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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스토킹당했음을 인지하고 좌절하던 루한은 지체할 시간이 없다며
자신에게 옷을 갈아입히는 최상궁을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 이제 곧 인정전으로 가실 시간이옵니다.`
정치에 관심이 없어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던 지라 그닥 왕세자 책봉에 큰 뜻을 두지 않고 있던 루한은
밋밋한 표정을 띄운채 인정전으로 이끌려 나갔다. 아직은 너무 큰 칠장복의 소매가 계속 흘려내려 불편한지
루한은 계속 소매를 팔꿈치까지 올리며 소매와의 싸움을 벌이다 결국 포기해 소매가 손끝을 덮었다.
소매와의 치열한 싸움에서 패배한 작은 손으로 시야를 가리는 모자를 계속 위로 올렸지만
한번 패배를 경험한 탓인지 앞을 제대로 보는것은 쉽게 포기하고 말았다.
인정전에 도착하자 몇십명의 신하들과 궁녀들이 예를 갖춰 영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인정전을 들어서 자신을 향해 머리를 낮추는 신하들의 행렬을 쭉 지나친 루한은 우측 구석탱이에 위치한 의자에
피곤한듯이 털썩 앉았다. 옆에 미리 앉아있던 청랑은 루한과의 나이차이가 4년이라 해도 차이는 차이 이기에
어느덧 청년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졸지에 청랑 옆에 앉게 된 루한은 그의 건장한 모습에 비교되 더욱 더 초라해지는 것 같았다.
“ 오늘은 네가 아닌 내가 왕세자의 자리에 오르는 날이다.
이 자리에 딱 앉아서 나의 모습을 지켜보거늘 소란을 피우거나 딴청을 부리는 순간에
네 녀석은 그 뒷감당을 지지 못하게 만들 것이다.“
날카로운 눈빛과 더불어 서리가 벤 것 같은 차가운 목소리의 청랑이 푸른 눈동자를 빛내며 말했다.
앞만 쳐다보며 대답을 회피하는것으로 대답을 대신한 루한은 길고 긴 시간을 어떻게 버티나 괴로워하고 있다
문득 아까 만난 유화의 모습이 떠올라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띄웠다.
“ 네 놈이 감히 내 앞에서 웃었느냐! 나의 말을 비웃는것이냐! “
루한은 청랑의 거센 모습에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한채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 저는 ... 단지 유화의 생각을 했을 뿐이옵니다!“
눈물이 끊임없이 새하얀 루한의 볼을 타고 흘러내리자 최상궁이 허둥지둥 달려와 소매로 눈물을 닦아주었다.
체면을 지키십시오. 멈출 줄 모르는 루한의 눈물을 가소롭단 듯이 쳐다보던 청랑이 말했다.
“유화라... 유화가 누구느냐?“
“유화는...제가 첫눈에 반한 여자입니다. 오늘 아침.“
이실직고를 하며 모든 것을 털어놓으려던 루한의 말문을 막은것은 청랑이 아닌 최상궁이었다.
궁녀들 사이에서 루한의 궁궐출입을 쉬쉬하며 밖으로 퍼져나가지 않게 주의해 애써 막아놓은것을
자신이 다 퍼뜨리고 있는 셈이 아니겠는가. 이 사실을 왕이 알게 된다면 루한과 최상궁 그리고 루한이 거느리는 궁녀 13명까지
모두 엄벌을 면하지 못할 것 이였다. 다급한 상황에서 감히 왕자의 입을 가로막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알아차린 신하들이
비난의 말을 던졌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최상궁은 루한의 입가에
무언가가 묻었다며 닦아주려 했다는 말도 안되는 변명거리를 냈다.
“ 유화라... .“
길고 긴 왕세자 책봉이 끝난 후 시간이 흐르고 흘러 무더운 여름이 지나 어느덧 가을이 왔다.
여름과 가을 사이의 싱그러운 시간 동안 루한은 저번에 그치지 않고 계속 시장에 나가 유화와의 만남을 지속했다.
루한이 좋아하는 꽃 얘기, 좋아하는 음식 얘기, 자신의 형 얘기가 가면 유화가 좋아하는 나무 얘기, 좋아하는 노래 얘기,
루한이 궁궐의 사람이란 걸 알고 나서 깜짝놀란 얘기가 왔다.
시장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만남 탓에 유화와 루한은 모르면 간첩이라는 귀여운 연인으로 발전해 있었다.
언젠가는 끝날 운명, 아니 반드시 끝나야할 사이라는 것을 알고 있던 최상궁은 매일매일 자신에게 유화의 얘기를 해주며
웃음꽃이 핀 루한의 얼굴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입을 다물었다.
*
어느새 달빛이 물러가고 따스한 햇빛이 루한의 방에 들고 있었다.
어젯 밤 대비마마에게 어리광을 부리며 오늘 교육을 다 빼버린 루한은 벌떡 일어나 웃음을 지어보였다.
뭐가 저리도 신나는지 혀를 끌끌 차던 최상궁이 조식을 들라 하였다.
음식이 입으로 넘어가는건지 코로 넘어가는건지 허겁지겁 밥 한공기를 뚝딱 비운 루한이
싹싹 비운 밥그릇은 최상궁을 향해 기울어 보이며 얼른 나가자 재촉했다.
