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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저금통 전체글ll조회 828
“아 방 좆나 더러워 변백현.”
“니가 치워 줄 거 아니면 입 싸물어라.”
“예에.”

 진짜 입을 다문다. 내 방이 그렇게 더럽나. 내가 보기에 오늘 내 방 상태는 최고조로 깔끔한데. 하여간 박찬열은 유난을 떤다. 
 박찬열이 우리 집에 초대되었다. 원래 도경수하고 김종인하고 또 몇몇 더오기로 했었는데 의리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는 새끼들이 약속 있다고 씨부렁대며 변명을 늘어 놓기 시작하더니 전부 우르르 빠져버리고 꼴랑 박찬열만 우리 집에 왔다. 오늘은 내 생일인데. 집에 가족도 없어서 파티라도 열려고 했는데. 하나밖에 없는 아들의 생일을 끼워서 해외여행을 떠난 엄마 아빠가 미워지는 오늘이다. 나는 외동아들인데도 이렇게 사랑을 못받고 자란다. 불쌍한 변백현.
 혼자만 우리 집에 발을 들여 놓은 박찬열은 선물인지 걸레인지 분간도 안되는, 하튼 되도 않는 티셔츠 한장을 선물이라고 내던지더니 지 집처럼 내 침대에 누웠다. 씻지도 않은 새끼가 침대를 뒹굴고 있는 모습을 보니까 내 속에서 부글부글 뭐가 끓어 오른다.

“야 이 씨발아! 내려 와!”
“엉뚱한데 깔끔 떨 시간 있으면 방이나 좀 치우세요.”
“니가 뭔 상관이야 좆같은게.”

 나랑 박찬열은 허물이 없는 친구다. 아 허물이 없긴 무슨. 서로 허물을 좆나 까내리는 관계다. 우리는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의 앞뒤를 다투는 짐승처럼 틈만나면 서로 헐뜯고 싸우고 으르렁거리고. 언젠가 미친듯이 싸워대는 나랑 박찬열을 보고 도경수는 「너희는 천생연분이다.」 이랬다. 그 말에 기분이 나빠져서 또 주먹질 한판을 했다. 물론 합기도를 한 내가 이겼… 으면 좋았을텐데. 역시 키가 작은 놈들은 키 큰놈들 한테 안되나보다. 나는 기분 나쁘게 털렸다. 그날 박찬열은 높은 장벽 같았다. 내가 기를 쓰고 넘으려고 해도 넘을 수 없는 장벽. 씨발.
 그래서 박찬열이랑 나는 서로 욕을 안하면 되게 어색하다. 솔직히 싸울 때랑 음담패설 할 때를 빼고 둘만 있었던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아. 피씨방을 갈때는 둘이 갔다. 왜냐면 거기서는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하니깐.

“뭐 먹을 거 없냐?”

 아 저 식충이 새끼. 그새 남의 집 냉장고를 뒤적거리는 박찬열의 엉덩이를 발로 한대 까줬다. 반찬통에 얼굴을 들이받은 박찬열이 씨근덕거리면서 뒤를 돌아본다. 아 개웃겨. 배를 잡고 낄낄대니까 잡히면 죽는다 하고 쫓아와서 빠큐 날리고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문을 닫기도 전에 팔이 길쭉한 박찬열이 문을 잡고 확 밀어 제꼈다. 힘이 없는 나는 밀쳐져서 바닥을 뒹굴었다. 아, 사내 변백현의 체면이 말이 아니구나. 
 너하고 나하고 오늘 죽기 전 까지 싸워보자 작정하고 푹신한 침대 위로 올라가서 손을 까딱였다. 박찬열이 미친 놈 보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 까딱 하는 내 손가락을 번갈아 봤다.

“뭐하자고?”
“덤벼 색꺄. 한판 뜨자.”

