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넌 원래 그렇게 말이 없니? 내가 너한테 자꾸 장난쳐서 말 많이하게 만들어야겠다. "
그게 나에게 건넨 첫마디였다.
" 안녕. "
그게 나에게 건넨 마지막 말이었다.
우리사이는 한 여름 밤의 꿈 같았다. 짧지만 강렬했던 한 여름 밤의 꿈.
그는 나에게 열병처럼 다가와 훅 하고 떠나버렸다.
어렸던 나는 그의 작은 행동에도 여느 10대 소녀들의 꿈 처럼 달콤하게 설레었다.
그와 나누었던 문자 메세지들은 모두 따로 보관해놓았다. 다른 사춘기 소녀들과 다를 바 없이 부모님에게 핸드폰을 숨기는 여중생이 되어버린 것 이다.
나는 그애와 나누었던 대화들을 단짝친구에게 얘기해주곤 했다. 그 얘기들을 듣던 친구는 마치 자기일처럼 설레어 했고, 기뻐해주었다.
아닐수도 있지만, 혹시나하여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확률, 60억 곱하기 60억 분의 1. 그 확률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란 생각만 해도 짜릿했다.
" 오늘 뭐했어? "
" 응 좀 있으면 11월 11일 이잖아 그래서.. 빼빼로 미리 샀어. "
" 누구 줄꺼야? "
" 음... 친한친구들 줄거 따로 샀고.. 그냥 돌리려고 산 것도 있고... "
" 내꺼는?.. "
" 네 것도 있어! "
" 돌리는 거?.. "
아닌데. 사실 그에게 어떤 과자를 줘야할까 매우 망설였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다급한 목소리를 내버리게 되었었다.
" 아니야! 네건 돌리는 거 아니야! "
" 오 진짜? 감동인데.. "
왠지 그에게 내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실 이미 눈치챘을지도 모르지만 내 마음을 들키면 그가 곧 떠나버릴 것 같았다.
" 으응... 어.. 너는 착하니까... 그래서... "
" 그냥 착해서 주는거야?.. "
" 아니 음... 어.. 잠깐만 나 전화좀 받고 올게!! "
아니라고 하기도, 응이라고 답할 수 도 없는 질문 이었다.
나는 그만 자리를 피해 버렸다.
그 애와의 행복한 한 여름 밤의 싱그러운 피크닉이 계속되었다면 좋았겠지만, 단풍이 지면서 우리는 꿈에서 깨어나야 했다.
2012년 11월 11일. 금요일. 빼빼로데이.
나는 그에게 학교에서 빼빼로를 건냈었고, 그는 수면을 취하고 있던 터라 정신없이 잠결에 받아버린 터에 왠지모르게 위축되었던 그 날.
그날 밤에 그가 나에게 알려주었다.
" 나 축하해줘. "
" 뭘? "
" 나 여자친구 생겼어. "
쿵. 그저 망상에 불과했을까, 아니면 용기 없는 자의 말로일까.
나의 꿈은 그렇게 깨어져 버렸다.
" 축하해.. "
나는 축하한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그의 그 무엇도 아니었으니까.
나는 그렇게 그날밤 베개를 눈물로 흠뻑 적셔야했고, 억지로 한 단계 성장해야 했다.
아프고도 강렬했던 한 여름 밤의 꿈은 그렇게 나를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