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대생 연하 남친 07
w.누 나
나와 이재환에게 단 한마디의 변명도 할 틈을 주지 않은 채 이재환의 어깨에 매진 나의 가방을 뺏어 들고 나의 손목을 세게 잡은 상태로 말없이 끌고 갔다. 아프다고 하며 손목을 빼내려 해도 말없이 더 힘을 주어 잡는 그 때문에 그가 끌고 가는 데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근처 인적이 드문 곳으로 가 벽으로 날 밀치며 제 팔 안에 가두었다. 세게 잡힌 손목이 놓아지고 바로 앞에서 잔뜩 성이 난 채로 날 내려다보는 그를 보자 잘 못한 거 하나 없는데도 괜히 위축되어 고개를 푹 숙였다. 꽤나 오랜 시간 동안 그의 손에 잡혔던 나의 손목은 빨개져 있었고 욱신거렸다.
“나 봐”
“.......”
“내 눈 똑바로 보라고”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고개를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충분히 오해할만한 상황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내 말은 한마디도 들어주지 않고 제멋대로 판단해버린 그가 미웠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맨날 웃고 넘기니까 이제 내가 존,나 만만하지?”
“원식아 내 말 좀 들어ㅂ..”
“난 처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다른 여자한테 눈 돌린 적 없었어. 근데 너는 왜 다가오는 남자들 안 밀어내? 왜 다 받아줘?”
“.......”
“이재환 그 새끼가 너 좋아하는 거 몰라? 그렇게 눈치가 없어?”
“재환이는 그냥 친구야”
“...그 새끼 편 들어주는거야?”
“편 들어주는 게 아니고..”
“네 옆에 그 새끼가 알짱거릴 때마다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알기나 해? 아, 넌 모르겠지.”
“야 김원식. 너 멋대로 생각하지 마. 오늘 이재환 만난 거 조별 과제 때문에 만난거였고, 내가 계속 조니까 잠 깨는 목적으로 잠깐 걸었던 것뿐이야.”
“지금 그 말을 나보고 믿으라고?”
어떠한 나의 말에도 절대 믿어주지 않고 꿋꿋하게 고집을 피우는 그였다. 항상 내 말이면 뭐든지 믿어주고 뭐든 해주려고 노력했던 그였는데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나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차가운 그의 말투는 나의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았고, 그게 나에게 그렇게 큰 상처가 될 줄은 몰랐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내가 눈물을 흘리면 진다고 생각했기에 억지로 다시 삼켜냈다.
“그럼 너 마음대로 생각해.”
“...넌 내 생각 한 번이라도 해준 적 있어? 내가 왜 나 좋다고 따라다니는 여자들 다 밀어냈는 줄 알아? 여태까지 너 좋다고 너 하나 믿고 있었거든. 근데 네가 나한테 이렇게 크게 엿 먹일 줄은 몰랐다.”
“그럼 왜 네가 좋아하는 사람 말 안 믿어주는데? 내가 말했잖아, 이재환이랑 과제 때문에 같이 있었던 거라고.”
“믿어주고 싶은데, 내가 내 두 눈으로 직접 봤으니까.”
“네가 본게 뭔 데? 내가 걔랑 손잡기라도 했어? 키스라도 했어?”
“...아니.”
“그럼 못 믿을게 뭐가 있어? 답답하게 굴지 마 김원식.”
“네가 나 떠날까 봐 걱정돼. 이재환한테 가버릴까 봐 무섭다고”
“이재환은 그냥 친구라고 했잖아.”
“그 새끼는 널 친구로 생각 안 한다고.”
계속해서 쏘아붙이는 그와 더 이상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몇 마디만 더 오고 가다가는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를 만큼 우리 사이는 냉랭하게 틀어져 있었다. 아무런 대답 없이 그의 팔을 쳐내고 그의 손에 들린 가방을 뺏어 그를 지나치려고 하는 순간 다시 벽에 밀쳐지고 그의 팔에 가둬지며 입술 위로 그의 입술이 겹쳐졌다.
