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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조회 597

Survivor 00.

 

 

 

 

 

 식량이 떨어졌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밖은 온몸이 뜯긴채로 피를 뚝뚝 흘리며 돌아다니는 짐승과 사람들이 있었다. 허름한 집을 구해 안으로 기어들어가 몸을 피한지 벌써 14일이 지났다. 원래부터 체력이 약하고 추위를 많이 타는 백현은 구석에 들어가 누워 눈을 감고 잠에 빠져있었다. 그사이 경수는 턱없이 부족한 식량을 뒤지며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중이었다. 경수와 백현은 어릴적부터 떨어지는 법이 없었던 친구중 가장 가까운 쪽에 속했다. 그리고 열여덟이 되는 해 알 수 없는 바이러스로 인해 짐승, 식물, 사람 가릴것없이 독성으로 채워졌다. 살갗이 뜯긴채로 피를 흘리고 다니는 모습을 보며 백현은 항상 구역질을 해댔다. 전의 백현은 항상 흰 뼈가 훤히 드러나고 피가 줄줄 흐르는게 너무 무섭고 역겨워서 나는 구역질이라고 했다. 경수는 제 가족과 백현 가족 모두가 살아있기를 바랬지만 백현과 함께 돌아온 집에는 감염되지 않은 모든 것을 뜯어 먹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벌벌 떨며 백현을 찾던 세훈을 우여곡절 끝에 빼내오고 한동안 식량 없이 굶주림에 살았다. 여름이 지나가고 초가을이 시작된 무렵에는 열한살의 어린 세훈을 잃어버렸다. 백현은 어린 세훈을 잃어버렸다는 것에 하루를 울며 시작하고 하루를 울며 마감했다. 경수가 품에 안은 백현에게서는 제게서 나지 않는 달큰한 향이 났다.

 

“산책갈래?”

 

 

백현이 자고 있어 듣지도 못할테지만 경수는 뒷말을 줄줄 이었다. 근처 바다에서 놀고 야경도 보고 우리 백현이가 좋아하는 소꿉놀이도 하자. 열여덟이 된 백현은 아직까지 여섯살에 머물러있었다. 세훈을 잃고 삶의 의지를 잃어버렸던 백현은 죽어도 된다, 라는 식의 말을 내뱉고 무작정 뛰어나갔다. 백현이 뛰어 나간곳에는 여러 감염자들이 득실거렸고 경수와 백현이 가장 싫어하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눈물을 쏟아내고 모래사장을 가로 지으며 뛰던 백현이 주저 앉았을때 감염자들이 백현을 향해 뛰었다. 아마도 침이 고이는 향긋한 생존자의 살냄새를 맡고 온것 같았다. 달려드는 감염자들은 반쯤 미쳐버린것 같았다. 경수가 뛰어들어 백현을 끌어내는 도중에도 감염자들은 미친 사람들 처럼 달려들어 경수와 백현을 끌어당겼다. 그들의 눈에서 매마른 갈증이 들끓었다. 변백현 정신차려! 경수의 외침에도 아무말없이 끌려가던 백현은 감염자들의 형체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먼 곳 에서 피가 진득히 묻어나던 생존자들의 트럭에 내쳐졌다. 하얀 니트가 볼품없이 찢기고 더러워졌다. 핏물에 천천히 적셔 나가는 니트는 백현이 제 생일날 받은것이라며 자랑했던 것이었다. 경수는 백현의 몸에서 니트를 벗겨내고 피가 나는 백현의 팔에 둘렀다.

 

 

‘우린 살아야해. 가족들과 세훈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이 역겨운 곳을 벗어나야해.’

……

‘지켜줄게, 내가.’

 

 

다행히도 세게 치이지 않은 탓에 빠르게 일어난 백현은 주위를 살피다 경수를 보곤 소스라치며 구석으로 파고들었다. 덜덜 떠는 백현을 보며 경수는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여섯의 어린 나이로 돌아가는게 더 좋을수도 있을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 역겨운 곳에서 삶의 의지를 잃는것보다 그 전의 아픈 기억을 잃어버리고 새롭게 살아가는게 백현에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몰랐다. 여섯살의 나이로 돌아간 백현은 상황을 빠르게 읽고 판단했다. 투정은 많았지만 그것도 모두 때에 맞춰질때의 이야기였고 백현의 투정은 그리 길지 못했다. 아이같이 잠든 백현을 보고 있을때면 가슴속에서 들끓는 무언가에 항상 코 끝이 시렸다. 코 끝이 시리는 느낌은 썩 좋지 못했다.

