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백]인밍아웃, 그리고 징밍아웃
w.봉봉 쇼콜라
그 날도 평범했다. 하지만 지겹도록 평범하진 않았다. 왜냐고? 나는 팬질에 미쳐사는 덕후니까(팬질은 언제나 즐겁다). 덕후. 덧쿠. 머글이 절대 아니다. 그리고, 나는. '남덕'이다. 정확하게는 엓덕. 다른 말로는 징어.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생리 현상에 쓰는 시간을 빼놓고는 하루를 거의 인티에서 보내는 인티인이기도 하고.
01
등교하는 학생들, 출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비는 거리. 그리고 나는 그 가운데에서 여유롭게 노래를 들으며 인스티즈를 즐기는(한 마디로 즐티) 징어. 오늘도 여느 때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두 개의 달이 뜨는 밤을 흥얼거리며 엓독방의 글들을 읽으며 등교 중이었다. 그 중 '징들아 얘 누구야?' 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머글? 아니면 타팬? 망징으로 빙의한 채 글을 눌렀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종대(첸, 가수, 23세, 일반인 아님)의 사진 한 장과 '누구긴 누구야, 쓰니 워더지.'라는 내용의 글. 손가락을 부들부들 떨며 휴대폰 키패드에 놉.이라는 글자를 차근차근 쓰고 확인을 눌렀다. 망징은 내가 아니라 너로구나, 쓰니야. 그리고선 휴대폰 홀드를 잠그고 초록불로 바뀐 신호등을 건너 저 앞에 보이는 내가 다디는 대학 입구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내게 말해 줘, 이게 사랑이라면."
어느젠가 본 적이 있었다. 엑소노래은근 호불호갈리는노래. 쓰니는 왓이즈럽 나는 불호 내취향은 머신이나 히스토리여서..ㅎ라는 말을 했었다. 댓글들을 보니 확실히 호불호가 갈리긴 했지만 나란 징어. 엑소인데 뭔들 불호리. 투문에서 바뀐 왓이즈럽을 또다시 따라부르며 걸어가던 도중 누군가에게 팔목이 붙잡혀 버렸다. 나는 물음표를 띄며(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내 팔목을 잡은 손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누구지? 처음 보는 사람인데.
"누구세요?"
"아, 저기. 이 학교 학생이세요?"
"예? 예, 그런데요?"
우리 학교에 볼 일이 있는건가? 나는 평범한 학교 건물을 쳐다보고서는 다시 남자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그는 내 팔목을 놓고 차려입은 정장 안주머니에서 명함으로 추정되는 것을 꺼내더니 나에게 내밀었다. SM 캐스팅 매니저. 아아, 그래?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남자에게로 눈을 돌리려던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캐스팅 매니저? 캐스팅 매니저?! 심지어 스엠이야?! 우래기들이 소속되어 있는 에셈?! 이게 정녕 현실이란 말인가…? 명함을 잡은 손을 부들부들 떨며 SM 캐스팅 매니저라는 명함을 내민 이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마도 내 동공은 심하게 떨리고 있겠지.
"에, 에스엠.. 캐스팅 매니저.. 세요…?"
"아, 네. 아까 노래 흥얼거리시는 거 보니까 노래 잘 부르시는 것 같더라구요."
"…헐."
나보고 노래를 잘한데. 누가? 스엠 캐스팅 매니저가…! 오마이갓, 하고 머릿속에 드는 생각이 있었다. 나 설마 길캐 당하고 있는거…?
"무슨 소린지 아시죠?"
"..진짜요? 저 지금 길거리 캐스팅 당하는 거예요?"
"네."
와, 대박. 온갖 감탄사들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괘쩐다. 징들아, 나 길캐당함. 심지어 스엠.(비속어) 하, 정말….
"생각, 있으세요?"
"네!!!"
나도 모르게 우렁찬 대답이 나왔다. 학교로 들어가던 사람들이 나를 힐끔 쳐다볼 만큼. 뭔가 느낌표가 3개 씩이나 붙은 기분이랄까. 표현하자면 그랬다.
