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민] Oxygen 1
아무 생각없이 문득 걸음을 걷다보면, 지나쳐가는 인영이 있다. 새하얗고 마른 인영. 너무 맑지만 시리게 웃어줘서 슬픈, 그런 사람. 아, 사람은 맞을려나? 사실 잘 모르겠다. 그저 스쳐가는 추억 속 한 장면의 인연이겠지. 그렇게 오늘도 나는 그 소년을 흘려보냈다. 싸한 약 냄새가 맴도는 길고 흰 복도를 걷다 멈추었다.멈춘 걸음의 시선 끝에는 대수술실 앞 명찰표였다. 급한 발자취때문인지 걸친 가운이 무겁게 넘실댔다. 머릿 속이 비어졌다. 멍해지는 기분에 느릿하게 눈을 감았다 떳다. 잘 못 본 거겠지. 같은 사람이 아니겠지. 날 위한 변명과 핑계를 만들어낸 나는 울려대는 나의 송출기를 붙잡고 떨어지지않는 걸음을 재촉했다. 흐릿하게 다시 지나쳐가는 앙상한 인영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얼마나 큰 수술이면 원장님이 직접 나셨대?"
"미국에서도 진전이 없었던 환자라더라…"
"그럼… 가망성도 보장 못하잖아…?"
"내 말이…왜 원장님이 나서서 저러시는지…"
쑥덕대는 무리들의 눈이 나를 향해 눈길을 주었다 떼길 반복하는 사이, 내 손에 들린 차트는 넘겨지는 양이 늘어가고 있었다. 적혀내려가는 차트의 기록은 점점 거세졌다. 볼펜의 흔적이 이리저리 번져가고, 빗나갔다. 두 손에는 힘이 자꾸만 들어갔다. 억지로 눌러쓴 영어들은 필기체로 요란하게 흩트려졌다. 탁ㅡ 요란한 소리를 낸 불퉁한 나의 손길에 무리들은 화들짝 놀라 순식간에 사라졌다. 후우.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차트를 빈 데스크 위에 얹었다. 왜 일까, 머리가 지끈거렸다. 긴 복도가 유난히 더 길어보였다. 너덜거리는 걸음으로 텅 빈 레지던트 방을 향했다. 차가운 이불 속이 그리웠다.
*
"앗, 차거."
책상의자에 앉는 순간, 작은 비명을 내질렀다. 난 차가운 것이 싫었다. 가장 싫어하는 계절도 겨울, 가장 싫어하는 색은 흰 색, 가장 싫어하는 곳은 차가운 시멘트 바닥이었다. 춥고 차가운 것보다 차라리 후덥지끈하고 뜨거운 것이 나았다. 그 날도 난방이 제대로 되지 않아 몸서리칠 만큼 추운 겨울이었다. 온 몸이 달달 떨려와서 실내 임에도 목도리를 두텁게 고쳐맸다. 어느 덧 채워지는 교실 속에 우글거리는 인원의 온기조차도 나에겐 닿지않아 무색했다. 그저 춥고 또 추웠다. 입까지 바들거릴 즈음, 교실 문이 열리고 한 소년이 걸어들어왔다. 작고 아담했다. 담임과 함께 교탁에 선 소년은 하얗다 못해 창백한 볼을 가졌었다. 마치 온기조차 없는 인형처럼. 몸은 비쩍 말라 서있는 것도 힘들어보였다.
"이번에 전학 온 친구야. 다들 잘 대해주고. 인사 할래?"
도리도리. 소년은 도리질을 쳤다. 난색을 표하며 손사레를 쳤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너희들과는 절대 친해지지 않을 거야, 그렇게 적어놓은 표정같았다. 재수없네. 난 그렇게 소년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2교시에 들은 영어 단어 쪽지시험이 있었기에 바빴다. 교과서에 처박은 고개를 더 이상 올리지 않아 그 후로 그 소년이 어디 자리에 앉고 결국 소개를 했는지, 이름은 뭐였는지 딱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볼펜을 쥔 내 손이 점점 급박해져 갔던 것 말곤.
*
폐쇄 부전증. 넋놓다 영어로 체킹할 것을 한글로 적어버렸다. 크다 못해 휑한 1인실 병실 안에는 아직 환자가 들어오지 않았다. 가운 주머니를 뒤집어보았으나 잡히는 화이트가 없어 내려놓았다. 난 그대로 차트를 닫았다. 나의 3번째 담당 환자. 침대 밑 부분에 달려있는 화일 속 붙여있는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환자 들어가겠습니다, 선생님."
