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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손을 잡고 교실을 빠져나온 황쉬시는 그저 아무 말 없이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 와중에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걷던 평소와는 다르게 내 보폭에 맞추고 있는게 느껴져 조금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런 일을 당하고서도 그저 괜찮은 사람은 아니기에 기분이 한없이 땅으로 추락해 더러운 와중에 그의 작은 배려가 평소보다 크게 다가왔다. 

생각 없이 그저 쉬시가 걷는 대로 이끌려 가다보니 도착한 곳은 학교 안의 작은 정원이었다. 말이 작은 정원이지 이사장이 받은 기부금의 몇분의 1을 여기다가 쏟아 부었다 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관리가 완벽하게 잘 되어있는 온실 속의 숲이었다.

처음 들어와본 정원은 환한 빛이 들고 있었고 무엇보다 사람이 없어 고요했다. 그 곳에 들어서서야 내 손을 놓아준 쉬시는 몸을 빙글 돌려 나를 꼼꼼히 흝었다.


"...피 나네."


싸울 때 손톱에 긁혔는지 손등에서 피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여태까진 아무 느낌도 없었는데 발견하니 따끔거려서 나도 몰래 인상을 쓰니 쉬시가 내 손을 살며시 잡아 들어올렸다.

나는 그 애가 잡고 있는 내 손을 뺄 생각도 하지 않고 그저 걱정 가득한 그 얼굴을 바라봤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나 걱정 해주는게 정말 오랜만이라서 기분이 이상하게 간지러웠다.

내 손을 가만가만 쥐고 있던 쉬시는 약도 뭣도 없어 그저 근처 수돗가에서 내 손을 씻겨 줄 뿐이었다. 말 없이 묵묵히 손을 닦아주고 제 교복에 젖은 내 손을 닦은 쉬시는 한숨을 쉬며 속상해 죽겠단 표정으로 입꼬리를 내렸다.


"...속상해. 나 때문에 다치게 했어."

"너 때문 아니야. 내가 먼저 덤벼 들었던거야."

"넌 늘, 다쳐도 아픈 줄을 모르더라. 그 정도로 치열하게 살아가야 한다는 말이겠지."

"..."

"아직 많이 이르겠지만, 앞으로 내 앞에선 아프면 아프다고도 하고 힘들면 힘들다고 투정 부릴 수 있는 그런 사이가 됐으면 좋겠어. 다른 마음이 있는 거 아니야. 그냥 너한테 힘이 되어주고 싶을 뿐이야."


그저 마냥 밝고 아무 생각도, 고민도 없이 사는 줄 알았는데 쉬시의 눈이 진지하게 날 바라보고 있었다. 

참견하지 말라고 받아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입이 떨어지질 않고 그냥 울적한 마음만 들었다. 괜히 고개를 돌리자 한참을 아무 말이 없던 그 애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안해. 쉬엔이 괜한 오해를 했네. 걔가 한 말들은 신경 쓰지마. 그 중에 사실인건 단 하나도 없으니까."

"너야말로 괜찮겠어?"

"뭐가?"

"걔 얘기 들어보면 너네 회사랑 걔네 회사랑 오래 같이 일 해온 느낌이던데. 나 때문에 파트너 잃는거 아냐?"

"...김여주. 지금 그게 중요해? 너 한테만 신경써도 모자를 판에. 걱정마. 걔네 회사 아니더라도 잘 굴러가니까."


눈가를 찡그리며 싸우느라 헝클어진 내 머리를 다정하게도 풀어주는 쉬시에 아주 잠깐, 심장이 뛰기도 했던 것 같다.

그 큰 눈이 나를 가까이서 지긋이 바라보고 있는데 설레이지 않는다면 사람이 아닐거라고 애써 모른체 하며 그 애의 곁에서 빠져나왔다.

내 얼굴에 꽂힌 시선을 의식하며 이리저리 둘러보는 체 하자 쉬시는 금세 내 곁으로 와 평소처럼 웃으며 꽃과 자신을 비교하며 어떤게 꽃인지 모르겠지? 등의 헛소리를 늘어놨다.

평소였다면 그저 한없이 가볍다고 넘겼을 농담이었지만 지금은 그 애가 내 기분을 풀어주려 한껏 가벼운 척 하는게 느껴져 별 말 없이 웃어 넘겼다.




곧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렸지만 나와 쉬시 둘 중 누구도 이 정원에서 나갈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주 잠시만이라도 현실을 잊어버리고 싶었기에, 또다시 내 편은 하나도 없는 그 교실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만약 지금 혼자였다면 우울함과 패배감에 엉엉 울고 있었겠지.

흘긋 쉬시를 돌아보니 대형견 마냥 눈을 댕그랗게 뜨고 내 뒤를 졸졸 쫒아오고 있어 나도 모르게 작게 웃음이 터졌다.

