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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혹시 미국에서 여행 중이신가요?
여행 l 외국어 l 해외거주 l 해외드라마
l조회 3038
 아. 또 났어. 어떡해..
민지는 거울을 보며 요즘 부쩍 얼굴에 많이 생긴 여드름을 고민하고 있었다.
꼬박꼬박 잘 씻는데도 왜 여드름이 이렇게나 자주 생기는건지 울화통이 터졌지만
언니를 뒤에 두고 그런 불평을 감히 입 밖으로 할 수는 없었다.
언니는 지금 온 몸에 보습 크림을 잔뜩 바르고 고통과의 싸움을 하고 있었다.
민지는 여드름을 이리저리 건드려보던 손을 슬며시 내렸다.
언니 앞에서 이런 건 작은 고민, 어쩌면 행복한 고민에 불과할지도 몰랐다.
 
" 민지야, 언니 신경쓰지말고 거울 봐.. "
 
어쩌면 저렇게 눈치가 빠를까, 민지는 몹시 머쓱해졌다.
 
" 아니야. 언니 도와줄 것 없어? 오늘은 좀 어때.. "
 
" 괜찮아. 등에 손이 안 닿네.. 등에 크림 좀 발라줄래. 미안.. 만지기 싫지. "
 
" 그런 소리 하지마. 그런게 어딨어. 사람 등이 다 똑같은 등이지 뭘. "
 
" 우리 동생 다 컸네. "
 
민지는 하나부터 열까지 자신을 배려해주는 언니가 고마웠지만 가끔 그런 모습이 몹시 슬펐다.
언니인 민혜는 친구들 놀러온다는 전화가 오면 미리 말 꺼내기 전에 '언니 피곤해서 좀 잔다'하곤 방으로 들어가버리고,
자신이 변기를 쓰고 나면 알콜솜으로 꼭 자기가 닿은 부분은 다 닦고 나왔다.
정작 동생인 민지는 민혜를 전혀 꺼리는 마음이 없는데, 민혜는 지나치게 배려해주곤 했다.
어쩌면 그렇게 하면서 스스로를 원래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행동해야 자신과 현실이 마주하는 걸 막을 수 있었던걸지도..
 
" 언니, 뉴스에 오늘 내일 중으로 비 올 거 같다던데. "
 
" 그래? 나도 오늘 기상예보는 좀 봤는데.. "
 
두꺼비 같은 민혜의 푸석푸석한 등에 보습 크림을 잔뜩 펴바르며 민지는 계속 민혜에게 말을 걸었다.
물 안 준 화분처럼 몹시 건조하고 딱딱해져버린 피부, 나무껍질처럼 딱딱하게 쌓인 각질.
매일 봐온 언니의 등이지만 이렇게 크림을 발라줄 때마다 민지는 몹시 슬퍼졌다.
한 번도 징그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본다면 반응은 뻔했다.
민혜도 그 사실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에, 바깥 출입은 고사하고 집에서도 왠만하면 없는 사람으로 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자매의 옆으로 빈 보습 크림 용기들이 몇 개씩이나 차곡차곡 쌓아올려져 있었다.
 
민혜는 태어날 때부터 희귀한 체질로, 사랑스런 다른 아기들과는 다르게 바싹 마른 미이라 같은 모양을 하고
태어났다. 울지 않았다면 산모가 유산한 게 아닐까 착각했을 정도로 기괴한 아기였다. 하지만 아기는 살고 싶었는지
몹시도 울었고, 이후 의사는 '할리퀸 어린선'(선천적으로 뱀살을 한 채 태어나는 아이들)으로 병명을 진단하려 했으나
마지막엔 '어린선이 아니네요. 이건.. 학계에 보고된 적이 없는 증상입니다.'라고 하며, 민혜의 완치가 아주 어려울 거란 걸
말해줬다.
 
원인은 뭘까, 어머니는 그제사 임신 중 두통이 너무한 나머지 집에 있던 아무 약이나 몇 개 집어먹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았고,
꼭 그게 원인이라서 이런 일이 일어난 건 아닐 거라고 아버지는 어머니를 위로했지만 어머니는 그 때 두통약을 분별없이
먹은 게 이런 일을 불러온거라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아기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후 2년 뒤엔 내가 태어났다.
아주 귀여운 보통 여자아이였다.
 