고개를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깊게 파고드는 그였고 나는 안간힘을 쓰며 그를 밀어내려 했다. 그럴수록 더욱 거칠어지는 그의 혀놀림. 늘 그랬듯이 싫다고 밀어낼 때마다 힘으로 날 제압하며 강제로 입을 맞추었다. 하지만 말로만 거부하고 몸으로는 그를 받아주었던 평소와는 다르게 이번만큼은 말도, 행동도 모두 그를 부정하고 있었다. 싫었다. 한 손으로 나의 팔을 움직이지 못하게 꽉 잡고 있기에 그를 말릴 수 있는 방법은 그의 혀를 깨무는 것이라고 판단해 그의 혀를 있는 힘껏 깨물었다. 결국 그는 입술을 떼내고 .이라며 낮게 욕을 얘기했다. 그런 그에게 싸다귀를 날렸다. 짝- 소리와 함께 고개가 돌아간 그에게 나의 머릿속에 담긴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우리 각자의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다.”
그에게서 등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아까 이재환이랑 있던 카페로 찾아갔다. 예상했던 대로 카페 앞에는 이재환이 서 있었고, 나를 보자마자 머쓱하게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괜히 오해할 만한 상황을 만들었나 보다, 미안해”
“......”
이재환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고, 그는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다가 나의 어깨를 조심히 감쌌다. 그렇게 그의 품에 안겨 한참을 소리 없이 울었다.
***
마무리는 자기가 할 테니 오늘은 이만 들어가서 쉬라는 이재환의 고마운 배려로 인해 터덜터덜 집으로 들어갔다. 김원식에게서 수십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지만 그의 연락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에 전화기를 아예 꺼버렸다.
내가 미안함을 느낄 만큼 그는 항상 아낌없는 사랑을 주었고,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을 만큼 예쁜 만남을 해왔다. 그런데 그와 이렇게 다투게 될 줄도 몰랐고, 이런 식으로 그와의 만남을 다시 생각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해봤다. 그와 처음 싸운 만큼 나에게는 무언가에 세게 머리를 맞은 것처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알코올이 필요했다. 그에 대한 기억을 잠시나마 잊고 싶었다. 평소에 잘 입지 않는 몸 선이 그대로 드러난 검은색 에르베레제를 입었다. 깊게 파인 탓에 가슴골이 훤히 보이고 아슬아슬하게 엉덩이 라인만 덮을 정도의 짧은 길이였다. 평소에 하던 화장의 두 배 정도로 스모키 화장을 하였고,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며 마무리로 독하다고 표현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의 향수를 뿌렸다. 반짝거리는 은색 높은 힐을 신고 클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어두운 장소를 알록달록 여러 색의 환한 조명으로 꾸미며 시끄럽게 그 안을 꽉 채우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
여러 불빛이 오가며 뒤엉킨 복잡한 조명 아래로 보이는 여러 사람들의 실루엣.
진한 향수 냄새와 함께 어울려 나의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
그런 곳에서 술과 음악과 함께 김원식이라는 사람을 잠깐이라도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었다.
사실 클럽은 내가 평소에 절대 발을 들이지 않는 장소 중에 하나다. 시끄러운 음악 사이로 보이는 남녀 간의 진한 스킨십. 나에게 있어서 클럽의 정의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가는 몇몇의 사람들과는 대조되게 다른 목적을 달고 가는 사람들이 잔뜩 섞여 있는 더러운 곳이었다. 꽤나 음란함이 섞여있는 온갖 사람들의 집합소인 곳인 만큼 갈 이유도, 가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았다.
구석진 테이블에 혼자 앉아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며 온갖 여자들과 남자들이 뒤엉키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맥주를 반쯤 넘게 비우니 점점 취기가 오르는지 몸이 달아올랐다. 별생각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느라 정신없는 수많은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그 사람들과 하나가 된 것 마냥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몸을 흔들고 있는 도중 나의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는 손길이 느껴졌고 고개를 돌리니 꽤 반반하게 생긴 남자가 나에게 몸을 밀착시키고 있었다. 오늘은 아무런 제약 없이 신나게 놀아보자는 생각을 하며 입꼬리를 올리고 그에게 몸을 돌려 어깨 위로 손을 올리며 그를 허락한다는 사인을 주었다. 그러자 나의 허리에 팔을 단단히 감고 더욱 밀착시키며 나와 함께 리듬에 몸을 맡겨 몸을 흔드는 남자였다. 그의 시선이 나의 가슴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별말 없이 더욱 몸을 흔들어댔다. 나의 엉덩이를 살짝살짝 터치하며 나의 반응을 살피는데 내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자 나의 등허리를 쓸고 엉덩이를 쥐는 그였다.