"이름이랑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아, 제 이름은 변백현. 스물 셋입니다."
아, 젠장. 내 이름은 코난. 탐정이죠. 하는 것 같잖아. 나는 후회막심한 표정을 지었지만, 매니저님께서는 별로 개의치 않아하셨다.(아마도 그랬다. 그래야먄 한다. 왜냐하면 내가 쪽팔리기 때문이다.)
"지금은 학교 가야하시는 것 같으니까, 시간 되실 때 거기 적힌 번호로 연락 주세요."
"아, 네, 네에……."
고개를 살짝 꾸벅하고 가는 매니저님께 나도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 어찌 준면이보다 성스러운 뒷모습이 존재한다는 말인가. 실없지만 절대 실없지 않은 생각을 하고서는 명함을 손에 꼭 쥐고 강의실로 들어와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익, 익예.. 연습생 카테고리가 어디 간 거지? 하, 맨날 엓독방만 들어왔더니 큰일 났네.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새 글을 눌러 글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쌩들아, 나 징언데.. 라는 제목으로 시작한 글의 내용은 나 방금 스엠 길캐당함..ㅠㅠㅠㅠㅠㅠㅠ나복터졋어ㅠㅠㅠㅠㅠㅠㅠ어떡해ㅠㅠㅠㅠㅠㅠ? 이 전부였고 나는 곧바로 확인버튼을 눌렀다(ㅠㅠㅠ를 더 치고 싶었지만 모바일이라 힘들었다). 후하후하, 쿵쾅거리는 숨을 고르고 있을 무렵에 경쾌한 쪽지 알림음과 함께 나의 머리를 때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아!"
"뭐하냐, 너? 왜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데?"
"아, 차학연 이게 죽을라고…! 누구 머리를 때려? 어?"
"변백현 대가리지, 누구 대가리야."
"너, 이게 아이돌 유망주한테 한 대 맞아볼래?!"
"야야야, 아이돌을 어디다가 비교해?"
쯧쯧쯧, 차학연, 얘가 뭘 모르네. 오늘따라 까만 피부가 더욱 돋보이는 학연이를 보며 나는 혀를 쯧쯧 차주었다.
"학연 군."
"아, 씨발. 오글거려."
"학연 군, 나는 방금 말이야. 스엠에 길거리 캐스팅 당한 몸이라네."
"이게 진짜."
빡. 또 한 번 나의 머리를 후려 갈기는 소리가 강의실 안을 울렸다. 그럼에도 늘 있는 일이라는 듯 다른 동급생들, 선후배들은 나를 전혀 신경쓰지 않았다.
"아, 왜 또!"
"구라를 칠거면 정도껏 해라. 어디 듣보잡 소속사도 아니고, 스엠? 스에엠? 이게 진짜 장난하나."
"아, 진짜라고!!"
나는 손에 땀이 날때까지 쥐고 있느라 약간은 구겨진 아까 그 명함을 차학연 눈 앞에 들이밀었다.
"…진짜냐?"
"진짜라니까, 거 뒷통수 되게 아프네."
"헐, 죄송합니다, 백현님."
"오냐, 그,"
"이럴 줄 알았냐? 사기잖아, 딱 봐도!"
"야, 사기 아니거든! 사기친거 에쎔이 걸리면 어떻게 될려고 스엠 가지고 사기를 치겠어, 사기꾼들도 똑똑하거든?"
"…그런가? 그런 거 같기도 하고.. 뭐, 쨌든. 오냐, 잘 해봐라."
"에휴, 너 그러다 나 진짜 연예인 되면 뒷감당 어떡하려고 그러냐? 불쌍한 우리 학연이… 형아가 많이 봐 줄게요."
"아, 진짜. 생긴건 나보다 개같이 생겨놓고 왜 자꾸 강아지 취급이야?"
"야야, 이왕 말할거면 개 말고 강아지라고 하지? 어감이 이상하잖아!"
"예, 예."