 

 

‘집에 가고 싶어……

‘변백현.’

……

‘그런 말하지 말라고 했지.’

‘백현이 혼내지마 백현이 그런 말 안할게 경수야아………

 

 

어린 아이로 돌아가 조금만이라도 단호한 목소리를 내면 울음을 터뜨리고 우는 백현은 어렸다. 그런 백현을 볼때마다 경수는 천천히 무너져 내렸다. 집을 그리워하고 품을 원하는 백현을 어느 정도 달래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경수는 백현이 바라는 범위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 멈춰있었다. 집은 아늑하기보다 무서웠고 경수의 품은 항상 피비린내가 풍겼다. 눈물이 턱을 타고 흐르고 많은 눈물을 닦아 내기 위해 들었던 손은 눈물에 푹 젖어있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우는 백현을 품에 안은 경수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목을 끌어안는 손이 평소와 다르게 찼고 턱에 닿는 이마는 뜨끈해져있었다. 이대로 모든게 멈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혼자 앉아 품을 그리워하는 백현의 등을 보지 않게. 나 버리지 마…… 울고 싶었다.

 

 

 

 

 

“식량이 거의 다 바닥난 상태야.”

응?”

“내가 식량을 구해올게 얌전히 기다리고 있어.”

“경수, 경수 백현이 버리고 가는거야……?”

“아니야 백현이 안버려.”

“가지마……

“우린 살아야하잖아.”

 

 

울먹이는 백현이 보였지만 부족한 식량을 채워 넣어야했다. 살갗이 뜯기는 한이 있어도 저를 바라보며 울먹이는 작은 백현을 구해내야 했다. 역겨운 쓰레기들. 경수는 ‘우리’라는 틀을 부수는 감염자들이 싫었고 역겨웠다. 몇 번 쓰지 않은 리볼버를 손에 쥐고 나서는 경수의 뒷모습을 보며 무릎을 끌어안은 백현이 서늘하게 부는 바람에 몸을 움츠렸다.

 

 

경수 아파, 백현이 때문에 경수 아파……

 

 

지독한 추위 속을 걷는 경수의 등이 한없이 작아보였다.

 

 

 

 

 

 

 

“별 거지 같은 게

 

 

제 뒤를 따라붙는 감염자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린 경수는 찢기고 흉측해진 여자의 얼굴에 조준했다. 쾅, 둔탁한 소리를 내며 미간 사이에 박히는 총알을 본 경수가 혀를 찼다. 넓은 모래사장을 걸으며 구한것이라곤 빵조각과 통조림 두 개뿐이었다. 이것만으로 식량을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쓰러진 여자의 주머니를 뒤지던 경수는 여러개의 총알과 리볼버 그리고 작은 캬라멜 상자를 발견했다. 턱없이 부족한 식량을 생각하면 절로 미간이 구겨졌다. 빌어먹을 세상 왜 이딴 쓰레기들이 생긴 거야. 건조해진 공기를 한껏 휘저은 경수가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물컹, 하고 밟히는 무언가에 소스라치게 놀란 경수의 눈이 크게 떠졌다.

 

 

“씨,발 놀랐네!”

 

 

피로 흥건한 손을 밟은 경수가 다시 리볼버를 고쳐 들고 무작정 향한 곳에는 의외로 식량이 많았다. 생선과 라면 4개. 식량을 곱게 가져갈 검은 비닐봉지 까지. 경수는 진심으로 하늘에 감사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백현이 있을 허름한 집으로 향했다. 혹여나 저를 기다리다 우는 것이 아닐까, 하며 경수는 양손 가득 짐을 들고 뛰었다. 여기저기에서 시체들이 보였지만 이젠 시체가 없는 곳이 낯설 만큼 익숙해진 경수는 그것에 신경 쓰지 않고 허름한 집의 천을 걷어내고 안으로 발을 들였다.