" 최상궁. 빨리 나가자! "
어느 덧 화창한 날씨는 가고 서늘서늘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밖에 나갈 채비를 마치고 루한은 인정전을 빠른걸음으로 달아났다. 오늘은 뭔 얘기를 할까.
저번에 마저 다 못한 어렸을때 이야기를 해줄까 아님 궁에서 달달한 먹거리를 챙겨갈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길을 따라 걸었다.흥이 저절로 나 어느새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저잣거리에 도착하고 나서야 발걸음이 점점 여유로워진 루한이 자연스레 목재창고로 걸어갔다.
가을인지라 창고 벽을 따라 피어있던 오미자 꽃은 져있었다.
살짝 벌어진 문틈새로 고개를 쑥 내밀고 보니 벌써 유화는 도착해 나무 토막 위에 앉아있었다. 벌써 도착했네.
발을 들이려다 멈칫한 루한은 큰 결심을 한듯 허공에 고갯짓을 하다 다시 큰 거리로 나왔다.
뒤에 따라붙은 최상궁에게 까치발을 들고 귓속말을 하더니 최상궁이 고개를 조아리다 사라졌다.
창고 앞에서 안절부절한 똥강아지처럼 여기 갔다 저기갔다 몸을 가만히 두지 못하다 최상궁이 손에 꾸러미를
들고 나타나자 얼굴에 화색이 돈 루한은 얼른 뛰어가 그 꾸러미를 자신의 손에 들었다.
창고 안에 들어가려 하자 따라 들어오는 최상궁을 째려보며 밖으로 밀어내고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멍을 때리며 혼자 앉아있던 유화가 뒤돌아 루한을 보고 반갑게 맞이했다.
" 그 검은 봉지는 무엇이야? "
깜짝 놀래켜줄려 했는데 먼저 눈치채버렸네. 루한은 아쉬운 표정을 짓더니
유화가 앉아있는 나무토막 앞에 쭈그려 앉아 꾸러미를 바닥에 놓았다.
작은 손으로 낑낑대다 위의 매듭을 겨우겨우 풀자 안에서 막 부친 빈대떡이 서너 장 있었다. 고소한 기름냄새가 창고 안을 채웠다.
겉이 노릇노릇하게 익어있는 빈대떡은 아직 어린 연인의 입맛에 맞게 고기가 잔뜩 들어있었다.
유화는 입안에 군침이 돌았다. 혀를 빼꼼 내밀어 윗입술을 찬찬히 쓸더니 헤헤 웃으며 말했다.
" 맛있겠다 헤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루한은 먹을 준비를 하다말고 유화를 빤히 쳐다봤다.
엄지와 중지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유화의 코에 아프지않게 살짝 튕겼다. 으이구.
묘한 기류가 흐르던 창고에서는 본격적인 빈대떡 잔치가 시작되려 하고있었다.
살짝 벌어진 문틈사이로 보이는 최상궁의 초록빛 치마, 들어오는 기분좋은 바람.
싱그러운 유화의 웃음, 똘망똘망한 루한의 눈빛, 그리고 고기 빈대떡.
모든 것은 완벽했다.
옆에 챙겨온 나무 젓가락을 집어든 루한이 빈대떡 한조각을 젓가락으로 찢었다.
빈대떡에서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나고있었다.
혹시나 여린 입천장을 데일라 빈대떡을 후후 불고선 유화의 입가에 가져갔다.
유화는 잠시 망설이다 빈대떡을 받아먹었다. 만족한듯이 웃은 루한이 그 젓가락을 유화에게 건넸다.
젓가락을 받아드려는 순간 기름이 묻어있던 부분을 잡아버린 유화가 뜨거워서 손을 탁 내쳤다.
젓가락이 바닥에 뒹굴며 흙투성이가 되버리고 말았다.
루한은 더 이상 쓸 수 없게 된 젓가락보다 데이진 않았을까 유화의 손가락이 더 걱정되어 황급히 손을 당겨 관찰하자
울상을 짓고있던 표정이 당황스러움 그 후에 편안함으로 바뀌어갔다.
" 괜찮아. 근데 어쩌지, 젓가락 한쌍 밖에 남지 않았네. "
"...."
두 아이의 얼굴에 붉은 꽃이 폈다.
유화와 루한은 서로 누가 더 얼굴이 빨개질수 있냐 대결을 펼치듯이 화르륵 붉어져갔다.
아무리 어린 아이일지언정 남녀간의 예절은 지키라고 배워오던 그들로써
남녀 한쌍이 하나의 젓가락을 가지고 서로의 타액을 섞는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었다.
특히나 어린 정인들이 할 만한 행동은 더더욱 아니었다.
머뭇거리던 루한이 결국에 남은 한쌍까지 유화에게 건넸다.
" 손으로 먹으면 되지."
손에 묻은 먼지를 탁탁 털더니 빈대떡 하나를 집어들고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자신에게 음식을 씹는 소리보다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쿵.쿵.쿵.
규칙적인 심장 박동수
혹여나 소리가 들릴지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유화도 같은 걱정을 하기에 서로 바빴다.
그렇게 손도 입가도 마음도 기름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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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문체도 어색하고 많이 부족합니다 ㅠㅠㅠ
민석이는 본격적으로 4화 쯤에 출연할 예정!! 3화까지도 정말 중요한 부분이니 주의깊게 읽어주세요~
맞춤법지적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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