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흐른다. 이건 누구나 아는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다시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것이 일반적인 상식이고, 어린아이 역시 알고 있는 점이다.
하지만 사실 시간은 앞으로만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고 한다. 역행하기도 하고, 거꾸로 돌아가며 일정한 부분만을 반복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며 느리게 흐르거나 빠르게 흐르거나 제멋대로다.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이 점을 느낄 수 없다. 시간이 아무리 거꾸로 달리고, 느리게 움직이고. 특정한 날이 수백 번을 반복된다 해도 우리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똑같은 날이 수천 번을 반복된다 해도 나 표지훈도, 다른 사람들도.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하고 그날도 새로운 하루를 시작할 것이고 똑같은 하루를 반복할 것이다.
그래. 알 수 없는 것이다.
가만히 고개를 들었다. 밤 열 시. 캄캄한 밤. 아파트 단지는 잔뜩 낀 안개 덕에 희뿌연 빛으로 빛난다. 뒤를 살짝 돌아 마찬가지로 희뿌연 상가를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항상 봐오던 풍경과는 조금 다른 모습. 늘 또렷하게 보이던 것들이 흐릿하게 보이는 것은 묘한 일이었다. 보이는 것이 다른 만큼 느껴지는 분위기도 전혀 딴판. 오늘 안개가 껴서 느낀 이 기분이, 내일까지도 이어질 것 같은 막연한 기대. 내일은 뭔가 달라질 것 같다는 불안감. 뭔진 몰라도 평소와는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괜히 가방을 고쳐 멨다. 책이 잔뜩 든 가방이 무겁지만 오늘은 그런 것도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 맨살에 닿는 공기가 오늘따라 차가운 것 같다.
오늘은 7월의 마지막 날이다.
가설과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시간의 법칙은 증명되었다. 시간은 앞으로만 달리지 않는다. 역행하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고. 느리게 흐르거나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같은 부분을 반복하기도 한다. 정말 제멋대로. 하지만 다행히도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이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내 앞에 보이는 빛덩어리를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고글을 썼지만 여전히 눈이 부신 건 어쩔 수가 없다. 유리 너머로 보이는 빛덩어리에서 기다란 실이 하나 솟구쳐 오르더니 느리게 다시 빛으로 합쳐진다. 바삐 기계를 다루고 있는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문제없는 거죠?"
"네. 이상 없습니다."
수고하세요, 라는 짧은 말도 하지 못한 채 급히 기계실을 나왔다. 사령실로 향하는 걸음이 초조하다. 계단을 오르고 복도를 걷는 내내 마주친 사람들이 짧게 고개를 까딱, 하는 것 같지도 않은 인사를 하며 지나가고 그건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목을 들어 시계를 확인했다. 5분 남았네.
약 100년째 느리게 이어져 오던 연구는 3년 전부터 빠르게 그 빛을 냈다. 100년간 느리게 연구가 행해진 이유는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것이었다. 시공간. 단 한 번도 인간들의 머리에 떠오른 적 없는 공간. 기껏 해봐야 만화, 소설, 영화 등에서나 나오는 시공간이라는 곳. 덕분에 인간들이 시공간이라는 곳을 알아냈음에도 쉽사리 연구를 진행할 수 없었다. 물론 위험하기도 했지만. 삑, 하고 자동으로 열리는 문. 그리고 드러나는 거대한 사령실은 굉장히 소란스럽다.
사령실의 거대한 유리창 너머론 아까 기계실에서 보았던 그 빛덩어리가 있다. 기계실에서 본 것만큼 눈부시진 않다. 하지만…. 가볍게 눈을 찌푸리며 서둘러 내 자리로 달려갔다. 넓은 사령실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 그 와중에도 빛덩어리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가늘게 뻗어나오는 실들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쿵, 쿵. 덩어리가 들어있는 거대한 흰 방의 벽을 때린다. 그때마다 조금씩 느껴지는 진동과 소음에 다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8월 마지막 날 베이직 박스까지 완성됐습니다.]
여자의 목소리가 울리자, 가장 가운데에 서 있던 남자가 고개를 든다. 적당히 나이가 든 얼굴. 남자가 입을 열어 명령하고, 이에 따라 수십 명의 사람들은 다시 제 할 일을 찾아간다. 최종 점검 들어가. 이제 남은 시간은 3분 15, 14, 13초…. 줄어가는 시간을 보는 것만으로도 초조해진다. 종이 뭉치들을 들고 한 손엔 무전기를 든 채 지나가던 남자가 나를 보더니 슬그머니 다가와 어깨를 툭툭.
"야, 우지호. 뭘 멍하니 있어?"
"어?"
"다들 바쁜데 지 혼자 멍청하게 멍 때리고 있는 것 좀 봐."
밉지 않게 입을 놀리는 박경을 보며 잠시 저놈을 때릴까, 고민하다가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오늘은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알았어, 하고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모니터로 시선을 돌리자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씨익 웃으며 손을 흔들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박경. 그 순간에도 타이머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시간은 흐른다. 제멋대로 흐른다. 절대 외력에 영향을 받지 않던 시간이 이번엔 틀렸다. 그 외력이 인간들마저 집어삼킬 뻔 했으나, 어쨌거나 지금은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가려 한다. 타이머가 1분을 가리키자 고글을 쓰라는 명령이 울리고, 나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다들 고글을 당겨 썼다. 갑갑하고 진한 색으로 둘러싸인 주변. 그리고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는 저 덩어리. 덩어리는 시간이 가까워지자 아예 8월 당시 자신의 기억을 잔상처럼 떠올리고 있었다. 화질이 또렷하지 못한 영화마냥 치직, 하고 떠올랐다 사라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다가 30초가 지났다.
"카운트 들어갑니다! 10. 9. 8…."
긴장한듯 높아진 여자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린다. 긴장한 건 여자 혼자는 아닐 것이다. 이 안에서 긴장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잔상에 빠르게 스치고 사라지는 남학생의 모습까지 보며 나는 눈을 감았다. 빛덩어리가 끓어 오르듯 움직이며 실들이 마구 벽을 때린다. 그리고 그 떄,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제로! 그 말에 나는 눈을 번쩍 뜨고 말았다. 알 순 없지만, 가슴이 미친 듯이 뛰어오고 있었다. 다들 넋을 놓고 빛덩어리를 보고 서 있는 사령실에 차갑게 정제된 목소리가 울린다.
"지금부터 2013년 8월 복구 작업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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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안녕하세여 딱히 날 기다린 사람은 없을 거란 걸 난 너무도 잘알지 에이요 하지만 난 왔다 왜냐거여? 그냥여 이 글은 느리게라도 꼭 끝까지 쓰고 싶네요ㅠㅠㅠ꼭 쓰고 싶었던 부분이 마지막 부분이에요ㅠㅠㅠㅠ살려줘... 알 필요 없다고요? 알았어여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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