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예쁜 여동생을 둔 오빠들은 동생을 소개시켜주지 않겠냐는 권유를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대게 농담이지만 그 중에는 농담 같은 진담도 있고 때론 웃음기를 싹 빼고 정말 진지한 마음으로 소개를 부탁해오는
사람도 있어 오빠들을 난처하게 한다. 그 사람의 됨됨이가 어찌 되든 동생이 결정할 일이지, 자신이 동생에게 누구를
만나고 말고까지 정할 수 있는가. 혹시 그 사람의 됨됨이마저 제대로 된 놈이 아니라면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효석은 바로 그런 상황에 처한 오빠로, 친구인 유성으로부터 동생을 소개 시켜달라는 난처한 부탁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유성과 불알친구로 어릴 적부터 함께 해온 사이라 서로 모르는 것이 없지만 바로 그 점이 문제였다.
사람 자체가 악하다고 할 순 없지만 지나친 집착으로 인해 매번 연애에서 쓴 맛을 보는 성격을 가진 유성.
헤어질 때마다 그 년을 죽이고 말겠느니 자신 앞에서 큰 소리 지르는 유성을 봐온 효석인데 자신의 여동생인
효정을 소개시켜달라니 마음이 선뜻 내키지 않는 건 당연한 일이다.
우리 동생 남자에 관심 없다,
내가 거절하고 싶어서 거절 하는 게 아니라는 말과, 앞으로 이런 부탁하지 말 것을 은근히 전달하고자
효석은 동생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동생의 답변을 스스로 대신했다.
문자 메시지가 제대로 전송되었다.
이걸로 대답은 끝이야.
효석은 여전히 마음 한 켠이 찜찜했지만 이 이상의 수는 없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ㅡ
우리 동생 남자에 관심 없다,
도착한 문자에 주체할 수 없이 벌컥거리는 심장을 겨우 가라앉히며 확인했더니,
겨우 이 한 줄이라니.. 내 가장 친한 친구라는 녀석이 날 이렇게 홀대할 수가.
유성은 너무나 억울한 마음에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자신과 가장 오래 죽마고우로 지낸 효석이라면 내가 믿을만한 놈이라고
생각할 줄 알았는데.. 효정이랑 초면도 아니고!
유성은 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아주 한참 지나서야 마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냥 직접 고백할까? 어차피 효석이가 무슨 상관이야,
효정이랑 나만 서로 좋아하면 끝이고.. 내 인간성이야 효석이 제일 친한 친구면 되는거잖아,
집이 먼 것도 아닌데 확 고백하면 되는거지,
유성은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용기를 스스로에게 북돋았지만 마지막엔 생각을 접었다.
이상은 높아질 수 있어도 현실은 안 바뀐다고,
효정의 외모나 됨됨이에 비해 자신이 모자란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앞에 다가간다면 용기가 떨어질 건 분명했다.
그 예쁜 얼굴과 나긋나긋한 말투 앞에 능청스럽게 굴 수 있을만큼 자신있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친오빠이자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인 효석에게 부탁하면 긍정적인 자리를 한 번 만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해서 물어본 건데.. 이렇게 단박에 거절당할 줄이야.
그래, 남남이라 이거지.
너랑은 놀긴 같이 놀아도 여동생 소개 시켜주기엔 한심한 놈이라 이거지,
세상 참 믿을 놈 하나 없다더니.
이쁜 니 동생 천년 만년 감싸고 돌아라. 얼마나 멋진 놈 만나나 보자.
ㅡ
그 일이 있은 뒤 효석은 친구 사이의 관계에 금이 가지 않길 원했기에 전처럼 살갑게 유성을 대했지만
유성은 효석을 차갑게 대했다. 오히려 다른 친구들에게 티날 정도로 가깝게 굴고, 그 사이에 효석이 끼면
대놓고 정색하기 일쑤였다. 그럴수록 학우들은 유성을 멀리하고 효석의 인간성을 높게 쳐주고 있었으나,
유성은 그런 효석을 더욱 미워했다. 사내들끼리 우정치곤 매우 유치했지만 유성은 원래 그런 성격이었고,
효석은 그런 결점마저도 안고 가려했기에 유성을 전혀 탓하지 않았다.