 아 씨발 쪼그만게 진짜. 하고 박찬열이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한숨을 푹 쉬면서 고개를 저었다. 내 노골적인 도전장에도 꿈쩍 않는 박찬열은 처음이다. 머쓱해진 나는 침대위에서 내려왔다. 그리고는 뭐 먹을래. 하고 물었다. 박찬열은 이때다 싶었는지 나를 확 끌어당겨서 주먹으로 꿀밤을 때렸다. 저 새낀 꿀밤도 왜 이렇게 아파. 그래놓고 좋다고 거실로 도망가서 낄낄대고 있는 박찬열을 쫓아 갈 정신이 없어서, 나는 허탈하게 한번 웃었다. 사내새끼답지 못하게 뒤통수를 치다니. 당했다.
 야 그리고 나 안 쪼그맣거든. 내 말에 박찬열은 웃기다고 웃었다. 그리고는 쇼파에 앉아서 티비를 튼다. 여기가 지 집인지 우리 집인지 모르겠다. 염치라곤 없는 박찬열.
 냉장고를 뒤지다가 도무지 먹을 게 없어서 그냥 엄마가 어제 사다 넣어 놓은 케이크를 꺼냈다. 애들 오면 같이 하려고 했는데. 괜히 어깨가 축 쳐졌다. 티비를 보던 박찬열이 나를 힐끔 봤다. 뭘 꼬라봐 재수 없는 게. 내 말에 인상을 푹 찡그린다.


“개새끼 같은 게.”
“개새끼면 개새끼지 개새끼 같은 건 또 뭐야.”
“그렇다면 그런 거야, 개새꺄. 케이크 들구 와.”
“넌 안줘 씹쌔야.”
“손님 대접을 이따위로 하네?”
“울 엄마가 나 먹으라고 사둔거야. 내가 널 왜 주냐.”

 그래놓고도 같이 먹으려구 접시에다가 케이크를 덜었다. 달콤 달달한 초코케잌. 아들 생일날 여행을 가는게 미안했던지 엄마가 내 취향에 쏙 맞게 사다 놨다. 그래도 초코 크림 한 입 먹으니까 기분이 좀 낫네. 케이크를 들고 박찬열 옆에 가서 앉았다. 박찬열은 티비에만 눈을 꽂는다. 생일이라구 우리 집에 왔음서 티비만 보는 박찬열이 서운하다. 그리고 이 분위기 뭔가 어색 한 것 같기도 하고….

“티비 보지 말구 얘기도 좀 하구 그래라. 우리 집이 DVD 방이니?”
“….”

 내 말에 박찬열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부담스럽게 뭘 쳐다봐, 새끼야.

“너 오늘 말 되게…”
“뭐.”
“아냐. 니가 지랄 하는게 어디 한두번이여야지… 미친년.”
“내가 왜 년이야 미친놈아.”

 박찬열이 웃었다. 웃는게 재수 없다. 왜 웃지. 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 박찬열이랑 둘이 있으니까 할 게 없다. 그냥 묵묵히 티비만 보고 있는데 밖에 쏴 하는 소리가 들린다. 비가 오나 보다. 완전 우중충한 생일이다. 기분이 축 쳐진다. 박찬열은 창 밖을 힐끔 봤다. 그리고는 티비에만 눈을 고정한채로 비오네, 이런다. 그걸 누가 모르나 병신새끼.

“비 오니까 기분이 좆같다.”
“이 오빠가 옆에 있어 주는 데도 좆같냐.”
“어따대고 오빠래.”

 나는 다리를 쭉 뻗어서 박찬열의 옆구리를 걷어 찼다. 으억! 하는 소리와 함께 박찬열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헐. 너무 세게 때렸나부다. 나 합기도 했다는 거 잊고 있었다. 워낙에 박찬열이 힘이 쎄서 나는 그냥 내가 약한줄로만 알았지…. 옆구리를 부여잡고 끙끙대면서 말도 못하는데 죄책감이 들어서 헛기침을 함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지개를 키면서 태연하게 방으로 들어 가려고 했다.

“개새끼야!”

 뒤에서 박찬열이 나를 덮쳐온다. 순식간에 나랑 박찬열은 바닥에서 굴렀다. 나는 박찬열의 머리를 쥐어 뜯었다. 박찬열은 내 옆구리에 주먹을 내질렀다. 아 이 씨팔새끼. 얼굴은 웃으면서 주먹질은 장난이 아니다.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가있다. 복수를 하는 건가 보다. 나는 이렇게 생일날 죽음을 맞이하는가…. 박찬열이랑 다니게 된 후로 살이 쪽 빠졌다. 맨날 맨날 이렇게 몸쌈을 하고 주먹질을 해대니까 살이 찔 틈이 없다. 한 몇분간 엎치락 뒤치락 쌈을 하다가 둘 다 지쳐서 바닥에 드러누워서 헉헉댔다. 역시 박찬열이랑은 길게 수다를 떨고 그런거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그냥 싸우려고 만난 놈들이니까.

