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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이런 날이었다. 달이 참 밝고, 별은 하나 없는 밤. 춥지는 않은데 바람 한줄기 스산하게 불어와서는 괜히 마음 뒤숭숭하게 뒤집어 놓고 가더라는 보름날 밤. 께름칙한 느낌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아 괜히 팔을 쓸어내리게 되는 날. 딱 그런 밤이었다. 축시, 그러니까 어제가 지나가고 오늘이 오고도 꼭 한두시간 즈음 지났을 시간이었다. 그날도 원식은 조용히 밖으로 나와 하염없이 걷고 또 걸었다. 딱히 어디를 간다는 것보다는, 그저 잠이 오지 않아 새벽 바람이라도 쐴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그저 정처 없이 걷고 있을 때 즈음에,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꼭 짐승의 앓는 소리 같기도 하고, 무언가를 자꾸 찔러대는 소리 같기도 했다. 원식은 아무 생각 없이 소리가 나는 곳으로 발을 옮겼다. 그것이 화근이자,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원식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리가 나던 곳에는, 피투성이의 남자가 쓰러져 있었고, 어려보이는 소년이 입가와 손에 남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피를 잔뜩 묻힌채 서 있었다. 멍하니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그 순간, 소년과 눈을 마주쳤다. 소년은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쓰윽 닦고, 팔을 한번 털더니 원식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몸이 굳은 듯이 원식은 움직일 수 없었다. 

 

"봤죠?" 

"왜, 죽이기라도 할 참이냐?" 

"아니요? 내가 왜 죽여요?" 

"방금 그건.." 

 

소년이 빙긋 웃었다. 

 

"아저씨같은 사람들이 배고파서 짐승 잡아먹는거나, 나같은 녀석이 배고파서 간 빼먹는거나 그게 그거죠." 

제 행적을 들킨 녀석 치고는 깨나 당돌한 대답이었다. 원식은 할 말을 잃었다. 맹랑한 말이지만 분명 틀린 것은 아닌 말이니, 반박할 도리도 없다. 

 

"날 봤다는 얘기는 하지 마세요. 그게 도련님에게도, 저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입니다." 

 

소년의 말투가 갑자기 변했다. 당황한 원식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더니 소년의 손목을 잡았다. 소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해 보였다. 

 

"그나저나, 이름이 뭐냐?" 

"이름이요?" 

"아니면 내가 나중에 너를 찾지 못할 까 걱정이 되서 말이다." 

"차 학연." 

 

소년은 가볍지만 어딘가 뒤틀린듯한 미소를 지으며 한자 한자 곱씹듯이 제 이름 석자를 말하더니, 공중에서 한 바퀴 돌아 사라졌다. 

멍하니 그 자리를 바라보던 원식은 다시 제 집으로 돌아갔다. 그 소년은 구미호이다. 적어도 제보다 곱절은 더 살았을 것이고, 그럼에도 저를 부르는 호칭은 정중했다. 이게 뭔가, 원식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집에 도착한 원식은, 방에 누워 가만히 생각을 해보았다. 무엇 하나 짚이는 것이 없었다. 왜 그 소년은 저를 보고도 그저 놔둔 것일까. 오히려 저를 본 이야기일랑 입밖에 꺼낼 생각도 말아달라며 제게 부탁을 해 왔다. 그 소년은, 도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원식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돌아갔다. 다만 확실하고 선명했던 것은, 그의 이름 석 자와 그의 얼굴. 차학연,이라고 했다. 제 이름을 말할 때의 그 비틀린 웃음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랬다. 까맣지만 고운 얼굴에는 저를 향한 비웃음과 원식에 대한 아주 조금의 경계심 같은 것 그리고 그 외에, 인간인 원식은 알 수도 없고 이해 할 수도 없는 묘한 감정들이 뒤섞여 있었다. 원식은 학연에 대한 복잡한 생각들의 실마리를 풀지도 못한 채 뜬눈으로 밤을 꼬박 새우고 말았다. 밤이 되면, 원식은 학연을 찾으러 갈 것이다. 그 자리엔, 학연이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학연은 그 곳에 없었다. 전날 학연이 찢어놓다시피 한 시신 한 구만 그 곳에 차갑게 널브라져 있었다. 원식은 홀린듯이 시신에 다가갔다. 끔찍한 몰골이었다. 눈도 감지 못한 채였다. 온옴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겁이 나서였는지, 아니면 연민의 감정이 치밀어 오른 것인지. 원식은 떨리는 손을 들어 남자의 얼굴을 쓸어내려 눈을 감겨주었다. 

 

"아저씨 의외로 겁쟁이네요." 

 

저를 비웃는 듯한 말투에 고개를 들자, 학연이 깨나 의외라는 표정으로 제 하는 양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왔구나, 학연은 총총히 걸어와 제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어디 간 줄 알았는데." 

"가야죠, 여기서는 안돼요." 

"안된다니? 뭐가?" 

"그러게요." 

 

예의 그 비틀린 웃음을 지으며 원식과 눈을 맞춰오는 학연은 소름끼치도록 고왔고 낯설었다. 원식은 학연의 손을 가만히 잡아왔다. 차갑게 식은 듯한 손을 꼭 잡고서는 학연과 눈을 맞춰왔다. 

 

"가요, 아저씨." 

 

제 손을 살그머니 빼며 학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식은 다시 학연의 손을 잡아왔다. 

 

"어딜 가라고," 

"시간 많이 됐어요. 여기 있는거 안좋아요." 

 

학연은 다시 제 손을 빼내었다. 원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학연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대뜸 학연을 품에 으스러지도록 세게 안더니, 한숨을 쉬며 학연을 놓아주었다. 

그러고 나서, 학연은 어딘가로 사라졌다. 원식은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 돌아갔다. 하지만 그 이후로 무엇 하나 되는 것이 없었다. 학연의 생각으로 머릿속이 꽉 들어차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일 밤만 되면 학연을 만났던 곳으로 달려갔다. 물론 학연은 그 곳에 없었다. 매일같이 달려가고 실망하기를 반복하였다. 하루하루 원식은 야위었고 초췌해졌다. 이러다가는 정말 원식이 쓰러질 것만 같아 원식의 집에서는 난리가 났다. 하지만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원식은 매일 밤 그 곳으로 달려갔다. 언젠가는, 학연을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막연한 소망을 간직한 채로. 또 다시 순백의 저고리에 입가에 묻은 검붉은 피를 쓱쓱 닦으며 저에게 다가오리라 굳게 믿은 채로, 원식은 그 믿음으로 하루 하루 버텨나갔고, 하루 하루 야위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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