 
" 언니, 먹구름 낀다. "
 
" 정말이네. 오랜만이야. "
 
민지는 먹구름이 끼자 호들갑을 떨며 민혜를 불러댔다.
민혜는 반가운 표정으로 옷을 주섬주섬 갈아입었다.
 
" 가자 가자~ "
 
모자와 마스크에 선글라스까지 푹 눌러쓴 민혜의 손을 잡고 민지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마침 비가 한두방울씩 떨어지는 중이었다.
민지는 챙겨온 우산을 받쳐들고 언니의 선글라스를 받았다.
평소엔 인공눈물을 넣지 않으면 금새 눈곱이 껴서 혼탁해지기 일쑤였던 언니의 눈..
언니의 체질만 아니었더라면 꽤 이뻤을 눈이다.
민혜는 잠시 바깥 공기를 음미하듯 들이마시더니, '후아'하고 내뱉었다.
 
" 민지야. 너 같은 동생이 있어서 다행이야. "
 
"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언니. "
 
" 그냥 좋아서. "
 
민혜는 그 말을 마치곤 모자와 마스크도 벗었다.
몹시 건조한 피부에 아직 흡수되지 않은 크림이 번들거렸다.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가뭄이 온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는 탓에 안 바를 순 없었지만
바른다고해서 촉촉해지는 건 아니었다. 그냥 갈라지지만 않는 정도로 만족해야했다.
민혜의 얼굴이 하늘을 쳐다봤다. 민혜는 눈을 감고 내리는 비를 맞기 시작했다.
민지는 이제 멀찍이 떨어져 옥상 한켠에 쭈그리고 앉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비가 제법 내리기 시작했는데 우산은 민지 혼자 쓰고 있었다.
민혜는 아랑곳하지 않고 이번엔 윗도리를 벗었다.
이윽고 아래까지 천천히 벗어 민지 쪽에 건네더니, 알몸이 되어버렸다.
 
" 언니 감기들어, 조심해. 추우면 바로 들어가자. "
 
" 응. 괜찮아. 고마워. "
 
민지는 늘 건네는 말이었고 민혜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민지는 키득거리며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고, 민혜는 양팔을 벌리고 전라의 상태로 비를 맞고 있었다.
 
 
원인 불명의 피부 각화증.
치료약 불명.
 
그러나 아주 우연한 계기로 언니의 각질 없는 맨살을 보게 된 건 민혜와 민지가 어릴 적 일이었다.
민혜의 체질 탓에 평범한 피서를 갈 수 없었던 가족이 피서철을 최대한 피해서 최대한 사람이 없는 계곡을
물어물어 떠났던 어릴 적의 가족 여행, 그 날 밤 폭우가 쏟아지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로 텐트를 치우며
다 함께 비 맞은 생쥐꼴이 되었는데, 처음 보는 예쁜 여자애 하나가 가족 틈에 끼어있었던 것이다.
 
" 너 누구니? "
" 나잖아 엄마. "
" 민혜? 너 민혜야? "
" 왜 그래. "
 
그 날 가족 모두가 알게 된 건, 비를 오랫동안 맞으면 언니의 각질이 조금씩 씻겨내려간다는 것이었다.
이후 집에선 희망을 가지고 가습기도 들여놓고, 자주 분무기로 피부도 적셔주며 일상 속에서 언니를 치료해보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고, 딱 하루. 비 오는 날에만,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을 그러고 있어야 각질이 천천히 씻겨내려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왜, 어째서, 원인이 뭐지, 분석하는 건 소용없었다.
애초에 이 화분처럼 메마르는 체질부터가 풀리지 않은 문제였기에.
 
 
민지는 이제 휴대폰을 그만 둔 채 비 맞고 있는 언니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꽤 시간이 지났다. 민혜의 머리에서부터 점점 각질이 씻겨내려오기 시작했다.
각질은 발 밑에 때처럼 쌓였는데 그 양이 굉장해서 아마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기겁하지 않았을까.
 