“야. 나 니 방 구경할래.”
“뭔 개소리야, 아까까지 내 방에 있다 나온게.”
“씨발아 정식 구경을 하겠다고, 정식 구경을.”
“씨팔 방구경에 정식은 뭐고 정식 아닌 건 뭔데!”
“아 그런 게 있어 좀! 토 달지 말고 걍 가자고!”

 땅바닥에 있다가 벌떡 일어 선 박찬열이 갑자기 내 팔을 확 잡아 끌었다.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아, 진짜 일어나기 싫은데. 나는 밍기적거리면서 일어났다. 내가 일어나니까 먼저 일어나 있던 박찬열이 내 엉덩이를 발로 톡 치면서 방으로 안내해. 이런다. 무슨 인질극도 아니고 이게 뭔 상황인가 싶다. 박찬열은 사람 없는 집에 침입해서 보석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라고 협박하는 괴한처럼 내 옆에서 살금 살금 걸었다. 진짜 애가 성격이 또라이 같다.
 방 문을 여니까 갑자기 후다닥 뛰어서 내 책상 의자에 앉았다. 나는 침대에 누웠다. 박찬열은 의자를 돌려서 내 쪽을 봤다. 나는 폰을 만지는 중이었다. 오늘 우리집에 안 온 배신자 새끼들이 있는 그룹 카톡에 응답을 띄었다. 개새끼들아 머해. 거기엔 박찬열도 있어서 폰이 징 울렸다. 다리를 달달 떨면서 날 쳐다보던 박찬열이 힐끔 지 폰을 봤다.

“병신이 앞에 있는데 왠 카톡을.”
“넌테 했냐? 괜히 시비야.”

 하여간 우리는 눈만 마주치면 으르렁이다. 그 요새 유명하는 아이돌 엑소의 으르렁이 생각나서 노랠 흥얼거렸다. 으르렁 으르렁 으르렁대. 하고 노래를 부르니까 박찬열이 또 나를 발로 툭툭 까면서 시비를 걸어온다. 야. 너 그거 나 들으라고 부르는 노래냐? 이제는 피해의식까지 있다. 최고 또라이.
 그룹 채팅방에 불이 활활 지펴졌다. 모두 정신없이 바쁘댔음서 카톡 답장은 꼬박꼬박 한다. 전부 단답이고 욕설이긴 하다. 우리 이름은 씨발이고 개새끼고 미친새끼다. 남자애들은 왜 이렇게 만나기만 하면 욕을 해대는지 모르겠다. 엄마 안부도 자주 묻는다. 좋은 새끼들이다.
 나랑 박찬열은 고개를 숙이고 카톡만 해댔다. 박찬열은 우리 카톡을 보면서 「ㅋㅋㅋㅋ」 같은 거나 치구 별다르게 말은 안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뭔 사진을 한개 보내서 궁금해 들어가봤더니 씨발. 벽에 다리를 올리고 카톡을 하고 있는 내사진이었다. 저새끼 몰래 무음 카메라로 내 사진을 찍어서 올린거다. 분노가 치밀어서 당장에 폰을 던지고 씨발놈아! 하고 일어났더니 워워. 하고 웃는 얼굴로 나를 가라앉힌다. 생긴것도 도비처럼 생긴게 행동은 말포이처럼 비열하다. 

“야, 미안. 근데 사진 잘 나왔구만 뭘 그래.”
“뭐 이 씨발새꺄!”
“앉어 앉어.”

 아까 하도 지랄을 떨어서 더이상 힘이 없길래 그냥 고분고분 자리에 다시 누웠다. 한번만 더 찍으면 뒤져. 하고 협박을 날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다시 폰을 들었지만 박찬열은 벌써 흥미를 잃은건지 내 책상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공부 좀 해라. 책마다 새책이야. 아니 쟤는 내 행동 하나하나에 사사건건 시비를 건다. 재수가 없는 새끼.
 그러다가 내 책상 위에 놓여진 A4 용지를 보고 대뜸 묻는다.

“야. 나 여기에 뭐 써도 됨?”
“안 됨.”
“왜?”
“너한텐 폐지도 아까워 씨발럼아.”
“쓴다 좆만아.”

 집 주인인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고 뭐를 쓰려고 펜을 집어 든다. 딱히 쓰는 종이는 아닌데 박찬열이 지맘대로 할라 하니까 배알이 꼬인다.