" 유성아, 학교 마치고 노래방 가자. "
" 노래방은 무슨.. 왜 나랑 가냐? 내가 그렇게 할 짓 없어 보이냐?
내가 뭐 아직도 네 맘에 들어서 어떻게 한 번 해보려고 할 일 다 버리고 네 딸랑이처럼 따라다닐 것 같냐?
예쁜 네 동생이랑 동생 친구들이나 불러서 니나노, 즐겁게 노세요. 난 간다. "
" 야, 아직도 기분 상했냐? 내 동생이 남자 만날 마음이 없다는데 어쩌냐? "
" 내가 이냐? 효정이가 그랬다고? 말이나 해봤냐? 그냥 솔직히 말하라고.
내 성격, 내 외모, 딱 봐서 효정이랑 어울리지도 않는다고. "
" 그런 거 아니야. 니가 오해하고 있는거야. "
" 무슨 오해. 좋게 포장해서 말하겠지 또. 하지만 결국은 그런 이유 아닌가?
그래서 내가 너한테 욕이라도 했냐? 신경 꺼줬잖아. 그러니까 너도 꺼지라고. "
" 야, 내가 소개시켜준다고 해서 잘 될지는 모르는거고, 동생이 아직 연애하기엔 걔도 일러,
우리 부모님한테 어떻게 말할건데? 숨기는 것도 좀 아니잖아. 그리고 우리가 싸운 것도 아니고,
이런 거 가지고 우리 우정이 흔들리는 건 웃긴 일이잖아. 우리가 몇 년 친구냐? "
" ... 몰라. 아무튼 노래방은 안 가. "
" 그래, 기분 너무 나빠하지마라. 내가 왜 친구를 나쁘게 생각하냐? "
뒤도 돌아보지 않고 교실을 나서는 유성,
그 뒷모습을 씁쓸히 쳐다보는 효석의 생각은 조금씩 달랐다.
유성은 얼마 전 우연히 길에서 만난 효정을 떠올리며 걸어가고 있었다.
유성 오빠 오랜만이에요, 늘 하던대로 살갑게 인사하는 모습에 정작 자신은 얼굴이 붉어져
그걸 숨기느라 어, 어, 응.. 하고 바보같이 얼버무리곤 결국 전봇대 뒤에 숨어서
멀어지는 효정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 저렇게 큰 거지, 어릴 때 꿀밤이나 먹이고
아이스크림 심부름이나 시켰던 자신을 저절로 탓했다. 완전히 아가씨가 됐잖아.
생각할수록 아쉬웠다. 효석이 자리만 마련해주면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긍정적으로 봐줄 거 아냐.
효정이가 자기 오빠 친한 친구인 걸 뻔히 아는데 효석이 몰래 나와서 집적댈 수도 없고..
효석은 마음이 몹시 무거워 유성이 교실을 떠나고도 한참을 멍하니 그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이 완벽할 순 없지.. 솔직히 유성이 말이 틀렸다고 부정은 못 하겠다. 유성이 생긴 거,
능력, 그런 걸 내가 따지고 있었던걸지도 모르겠네. 완벽한 사람이 세상에 어딨겠어..
저 놈이 그정도로 나쁜 놈이었다면 내 친구로 오래 남지도 않았겠지. 생각 다시 해보자.
어차피 동생이 자기 마음에 안 들면 동생이 결정할 일이고.. 최소한 자리 정돈 주선해줄 수 있는 거잖아.
괜히 동생 인연 내가 끊고, 친구와 우정 끊고 할 바에야.. 언제 한 번 말이라도 꺼내봐야겠다.'
둘의 관계는 그렇게 끊긴 것도, 붙어있는 것도 아닌채로 흘러가고 있었다.
ㅡ
그 날 저녁, 시내에서 일어난 큰 교통사고로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거나, 부상을 당했다.
