 명령에 따라 자리에서 일어선 소대장이, 우왕좌왕하는 학도병들을 억지로 끌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사라진 두 명. 돌아온 건 한 명. 울먹이는 사내의 멱살을 잡고 무어라 외쳐대는 성규의 모습을 뒤돌아보는 우현의 눈가를, 또다시 무거운 군모가 내리덮었다. 야, 뭐냐? 그 새끼들…! 씹빨, 나 아까 다 들었어. 아까 대대장이 그 새끼들한테 탄피 가져오라고 했었잖아. 그때 담배도 같이 뽀려서 몰래 가져온 거야. 미친 새끼들, 담배 빨러 빠졌다가 빨갱이 새끼들한테 얻어터지고 온 거잖아. 그러다 김일범은 운수 드럽게 총 맞아 뒈진 거고. 병원으로 돌아온 학도병들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쏟아졌다. 결국 쏴보지도 못한 탄피를 손에 감싸 쥔 우현이 고개를 떨군다. 오늘 전체 훈련 취소. 귀가 먹먹했다. 정말 말도 안 되게, 생각지도 못하게. 그 누구도 아닌 성규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이었다. “그래서 살아 돌아온 놈은 어딨는데, 지금?” “대대장한테 신나게 깨지고 있겠지, 뭐. 덕분에 훈련 취소되고. 살판났네, 씨벌.” 모두의 입이 굳게 다물린다.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이제 막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훈련 안 해서 좋다. 간만에 푹 쉬어야지.” “나도 아무 생각 안 할란다.” 그대로 정적이 흘렀다. 아침에 모두 치워두었던 이불을 도로 펼쳐 누웠다. 그렇게 한참을 누워만 있던 우현의 눈앞에, 어머니의 모습이 비친다. 제 전우 한 명이 죽었다. 감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훈련 취소, 여태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밥을 거르는 일이 있어도, 씻지 못하는 일이 있어도 훈련만큼은 빼먹지 않던 성규였다. 그런 성규가 훈련을 취소했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메마른 손을 얼굴에 덮었다. 불길함이 엄습했다. “배식 당번 나와.” 드르륵, 문이 열리고 소대장이 큰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다. 분명 열 시를 가리키던 시침이 어느덧 두 칸이나 겅중 뛰어 열두 시를 향해 있었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소대장의 손에 들린 바구니를 전해 받았다. 몇 안 되는 고구마와 감자들 위로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 사람당 두 개씩이다. 아, 그리고 네가 배식당번이냐?” “…예.” “이거 대대장님 몫인데 너가 좀 전해드려라.” 겉이 반질반질한 고구마 두 개가 우현의 또 다른 손에 들린다. 옆구리에 끼고 있던 소쿠리를 바닥에 내려놓자 모두의 시선이 소쿠리 속 내용물로 쏠린다. 또 고구마랑 감자야? “야, 꼬맹이. 이거 너 먹을래? 많이 먹고 빨리 커야지.” 킬킬킬 거리는 학우들을 쏘아보던 우현이 그대로 방문을 나섰다. 소쿠리에 담긴 네 개의 고구마. 그중 두 개는 우현의 몫, 나머지 두 개는 성규의 몫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강렬해지는 햇빛이 복도를 거니는 우현의 얼굴로 쏟아진다. 찌르르 울리는 매미 소리가 들려온다. 저 멀리 구령대에 기대앉은 성규의 모습이 보인다. 땡볕 아래 있으면 땀이 날 법한데도, 땀방울 하나 없이 보송보송한 얼굴이 뒤로 젖혀진다. “저어, 대대장님….” 천천히 고개를 든 성규의 눈과 소쿠리를 내민 우현의 눈이 마주친다. 꿀꺽, 침을 삼켰다. 다쳐 돌아온 제 학우를 내리치던 성규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했다. 그대로 고개만 기울여 우현의 소쿠리로 시선을 옮긴다. 