화분처럼 딱딱하고, 건조하고, 메마르던 피부가 마치 정말 화분에 물을 준 것처럼,
언제 그랬냐는듯 저렇게 촉촉하고 매끈해질 수가 있을까.
매번 보고 있지만 어떻게 말로 표현할 수 없게 신비로웠다.
원래 얼굴이 드러나자 민혜의 얼굴이 꽤 아름다운 편이라는 걸 민지는 다시 깨달았다.
자기가 고민하던 여드름 하나 없이 매끈한 얼굴이었다.
만약 체질이 저렇지만 않았어도, 저 얼굴이면 뭘 해도 했겠는데,
민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언니를 바라보는 몇 시간 동안이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비가 민혜의 구석구석을 씻어내렸다.
마치 목욕하는 선녀처럼, 몹시 아름다운 선을 가진 여자 한 명이 서있었다.
아무 옷도 입지 않은게 외설적이지 않고, 그 청순한 모습에 오히려 경외심을 느낄 정도였다.
이 순간을 지켜보려고 민지가 그 긴 시간을 기다려주는 것도 있었다.
 
" 언니 진짜 예쁘다. "
 
그 말에 민혜가 싱긋 웃는데, 같은 여자지만 마음이 설렐 정도로 해맑고 아름다운 미소였다.
 
 
" 이 스타킹, 이렇게 입는거니? "
 
민혜가 스타킹을 발끝에서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평소엔 펑퍼짐한 원피스 하나만 입거나, 티셔츠에 반바지만 입고 있는 민혜가 간만에 비를 맞고 온 탓에
기분이 몹시 들뜬 모양이었다. 비를 맞고 오면 두세시간 정도는 처음의 상태가 유지되는 것 같았다.
언니는 그 시간에 나가서 민증을 만든다거나, 증명사진을 찍는다거나, 기타 다른 모든 사회적 활동을 해올 수 있었다.
물론 그 시간 외엔 일체 집 밖으로 나가질 않았으니 언니의 인간 관계라고는 우리 가족들이 전부였지만.
 
" 막 이렇게 이렇게, 해서 입으면 돼~ "
 
민지의 도움에 민혜는 아주 오랜만에 제대로 된 여자 옷 한 벌을 입을 수 있었다.
민혜는 이번엔 우산을 제대로 들고 옥상 위로 올라갔다.
딱히 바깥에 나갈 사유가 없는데다 원체 혼자 지내다보니 사람 많은 건 질색이었다.
그래도 시원한 바깥 공기만큼은 언제라도 좋아했기에 옥상으로 올라갔다.
민지는 이번엔 굳이 따라오지 않았다.
 
하지만 왠일인지 옥상에 올라온 민혜가 굳어버린듯 멈춰있다.
피부가 돌아와서가 아니라, 그 시선이 맞은 편 빌라 옥상을 향하고 있었다.
잘 생긴 청년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불과 저번 달까지만 해도 공사 마무리 중이던 빌라에 어느새 입주자가 가득 들어와있었다.
다시 사람들이 오고 가다니, 베란다에 서있기도 틀렸구나, 민혜가 안타까워했던 요즘이었는데..
 
민혜는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민혜를 바라보는 남자의 시선도 무심해보이지 않았다.
평생을 아빠가 아닌 남자와는 거리를 두고 살아온 사랑할 나이의 아가씨 마음이 흔들렸다.
 
" 그쪽 빌라 사세요? "
 
남자의 말에 심장이 덜컥, 두근거렸다.
 
" 네.. 그쪽은.. 그쪽 빌라에...? "
 
" 네, 저.. 초면에 참 실례지만, 너무 미인이세요. "
 
" 아, 안녕히 계세요! "
 
" 저기요, 저기요, 오해하지 말아주세.. "
 
민혜는 갑자기 느껴지는 이상한 감정에 우산도 버려둔 채로 집으로 뛰어들어왔다.
문을 세게 닫고 그 자리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이게 뭐지?
고작 그 짧은 시간이었을 뿐인데, 심장을 관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민지가 양치질을 하다말고 칫솔질하는 것도 잊은 채로 멍하니 민혜를 쳐다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된 것 같다고, 민혜는 민지에게 고백했다.
그 남자도 자신을 그런 눈으로 바라봐서 더 마음이 간다고 얘기하자, 민지는 언니가 사랑하는 나이가 되었구나,
하고 자기가 더 어린 줄도 잊고서 뿌듯해했다.
언니의 눈동자가 몹시 기대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피부는 다시 바싹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시간이 벌써 지나버렸구나.
 