효석과 효정의 부모님도 그 사고에 휘말렸고, 사고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 일은 피했지만
상태는 심각했다. 차량이 일으킨 폭발로 인해 전신에 심각한 화상을 입고 병동에 이송된 것으로,
먼저 연락을 받은 효석이 부모님의 곁을 지키고 있었지만 효석은 부모님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단 걸
직감할 수 있었다.
급한대로 새까맣게 타버린 피부를 긁어내고 전신에 감아놓은 붕대,
효석은 부모님의 손을 잡아드릴 수 조차 없는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곧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버릴 거란 예감이 들어 너무 두려웠다.
' 유성아 우리 부모님 화상으로 입원하셨다. 효정이한테는 말해놨는데,
혹시 올 수 있으면 와줄래. 미안하다. 너말곤 내가 의지할 사람이 없다. '
문자 한 통을 유성에게 보냈다.
부모님을 잃기 직전인 지금 효석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버팀목은 가장 친한 친구 뿐이었다.
ㅡ
어떻게 이런 일이.. 유성은 차마 답장을 하지 못 하고 제자리를 빙빙 돌았다.
효석이 집에 드나들 때마다 매번 잘 해주시고, 아들처럼 대해주시던 효석이네 부모님이..
그 와중에도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지금 당장 간다는 말을 못 전하는 자신이 한심했지만
일단 겉옷 하나를 걸쳐입고 유성은 집 밖으로 나섰다.
효정이 병원에 아직 가지 않았다고 하니 경황없을 동생을 챙겨서 데리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ㅡ
헉, 헉,
한참을 달리면 굳이 버스를 타지 않고도 도착할 수 있는 가까운 옆 동네였기에
유성은 효석의 집 앞에 도착해 숨을 헐떡였다. 집에 불이 켜져 있었다.
창문틈으로 살짝 들여다보니 효정이가 가방을 정신없이 챙기고 있었다.
입은 옷이라곤 속옷 한 벌을 걸친게 전부였다.
" ... "
이러면 안 돼, 지금 쳐다볼 게 아니라 들어가서 효정이를 도와야지.
가방을 챙겨서 얼른 병원에 가서 효석이 부모님 가시는 길을 지켜드려야지.
자, 들어가는거야,
...
발이 움직이지 않았다. 유성은 자신이 왜 그러고 있는지 스스로도 명확히 설명하지 못 했다.
그저.. 귀신에 홀렸다고 할까.. 자신이 그토록 짝사랑하던 효정의 나체를 보고 있기 때문일까,
어리기만 하던 동생이 여자로 보였던 시점부터 마음 속에 싹튼 욕망의 눈동자가 구르고 있었다.
살코기 냄새를 맡은 하이에나처럼 탐욕스러운 눈길이 효정의 어깨선을 따라 내려가고 있었다.
뭐하는거야, 정신차려, 뭘 보고있는거야, 시간이 없어,
들어가서 짐 챙겨서 애 택시 태워서 같이 가야지, 효석이가 기다려,
부모님 잘못되기 전에 빨리,
...
조금만 더.. 괜찮잖아?
난 지금 나쁜 목적으로 여기 있는게 아니니깐, 응?
친구 도우려고 온거야, 내가 어떻게 한 것도 아니고 쟤가 저러고 있을 뿐이고,
난 그냥 조금 늦게 들어가는거야, 아주 잠깐 여기서 내 동생이 맞는지 아닌지 확인하는 것뿐이야.
스스로를 합리화하는 말과는 다르게 점점 동생이 아닌 남남을, 남남도 아닌 먹잇감 하나를 바라보듯
유성의 눈빛이 시시각각 변했다. 결국엔 선한 마음은 온데간데 없고, 아주 어둡고 음기에 가득찬
눈동자가 유성의 생각마저 굳혀버렸다.
메두사의 눈을 똑바로 본 듯, 돌처럼 굳어버린 유성이 움직였을 때 이미
유성은 누군가의 친구도, 혹은 인간도 아닌, 메두사만도 못 한 괴수에 불과했다.
'딱, 딱 한번만, 응? 괜찮잖아? 딱 한 번인데, 지금 아니고선 영영 기회는 없어.'