"네."
들 것에 실려오는 환자는 여전히 창백한 낯이었다. 이번에는 온 몸에 핏기가 가셔 살아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감겨있는 두 눈과 이어지는 코 끝, 다물어진 얇은 입술선. 갸름한 얼굴. 더 마른 것 같은 예민한 몸. 두텁게 달린 링거와 온 갖 기계들이 아직은 소년이 살아있음을 일러주었다. 멍하니 소년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수술은 했지만, 아시다시피 가망성은 없다고 합니다. 원장님께서도 열어보시더니,"
"환자 인수인계 관리는 누가 한 겁니까."
"원장님이… 선생님께 맡기라고… 하셨답니다."
끄덕, 초점을 잃은 눈으로 성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서는 무리들의 뒷 모습을 느릿하게 지켜보다가 다시 고요히 잠든 얼굴에 눈길이 닿았다. 손목에는 얼마나 많은 주삿바늘의 상흔인지, 푸른 멍이 넓게 물들어있었다. 똑 똑 떨어지는 약들의 행방은 모두 소년에게 향했다. 하얗고 흰 공간 속, 알싸한 냄새를 품은, 시린 소년이 누워있었다. 넓찍한 창문에서 봄 바람이 불어왔다. 하늘에는 일렁거리는 아지랑이가 피워졌다. 향긋한 꽃냄새가 코 끝을 자극했다. 그래서 일까, 눈물이 날 것만 같은 거. 차트는 다시 들어 환자의 상황을 기록했다. 오늘도 볼펜이 말을 잘 듣지 않아 못된 글씨로 채워져갔다. 눈 앞이 흐릿해졌다. 모두 봄 내음 때문이었다. 차트를 옆구리에 끼웠다. 소년의 얼굴을 그만 보고 싶었다. 볼펜을 앞 주머니에 끼워넣고 조용히 문을 열었다. 닫히는 틈 사이로 침실에 달린 명찰 속 이름이 눈에 박혔다. 김민석.
*
아무도 없을 교실을 예상하며 거칠게 문을 열었다. 추운 겨울 날에 뭐가 그리 신나는지 축구를 하는 반 친구들의 모습을 한심스럽게 지켜보다 뺑뺑이 치자고 결심한 날이었을 것이다. 나무문이 듣기싫은 마찰음을 내며 열였다. 쾅, 닫자마자 자리로 뛰어들어가 물통을 집어들었다. 타는 듯했던 목의 갈증을 채우고 나자, 당황하는 눈망울과 눈이 마주쳤다. 그때 그 소년이었다. 역시나 창백한 볼에, 마른 몸은 안쓰럽게 보였다. 오들오들 떠는 소년 또한 나와 같은 처지처럼 보였다. 체육 시간을 삥땅치는 같은 상황이라는 것에 묘한 동질감과 웃음끼가 돌았다. 생각보다 소년의 자리는 내 자리와 가까웠다. 옆 분단에 앉았었다. 바로 고개를 돌리면 얼굴을 마주 할 수 있는 거리. 가까이서 본 소년의 눈가는 빨갛게 부어있었다. 작고 올망한 손으로 가슴 언저리를 쥐어뜯었던 흔적이 보였다. 깨끗하고 반질반질했던 와이셔츠가 사정없이 구겨져있었다. 황급히 정리하는 손길이 보였다. 난 그걸 보고는 못 본 체 했다.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굳이 그 얘의 치부를 알아내야할 이유도, 권리도 없었으니까. 게다가 그 시절의 나는 꽤나 시니컬했었던 것 같다. 나와 관련된 게 아니면 모두 상관없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소년은 살가웠다. 자리에 앉자마자 겉옷을 궤어찬 내게 자그마한 손난로를 건넸었다. 솔직히, 그땐 살짝 당황했었다. 곧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받아들어 시린 뺨을 녹였지만 말이다. 소년은 신기했다. 웃지 않았으나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것 만으로도 빛났다. 정말… 빛났다. 겨울과 어울리는 것을 모두 싫어하고 부정했던나에게, 유일하게 겨울과 잘 어울리는 무언가를 받아들린 최초의 인정이었다.