“아 씨발. 너 거따가 뭐 쓰면 재수.”

 고3 이니까 협박이 먹히겠거니 했다. 박찬열은 그 크고 멍청하게 생긴 (그렇지만 여자애들은 좋다구 꺅꺅댔다) 눈을 느리게 껌뻑했다. 아, 깜빡 하고 있던게 있었는데.

“재수 하지 뭐.”

 박찬열은 공부를 안하는 나보다 훨 공부를 안한다. 라이프 설계라고는 없는 새끼. 나중에 어떻게 될 지 미래가 궁금하다. 그래도 박찬열은 집도 잘 살고, 노래도 잘 부르고 얼굴도 잘생기고 키도 크고 하니까 뭐라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오늘은 내 생일인데. 매일 스포트라이트만 받는 박찬열을 보니까 오늘도 그런 것 같애서 시무룩해졌다. 인생이 씁쓸하고 좆같다. 내가 젤 빛나야 되는 날인데 이런 생각을 하다니. 나두 참, 날 낳아준 엄마한테 미안한 일이다. 하나뿐인 아들 생일은 신경도 안쓰구 지금쯤 유럽의 어느 나라를 여행하고 있을 엄마가 생각이 나서 나는 눈시울이 조금 붉어지는것 같기두 했다.
 나는 계속 카톡을 드갔다 페북을 드갔다 폰을 봤고 박찬열은 뭔가를 열심히, 아주 열심히 끄적였다. 평소에는 연필이랑은 거리가 멀던 놈인데 뭘 저렇게 공들여 쓰나 싶었다.

“너 또 내 욕 쓰지.”
“엉.”
“말로하지 쓰긴 왜?”
“…그런게 있어.”

 박찬열은 날 보고 씩 웃었다. 새끼 잘생기긴 정말로 잘생겼다. 부러워 부러워.
 카톡이 재미가 없어졌다. 시들시들해졌기 때문이다. 애들 답장이 갑자기 느려졌다. 뭘 하는 건지, 동시에 전부. 그래서 나는 느리게 몸을 일으켰다. 야, 뭐 쓰는데. 하니까 아직 덜 썼다고 보러 오지 말랜다. 편지라도 쓰는 가 보다.
 한참을 고민하면서 몇자 힘겹게 끄적인 박찬열이 펜을 탁 내려놓으면서 기지개를 켰다. 다 썼나보다. 읽으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박찬열이 갑자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을 나갔다. 그리고는 거실에서 티비를 켜는 소리가 들렸다. 쟤는 왜저렇게 남의 집을 왔다갔다 해쌌는지 모르겠다. 한군데만 좀 진득히 붙어 있지.
 어쨌든 간에 편지가 너무 궁금해서 책상 의자에 앉았다. 거지같은 글씨로 뭐가 꼬부랑 꼬부랑 거리면서 적혀있긴 하다. 나는 눈이 갑자기 침침해져서 미간을 확 좁히고 편지를 읽기 시작했다.
백현이에게.
 하고 시작하는 말에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뻔 했다. 항상 좋게 불러야 변백현, 평소엔 개새끼 씹쌔끼 미친새끼였는데 갑자기 백현이라니.
내가 니 생일을 제일 축하해
 박찬열답지 않은 말이다. 내가 태어난 생일날 나 죽으라고 굿이라도 할 것 같은 놈인데.
그리고 오래 전 부터 좋아해왔어
 어…?
그니까 한판 뜨자거나 DVD방 왔냐거나 그런 말 하지 말아라
 얘가… 지금…….
나는 참기가 힘들어 지니까
 …….
나랑 사귀자. Yes □  No □
 이게 뭔지 씨팔……. 이게 뭐지 정말. 얼떨떨한 기분이다. 진짜 뭐 이런 경우가 있나 하고 어이가 없다. 진짜 나는 믿을 수가 없어서 편지를 몇번이고 읽어내렸다. 분명, 박찬열의 필체가 맞다. 나는 지금 진짜 진짜 어이가 없고 황당하다. 대답을 하라고 예스, 노, 옆에다가 칸까지 만들어 놨는데 진짜 이게 뭔.
 근데 더 어이가 없는건 내 기분이 이상했다. 꼭 무슨 술을 먹은 것 처럼 발끝에서부터 머리로 피가 쫙 몰리는 듯한 뜨거운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데…… 이상하게 그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그냥, 멍하고 꿈 같은 느낌.
 나는 한참을 책상 앞에 앉아 발가락을 꼼지락대며 생각을 하다가, 둘 중 하나의 칸에 체크를 했다. 그리구 거실로 나왔다.
 박찬열은 케이크를 먹으면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쇼파에 들어누워서. 저새낀 정말로 우리집이 지네집이라도 되는 듯이 태연자약하다. 거기다가 얘는 방금 삼년 된 친구한테 고백까지 한 상태다. 그것두 남자인 나한테. 그래놓고도 저렇게 뻔뻔할 수 있는 놈은 정말로 박찬열 밖에 없을꺼다. 정말 좋은 의미로 대단한 애다.
 나는 자리에 앉아서 박찬열이랑 같이 멍하니 TV를 봤다. 물론 내 꼼지락 거리는 손 안에는 박찬열이 준 고백 종이가 접어져서 쥐여있다. 줄 생각은 않고 나는 일단 무한도전을 봤다. 아, 웃기다. 멤버들의 몸개그에 나랑 박찬열이 동시에 터졌다. 풋. 하고 어색한 웃음도 아니고 원래 그랬던 것 처럼 우하하하. 방금 고백을 하고 고백을 받은 사이가 맞나 싶다.
 웃음이 그쳐 갈 때 쯤 나는 종이를 틱 던졌다. 박찬열은 나를 보지도 않고 종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티비에다가 시선을 꽂고 종이를 펼치더니, 다 펼치고 나서 그제야 눈동자를 굴려 아래를 봤다.