스스로도 그런 괴물이 되어버린 자신을 아는지 모르는지 얼굴을 꽁꽁 싸맨 모습으로,
유성의 형상을 한 괴수가 집안으로 벌컥 들어섰다.
딱 한 번의 단말마와 함께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리곤 집밖으로 사람의 실루엣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ㅡ
들썩, 들썩!
눈동자에 촛점을 잃고 그저 힘없이 누운 채 괴한의 체중을 몸으로 받고 있는 효정,
그녀의 세상은 하루만에 두 번이나 무너져야 했다.
부모님의 비극, 그리고 그녀 자신의 비극으로 인해.
" 헉, 헉~ "
마지막에 몸을 활처럼 굽히며 끝까지 자신의 욕정을 채운 괴한이 바지 지퍼를 급히 올렸다.
처음에 반항하던 효정을 다루기 위해 주먹으로 몇 번을 갈겨대느라 여기 저기 터져있는 효정의 얼굴에
어떤 미안함을 표하지도 않고, 첫 사랑을 꿈꾸며 소중히 가꿔온 입술을 게걸스레 핥아대던 끔찍한 혓바닥을
쩝쩝거리며, 괴한은 집 밖으로 급히 달아났다.
효정은 마지막 자세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워있었다.
멀리 떨어져있던 핸드폰에 연이어 도착하는 메시지는 다급한 오빠의 문자였다.
부모님이 위독하시다고,
지금 어디 있느냐고.
오빠는 지금 어딨어? 왜 내 곁엔 지금 아무도 없어?
효정의 눈물이 말라붙은 뺨 위에 다시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피투성이가 되어 아려오는 사타구니를 겨우 붙잡고 일어나 가방을 억지로 억지로 챙기기 시작했다.
엄마, 아빠,
무서워요,
ㅡ
망할, 망할,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거지?
난 사람 새끼도 아냐,
엄마 아빠 입원해있는 병원 가려고 가방 챙기던 애를,
게다가 처음이었다니..
난, 난, 그냥 걔 정도면 이미 경험은 많을 거라고 생각했지,
때린 건 사고였어,
그렇게까지 반항할 줄 몰라서 어쩔 수 없었다고,
그냥.. 그냥 너무 자극적이어서 그랬어,
아씨, 어떡하지?
DNA 검사해서 나오면 어떡하지?
병원에 안 간 건 뭐라고 설명하지?
걔가 내 얼굴을 알아봤으면 어떡하지?
혹시 경찰이 어제 어딨었냐고 물어보면 뭐라고 설명하지?
문자 확인하고도 왜 아무런 연락을 안 했냐고 하면?
그 집 가는 길에 CCTV가 있을텐데, 찍혔을텐데,
그러려고 간 게 아니라서 갈 때는 얼굴도 안 가렸는데,
자수해야하나? 아니야, 절대 그럴 순 없어,
그냥, 그건 그냥 사고였어.
내일, 그래.. 오늘은 넘어가고 내일 병원에 가자,
내일 병원에 가서, 사실대로 얘기하자.
어차피 걔네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면 의지할 거 나 밖에 없다매,
응? 제일 친한 친구 감방 보낼거야? 에이~
그냥 우리 셋이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거야,
내일 병원에 가서, 어제 미안했고 내가 죽일 놈이다,
죽을 때까지 맞고, 끝내자.. 설마 감옥에야 보내겠어?
날 죽일 놈은 아니니까 그냥 죗값만큼 두들겨 맞으면 되겠지?
아.. 심장 쫄려..
내가 왜 그랬지?
진짜 그땐 그냥 미쳐서 그랬던거야,
그땐 내가 아니어서 그랬어,
그러니까 내 잘못 아냐,
그땐 정말,
뭔가 나사가 하나 빠져있었던 것뿐이야.
밤새도록 그 순간의 환영이 계속되었다.
효정의 사타구니에 있던 큰 점이 이상하리만큼 뇌리에 남았다.