소년에 대해 아는 것은 없었다. 그저 명찰에 적힌 이름. 김민석. 그거 하나였다. 우린 친하지 못했다. 둘 중 누구도 다가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우린 붙어있는 시간이 많았다. 체육 시간, 진로나 기술 가정 시간 처럼 이동 수업이 들은 날은 소년과 단 둘이 교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는 동아리 시간까지도 교실에 남아있었다. 추운 것이 싫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는 것이 내 무언의 변명이었다. 소년 또한 추운 것을 어지간히 싫어하는지, 아닌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른다. 그저 내 고등학교 학창시절의 상당수는 그 소년과 함께 교실을 지켰다는 것이다. 소년은 말이 없었다. 묵묵히 작고 예쁜 다이어리에 뭔가를 끊임없이 써내려갔다. 글을 쓰는 시간이 아니라면 소년은 책을 읽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소년은 하염없이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하늘을 보다 교정을 보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내려다보았다. 난 그런 소년을 관찰 아닌 관찰을 했었던 것 같다. 숙제를 하는 척 하다, 잠을 자는 척 하다, 노래를 듣는 척을 하다, 결국 소년의 옆으로 가 함께 창 밖을 내려다보았다. 그럴 때면 소년은 내가 오는 것을 눈치 채고도 모른 체 하다, 눈이 마주치면 살풋 웃었다. 난 그 웃음이 좋아 더 그랬는지 모른다. 호기심 가득한 소년이 바라보는 세상은 어떨까. 맑고 깨끗한 눈동자가 올곧은 시선으로 날 향할때마다 온 근육이 긴장했다. 평정심을 되찾고 무표정으로 돌아와도 그때, 그 순간은 아직도 난 잊지 못한다. 비록 말없던 우리였지만, 그 시절 만큼은 뭔가를 공유했음이 틀림없다. 아니, 내가 그렇게라도 믿고 싶다.
아, 딱 하나. 소년에 대해 아는 것이 있었다. 아무도 모를 소년의 비밀. 소년과 함께 있다보면 가끔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온 몸을 비틀고 잡아 뜯고 와이셔츠의 단추가 뜯어져 나가도록 가슴부근을 부여잡고 눈물만 흘리던 그 소년. 그럴때면 난 가만히 소년을 안았다. 그땐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선생님에게 달려가는 동안, 소년이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게 무서웠다. 품 안에 가두고 끝없이 품었다. 소년은 내 품안에서 점점 평온을 되찾았다. 빨갛게 부은 눈가가 끝없이 물줄기를 내 어깨위에 뿌려도 말없이 소년의 뒷통수와 어깨를 쓰다듬었다. 힘없이 쭉 기대오는 소년은 끝에는 언제나 내 눈을 보며 웃어주었다. 고맙다는 것 처럼. 하지만 갈수록 소년이 고통스러워하는 순간은 점차 잦아졌고, 내가 소년을 품는 날도 잦아졌다. 무언의 위기를 감지했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는. 사물함 위에 앉아있는 소년을 끌어안은 손길이 부드러워질 수록, 창 밖의 풍경은 점점 더 하얗게 변해갔다. 겨울이 무르익고 있었다.
*
"루한. 김민석 환자로 폐쇄 부전증과 심근염에 대한 브리핑 할 준비해 놓게."
"…원장님."
"미국원수 가야지. 기회로 삼아."
"하지만, 전 아직 레지 3년차에…."
"전문의 과정은 미국에서 밟아야지. 왜? 못하겠나?…."
"…아닙니다."
지나쳐가는 가운의 맞닿자 무거운 짐을 어깨위에 올려둔 것만 같았다. 긴 한숨 밖에 나오지 않았다. 데스크로 향해 회진표와 일괄표를 받아 차트에 끼웠다. 일반병실부터 동료의사들과 돌기 시작했다. 자신의 담당 환자들, 동료들의 담당 환자들의 상태를 체킹하고 진료 상황을 알려주었다. 일반 병동의 회진이 끝나자마자 난 중환자실 1인 병실의 환자 진찰표를 들고 따로 복도를 걸었다. 엘레베리터를 탈 수 있었지만 계단을 택했다. 가는 동안 무슨 말을 어떻게 건네주어야 할지, 인사를 해야하는 건지, 날 기억하긴 할지, 머릿 속이 어지러워서 정리가 필요했다. 몇 계단 내딛을 때마다 학창시절 마지막으로 소년을 품 속에서 떠내보낼때에 그 계단이 떠올랐다. 괜히 시큰해지는 마음에 주먹으로 가슴깨를 쳤다. 도착한 병실 앞 복도는 조용했다. 비어있는 중환자실 전담 데스크에는 간호사 한 명 보이지 않았다. 심호흡을 한 난, 천천히 소년을 보기 위해 차트를 고쳐들고 문꼬리를 돌렸다.