싸가지 없게 대답하는 차학연을 뒤로 한 채 나는 아까 차학연때문에 보지 못한 쪽지를 확인했다. 처음 것을 제외하고도 학연이랑 대화(대화라 쓰고 싸움이라 읽음)하는 도중 온 쪽지도 여럿이었다. 헐 진짜 스엠????, 헐 부럽다 난 오디션 다떨어졌는데ㅠㅠㅠ열심히 해!, 와 대박 쓰니 진짜 복터졌네 스엠 들어가기 엄청 어려운데.., 오 진짜? 나도 지금 스엠 쌩인데! 우리 나중에 만날지도 모르겠네ㅋㅋ, 좋겠다ㅠㅠ열심히 해서 꼭 데뷔해! 등등등. 그냥 흔히 보는 댓글들이었음에도 나는 매우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벌써 연습생이 된 기분이었으니까. 그렇게 오전 강의만 있던 오늘. 교수님 말씀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나는 오로지 명함만 뚫어져라 쳐다보며 싱글벙글이었다. 나 SM연생되면 엑소 실물 영접 할 수 있는 거 아냐…? 티저 팬이었던 나는. 데뷔 전 쇼케, 함수 분들과의 합콘 모두 가지 못했다. 그 이유라 하면은 내가 광클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랄까. 그 외에도 해외 스케줄은 물론 가보지 못했거니와, 음방조차도 서너번 밖에 가보지 못했다. 그마저도 남징이라는 이유로 나는 함께 응원법을 외치지 못하는 쭈구리였다. 그런 내가 엑소 실물 영접이라니! 스엠 연습생이라니! 학교 지붕을 뚫고 희수와 손 잡고 엑소 플래닛이 있는 갤럭시까지 날아갈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지막 강의가 끝나자마자 나는 달려가려 했으나, 학연이의 손에 붙들려 함께 천천히 학교 근처 카페를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호들갑을 떠는 나를 보며 차학연이 인상을 구긴 채 쪽팔린다며 저리로 가라며 나를 향해 훠이훠이 손짓을 해대었지만, 나는 그게 또 재밌어 아잉뿌잉거리며 학연이에게 더욱 달라붙었다.
"…죽고 싶냐?"
"미안."
나는 이런 식의 장난을 많이 쳤지만, 언제나 사과만큼은 재빠른 아이였다.
"야, 이제 전화 해 볼까…?"
"그래, 해 봐라."
나는 아침에 '놉'을 눌렀던 것보다 더욱 부들대는 손으로 명함에 적힌 번호를 찬찬히 눌러나갔다. 공일공으로 시작한 번호는 5분이 지나서야 11자리가 되었다. 물론, 그 탓에 차학연에게 또 한 대 맞았지만. 그리고 한 번 호흡을 가다듬고는 초록색 전화기 모양으로 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생각대로 티'라는 가사(가사라기에는 뭣하지만 어쨌든)가 절로 떠오르는 그 소리를 시작으로 뚜루루루 하는 신호가 몇 번 가고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아마도 아침의 그 매니저님일 터이지만.
-여보세요.
"아, 저기… 아까 아침에 길거리 캐스팅 된 사람, 인.. 데요…."
-아! 아까 대학교 앞에서 맞죠?
"네, 네!"
-대표님께는 말씀드려 놨습니다.
"아, 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나의 속은? 절대 그럴리 없었다. 헐, 미친, 대표님? 대표님이면.. 이수만?! 수만옹!! 수멘!! 나는 엄청난 쾌재를 부르며 수만옹을 외치고 있었다.
-그,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은데, 지금 시간 되시나요?
"네! 당연히 되죠!"
-아, 하하…. 지금 어디 계신가요?
"어, 여기… 야, 차학연. 여기 어디더라?"
"병신 아냐? 베네 카페."
"아, 그렇지. 여기 대학교 건너편에 베네 카페요."
-그러면 제가 지금 거기로 가서 말씀 드릴게요.