차마 자신 때문에 통곡하는 얼굴은 바로 쳐다보지 못 하고, 동물처럼 행위에 열중하기 위해서
쳐다본 사타구니의 큰 점이 계속 떠올랐다.
시작부터 끝까지 좋은 기분은 커녕 자신을 갈수록 죄어오는 죄책감이 올가미처럼 느껴졌다.
끝내 그 올가미에 목을 조여 숨이 끊길 것만 같은 불안감에 유성은 머리카락을 몇 번이고 쥐어뜯었다.
ㅡ
유성이 사과할 필요는 없게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조회 시간, 담임 선생은 효석의 자살 소식을 알려왔다.
효석이네 부모님이 화상에 의한 쇼크로 인해 끝내 돌아가신 뒤,
그 날 새벽 효석이와 효정이 남매가 세상을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는 유서 한 장을 남기고
나란히 투신했고, 이를 목격한 사람들이 급히 신고를 했지만 남매 모두가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내용으로,
반 분위기가 몹시 침울해졌고 특히 유성의 표정은 본인이 죽은 시체가 된 것처럼 창백했다.
친구들은 평소 가장 친했던 친구였던 두 사람이 한참 사이가 소원하던 중 벌어진 일이라
유성이 가장 슬플 수 밖에 없을 것이라며 유성을 계속 달랬지만,
유성의 낯이 창백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친구를 잃은 슬픔 같은 고귀한 슬픔이 아니라,
친구에게 믿음을 배신으로 갚고, 친구의 여동생을 겁탈한 죄책감을 풀 길이 없어 괴로워하던 와중에
남매가 나란히 삶을 버리자 돌이킬 수 없어진 죄책감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 날 수업시간에 유성은 도무지 집중할 수 없었고,
그러다 빠져든 짧은 꿈 속에서 유성은 계속 기억에 남았던 그 사타구니의 큰 점을 보았다.
헉, 헉, 넌 내꺼야, 허리를 짐승처럼 흔들었다. 만족스러운 정복자의 표정으로 얼굴을 쳐다보니
이미 효정은 익사한지 오래 된 듯 전신이 퉁퉁 불고 이리저리 터져 무언가 잔뜩 새어나와있었다.
" 으아아아 ! "
온 몸이 식은 땀으로 번진 채 그 자리에서 발작을 일으킨 유성은 그 날 조퇴할 수 밖에 없었다.
ㅡ
죄송합니다, 용서해주세요,
두 손을 싹싹 빌며 유성은 교회 기도당에서 하염없이 용서를 빌고 있었다.
어쩔 땐 절에 가서, 어쩔 땐 성당에서, 고해성사도 해보고,
상담도 받아보고,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게시판에 장문의 용서 편지도 써보고,
두 사람이 자살했다는 다리 위에 가서 국화꽃도 바쳐보고,
하루 종일 빌고 나면 그나마 죄책감은 더 했다.
그러나 가끔씩 꿈 속에 두 사람이 나타나는 것만은 막을 수 없었다.
그 꿈을 꾸는 날이면 유성은 누가 보면 정신병자라고 생각할만큼 허공에 대고 용서를 빌었다.
그런 세월이 일년, 이년,
마침내 십년을 넘어가도록..
ㅡ
응애~ 응애~!
" 아~ 나왔어요! 나왔어요, 예쁜 공주님이에요~ "
" 여보! 우리 공주님이래! 와, 와하하~ "
" 자기야.. 우리 애기.. 보여줘.. "
유성의 아내는 긴 진통 끝에 예쁜 딸아이를 순산했다.
유성은 그 옆을 간절한 마음으로 지키다 아이의 첫 울음소리에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안아들었다.
" 아, 내 아이라니.. "
사랑스러운 눈길로 아이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살피던 유성은 하마터면 아이를 떨어뜨릴 뻔 했다.
유성이 휘청거리자 옆에 있던 간호사들이 어멋, 하고 황급히 유성을 부축했다.
" 아니, 아기는 부인이 낳았는데 왜 남편이 휘청거려요? "
의사의 농담에 모두 하하 웃었지만 유성은 놀리든 말든 굳은 표정이었다.