"안녕하세요."
아ㅡ, 탄식이 터졌다. 너의 목소리는 이렇구나. 처음으로 귓가에 도는 소년의 목소리였다. 낮지도 높지도 않지만 듣기 좋은 미성의 목소리가 병실을 울렸다. 듣기 좋다. 칠흑같이 검었던 머리가 색이 빠져 다갈색의 얇은 머리카락을 덮은 앞머리가 찰랑거렸다. 침대 헤드에 허리를 고정시켜 길게 앉은 소년은 정말로, 여전했다. 너무 여전했다. 나의 상상 속 인영과 동일해서 기뻤지만… 시큰거렸다. 살풋 입꼬리를 올려 웃어보이는 얼굴이 야위었다. 난 너에게 이끌리 듯 병실 안으로, 너의 곁으로, 너의 앞에 섰다.
"김민석 환자분 담당 레지던트 루 한입니다."
"외국인 이세요, 선생님?"
"아뇨, 어머니가 중국 분이세요."
"아, 그렇구나. 만나서 반가워요, 선생님. 잘 부탁 드려요."
아ㅡ, 맞다. 넌 그렇게 웃었었지. 내가 오랜 기간 잊고 있었던 사실이 붕하게 띄어올랐다. 올망졸망한 눈에 내가 가득 담길때, 접혀올라가는 눈꼬리가, 동그랗게 말려지는 입꼬리가 사랑스러웠었지. 맞다. 내가 널 잊고 있었구나. 웃음끼 도는 얼굴을 마주하자 심장이 쿵 떨어졌다. 생각보다 소년의 존재는 나에게 컸었나보다. 처음 병실에서 본 것 보단 혈기가 돌았다. 여전히 작은 손으로 작게 흔들어보이는 소년은 학창시절 그대로였다. 떨리는 손끝을 보여주고 싶지않아 주먹을 꽉 쥐었다. 소년이 여전했던 것 만큼, 나 또한 여전했다. 널 대해하는 몸짓, 시선처리 하지 못하고 표정관리 하나 제대로 못하는 여전한 나. 만나서 반가워, 잘 부탁해, 민석아.
"저도…, 잘… 부탁해요. 민석씨."
"하하, 네!"
"수술 경과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지만, 현재 상태는 좋아보이네요."
"……."
"무리한 운동하지 마시고, 절대 안정 취하세요. 수술 부위가 많이 화끈거린다 싶으시면 호출기 누르시고요, 진통제는 매일 넣어드릴 겁니다."
"…네."
"항상 다리를 심장보다 높이 들어올리지 마시는 건 잘 알고 계시죠? 식도를 조금 드러냈으니 먹는 거 유의 꼭 하세요."
"……."
"생고구마, 생감자 처럼 딱딱하고 생 거 드시지 마시고 죽 종류나 미음으로 식사 시작하세요."
어떻게 말을 쏟아냈는지 사실 기억조차 제대로 나지 않는다. 그냥 그 시간은 그렇게 흘려보냈으니까. 그저 유의사항들을 읊어주었다. 하얀 웃음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차트를 닫은 손길이 급했다. 너가 쳐다보는 게 다 느껴졌다. 화끈거리는 건 너가 아니라 나 일거다. 잘 몰랐겠지만 귀가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도 주먹을 쥐어대서 손톱자국이 남은 손바닥이 보였다. 소년은 그저 빙그레 웃어만 주었다. 멍하니 그 웃음을 보다 쌩 하니 나와 버렸다.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
"루한! 잘가!"
등 뒤로 들리는 맑은 음성에 참았던 울음을 더 참았다. 오던 계단을 내려가는 발걸음이 긴박했다. 아무도 없는 것을 감지한 몸뚱이는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볼짝이 뜨거웠다. 남 몰래 흘리는 눈물은 여전히… 뜨거웠다.