나 말고도 다른 수많은 여자들의 엉덩이, 더 하면 가슴까지 만졌을 법한 남자의 손이 나의 몸을 쓰다듬고 있다는 게 싫었다. 하지만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과 다투고 싶진 않았다. 이미 김원식과 한번 크게 싸웠는데, 굳이 그와도 싸울 이유를 못 느꼈다. 그 남자의 손길이 더욱 과감해질 때마다 김원식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런 그 남자는 나의 목덜미을 잡더니 조심스레 입술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이 나의 입술에 포개지자마자 술 냄새가 잔뜩 풍겨왔다. 처음 보는 남자와의 입맞춤을 한다는 건 사실 내 스스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행동이었지만, 늘 해왔던 것처럼 익숙하게 나의 입안으로 들어오는 그의 혀를 받아주었고 서로 지지 않겠다는 듯 격렬하게 입을 맞추었다. 이런 나의 행동이 역겹게 느껴졌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몸은 그대로 그를 받아들이고 있었다.
갑자기 떨어지는 입술에 두 눈을 뜨니 곧바로 들리는 퍽-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져 나가 뒹구는 남자였다. 고개를 들어 앞에 서 있는 다른 남자를 올려다보니 씩씩거리며 서있는 김원식이었다. 그도 나와 같이 술을 마셨는지 씩씩 거리며 거친 숨을 내쉴 때마다 코를 찌르는 알코올 냄새가 풍겼다.
아무 말없이 서로의 눈을 응시하고 있다가 먼저 등을 돌려 클럽에서 나가는 김원식을 서둘러 뒤따라 쫓아갔다. 클럽에서 나가자마자 내 쪽을 쳐다보며 제 머리를 한 손으로 쓸어 넘기고 한숨을 깊게 내쉬는 그였다.
“이재환 만나지 말라고 하니까 이젠 누군지도 모르는 남자랑 그러고 있냐? 진짜 아무 남자나 다 받아주네.”
“......”
“나 없었으면 무슨 일 당했을 줄 알고. 무슨 여자가 그렇게 겁도 없어?”
“..잘못했어”
“술도 못 마시면서 왜 혼자 술 마셔?”
“...미안해 원식아”
“핸드폰은 장식이냐? 왜 안 받아?”
“원식아..”
“옷은 또 왜 그래. 누구 유혹하려고 그렇게 입었어? 아예 벗고 다니지 그랬냐.”
“......”
“나 봐, 누나.”
잔뜩 주눅 들어서 고개를 푹 숙여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하지 못하고 있는데 누나라는 소리가 들리자 두 눈이 동그래진 채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
“내가 생각해봤는데, 나 누나 없이는 안될 것 같아.”
“...미안해. 미안해 원식아”
“앞으로 더 잘할게. 누나가 다른 남자한테 눈길 한번 안 주도록 내가 더 잘할게.”
그의 말에 대한 대답 대신 그의 목뒤로 팔을 둘러 길게 입을 맞추었다. 미안했다. 너무 미안했다. 그가 다른 여자랑 같이 다니면 나도 분명 화냈을 텐데, 너무 내 생각만 했다. 그가 클럽에서 처음 보는 여자와 입을 맞추고 있는 모습을 보면 못 참고 그 자리에서 바로 이별 선언을 했을 텐데, 그는 이별 선언 대신 더 잘하겠다며 오히려 아까 저가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까지 했다. 김원식은 항상 나에게 너무 미안하고도 고마운 존재였다.
한참을 그렇게 입을 맞추고 있다가 숨이 차오르자 입술을 떼었다. 나의 아랫입술을 엄지로 부드럽게 쓸어주다가 나의 옷차림새를 쭉 훑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제 겉옷을 벗어 어깨에 걸쳐주었다.
“옷이 그게 뭐야. 그런 건 나랑 단둘이 있을 때만 입어.”