 

 

“백현……

 

 

백현이 없다. 온 집안을 뒤져도 백현이 없다. 짐을 던지듯 내쳐놓고 밖으로 나온 경수는 백현을 찾아 이리저리 뛰었다. 백현은 어렸고 무엇보다 이곳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너무 뛰어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에 일렀을때 경수는 저 멀리 바다 가까이에 있는 두 형체를 보고 단숨에 뛰어 다가갔다. 변백현!! 경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백현은 한껏 웃고 있었다. 백현의 옆에 있는 키 큰 남자를 바라보다 백현을 끈 경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얘 정상 아니니까 붙어 먹으려면 다른 새끼랑 붙어 먹으세요. 경수의 말에 남자가 백현의 손목을 쥐었다. 붙어 먹을 생각 없는데. 경수는 황당하기 그지 없는 상황에도 실실 웃고 있는 백현의 이마에 알밤을 먹였다. 아파… 금새 시무룩해지는 백현을 이끌고 돌아가는 내내 백현을 잡은 키 큰 남자가 거슬렸다. 잘생기긴 했는데 쳐 버리고 싶게 생겼단 말이지 실실 웃고 있는게 이는 왜이렇게 많아보인데 무슨 만화 캐릭터도 아니고. 백현을 끌고 도착해서도 남자에 욕짓거리를 내뱉던 경수가 라면을 부셔 백현의 작은 입에 물렸다. 잘 씹어서 먹어. …으응.

 

 

“다른 사람 따라가면 안돼, 그건 알고 있지 백현아”

“백현이 보구 맛있는 거 준다고 그랬어……

“그래도 따라가지 마.”

경수 아파, 백현이 때문에 아파……

뭐?”

“백현이 때문에………

 

 

손에 쥐고 있던 라면이 부서졌다.

 

 

 

 

 

 


    무슨일인지 밤새 땀을 뻘뻘흘리며 앓아눞게된 백현에 경수가 눈살을 찌푸렸다. 왜그래? 백현은 몸이 약했지만 쉽게 병에 걸리거나 앓아눞지는 않았다. 아파 앓아눞는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고 횟수가 적은만큼 한번 앓아눞기 시작하면 보통 일주일을 꼬박 채워 넘겼다. 어디가 아픈지 말해봐. 손바닥에 고인 땀이 질척거려 불쾌했지만 그것까지 신경쓸만큼 경수는 여유롭지 않았다. 어쩌면 땀이 난다는게 자연스러운 일일수도. 경수야 나. 숨을 헐떡이며 간간히 마른 기침소리를 내던 백현이 건조하게 갈라져 흉한 모습으로 붙어있는 입술을 열었다. 머리가 아파, 목도 타는것같고 또…… 길고 매서운 적막이 좁은 집안을 비집고 들어찼다. 일그러졌다 다시 펴졌다를 반복하는 그 쳐진 눈이 끊임없이 말하고 있었다. 나를 증오하고, 혐오하고 있다고. 잘게 흔들렸다 크게 일렁이는 눈물 가득찬 눈을 바라보다 시선을 거둔 경수가 물을 찾아 들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이미 오래전에 눈치챈 백현은…

 

“많이 아픈것같아”

“물 먹어”

“경수도 백현이도 다……”

 

모든것을 지우지는 못했다.


 

 

 

Survivor  上-2

 

 

 

 

 

 잠에 빠져든 백현을 뒤로 집안을 빠져나온 경수가 숨을 크게 들이마쉬고 내뱉었다. 그것을 몇번씩이나 반복했다. 공기가 안으로 들어찰때마다 목이 막히는 소리가 울렸다. 눈물이 저멀리의 산을 가리고 바로 앞의 아름다운 바다를 지우고 마음속 깊은 백현을 적셨다. 눈물이 너무 깊은곳을 끄집어냈다. 평생토록 꺼내지않고 꽁꽁 숨겨두려 감췄던 그것을, 백현으로 인해 끄집어내지고 가련한 등으로 인해 내려놓았다. 모든것을 품에 안았던 제가 가져보지 못한것은 없었다. 가지고 싶은것이 생기기도 전에 경수의 주위에는 차곡차곡 쌓여갔고 항상 손은 제게로 뻗어졌다. 백현은 제가 처음으로 손을 뻗은 사람이라 애틋하고 아픈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경수에게는 애틋함보다는 더욱 큰 것이 마음속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랑. 그 아픈것을 알고싶지는 않았다.

 

 ‘너는 나를 놓지못하잖아 아니 항상 잡고있잖아’

 ‘……’

 ‘친구는 원래 이런거야?’