*
아주 짧았던 소년의 만남은 지속되지 않았다. 소년은 아팠다. 그 날도 그칠 줄 모르는 눈물을 쏟으며 온 몸서리를 치며 고통을 참았다. 헉헉 넘어가는 숨소리가 멈출줄 몰랐다. 이대로 정말로 죽어버릴 것 같았다. 무서웠다. 그 날은 더 했다. 나의 두려움이 급해지면 급해질수록 소년의 고통도 더해지는 것 같아보였다. 소년은 항상 내가 누군가에게 소년의 상황을 알리는 것을 제지했다. 휴대폰을 향하던 손을 제지하고, 교무실로 뛰쳐나갈려는 나를 붙잡아 안겨왔다. 하지만 그날의 소년은 조금 달랐다. 나의 행동도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달큰거리는 숨이 모잘라 보였다. 꺽꺽대는 울음소리는 점점 숨을 갈구했다. 소년과 눈이 마주쳤다. 그 때의 내 몰골이 어땠을까. 처참했을 거다. 그랬으니 소년이 그 순간까지도 웃어주었겠지. 소년은 안심하라는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고통 속에서 피어나는 미소가 더 소년의 아픔을 표현해주는 것 같았다. 체육 시간…, 아무도 없는 그 빈 공간에서 나는 눈물을 흘렸다. 숨…, 숨이…, 달뜬 목소리가 가날프게 귓가에 꽂히는 순간, 소년에게 입을 맞추었다. 흘려지는 눈물 속에서 내 쉴수 있는 숨을 소년에게 불어넣었다. 소년의 입맞춤 속에서 숨을 쉬고 내쉬었다. 맞춰진 입이 비틀리자 소년은 희미하게 웃었다. 힘없는 손으로 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소년의 움직임 또한 희미해질 즈음, 그렇게 쓰러졌다. 소년은 눈이 뜨지 않았다.
정신없이 달렸다. 계단을 내딛을때마다 발목이 접질러지고 뒤집어져도 소년을 업은 등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이 뭉기지며 떨어지면 소년의 길쭉한 팔다리가 흔들거렸다. 눈 앞이 새 하얗게 빛났다. 온 복도를 향해 달려도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었다. 난 급했다. 무작정 소년을 들쳐없고 경황없이 달렸다. 계단을 끝에 보이는 문을 열고 내달렸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움푹 들어가는 실내화 속 차가운 눈이 발을 물들였다. 뜨거운 눈물이 닿자마자 사라지는 눈꽃송이는 그렇게 나의 앞길을 막았다. 늘어진 팔다리가 하얀 눈과 잘 어울렸다. 패여가는 눈자락을 마구 밟으며 뛰기 시작했다. 미끄러져버릴 뻔도 하고 엎어질 뻔도 했다. 하지만 소년을 놓을 순 없었다. 신관을 벗어나 구관으로 내달리는 동안, 발목이 엄청나게 시큰거렸다. 수위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즈음, 난 멍하게 소년의 팔을 바라보았다. 숨을 고르는 그 찰나의 시간이 정말 느렸다. 소년의 손목에는 생채기가 가득했다. 자살기도…. 그건 자살기도라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인위적이었으며 볼품없었다. 넌 왜…, 왜…, 눈꼬리에서는 더 이상 물기가 흘러내리지 않았다. 겉옷조차 걸치지않은 교복의 검은 마이와 나와 소년의 머리 위로 눈이 떨어졌다. 너의 손목에도 그렇게 눈이 떨어졌다. 깨끗한 눈송이가 너의 상흔을 없어줄 것 만 같았다. 너가 다시 깨끗해지길 바랬다. 하지만 그 찰나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눈송이는 녹아없어졌다. 그 순간 내 등의 엎힌 너의 행방 또한 수위 아저씨에게도 옮겨졌다. 교정에는 담임을 비롯해 몇 선생님들이 뛰어오고 있었다. 난 그대로 눈을 감았다. 살아있어줘. 제발. 너무 추웠다. 하지만 이젠… 이 추위를, 이 눈을 그리워하게 될 것 같았다. 슬로우모션처럼 날 지나쳐가는 너의 등 자락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놓치기 싫어서 눈을 떳다. 너가 완전히 사라진 순간, 나의 소년도 사라진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쳤던 눈물이 다시 날 적셨다. 난 그렇게 한참동안 널 기다렸다.
#작가말#
어익후, 루민 저질렀당...ㅎ
상황 설명은 나중에~
다 알면 재미없잖아요!
번외편은 떠오르는 데로 정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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