“..원식아.”
“응?”
“넌 나 안 미워?”
“미워. 미워 죽겠어”
“그럼 나한테 왜 그렇게 잘해줘?”
“내 여자친구잖아.”
“너 두고 다른 남자랑 키스했잖아. 근데 그게 용서가 돼?”
“다음엔 안 그럴 거잖아.”
나에 대한 신뢰가 깨졌을 법한 모습을 보여줬음에도 그는 나를 믿는다고 얘기했다. 멍청한 건지 아니면 과하게 순진한 건지 용납되지 않는 나의 행동을 보고도 나를 믿는다고 했다.
“원식아, 난 너한테 제대로 하나 해준 게 없어”
“...”
“나보다 더 좋은 여자들도 많을 텐데 도대체 왜 날 만나는 거야?”
“누나니까”
“난 항상 너한테 주는 게 상처밖에 없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 아니야.”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그냥 너한테 너무 미안해. 그냥 다 너무 미안해”
“앞으로 잘하면 되지. 안 그래?”
“..사랑해. 진심으로.”
“나도 사랑해.”
나의 입술 위에 짧게 키스를 해주고 손깍지를 낀 채로 집에 바래다준다는 그의 말과 함께 내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드는 미안한 마음에 그를 똑바로 보지도 못하고 시선은 땅바닥에 고정하며 걷고 있었다.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하고 눈치를 보며 그를 힐끔 쳐다보고 어색하게 손 인사를 하며 들어가 보겠다고 얘기하자 나의 허리 위로 손을 올렸다.
“같이 가”
“..어딜 가?”
“누나네 집”
“왜?”
“누나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와서 뭐 하게?”
“뭘 해, 자고 가야지. 안 건드릴 거니까 걱정 마”
“..알았어”
그가 날 믿어준 것처럼 나도 아무 짓도 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을 믿어주고 그와 함께 나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높은 굽을 몇 시간 동안 신고 있느라 나의 발은 빨갛게 퉁퉁 부어있었고 걸을 때마다 발목에는 작은 통증이 느껴졌다. 절뚝거리며 그와 함께 내 방으로 들어갔다.
“식아, 너 잠옷 없는데 뭐 입고 잘 거야?”
“팬티.”
“어?”
“내가 말했잖아, 나 옷 안 입고 잔다고. 또 까먹었어?”
“아 맞다... 먼저 씻어, 난 다음에 씻을게.”
“같이 씻어”
“..싫어”
“안 건든다고 했잖아. 그냥 같이 씻고 빨리 자자.”
“부끄럽단 말이야.”
“볼 거 다 본 사인데 맨날 부끄럽데-”
“...빨리 씻고 나와”
그와 몇 번의 관계를 맺어도 그의 벗은 몸을 보는 건 여전히 부끄러웠다. 그가 샤워하는 사이 내 방을 깨끗하게 정리하였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말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가 좋아하는 검은색 속옷과 함께 잠옷을 챙기고 침대 끝에 앉아 그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역시나 속옷 바람으로 젖은 머리 위로 수건을 얹은 채로 나오는 그다.
탄탄하고 길게 뻗은 그의 몸에 저절로 시선이 갔지만 창피한 마음에 애써 눈을 돌렸다. 그를 지나쳐 욕실로 들어가려고 하는 순간 나의 어깨를 잡아 멈춰 세우더니 나의 가슴 골 사이에 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고 떨어진 그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그대로 굳어 정면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나의 등을 떠밀며 욕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천천히 씻고 와”
그로 인해 욕실 문이 닫겼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닌가 그를 의심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며 클렌징 오일로 화장을 지우기 시작했다. 물로 다 헹구고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자 거울 안으로 문턱에 기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아 깜짝이야!”
“귀여워-”
수건으로 얼굴에 있는 물기를 다 닦아내고 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문은 왜 안 잠가?”
“잠가야 돼?”
“내가 너 씻을 때 문 열어버리면 어쩌려고.”
“안 그럴 거잖아”
“앞으로 문 잠그고 샤워해, 내가 언제 들어갈지 몰라.”
“알았어..”
“그리고 화장 지우니까 더 예쁘다.”