소쿠리에 담긴 고구마 네 개, 한창 자라나는 학생들에겐 간에 기별도 안 갈만한 식량이다. 매앰-. 매미떼의 습격이 이어졌다. 한참을 이어지던 울음소리가 끝나갈 때쯤, 벌러덩 뒤로 엎어진 성규가 손을 휘휘 젓는다. 그거 너 먹어라. …예? “그래도, 이건 대대장님 몫인데….” “너 군인맞냐? 크게 좀 말해.” “…죄송합니다.” “더 크게.” “죄송합니다!!” 괴고 있던 손을 뺀 성규가 눌러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얼굴 위에 덮는다. 정말 안 드실 생각인가? 그런 성규를 바라보며 멀뚱히 서 있던 우현이 소쿠리에 담긴 고구마로 눈길을 돌린다. “…….” “…….” 꼬르륵. 거짓말처럼 울려 퍼진 우렁찬 소리에, 미처 다 가려지지 못한 성규의 입술이 비죽이 위로 솟는다. 우현은 제 귀 끝이 점점 뜨거워지는 걸 느꼈다. 에라 모르겠다. 말없이 걸어가 성규의 옆 구령대 위로 배짱 좋게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고구마를 집어드는 손이 조그맣다. “…….” “…너 뭐하냐?” 한참이 지나도 들리지 않는 발걸음 소리에 성규가 벌떡 일어나 주변을 살핀다. 제 옆에 멀쩡히 앉아 고구마를 까먹는 우현의 모습에 헛웃음이 터진다. “고구마 먹지 말입니다.” “…….” 될 대로 되라지 싶었다. 조용히 고구마를 한입 베어 무는 우현을 쳐다보던 성규가,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소쿠리에 담긴 고구마 하나를 꺼내 껍질도 까지 않은 채 그대로 입에 문다. 안 드신다면서요. 우현이 우물거리며 묻는다. 쨍하게 내리쬐는 햇빛에 눈살을 찌푸린 성규가 대답없이 한 입 더 크게 베어 문다.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사내들의 웃고 떠드는 소리가 이곳까지 울린다. 너 이름이 뭐냐? 툭 던져진 성규의 물음에, 고구마를 문 채로 우현이 고개를 돌린다. 키도 작고, 얼굴도 작고, 손도 작네. 중얼거리는 성규에게서 시선을 떼낸 우현이 입속에 든 고구마를 꿀꺽 삼켜낸다. 조금 멎었나 싶었던 매미울음소리가 다시 시끄럽게 귓전을 때린다. 소쿠리에서 고구마 한 개를 더 꺼내 성규의 손에 쥐여주고는, 우현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남우현입니다.” “…….” 그럼 쉬세요. 성규의 시선이, 꾸벅 인사를 하고는 뒤돌아 뛰어가는 작은 뒤통수를 쫓는다. 푸흣. 결국 입 밖으로 터져버린 웃음이 매미 소리에 묻혀들어간다. 무겁게 짓눌려있던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이었다. 손에 들려진 고구마를, 이미 미어터진 입안으로 쑤셔 넣는다. 매미 소리가 지겹게도 울렸다. |
으아아아ㅏ아아아아아ㅏ!!!!! 갱장히 늦었슴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뎨동해여... 할말이 없네예..... 다 모자란 제 실력 때문이죠 ㅠㅠ 으헝.. 기다리셨을지 모르겠지만...
암튼 기다리신 분이 계시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ㅠㅠㅠ... 제가 빈둥빈둥댄 탓도 있고 글 전개가 맘에들지 않아서
자꾸 고쳐쓰고 이어쓰고 하는 부분이 있다보니 늦어졌네요 ㅠㅠㅠㅠ..
오늘이 무한대집회라 제 글이 묻히진 않을지...흐흐...
아무튼 2편은 예정대로 육급수님이 올리실거랍니댜~.~ 기대해주셔용s2
늘 함께해주시는 독자님들 감사합니다~
너는 나의 봄이다 > 봄에 서 있을게
제목 바꿨어요.. 혼동하지 마시길 ㅠㅠ !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인피니트/성우] 봄에 서 있을게 01 | 인스티즈](http://file.instiz.net/data/cached_img/upload/d/3/5/d3518ed20b9208877c6ba1984c20ad0a.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