 

아니 친구는 원래 그렇지않아. 경수는 새어나오려는 말을 삼키던 제 모습을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이제봐야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백현에게는 손을 뻗던 경수의 모습도 남지 않았고 잃어버렸던 세훈의 존재마저도 남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경수는 길 잃은 양 마냥 방황하고있었다. 변백현.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이곳에서 썩혀들어가는 시체들과 핏물이 되어버린 바다는 경수와 백현을 마주하고 있었다. 짙게 퍼지는 이름을 작게 소리내어 부르다 큰 소리를 내며 주저앉았다. 백현아… 헐떡임과 같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항상 말했다. 백현을 놓지 말아달라고 품에 안아보라고. 경수의 품은 백현에게는 나지 않는 피비린내가 났다.

 

“친구는 원래 그렇지 않은거 알잖아……”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새벽까지도 그치지 않고 더욱 거세게 내렸다. 잠에 빠져든 백현의 손을 잡고 누워 눈을 감아봐도 귓가를 울리는 빗소리에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심장이 요동쳤다. 쿵쿵, 둔탁한 소리를 내며 요동치기 시작하는 심장에 다리가 후들거렸고 팔에 소름이 돋아났다. 상황에 대비해 챙겨둔 리볼버 두개가 서로 부딫히며 듣기 싫은 소음으로 뒹굴었다. 쇳소리와 빗소리가 얽혀드는 그 비내리는 모래사장에서 경수는 빠르게 움직이는 무언가에 리볼버를 꺼내들고 다가갔다. 요란한 소리를 내며 움직이던 심장이 멈췄다. 숨이 크게 들이쉬는 소리와 함께 코 앞에서 흉측한 모습을 한 남자가 죽었다. 벌어진 아랫입술에 빗물이 닿았다. 허름해진 검은 반팔티와 유난히도 하얀 얼굴.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검지 손가락을 엄지 손가락의 손톱으로 꾹꾹 눌렀다. 코끝이 찡하게 저렸다.

 

‘세훈이를 찾아야해 그 어린애가 어떻게……’

 

열한살의 어린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진 몸과 그 사이에 여전한 얼굴을 하고 나타난 모습은 하얬다. 하얀 손이 검은 리볼버를 던지듯 버렸다. 붉은 입술에는 하얀 담배가 위태롭게 걸려 흔들리고 있었다. 얼굴에 묻은 붉은 피를 큰 손으로 대충 닦아낸 세훈이 커터칼을 쥐어 쓰러진 남자의 어깨에 찍어눌렀다. 웃음을 흘리는 입가가 작게 흔들렸다. 넓은 어깨가 시야를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빗물에 적셔져가는 머리카락을 느릿하게 털어내고 틀어진 몸에 비릿한 피비린내와 담배 냄새가 얽혀 훅 끼쳤다. 우리 형,

 

“어디 아픈데는 없죠.”

 

없어. 목울대를 타고 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낸 경수가 숨을 고르게 내쉬며 붉게 자국이 생긴 검지 손가락을 살살 쓸었다. 세훈의 하얀 얼굴을 볼때마다 울부짖던 백현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숨을 헐떡이며 울부짖던 어린날의 변백현을, 더이상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런 과거의 변백현을. 기억하고 싶지않아 외면했지만 세훈과 눈을 마주할수록 그것은 더욱 경수에게로 다가왔다. 무심하게 일렁이는 깊은 눈동자에 속이 울렁거렸다. 신발을 신지 않은 맨 발바닥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박히는 느낌이 찌릿하게 퍼져나갔다. 핏물이 고이고 이미 오래전부터 붉어져있던 바닷물에 섞여들었다. 날카로워진 잇새로 진득한 침과 피가 묻어나고 두눈이 붉게 일그러진게 확실히 감염자의 모습이었다. 세훈이 실없이 웃었다. 경수형.

 

 

“얘 제가 감염시켰어요”

“……”

“이새끼가 병신같이 저를 버리려고 했거든요, 버리려고만 안했으면 죽는건 면했을텐데. 웃기죠? 나를 버리려다 자기가 버려졌잖아요.”

“……”

“형은 아직인가봐요?”

 

 

‘어떻게 살아남아… 그 어랜애를 잃어버릴수가 있어!’