“…어.”

 박찬열이 멍청한 소릴 낸다. 그럴 줄은 몰랐지. 난 기분이 좋아져서 히죽 웃었다.

“…너 정말 Yes?”
“그래 병신아.”
“……진짜?”

 내가 역대 본 박찬열 얼굴 중에 젤 멍청하고 젤 벙쪄 있었다. 다 내가 만든거다. 나는 어쩐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박찬열을 한 방 먹인 기분이였다.

“너… 후회 안하지.”
“지가 고백 해놓곤.”

 어째서 내가 이 고백을 쉽게 받아 들였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평소에 게이에 대해서 거부감도 없었지만 딱히 내가 되리라고는 생각도 안해봤다. 박찬열이 게이라는 것도 물론. 근데 생각해 보면 나랑 박찬열은 몸싸움을 하다 무의식중에 뭐가 생겼는지도 모르겠다. 왜, 댄스 스포츠나 발레 그런 것 보면, 춤을 같이 추는 파트너끼리 커플이거나 부부인 경우가 많지 않은가. 그러니까 몸을 부대끼다 보면 감정이 동하는 거다. 나는 그래서 박찬열이 나를, 그리고 내가 박찬열을 ‘그런 쪽으로’ 생각하게 된 거라고 본다.
 그렇지만 내가 박찬열을 오래전부터 맘에 품고 살았고 뭐 그런 건 아니고 내가 오늘 내린 결정은 지극히 충동적인 거였다. 앞으로의 생각은 전혀 안했단 말이다. 그냥 나도 모르게 심장이 쿵쿵 뛰는데 손이 가는 데로 체크를 한거다. 앞으로 나랑 박찬열이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아으 어떻게든 되겠지. 그냥 팔을 쭉 뻗으면서 박찬열의 무릎 위에 벌러덩 누웠다. 박찬열이 놀라 눈이 동그래져서 날 내려다 본다.

“…너 내가 한 고백, 장난 아닌 거 알지?”
“알지.”
“그럼 이러기 있냐 나쁜 새꺄.”
“좋으라고 하는 거지, 새끼야. 꼭 해줘도 지랄.”

 툴툴거리면서도 박찬열의 입꼬리가 올라가서 내려 올 줄을 몰랐다. 방실방실 웃는다. 정말로 좋은가보다. 신기하다. 나랑 방금 전까지 누구 하나 죽일 기세로 존나게 싸워 놓곤. 하긴 그건 나도 신기.

“언제부터 였는데.”
“뭐가.”
“나 좋아한거.”

 욕 없이 대화 한 건 처음인 것 같다. 박찬열은 까맣고 미묘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봤다. 헐…. 이렇게 진지하게 아이컨텍을 하고 본 것도 처음.

“……너랑 싸우기 시작 했을 때 부터.”