그의 말을 뒤로 한 채 문을 닫고 잠갔다. 바디 워시로 나의 온몸에 배어 있는 향수 냄새를 덮어버리고 아까 다른 남자의 손이 닿았던 나의 엉덩이를 불쾌한 마음에 벅벅 닦아냈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은 후 수건으로 머리를 감싸 올리고 욕실 밖으로 나갔다. 거실에서 티비를 틀어놓고 소파에 몸을 반쯤 기댄 채 졸고 있는 그였다. 그에게 다가가 그의 손에 들린 리모컨을 뺏어들어 전원을 꺼버리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그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뭘 그렇게 봐”
“어, 안 자고 있었어?”
한참 숙면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을 걸어오는 그 때문에 흠칫 놀랐다. 벌떡 일어나 나의 옷차림새를 한번 훑더니 소파에서 몸을 일으켜 나의 손목을 잡고 내 방으로 끌고 가 화장대 앞에 앉혔다. 나의 머리에 둘려있는 수건을 풀어 바닥에 내려놓더니 옆에 놓인 드라이기를 들고 촉촉이 젖어있는 나의 머리카락을 말려주기 시작했다. 부드러운 손길을 느끼며 거울에 비치는 그의 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냄새 좋다”
“여자 머리 한두 번 말려본 솜씨가 아닌데? 왜 이렇게 잘 말려?”
“어릴 때 동생 머리 많이 말려봤거든.”
“동생이랑 사이좋은가 보네, 머리도 말려주고.”
“엄청 좋지. 누가 보면 애인 사이라고 할 만큼 좋지.”
어느 정도 머리가 다 마르자 그는 헤어드라이기를 끄고 제자리에 놓았다. 나의 몸을 돌려 나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내 손을 잡더니 피식 웃으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하루 종일 끼고 다닐 만큼 반지가 그렇게 좋아?”
“응”
“귀여워. 진작 사줄 걸 그랬다. 앞으로 진짜 잘할게, 누나 입에서 다시는 시간 갖자는 말 안 나오도록.”
“..나도 잘 할게. 네가 싫다는 거 안 하도록 노력할게. 나 믿어줘서 고마워 식아.”
“이제 자자, 피곤하겠다.”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워 그의 품에 쏙 안긴 채로 눈을 감았다. 나의 어깨를 천천히 토닥여주며 작은 목소리로 물어오는 그였다.
“근데 누나 원래 속옷 안 입고 자지 않아?”
“..원래는 그렇지”
“그럼 벗어”
“아 좀!”
“속옷 입고 자면 가슴에 안 좋대”
“곱게 자라”
“알았어- 잘 자 누나”
“너도”
대놓고 질문하는 그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정말 건드리지 않는 그가 신기할 따름이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은 너무나도 맑았다. 잠에 들려고 온갖 노력을 해도 잠이 쉽게 청해지지 않았다. 원식아 자?라고 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걸어보아도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그의 품에서 조심스레 빠져나와 책상 위에 있는 전원이 꺼진 내 핸드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 63통, 부재중 문자 27통. 발신자 식이♥.
책상 앞에 앉아 그를 힐끔 바라보고 그가 보낸 문자를 하나하나 읽어봤다.
[전화 좀 받아]
[어디야?]
[만나서 얘기 좀 해]
[누나]
[야 어디냐고]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
.
.
문자를 읽으면 읽을수록 그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더욱 커졌고, 하루 종일 마음대로 행동했던 나의 모습을 돌이켜 볼 수 있게 되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김원식처럼 나도 앞으로 그에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기로 다짐했다. 그 누가 봐도 부러울 만큼 지금보다 더 예쁜 만남을 이어갈 거고, 남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을 만큼 자랑스러운 애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여태까지 그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다시 침대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그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주고 그의 품에 기대 눈을 감았다.
*
의도치 않게 누나를 나쁜 여자로 만들어 버렸네요
큰 위기를 한 번 넘긴만큼 둘 사이는 아마 더 각별해지겠죠?
포로리님 귤님 택구나님 보일라님 당근님 안녕님 배꼽님 피노키오님 사랑님 윤슬님, 그리고 모든 독자님들 오늘도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