‘나는 네가……’

 

세훈이 매서운 눈을 하고 웃었다. 푸스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나는 웃음소리를 뒤로 경수가 손을 올렸다. 리볼버의 끝이 세훈의 이마에 닿았다. 방아쇠를 당긴다면 세훈은 이자리에서 죽음을 피하지 못할게 분명했다. 백현을 놓을수가없다. 세훈은 여전히 웃음을 흘렸다. 텁텁함이 묻어나는 그 공간속에 남은것은 없었다. 백현은 모든것을 지우고 세훈의 존재를 기억해내지 못했다. 세훈의 이름을 부르면 절로 눈물이 고여 훌쩍거리는것을 보면서도 경수는 백현을 잡은 손을 놓을수가 없었다. 겨우 닿고 잡아세웠는데, 이렇게 쉽게 무너져 놓칠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세훈의 손에 쥐어진 커터칼에 묻어있던 피가 빗물에 깨끗히 씻겨나갔다.

 

 

“형도 잃는게 있어야하는데”

“그만해”

“형이 먼저…”

“그만해 오세훈”

“형이 먼저 나를 버렸잖아요. 잃는게 싫어서 나를 버리고 순진한 우리형을 속였잖아요.”

 

 

그만하라고 했잖아! 경수가 신경질적으로 리볼버를 내던졌다. 분에 못이겨 들썩이는 어깨와 흔들리는 몸이 찼다. 웃는 얼굴로 어디인지 모를 한적한 곳에 앉아있던 세훈이 보였다. 지금은 그것보다 숨을 제대로 쉴수조차 없이 울던 백현이 가득 들어찼다. 백현은 너무 어렸다. 세훈과 경수를 감당하기에는 이미 너무나 큰 짐을 안고 살아 힘들어하는게 백현이었다. 그런 백현에게 세훈은 너무 컸다. 세훈을 잃지 않으려 애쓰던 백현을 두고 세훈을 데리고 가던 제 손이 여전히 남아있었다. 역겨워 구역질이 났다. 도경수라는 자체에 역겨워 구역질이 나오고 오세훈이라는 자체에 숨을 쉴수가 없었다. 변백현이라는 그 자체에 너무나 아팠다. 비는 그치지않았다.

 

 

‘니가 더 힘들어하는게 싫어서 그랬어, 나를 바라보고 쉴수있게 그렇게 해주고싶었어’

‘……너는,’

‘백현아.’

‘쓰,레기야’

 

 

쇳덩이가 모래더미에 박히는 소리가 울렸다. 작은 몸이 달려나와 경수를 말렸다. 백현이 이런거 싫어. 세훈의 검은 티를 잡은 손이 덜덜 떨렸다. 경수 싸우는거 싫어…… 꽉 문 잇새로 새어나오는 백현의 흐느낌이 빈 틈을 꾀어 들어찼다. 비는 언제가 되어도 그치지 않을거라고, 백현의 두 눈이 말해주고 있었다. 너를 증오해. 뒷따라 붙는 그 시선이 너무나도 가혹했다.

 

 

 

 

Survivor  上-3

 

 

 

 

 

“살인자 주제에,” 


세훈의 말에 온주변이 찬물로 적셔진듯 차가워졌다. 입꼬리를 올려 웃는 세훈에게서 알수없는 알코올 향이 슬몃 풍겨났다. 우뚝 멈춰선 경수의 앞으로 팔을 잡고있던 백현의 손을 결박해 끌고 가버리는 그 세훈의 뒷모습이 백현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백현아…… 아무말하지 못하고 우뚝하니 서있는 모습은 또 얼마나 멍청할까.경수가 느릿하게 모래에 뒤덮혀져 축축해진 리볼버를 쥐고 상체를 일으켰다. 빗물로 가득 젖은 턱을 타고 비릿한 쇠냄새가 풍겼다. 피…, 피다. 내 입술에서, 내 마음에서 피가 나 백현아. 시야가 흐릿해졌다 선명해졌다를 반복했다. 방아쇠가 당겨지고 날카롭고도 작은 그 신음을 들었을때 시야가 밝게 비춰졌다.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한줄기의 핏물보다 다리에서부터 흘러내리는 핏물이 더욱 거세고 많았다.  