" 좋아! 다음에 비 오면 한 번 꾸민 다음에 찾아가보자. 이 앞 빌라인데 잠시 얼굴 보는게 어려운 일이겠어? "
 
" 어딘지도 모르는데, 나 부끄럽단말이야. "
 
" 부끄럽긴 뭐가~ 남자도 누나 좋아하는 눈치라며, 어.. 혹시? 저 사람? "
 
" 누구? "
 
창가에 기대있던 민지가 누군가를 지목하자 민혜가 잽싸게 다가왔다.
반대편 빌라 앞에 나와 맞은 편의 이 빌라로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남자.
분명 그 사람이었다.
 
" 맞아, 저 사람이야. "
 
" 오~ 잘 생겼어 잘 생겼어! "
 
" 떨려서 못 보겠어. "
 
" 얼른 비가 와야겠네, 언니 다음에 만나면 좀 튕겨, 너무 좋은 거 티내지말고!
근데 언니 크림 바를 시간인 거 같은데. "
 
" 아.. 그걸 잊고 있었어. 나도 참. "
 
자신에게도 사랑이란 감정이 있을까 몹시 고민해온 한 여자의 마음이 확신을 얻었다.
사랑받고 싶고, 사랑하고 있다고.
이 다음에 비가 오는 날에 찾아가서 이야기를 좀 더 나눠봐야지,
자매는 그 주제로 몹시 오랜만에 웃음꽃을 피웠다.
 
 
" 민지야. 뉴스 채널 틀어봐, 날씨 보게.. "
 
민지는 민혜 눈치를 보며 TV를 켰다.
때 마침 일기예보가 나오고 있었다.
 
- 이번 주에도 아쉽게도 강우 소식은 없겠습니다, 전국에 연일 계속되고 있는 가뭄이 쉽게 끝나지 않고 있는데요,
이상 기후로 인해 전선의 이동이 예년과 판이하게 움직이면서 언제 비가 올 것이라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다만 다음 주 혹은 다다음 주에는 강우 소식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오늘 습도는..
 
" TV 꺼.. "
 
민지는 TV를 재빨리 껐다.
민혜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 꼈다. 
 
옥상에서의 만남 그 이후 전국에 지옥 같은 가뭄이 시작되었다.
도무지 비가 오질 않았다.
저수지가 바닥을 보일 위기에 처하고, 이미 용수가 부족한 도시에선 제한 급수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언니가 몸을 씻을 기회가 찾아오지 않는다는 걸 의미했고,
지금 언니의 얼굴은 엉망이었다.
다시 흙처럼 푸석해진 얼굴에 딱딱하게 자리잡은 각질, 오죽 건조했으면 그 각질이 발뒤꿈치처럼 갈라져있었다.
 
물 주지 않는 화분..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민지는 황급히 고개를 저으며 상상을 피했다.
민혜는 창밖 맞은 편 빌라를 쳐다보며 하염없이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다.
 
 
" 너 정말 안 갈거야? 너 안 낫을거야? "
 
집에 돌아온 아버지가 민혜의 손을 잡고 질질 끌었다.
 
" 아빠 왜 그래! 나 안 나가! 병원 한 두번 간 거 아니잖아, 나 때문에 집도 아파트에서 여기로 온 거잖아!
나 안 나아, 보면 몰라? 아빠도 아니까 이제 나 집에 놔둔 거 아냐? 이 빌라도 팔면 어디로 가려고 그래? "
 
" 니 엄마도 허락했어, 엄마는 바로 병원으로 온다니까 이번에 가자! 너 이번 가뭄 보니까 정말 아빠가 마음이
너무 아파서 그래, 어떻게 이렇게 널 놔두니, 응? "
 
" 엄마랑 아빠가 허락하는 문제야? 안 낫는 불치병이 엄마랑 아빠가 나 병원 데려가자고 합의하면 나아준데?
의사들도 못 했잖아, 그만큼 했으면 포기하자, 비 다다음주에 온대, 나 진짜 괜찮아.. "
 
민혜는 안가려고 안간힘을 썼다.
민지는 언니를 낫게 하기 위해 병원으로 데려가려는 아버지 편을 들어야 할지,
아무 방법도 없는 병에 투자해서 집안이 점점 가난해질 바에야 이대로가 낫다는 언니 편을 들어야 할지,
그 사이에서 아무런 결정을 할 수가 없어 몹시 안절부절하며 쳐다보고 있었다.
 