그 의미심장한 표정에 몇 몇이 이상한 눈치를 채고 유성의 얼굴을 살폈다.
' 아니야.. 우연이야, 그냥 우연이야.. '
유성은 미칠듯이 심장이 쿵쾅거렸다.
자신이 앉고 있는 자신의 딸아이,
그 사타구니에 박힌 큰 점..
그 점은 효정의 점과 너무도 완벽히 닮고 있었다.
평생을 괴롭혀온 그 날의 꿈에서 매번 봐온 점이라 착각할 수조차 없었다.
위치마저 똑같은 큰 점을 볼수록 정신이 아찔해졌다.
ㅡ
아이는 나날이 자라나, 기고, 서고, 걷고..
한창 귀염을 떨어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을 시기가 되었다.
하지만 유성은 딸에게 도저히 정을 줄 수가 없었다.
아내나 할아버지 할머니 앞에선 방긋방긋 웃는 자신의 딸이 자신과 마주하기만 하면
응애,응애, 하며 서러운 눈물을 뚝 뚝 떨어뜨리는 탓에 가끔 아비로써 한 번 안아보려고만 해도
정나미가 떨어지기 일쑤였다. 혹시 억지로라도 안으면 손톱으로 얼굴을 긁어놓는데,
그런 순간이면 저절로 손이 올라가는 것을 느끼고 그 다음부턴 아예 안으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아이를 낳는 순간까지 행복했던 신혼 부부는 그때부터 싸우기 시작했다.
왜 아이를 남의 아이 대하듯 정없이 대하냐는 아내,
내가 언제 그랬냐고, 애가 싫어하니까 안 하는 것 뿐이라는 남편,
처음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속을 터놓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언성이 높아졌고,
딸아이가 커서 점차 여자 아이의 모습을 갖춰갈수록 유성은 더욱 딸을 피했다.
딸아이의 사타구니를 바라보면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
그리고 꿈 속에 나타나는 익사한 시체를 범하는 자신의 추악한 모습,
그러면 환청으로 들려오는 그 날 효정의 흐느끼는 울음소리.
결국 소파가 아니라 일어서서 언쟁을 벌이게 되었고,
딸이 말을 배우기 시작해 욕 한 마디라도 함부로 해선 안 될 시기에는 욕뿐만이 아니라
서로간에 손찌검이 오가는 지경이 되고야 말았다.
ㅡ
" 당신은 딸자식도 남 보듯 하고, 나는 원수 보듯이 하고, 대체 당신은 누구 사랑해?
당신은 누구 애인이야? 나말고 누구랑 사랑을 나눴길래 그렇게 평생을 못 잊고 매일 밤을 앓아? "
" 무슨 쓸데없는 소리야, 내가 우리 가족말고 누가 있다고 그래.
왜 또 거짓말을 지어내서 날 괴롭혀! 남편 괴롭히는 건 오히려 당신이지! "
" 아니, 당신 분명 뭔가 있어. 남들 아빠는 딸바보라는데, 당신 딸 바라보는 눈..
그거 딸 보는 눈 아니야. 나하고 당신하고 낳은 딸인데, 왜 남 바라보듯 바라봐?
그리고, 그 눈빛은 뭐야? 왜 무서워하는데? 뭐가 무서운데? 응? 말해봐! 말해보라고! "
" 이 여자가 진짜 왜 이래, 뭐가 무서워! 뭐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하잖아!
돈 다 벌어다주고, 당신 말 어긴 것 하나 없는데 정말 이러기야? "
" 기분 좋게 좀 쳐다봐 줄 수 없어? 우리 딸이잖아, 괴물 아니잖아.
근데 왜 그렇게 쳐다봐! 아무 감정 없는 짐승 같아! 음식 쳐다보는 것 같다고! "
" 헛소리 좀 그만해, 미쳤어? "
'짐승'이란 단어에 흥분한 유성이 아내의 뺨을 후려치자,
비죽비죽 울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딸이 괴성을 질렀다.
" 하지마!! 엄마 때리지마!! 아빠 왜 엄마 때려!!