“제발 도망가지말라고……” 


흐느낌이 짙어질수록 고통에 적셔진 신음은 더해갔다. 다급한 세훈의 목소리와 가녀린 신음을 내뱉는 백현이 너무나도 닮아있어서. 그래서 죽고싶다. 역겨웠다. 경수가 제 머리에 리볼버를 겨눴다. 방아쇠를 당기고,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그 빈 리볼버를 들고 세훈과 백현을 보며 멍청히 서있었다. 살인자. 수많은 사람들을 역겨운 피비린내 구덩이로 몰아넣은 그 사람, 그 사람이… 


“내가 그랬어. 백현아, 내가 잘못했어” 


니가 자꾸 도망가니까, 도망가지 못하게 그렇게 만든거야. 피냄새에 헛구역질을 하고 울먹이는 니가 가지고싶어서 그래서…… 세훈이 백현을 업고 그 낡아 헤진 집안으로 들어간것도 모르는채 몇번을 되새기며 흐느낌을 멈추지 않던 경수가 주저앉아 제 가슴께에 붙어있는 옷을 쥐어잡았다. 항상 세훈을 데리고 도망가려던 모습이 크게 그려졌다. 나를 두고 가지말라고, 몇번이나 말해도 듣지않던 그 눈이, 그 목소리가. 아무리 애원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외면하는 백현의 등을 안고 말해주고싶었다. 이세상에서 가장 무서운건 리볼버가 아니라 피비린내나는 그 사랑 속 구덩이라는걸.

 



“형은 미쳤어요.”
“……”
“그렇게 속이기까지하고 이젠 다리도 쓰지못하게 묶어놓는다,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세훈아”
“우리 형 이젠 돌릴수도 없는데. 나를 기억할수도 없는데 어떻게하라고!”
“……우리가 미쳐버렸어” 


너무 지쳐서 돌이킬수조차 없을정도로 미쳐버렸어, 우리가. 언젠가 백현이 했던말이 귓가를 멤돌았다. 우리가 미쳐버려서 더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거라고. 좁은 가슴에는 들어갈수있는것도 없고, 들어가있는것도 없지만 단하나가 들어갈수있다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넣고싶다던 그 말이 꼭 창백해진 세훈같았다. 빗물이 고여 만들어낸 웅덩이에 발이 빠졌다. 허름해진 신발새로 들어차는 물이 불쾌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더 좋았다. 질척해진 발에 신발을 벗고 맨발로 긴 모래사장을 하염없이 걸었다. 


‘사람들은 왜 나를 죽이지 않았을까? 들키지 않으려했다면 그 더러운짓들을 버리고서라도 나를 죽이는게 맞았을텐데’
‘……’
‘나를 그렇게 만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사람들은.’
‘백현아 귀 막아.’ 


다 지워버려. 틀어막은 귀와 감은 눈을 한 백현이 머리카락을 쓸고지나가는 바람에 작게 몸을 떨었다. 죽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울먹이는 목소리를 들으며, 경수는 입술을 꾹 다물고 백현을 끌어안았다. 백현의 목덜미에서 덜 데워진 우유 냄새가 풍겼다. 아직은 미숙해서 모든것을 감당하기엔 힘든. 백현은 항상 지친 모습을 보였다.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무엇을 먹으면서도 항상 힘들어하고 있었다. 그런 작은 아기새에 안겨있는 또 다른 새 두 마리는 너무나 컸다. 그리운 날의 봄에는 시끄럽게 울리는 새소리가 파도소리와 함께 퍼졌었다. 지금은 제대로된 새조차 볼수없는 이 검붉은 곳에서 우리는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백현이 확실히 이상해졌다. 세훈이든 경수든 보이는 사람들에 소스라치며 구석에 숨어 덜덜 떨었다. 작은 몸에 다가가면 갈수록 백현은 경계심 가득한 눈을 하고 세훈과 경수를 피했다. 세훈에게 손목이 잡힌 날에는 발버둥을 치며 귀가 아플정도의 소리를 지르며 리볼버를 내던졌다. 겨우 진정을 시키고 본 백현은 불규칙적으로 숨을 내뱉으며 무언가에 극도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얗고 예쁜 손가락에 굳은살이 박혀있는것을 보며 경수가 백현의 작은 입술에 생긴 상처를 살살 쓸었다.  

 
“세훈이 잃어버렸어…”
“……”
“세훈이 몰라, 백현이는 몰라……”
“…백현아.”
“백현이는 모른단말이야!”  