" 이번에 가보자! 너 이대로 못 놔둬, 너 시집 갈 나이가 금방인데, 아빠 이대론 못 살아.
너 지금 피부 좀 봐. 나아야지, 안 나을거야? "
 
" 아 왜 그래 진짜! 왜! 나도 낫고 싶다고, 나도 다른 여자처럼 꾸미고 화장품 바르고 하고 싶지
맨날 이상한 크림이나 잔뜩 바르고 바른다고 예뻐지는 것도 아니고, 근데 어떡해! 원래 이런건데!
나 때문에 엄마 아빠 힘든 거, 나 못 참겠어.. 차라리 그 돈으로 엄마 아빠를 위해서 썼으면 좋겠단말야. "
 
" 왜 이렇게 마음이 약해, 니가 낫고자 하는 마음으로 치료를 받아봐, 엄마 아빠가 바라는 건 네가 낫는 거
뿐이라니까, 왜 치료를 안 받으려고 그래, 할 수 있는데까지 해봐야지. 가자! "
 
" 안 가, 안 가, 돈 낭비 좀 하지마, 난 그냥 이대로 살거야.. "
 
" 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따라와! 이깟 건조한 체질이 뭐라고! 나을 수 있어, 왜 못 나아..
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왜 못 나아. "
 
아무리 언니가 버텨도 아버지의 완력을 이길 순 없었다.
언니는 결국 질질 끌려가다가, 입을 열었다.
 
" ... 갈게. 아빠. 갈테니까 놔줘. 옷 갈아입고 올게. "
 
" 그래. 가보자. 아빠가 너 사랑해서 이러는거야, 우리 민혜 괴롭히고 싶어서 이러는 거 아니야. "
 
" 아빠 알아요. 아빠 마음 알아요. 미안해요. 저 때문에.. "
 
" 또 자책한다. 민혜야. 너 때문이라는 말 하지마. 아빠는 한 번도 그런 생각 안 해봤어. "
 
" 나 진짜 내가 너무 미워.. "
 
민혜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방으로 들어가 옷을 주섬주섬 입었고,
민지는 여전히 안절부절하다가 눈치 보며 외투를 하나 걸쳐입었다.
 
" 민지야. 아빠 차 시동 걸고 있을테니까 언니랑 내려와. "
 
" 네. "
 
 
" 또 돈낭비야. 나을 리가 없어.. 아빠도 아마 아실걸.. "
 
" 언니 마음 강하게 먹어. 내가 아는 아빠는 그렇게 생각 안 하실걸. 나을 거라고 믿고 계실걸! "
 
" ... 민지야. 난 네가 내 언니 같더라. 난 항상 우울해서 너한테 짜증이나 부리는데. "
 
선글라스에 마스크를 쓴 민혜와 함께 민지가 빌라 밖으로 나왔다.
멀찍이 아버지의 차가 다가오는 게 보였다.
 
" 잠깐만 민지야, 나 눈곱이 많이 껴서.. 잠깐만 "
 
" 응. "
 
무심결에 대답하고 앞으로 시선을 돌린 민지는 안면이 있는 남자가 맞은 편 빌라 입구 앞에 서있는 걸
발견했다. 남자도 이 쪽을 보고 있었는데, 그 남자를 눈치 챈 민지가 '아차' 싶어 고개를 황급히 돌렸지만
이미 선글라스를 벗고 눈꼽을 이리저리 쑤시고 있던 언니 또한 남자와 눈을 마주친 뒤였다.
 
'어떡해..'
 