내 웃음 소리를 들었는지 아까와는 달리 방긋방긋 웃으며 기분이 조금 괜찮아졌냐 물어오는 그 애를 돌아봤다. 


"...쉬시."


나를 바라보는 눈이 맑다. 참 이상하지. 너도 이미 알 거 다 아는 나와 같은 세계에 사는 사람인데. 

어째서 네 눈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 마냥 맑고 예쁘기만 한 걸까.


"모든 사람들이 나 더러 독하다고,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다고들 해."

"..."

"하지만 황쉬시, 난 독한게 아니야. 난 그저 남들보다 조금 더 똑똑하고 지극히 현실적인 것 뿐이야. 그리고 이 세상은, 똑똑한 여자를 독하다고 부르고들 해. 하지만 너도 알다시피, 똑똑하지 않으면 살아남기가 어려운 곳이잖아 여긴."

"...맞아. 넌 그냥, 아주 아주 영리할 뿐이야.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널 과소평가 하지."

"..."

"사실 넌 아주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인데 말이야."


그 말에 눈에서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건 내 자의가 아니었다.

그건 그냥 어쩔 수 없는 감정의 폭발 비슷한 것이었다. 내 스스로의 의지로는 절대 멈출 수 없는. 

소리 없이 우는 나를 그 애는 그저 품 한가득 꽉 안아줄 뿐이었다.


쉬시가 내게 해준 말은, 지금까지 살면서 누구보다도 듣고 싶은 말이었다.

엄마가, 아빠가. 내 곁의 누군가가. 제발 단 한번만이라도 나를 인정해줬으면 해서.

남자애였으면 좋았을텐데, 넌 역시 이 정도 밖에 안되는구나. 이런 말들이 아니라, 잘 했다. 자랑스럽다, 대단하다. 이런 말들이 듣고 싶었다.

그저 그 뿐이었는데. 

쉬시에게 내 속을 들킨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고 조금은, 기쁘기도 했다. 이런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그래도 한 명 쯤은 있구나 싶은 마음에.

내 등을 가만히 도닥여주는 손길에 위로를 받았다. 


황쉬시 넌, 대체 뭔데 나를 이렇게나 휘젓는 걸까. 




그 뒤로 우리의 사이는 훨씬 가까워졌다. 

학교 안이든 밖이든 황쉬시는 늘 내 곁에 붙어 있었고, 나는 점점 그런 그에게 익숙해지고 있었다. 

쉬엔은 누가 손을 쓴 건지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게 됐고 반 아이들은 나를 모른체 했지만 오히려 그 편이 훨씬 편했다.


내 마음을 얻어보라고 큰소리를 쳤던게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쉬시는 내 머리속을 헤집고 다녔다.

넌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이야. 그 한마디에 무너진 나를 그 애는 그 어떤 위로도, 동정도 하지 않았다. 그 점이 나를 더 울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 사람이라면 조금쯤은 믿어도 될지 몰라. 라는 마음과 그래도 믿기엔 너무 빠르지 않아? 라는 마음이 동시에 고개를 쳐들고 나를 괴롭혔다.

내 마음은 나도 모르는 새에 많이 지쳐있었나보다. 자꾸만 누군가를 믿고 의지하고싶게 만들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를 아는지 모르는지. 황쉬시는 처음 만났을 때 처럼 해맑게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평화를 두고 폭풍전야 라고 하는 걸까.


여느 때 처럼 점심을 함께 먹으려 날 찾아온 그 애의 얼굴이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어두운 낯빛으로 나를 붙든 황쉬시는 입술을 깨물었다 한숨을 쉬었다 하면서 부산스레 굴었다.


"쉬시. 무슨 일이야."


참다 못한 내가 채근하자 그 애는 나를 보고 입을 떼었다가 다시 말을 삼키고 다시 입을 열었다를 반복했다.

한참을 머뭇대던 그 애의 입에서 뱉어진 말은 나를 멍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여주. 나, 미국 가."











=========
와아 쓰차 풀렸당!!
쓰차 지옥에서 풀려나자마자 글 쓰러 온 1인...힘들었다...
번외도 3? 4편 남았네요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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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아니 갑자기 미국이라니ㅠㅠ 우리여주 어떡해요ㅠ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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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1.114
쿠ㅜㅜㅜ원래 정해져있던 미국행이긴하지만 겨우 친해졌는데 미국행이라니ㅜㅜㅜㅜㅜㅜㅜㅜㅜ힝구힝구ㅜㅜㅜㅜㅜ그나저나 작가님 열일하시네용! 짱짱👍👍
7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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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앙대 왜 벌써 가ㅠㅠㅠㅠㅠㅠ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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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쉬시 가지 마ㅠㅠㅠㅠㅠㅠㅠㅠ
6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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