나만 미워해! 왜 엄마까지 미워해! 아빠 미워!! 아빠 나빠!! "
헉, 헉,
유성은 아내의 울음과 딸아이의 괴성이 그 날의 비명으로 들려왔다.
세상이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건 흡사 세월을 거꾸로 돌리는 듯했고,
유성은 어느새 자신이 평생을 시달려온 그 날 밤의 자신으로 돌아간 기분을 느꼈다.
" 하지마!! 하지마!! "
효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디야, 어디야.. 이 년- 그래, 죽은 척 했지 그간~?
사실 살아있었지? 근데 나 일부러 괴롭히려고 죽은 척 한거지?
오호라 저깄네,
" 왜 그래! 오지마!! 왜 그래!! "
효정의 육신은 이미 물에 퉁퉁 불고 시간이 오래 지나 썩어문드러져있었다.
하지만 고통에 찬 표정만은 그대로 남아, 입이 찢어져라 울부짖는 모습이 몹시 흉물스러웠다.
" 이 년, 이젠 안 무섭다! 흐흐흐! "
" 왜 그래, 진짜!! "
" 요 년 너 때문에 내가 평생을 시달렸다! "
" 아욱.. "
" 그게 그렇게 죄였냐! 그게 뭐라고! 그것 때문에 내 평생이 망가졌어,
너희들 때문이야! 너희들! "
유성이 눈을 부릅 뜨고 효정의 목을 졸랐다.
그 날보다 더 비정한 눈빛으로 효정의 몸을 훑었다.
사타구니에 큰 점,
오호라, 역시 맞구나! 이 년이구나!
" 죽어버려, 확실히 죽어버려!! 꿈 속에서조차 살아움직이지말고,
아주 죽어버리란 말야!! 으아아악! "
고통스러워하는 효정의 목을 쥔 채 유성은 효정의 두 눈에 손가락을 움푹 집어넣었다.
마치 젤리를 떠내듯, 두 손가락에 깊숙이 들어가 바닥 구석구석을 긁었다.
찌걱찌걱대는 소리와 함께 밖으로 으깨진 눈알이 흘러나왔다.
" 와하하하! 꼴좋다! 망할 놈, 망할 년,
너희 둘이 날 가지고 논거잖아, 내가 뭘 잘못했는데!!
너희가 평생 날 괴롭힌거야, 내가 갚았다, 이제 내가 이겼다!
다신 내 꿈 속에 못 나타날걸, 난 이제 죗값 다 치룬거야~! "
깔깔깔 웃던 유성이 순간 '헉' 하고 정신을 차렸다.
내가 무슨 짓을..
내가 방금 대체 뭘..
몸을 부르르 떨며 유성이 뒤를 돌아봤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아내..
그리곤 천천히 고개를 앞으로 돌렸다.
사타구니에 큰 점..
이미 이 세상의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 이 작은 목숨은..
내.. 딸...
" 아.. 아니야.. 여보.. 아니야.. 이거, 실수야..
실수.. 그 날처럼.. 그냥, 그 날하고 똑같이 실수한거야,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야, 응? "
유성이 천천히 다가가자 아내는 질겁하며 뒤로 기어갔다.
" 왜 그렇게 쳐다봐, 어! 내가 강간마야? 살인마야?
그냥 실수라고, 어쩌다 보니 그런거야, 홧김에 그런거야!
나도 괴로워, 나도 평생을 괴로워해왔어, 언제까지 죗값 치뤄야하는데,
그만 용서해주라고! 용서해주라고! "
" 으..흑흑.. "
공포에 질린 아내의 표정을 보며 유성은 다시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엔 아내를 향해 손을 뻗치지 않았다.
평생을 어디선가 자신을 쏘아보고 있는 눈초리가 점점 커져왔다.
원망하고 있다고, 저주하고 있다고,
평생 용서를 빌어도 용서받지 못 하겠지,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젠장,
그만 나 좀 용서해줘!
내가 잘못했다고,
그만 좀 용서해줘! 부탁이야 제발, 나 좀.. 용서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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