못 알아볼거야, 잠시 안도했지만 중요한 건 못 알아보는게 좋은 게 아니라,
그 사실 자체로 언니에게 큰 상처가 될 거란 점이었다.
 
남자는 몹시 갈라진 언니의 피부와 눈가를 잠시간 쳐다보더니, 언뜻 '혐오'하는 시선으로 표정을 찡그리곤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게 전부였지만..
 
" 얘들아, 타라- "
 
아버지 차가 어느새 우리 앞으로 왔다.
운전석 창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빵,빵, 짧게 경적을 두 번 울렸다.
 
" 흑흑, 안 간다고 했잖아! 안 갈거라고! 억지로 나오는 게 아니었어, 진짜 다 미워! "
 
민혜는 울면서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두 집어던졌다.
그 소란에 민혜의 맨얼굴을 쳐다본 남자가 기겁하며 뒷걸음질쳤다.
민혜는 아빠에게 소리를 지르느라 그 장면을 볼 수 없었지만,
민지는 빌라로 들어가버리는 남자를 멍청히 쳐다보고 있었다.
청순하고 아름다운 언니의 맨얼굴을 사랑스럽게 바라봤다던 저 남자가,
같은 사람일 뿐인 언니의 맨얼굴을 혐오스럽게 쳐다보며 도망까지 쳐버리다니,
대체 왜 그래, 같은 사람을 왜 그렇게 다르게 쳐다봐,
'언니'가 아니라서 그래?
'화분언니'라서 그래?
나쁜 놈.
민지는 남자가 몹시 괘씸했다.
 
" 집 밖이고 뭐고, 이제 그냥 방에만 있을래.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
 
" 민혜야! 민혜야! "
 
민혜는 끝내 소리를 지르며 다시 집으로 올라가버렸다.
아버지와 민서가 급히 뒤따랐다.
 
 
똑똑똑,
 
아버지가 조심스레 방문을 두드렸다.
민지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뒤에야 아버지는 왜 민혜가 그렇게 신경질을 부렸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사람으로부터 또 상처를 받은 딸이 몹시 염려되었다. 병원에 있다가 전화 한 통에 집으로 바로 달려온 어머니도
뒤에서 안절부절, 민지와 함께 방문 앞의 아버지만 쳐다보고 있었다.
 
" 민혜야. "
 
...
 
" 민혜야, 아빠가 미안해. 널 상처주려고 한 거 아니야.. 알지.. "
 
...
 
" 민혜야.. 아빠가 미안해.. "
 
끝내 아버지가 방문에 기댄 팔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 아빠가 미안해.. "
 
그렇게 낳아버린 아빠 엄마 탓일까,
그렇게 태어난 언니 탓일까,
그렇게 쳐다보는 사람들 탓일까,
민지는 복잡한 감정에 그저 고개를 수그렸다.
 
 
하루가 지나도록 밥 달라는 소리도 물 달라는 소리도 없었다.
크림을 바르지 않으면 피부가 갈라지며 그 시간이 길어지면 끝내 터져서 피가 날 정도인데,
크림도 바르지 않고 있을 게 뻔했다.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는 열쇠공을 불러다가 문을 따고 들어가기로 결정했다.
15분만에 도착한 출장 열쇠공이 문을 따는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문을 따면서 아버지는 계속,
 
" 민서야. 기분 나빠하지마.. 알겠지, 밥은 먹어야 할 거 아니야.. "
" 억지로 안 데려갈게, 이제 스트레스 받게 안 할게.. "
하면서 민혜를 달래었다.
 
하지만 열쇠공이 문을 따고 '자, 열렸습니다.'하고 문을 연 순간 사람들 모두 멍하니,
그 자리에서 한참을 가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민혜는 어디에도 없고,
다만 아주 고운,
아주 고운 흙처럼 생긴 가루만이 방 한 구석에 쌓여있었다.
화분에 쓰면 좋겠다 싶은,
아주 곱고 부드러운 가루였다.
 
