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석-
“사랑해”
이제야 알게 되었다. 누구보다 따듯하다고 느꼈던 그의 애정표현엔 차가운 숨결만이 가득했다는 것을.
“나한텐 너뿐인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럼에도 나는 웃었다. 넌 한 번도 나를 연인으로 대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너의 얌전하고 예쁜 인형이어야 하니까.
-사랑의 역설-
나와 정호석의 사이를 어떻게 정의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우린 26살이 된 지금, 어느덧 4년째 연애하고 있는 사이이다. 사랑 없는 연애라고 하면 미친 소리처럼 들리려나. 우린 사랑 없는 사랑을 하고 있는 연인이다. 아니, 정확히는 정호석만.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사랑해줄 ‘애인’이 필요했던 것이 아니라 ‘얌전하고 예쁜 인형’을 필요로 했던 것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사랑했기에, 내가 그를 좋아하면 좋아할수록 그도 내게 마음의 문을 열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의 거짓 사랑을 믿는 ‘척’ 연기했다.
누군가 지금의 내게 그를 사랑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내가 하고 있는 것의 이름이 사랑이라면 세상은 온통 거짓말 천지인 곳이겠구나 싶다. 사랑이 구원이자 추락이라던 어느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과연 사랑이 구원이 될 수 있을까. 내겐 추락뿐이었는데.
그럼에도 난 오늘도 예쁜 옷을 입고, 화장을 하고, 드라이까지 마친 뒤, 웃는 얼굴로 그를 만나러 간다. 그가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만 보면 입에서 나비가 나오는 것만 같은 그 감정을 빌어먹게도 나 혼자 느끼고 있기에. 그와의 데이트를 하는 동안엔 그의 눈을 올곧게 마주치지만 않으면 된다. 그의 눈을 제외하면 그 모든 행동들은 날 사랑한다는 듯이 연기하고 있으니까. 딱 오늘까지만,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어져 4년이 되었다. 난 그에게 속박되었다.
-전정국-
호석과 무의미한 데이트를 하고 온 날이면 집에 들어설 때부터 기분이 바닥 끝까지 추락하는 느낌이 든다. 날 감싸고 있는 이 공기마저 ‘넌 아직도 그에게서 멀어지지 못했어? 그가 널 사랑하지 않는 것을 알잖아.’ 라고 말하고 있는 것만 같다. 내 모든 것은 날 사랑하지 않는 그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멀어지지 못하는 나에게 화살을 돌리고 있다.
이 울적한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어 집에 가는 도중 발길을 돌렸다. 예전에 호석과 데이트하며 온 곳인데, 지금 생각해보면 쓸쓸하지만 아늑한 이곳의 분위기는 사귄 지 얼마 안 되었던 연인이 올 곳은 아닌 것 같다. 익숙한 자리에 앉아 익숙한 칵테일을 주문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자 온 여성, 실연을 당한 것만 같은 남성, 각각 사연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 투성이인 곳에 나도 섞여있구나. 저들 눈엔 내가 어떻게 비추어질지 궁금해졌다. 내가 그저 하루에 지친 사람으로 보일까 아님, 애인의 사랑을 받지 못한 불쌍한 여자로 보일까.
그래, 사실 그게 무엇이든 괜찮다. 남들이 내게 손가락질 하는 것은 익숙한 일이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근데 오늘은 왜 자꾸 코가 시리지. 눈가가 붉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은 언제든 최악이다. 잡념을 비우기 위해 술잔을 내려두고 가게 밖으로 향했다. 바깥 공기를 마시면 좀 괜찮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역시나 가게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가을 밤공기가 날 감싼다. 인위적인 따뜻함보단 차라리 차가움이 낫기에. 비스듬히 건물 외벽에 기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달도, 별도 보이지 않는 서울의 밤이 야속하기만 하다. 차라리 별이라도 밝았으면 위로 받을 수 있었을 텐데. 한숨을 내쉬니 뿌연 입김이 생긴다. 오늘도 난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왠지 모를 우울이 나를 덮쳐왔다.
“가을 밤공기는 차가워요. 이렇게 밖에 있으면 감기 걸릴지도 모르고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또 다른 악연이자 구원인 전정국와의 첫 만남이었다.
-김태형-
“여주 씨, 제가 이 부분 수정해달라고 했잖아요. 이게 뭐라고 한 나절이나 걸려요?”
“여주 씨, 정신 안 차립니까? 여기 직장이에요.”
“여주 씨,”
이상하다. 입사 동기가 유독 내게만 예민하게 행동하는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든다. 첫 만남부터 대뜸 어디서 본 적 있지 않냐고 물었던 것부터 예사롭지 않은 사람이라는 건 알았지만 팀원들의 말을 들어보니 한없이 다정하고 좋은 사람인 것 같던데. 왜 내게만 이런 걸까. 아닌가, 요즘 내가 호석이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예민한 거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모든 동기에게 친절해 누구보다 나은 평판을 가지고 있는 입사 동기에게 내가 괜한 프레임을 씌운 것 같아 미안해졌다.
“여주 씨, 앞 좀 제대로 보고 다니시면 안 됩니까? 제 옷만 더러워지게 정말.”
아니, 어쩌면 내게만 이상한 게 맞는 걸까. 난 어디서부터 꼬이게 된 사람인 걸까. 정호석을 만난 뒤부터? 전정국을 만난 것부터? 아님, 내 존재 자체가? 사람의 스트레스가 극에 달하면 잠시 미친다고 하던가.
“여주 씨, 나중에 따로 저녁 먹어요, 우리.”
팀원들과 함께 있을 때 얼굴을 붉히며 겨우 내게 저녁 데이트를 권유하는 입사 동기 김태형. 대체 뭐가 진짜 모습인 것일까. 주변의 환호에 어쩔 수 없이 승낙하니 입가에 걸리는 저 묘한 승리의 웃음은 무엇일까.
아니, 어쩌면 내가 꼬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저렇게 순진한 김태형이 다른 뜻을 품을 리가 없잖아. 호석이에게 오늘 저녁은 선약이 생겼다고 말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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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랑의 역설이라는 작품을 들고 찾아뵙게 된 바나나맛 우유입니다!
1화는 오늘 8시 안으로 올라오기 시작하며 사랑의 역설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아요
인물에 대한 설정 모두 마친 상태입니다!
오늘 올라온 글은 각각 인물과의 첫 만남에 대해 짧게 모아둔 프롤로그 같은 거예요
읽지 않으셔도 무방하나 앞부분의 스토리를 이해하기 위해선 호석이 부분만이라도 읽으시는 게 도움되지 않을까 싶네요
역하렘물일 예정이고 소재가 어쩌면 읽고 나면 기운 빨리는 소재일지도 몰라 조금은 조심스럽네요
잘 부탁드려요 :)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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