 
백현이 세훈의 손을 뿌리치며 손에 쥐고있던 유리병을 바닥에 내던졌다. 조각들이 된 유리병을 보며 덜덜 떨며 숨을 내뱉던 백현이 한순간 쓰러지듯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다. 백현은 모든것을 잃어버렸다. 멀뚱히 서있는 세훈을 스쳐 지나 백현의 앞에 무릎을 굽혀 앉은 경수가 엄지 손가락을 백현의 가슴께에 올렸다. 아프리만큼 세게 꾹꾹 누르는 경수에 세훈이 입술을 꾹 다물고 그것을 지켜봤다. 가슴께를 누르는 손가락의 힘이 세지면 세질수록 백현의 울음이 짙어갔다.  

 
“경수는… 알잖아. 백현이는 모르겠어 머리가 너무 아파……”
“나도 몰라. 그런건,”
“아파…”
“다 지워버려 백현아.”
“아파 경수야아……”  


어쩌면 백현이 잃어버린 그것들이 우리둘의 마지막 끈일지도 모른다고. 
 
 
 
 

 

Survivor  上-4  (上, 完)

 

 

 

 

 


 한참동안을 울고 붉어진 눈을 하며 얼굴을 들이민 백현은 굉장히 피곤해보였다. 투정도, 사치도 모두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이곳에서 백현은 점점 지쳐 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작게 앓는 소리를 내며 벽에 들러붙었던 작은 몸이 파드득 떨렸다. 기괴한 비명소리와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불안함으로 뒤덮힌 하얀 얼굴이 컴컴한 안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경수야. 목소리는 끄집어내지도 못하고 입모양으로 어렴풋이 말하던 백현이 경수의 손을 잡고 빠르게 뛰었다. 몇 되지 않는 힘이었지만 경수는 백현에 끌려가듯 이끌려갔다. 말할 힘조차 없는지 헐떡이는 모양새가 안쓰러워 손을 잡아주니 그것을 피해 점점 멀어졌다. 변백현. 제법 단호한 목소리에도 뒤돌지않고 걷던 백현의 발을, 그렇게도 싫어하며 무서워하고 피해왔던 핏물이 적셨다. 핏물…… 백현이 잘게 헐떡이며 힘겹게 걸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것처럼 아주 위태롭게.

 

 

“그만 집에 돌아가자, 오늘같은 날 산책하면 감기 더 심해져.”
“……”
“변백현.”

 

 

볼께로 떨어지는 수도 없이 많은 눈물들이 희고 긴 목을 타고 흘러 내렸을 때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는 홀가분함을 느꼈다. 그 서글픈 눈물에 홀가분함을 느낀 제 모습이 역겨웠지만 그것에 만족해했다. 경수가 빠르게 걸음을 옮겨 백현을 잡아 당겼다. 끌려가지 않으려 버둥거리는 모습이 세훈을 잃어버렸을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백현아, 나는 그 기억을 떠올리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 응어리로 남아버린 그 날의 이야기를 백현의 눈물로, 백현의 저항으로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울며 세훈의 이름을 부르고 제 바지자락을 쥐어 잡으며 애원하던 모습이 아직까지도 몇일되지 않은 일처럼 생생했다. 도경수…… 어깨를 끌어안아주며 목덜미를 끌어 안고 이름을 찬찬히 소리내어 불러주던 모습이, 작게 신음하며 품에 당겨 안기던 작은 몸이 너무나 그리웠다.

 

 

“돌아가지마, 경수야……” 

 

아아. 너는 돌아가고 싶지 않구나. 어린 날의 너를, 그리고 나를.
모두를 지워버리고 싶었구나.

그동안 얼마나 많은 고통이 밀려왔을까. 얼마나 아팠을까. 나의 그 좁은 틈 안에서 끊임없이 자라던 너는 어깨와 팔, 다리가 끼어 온몸이 부스러지는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까? 돌아가고 싶지 않은 기억 속을 헤매다 머리가 울리는 그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까? 이 컴컴하고 역겨운 냄새가 나는 이 구렁텅이에서

 

너는 무슨 향기를 맡고 있었을까.

너처럼 달큰한 향? 세훈이에게서 나는 바다냄새? 낡은 집안에서 나는 쾌쾌한 냄새?
그리고,
나에게서 나는 비릿한 피비린내?

 

 


 

 

 

대표 사진
독자1
ㅂ...분위기 ! ㅠㅠㅠㅠ대박이지 진짜 잘 보고 가요
11년 전
대표 사진
비회원62.37
이런 좀비물 사랑합니다...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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