"헐, 아, 아, 네."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헐, 수만옹한테 말을 했대, 나에 대해서…! 오마이갓. 정말 오엠쥐다, 오엠쥐. 나는 앞에 놓여진 초코라떼를 한 번 쭉 들이켰다. 나 진짜, 헐, 막, 종대처럼 3개월만에 데뷔하고 하는 거 아냐? 미쳤다, 진짜. 그러면 우래기들이 내 선배야?! 헐, 나 그럼 이제 애들한테 선배님. 이래야 돼? 아, 그건 좀 싫다. 아니, 뭐 어떠냐. 친해지면 되지. 차피 나도 스물 셋! 종대랑 찬열이랑 경수도 스물 셋! 갑이잖아, 갑. 딸랑. 조용한 카페의 브금을 깨고 손님이 들어옴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나의 눈길은 그곳으로 갔고, 거기에는 매니저님이 계셨다.
"아, 안녕하세요!"
"아, 네. 옆에는 친구 분이신가요?"
"네…. 아, 혹시 같이 있으면 안 되나요? 야, 차학연, 너 얼른 가라."
"이런 배은망덕한 놈을 봤나."
"아뇨. 그냥 있으셔도 괜찮아요."
"아, 그, 그래요?"
나는 학연이에게 미안미안, 이라며 살포시 웃어주고는(물론 가식이었다) 매니저님과 함께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근데, 무슨 얘기길래 이야기가 길어진다고…."
어쩐지 주눅이 들어 말꼬리가 자꾸만 흐려졌다. 그를 알아챈 매니저님은 사람 좋게 웃으며 나에게 말을 건넸다.
"긴장 안 하셔도 돼요."
"아, 그렇지. 혹시, 엑소라고 아시나요?"
"예? 엑소요? 당연히 알죠!"
제가 걔네 팬인걸요! 팬 뿐이랍니까? 덕후죠, 덕후! 라는 쪽팔리는 말은 삼갔다. 당연하지만, 엑소가 쪽팔린게 아니라 단지, 이 나이 쳐먹은 남자애가 엑소 덕후라고 말하기가, 그것도 스엠 관계자 분한테 말하기가 쪽팔렸을 뿐이다.
"엑소 멤버가 지금 11명이잖아요."
"네, 그렇죠."
"사실, 대표님께서 엑소를 12인 체제로 만들고 싶어하세요."
"…네?"
엑소가.. 12명이 된다고…? 물음표가 되게 많이 붙는 기분이다. 그렇다면 2x5=11이라는 공식 대신 2x5=12라는 공식이 성립하는 거야? 나는 이 와중에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백현 씨가 엑소 이미지에 굉장히 잘 맞거든요. 얼굴도 그렇고, 나이도 그렇고. 아까 보니까 노래도 꽤 하시는 것 같구요. 친구 분 생각은 어떠세요? 백현 씨 노래 잘하나요?"
"아, 네, 뭐… 얘가 다른 건 몰라도 노래 하나는 잘 하죠."
헛소리를 해댈 줄 알았던 학연이는 의외로 태평하게 팔짱을 낀 채로 내 칭찬을 해주었다. 학연아… 횽아가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사줄게, 알았지…? 나는 울먹이는 표정으로 학연이를 우쭈쭈 해 주었으나, 학연이의 표정이 썩었다. 그 표정은 마치 뒤지고 싶냐? 하는 표정이었기에 나는 바로 학연이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그나저나, 나는 눈치가 없었다. 이 말인 즉슨… 나를 엑소 새 멤버로 편입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대표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죄송하지만, 사실 아까 백현 씨 사진을 몰래 찍었거든요. 대표님도 허락하셨습니다. 오히려 좋아하시더라고요."
"……."
"백현 씨를, 엑소 새 멤버로 편입하고 싶은데, 어떠세요?"
내가, 엑소 새 멤버가 된다? 열 두번째, 엑소의 멤버. 내가 완성시키는 2x5=12라는 공식. 이것은 과연 현실인가, 꿈인가. 나는 가늠이 되질 않았다.
-
인티인+징어인 저는 인티인들과 징어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팬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허허.. 한 편 쓰고 나니 기 다 빨린 기분.. 하, 많이들 읽고 재미있으셨으면 좋겠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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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봐줬는데 새언니가 화났어요.. 이유가 뭘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