 그리고 박찬열은 씩 웃었다. 나도 따라 씩 웃었다. 비는 내리고, 초대한 놈들은 아무도 안 오는, 분명 풀리는 일이 없는 생일이였지만 기분은 그닥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비가 내려서 애들이 없어서 가슴이 더 간질간질하고 살랑거리는 것 같기도 하다. 박찬열이 웃고 있는 나를 난감한 눈으로 내려다 보다가 슬슬 얼굴이 내려왔다. 나도 분위기를 탔다. 이상하게 피할 수가 없어서 뻣뻣한 몸으로 박찬열이 나에게 가까워 지는 것을 보고만 있는데,
 띵똥.

“악 씨발!!!!”

 무슨 죄 진 것도 아니고. 갑자기 울리는 현관 벨소리에 깜짝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켰다. 물론 나한테 얼굴을 갖다대려고 내려오던 박찬열이랑 꽝 하고 충돌을 했다. 아 씨발 골이 지끈지끈 울린다. 

“야 이 씨팔! 갑자기 일어나면 어떡하냐!!”
“존나 놀랬네 씨발!!!!”

 ……역시 나랑 박찬열의 대화는 욕이 없음 안된다. 우리 사이가 뭔지를 모르겠네 씨발. 그런데 이 시간에 올 사람이 없는데. 나는 방해 받았다는 좆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어서, 씨근덕 대면서 일어나서 쿵쾅대면서 현관으로 갔다. 누구세요! 하고 현관 앞에서 소리쳤는데도 돌아 오는 대답이 없다. 아니 씨발 누구냐고 대체!

“누구냐고 미친ㄴ…”
“생일 축 하 합니다!!!!! 생일 축 하 합니다!!!!!! 사랑하는 변!!!!!!!!백!!!!!!!!!!!현!!!!!!!!!!! 생일 축!!하!!!!! 합니다!!!!!! 와아아아아!!!!!!”

 순식간에 내 얼굴에 케이크가 덮혀지고, 내 눈 앞에 있던 김종인 도경수 오세훈 김준면 등등이 우르르 집으로 들어왔다. 밖에서 들려오는 고성방가에 뒤에서 박찬열이 뛰쳐 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벙벙하다.

“너희 뭐야 씨…발.”
“뭐긴 뭐야 깜짝 이벤트지 병신아. 너 깜짝 파티 준비한다고 장보러 갔다가 홀딱 젖었다 우리 전부. 갑자기 비는 왜 쳐내려가지고.”

 도경수가 툴툴대면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전부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그래도……. 나는 갑자기 코 끝이 찡해지는 것 같앴다. 진짜 오늘은 최고의 생일이야. 고맙다 개새끼들. 나는 얘네가 이렇게 좋은 애들인 줄 몰랐어 정말로…. 
 생일 축하한다. 생축. 추카요. 오래 살아라. 전부 한마디씩을 하면서 시끌벅적하게 나를 지나치는데, 누가 내 목을 팔로 감았다.

“그래도 내가 젤 축하한다고 했다. 개새꺄.”
“갑자기 왜 쳐 안고 지랄. 고맙다고 했다 씨발새꺄.”

 얼마 전 까지 웬수였던 나랑 박찬열은 서로 얼굴을 보고 씩 웃었다. 분위기는 깨졌지만 그래도 그런데로 좋다. 그리고… 말만 사귀는 거지 앞으로 나랑 박찬열의 사이도 별로 변화가 없을 것 같다. 그냥 이렇게 욕하고 싸우고 지지고 볶고…… 에라이 씨발 그래 그것도 그런 데로 좋다!

“너네 요새 싸우는게 좀 스무스 해진 것 같다?”
“…….”

 …그래도 다 좋다! 오늘은 세상에서 젤 행복한, 비와도 짱짱 행복한 변백현의 생일이니까.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대표 사진
독자1
헐..ㅋ.....대박좋다...ㅋ......헐...ㅋ...취향저격...흑....윽....어케...너무좋아...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1
아ㅋㅋㅋㅋㅋㅋㅋ진짜 찬백이들 꾸욥다ㅠㅠㅠㅠㅠㅠㅠㅠ꾸요우유뉴뉴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아 뭐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진짜귀여워찬백이둘 오구오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휴 진짜 도경수 김종인 등등 아 너네들..진짜.. 좋은시간..을..아..ㅂㄷㅂㄷ..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3
으아 찬백진짜좋아요ㅠㅠㅠㅠㅜㅠ 신알신하구가요ㅜ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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