환상괴담, '화분언니' 끝
괴담의 중심 The Epita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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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확인 또는 엔터키 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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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잘봣어용 잼나네요 ㅎㅎ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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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으엉 언니가 조금 불쌍하다ㅠㅜ몰입도잘되구 잘봤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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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헐 ㅠㅠ 재밌다 ㅠㅠ 몰입 짱이에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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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헐 언니 ㅠㅠㅠ 진짜 잘봤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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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와... 도대체 어디서 글쓰는법을 배워오셨는지ㅠㅠㅠ 보는 내내 몰입하면서 봤어요 책 하나 내셔도 손색없을듯...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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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와 주제도 참신하고 몰입도 잘돼요ㅠㅠ 항상 잘 보고있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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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이젠 기다려져요.. 김뙇님 글... ㅎ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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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8
진짜 정말 죄송한데 결말 이해가 안가요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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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1
언니가 바삭바삭 갈라져서 흙이 된거같아요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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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9
와 진짜 이 글 흡입력이ㄷㄷㄷㅠㅠㅠㅠ 잘읽고갑니다 이런글 너무 좋아요!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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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0
대박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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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1
아..ㅠㅠ 글잘보고있어요..ㅠ 언니불쌍하다 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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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2
허..완전 소름돋아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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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3
슬프다....근데 또 다음글이 기다려져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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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4
헐......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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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5
민혜인데 중간에 민서라고 되있네요! 벌레누나에 이어 화분언니라니ㅠㅠ 이번 결말은 좀 슬프네요 다음글도 기다릴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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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6
어메나.......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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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7
중간에 언니가 아니라 누나라고 되어있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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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8
단편집 내셔도 될꺼 같아요!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으면 좋겠네요ㅎㅎ 책 나오면 사서 보고 싶은뎅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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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9
허류ㅠㅠㅠㅠㅠㅠ잘봤습니다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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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0
재미있긴 한데 결말이 이해가 안되네요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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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1
헐 대박 몰입도 ㅏㅇ이에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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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2
어우 너무 슬프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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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3
사람은 흙으로 빚어져 태어나 흙으로 돌아간다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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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4
어떡해......ㅠㅜ
항상 잘읽고있습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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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5
헐 짱잼 몰입도 짱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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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6
헐...대박이야 잘읽고있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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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7
ㅠㅠㅠㅠ한줌의 흙이 되었네요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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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8
오유에 올라오는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_ _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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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9
진짜 기다려져요bbb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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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1
재밌게읽었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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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2
헐......진짜잘쓰신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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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3
헉 어떡해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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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4
와ㅠㅠ진짜 김뙇님은 믿음이죠ㅠㅠ 잘보고있습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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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5
항상 잘 쓰셔서 집중하면서 보게되네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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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6
ㅜㅜㅜ뭔가슬프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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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7
ㅠㅠㅠ 슬프내요.. 그리고 잘 읽었습니다.쓰니님글의 뭔가 기묘하면서도 끌리는 느낌이 좋습니다.다음글도 기대하겠습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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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8
너무 불쌍하네요 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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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9
으어...언니 불쌍해..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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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0
ㅠㅠ영국에서 태어났다면 조금 괜찮았을까ㅜ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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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1
ㅡ아.....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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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2
매번 잘 읽고 있습니다! 재밌어요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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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3
이거 오유에서나온글이에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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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3
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언니불쌍해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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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4
정말 재밌네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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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5
언니 불쌍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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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6
언니 자살한건가?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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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7
헐..ㅠ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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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8
ㅠㅠㅕㅠㅠ대박이네여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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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0
진짜 글잘쓰심 ㅠㅠㅠㅠ 언니 안타깝....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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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2
언니 불쌍해요ㅠㅠㅠㅠㅠ다들 안타깝고 막ㅜㅜ 남자도 참 이해 안가는건 아닌데 나빴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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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5
김뙇님 너무 좋아요 ㅠㅠㅠㅠㅠ 언니가 흙이 됐구나 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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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7
헐허ㅓㄹ헗러헐헐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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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8
우와 재밌게 잘 읽었어요 가슴 아프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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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9
으어...ㅠㅠㅠ대박....대박...!!!!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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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0
우앙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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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1
ㅠㅠㅠㅠ몰입짱이에여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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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2
안타깝다....앞빌라남자 나빳어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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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3
와...................................대박ㄱ....................................................................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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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4
ㅜㅜㅜㅜㅜㅜㅜㅜ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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