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만
약속한 시간이 40분 정도 지났다. 또 어디서 헤매고 있으려나. 매번 따라붙는 팬들을 따돌리느라 한 시간 이상을 거리에서 허비하는 그다. 처음에는 매번 약속에 늦는 야속했지만 지금은 익숙하다. 또 익숙한 만큼, 오래 묵은 상처들이 틈만 나면 들쑤시고 올라온다. 지금처럼 언제 올 지도 모르는 그를 기다리는 이런 시간이면 더욱.
두 모금도 채 마시지 않은 라떼는 차갑게 식어버린 지 오래고 그는... 아직도 보이질 않는다. 올 때가 됐는데, 이쯤이면. 숙소와의 거리를 생각해보아도 오늘은 좀 많이 늦는 편이다. 슬슬 걱정이 되지만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우리 둘 사이의 암묵적인 약속이다. 그가 아무리 늦더라도 재촉하지 않는 거. 그는 늘 바쁘니까, 내가 이해해야 한다는 거.
"저 여자, 김성규 여자친구 아니야?"
멍 때리고 있는 내 귓속을 파고드는 한 목소리. 아차 싶었다. 언론에까지 얼굴이 다 공개된 마당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곳에서 훤히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니. 실수다.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누구? 김성규?"
"그래. 인피니트 김성규. 왜 전에 일반인 여자친구 있다고 공개해서 난리였잖아. 학생들 학교 안 간다고 집단 시위하고."
"아~ 걔. 그럼 저 여자가 그 여친이야?"
"맞을 걸? 처음에 기사 뜨고 그랬을 때 팬들이 저 여자 신상 털어서 올린 거 본 기억 나. 얼굴 확실해."
"연예인 여자친구치고 평범하게 생겼다."
두 사람의 대화 소리가 좀 컸는지 카페 안에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나를 돌아보는 시선에 숨이 막힐 것 같다. 고개도 못 들겠다. 물어볼까? 말 걸어볼까? 점점 확신에 차 굳어지는 소리들에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애써 담담하게 걸어서 카페 밖으로 나오자 핸드폰이 울린다. 성규, 다. 긴장이 탁 풀렸다.
"...여보세요?"
"미안미안. 오래 기다리게 했지? 지금 한 오 분 정도면 도착할 것 같거든? 아까 어디라 그랬지?"
"....자리 옮기려고. 한 곳에 너무 오래 있었더니 눈치 보여서."
"그래? 그럼 어디로 갈까?"
"일단... 만나서 정하자."
길가에 서서 좀 기다리고 있으려니까 성규의 차가 내 앞에 스르르 와서 섰다. 살짝 창문을 내린 틈으로 성규의 얼굴을 확인하고 올라탔다.
“뭐 안 쓰고 나왔어?”
“어...깜빡했어.”
“이거라도 써. 내가 얼굴 잘 가리고 다니랬잖아.”
자기가 썼던 모자를 내게 벗어주는 성규. 평소 같으면 도로 모자를 집어 던지며 안 쓴다고 장난을 쳤을 나지만 잠자코 받아서 덮어 썼다. 어디 갈까. 조금은 들뜬 목소리로 묻는 성규에게 대답했다.
"한강, 갈래?"
평일이고 좀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한강에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좀 이른 시간에 오면 운동하는 사람들, 데이트하는 연인, 가족, 친구들. 항상 북적거리는 데 오늘따라 참 조용하다. 사람들이 이렇게 적으니 괜한 용기가 생겨서 밖으로 나왔다. 성규는 평소처럼 농담을 하고 장난을 걸고 이것저것 말을 붙이지만 내가 자꾸 단답형으로 대답하자 민망해졌는지 자기도 말을 아낀다. 얼마나 걸었을까. 주차해 놓은 차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걸어왔을 때, 불쑥 그를 불렀다.
"성규 오빠."
"어. 어? 어?? 오빠? 너 지금 오빠라고 불렀냐? 웬일. 처음 봤을 때 빼고는 줄곧 야야 거리더니. 뭐야, 무슨 말 하려고."
그가 과장되게 놀란 척을 한다. 하긴 김성규란 사람에 대해서 조금 알고 나서부터 나는 바로 말을 놨다. 어쩐지 오빠라고 부르기가 낯간지러웠다. 그래서 조금은 건방지게 먼저 말을 놓고 두 살 많이 오빠에게 함부로 이름을 불러댔지만 성규는 그마저도 사람 좋게 웃으며 받아줬다. 가만 보면 내 응석을 성규는 아닌 척 하면서 다 수용해준 셈이다. 그의 희생을 생각하니 가슴이 찌릿거린다.
“여기 좀 앉아 있다 갈래?”
내 제안에 순순히 계단을 걸어 내려와서 내 옆에 앉는 성규. 또 한참을 말없이 잔잔히 넘실대는 까만 강물만 바라봤다. 오늘따라 말이 없는 나 때문에 성규도 괜히 내 눈치를 본다. 힐끔힐끔 쳐다보는 성규에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며 말했다.
".....나, 힘들다."
성규가 고개를 돌려 나와 마주봤다. 잔뜩 당황한 눈치가 역력한 얼굴. 평소보다 배는 커진 눈. 살짝 찌푸린 미간.
"김성규 여자친구 자리, 나한테 안 어울리는 거 같아."
"야. 넌....아니, 무슨 말이 그래. 왜 갑자기. 너 뭔 일 있어?"
"일은... 그런 거 없어. 근데,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나한테 오빠가 너무 아깝더라. 난 오빠한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더라고. 하다못해 내가 말 한 자리라도 예쁘게 하길 해? 두 살이나 어린 게 야야 거리면서 버릇없게 굴고."
"....내가 뭐 너한테 바래서 이래? 아니잖아. 알잖아. 니가 나 좋아해서 만나는 것처럼, 나도 그냥 너 좋아해서 만나는 거야. 뭐 어떻게 해주길 바란 적 없어."
"오빠."
"그 오빠 소리 좀 그만 해라. 그냥 평소처럼 김성규 김성규 해. 진짜 그거... 너한테서 듣기 싫다."
성규가 화가 났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머리를 탈탈 털면서 저만큼 걸어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내가 손을 끌어당기자 다시 자리에 앉는 성규. 그를 진정시키려 말을 이었다.
“싫어져서 그런 거 아니야. 내가 힘들어서 그래.”
“.....무슨 말인지는 알겠어. 근데, 너 지금 헤어지자는 말 하려는 거면 안 돼.”
“오빠.”
“그 오빠 소리 좀 제발!”
기어코 성규가 큰 소리를 냈다.
“왜 그래. 내가 너한테 뭐 잘못했어? 왜 갑자기 이래. 이러지 말자. 잘못한 거 있으면 내가 사과하고,”
“잘못한 거 없어. 말했잖아. 내가 오빠에 비해서 너무 모자라서 그래. 오빠 만나다보면 내 자신이 너무 초라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아무래도 난 그냥 평범하게 살아야 될 운명인가봐. 갑자기 이슈되고 여기저기서 이름이 오르내리고 하는 거, 적응도 안 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 그게, 그렇게 힘들었어?”
“어딜 가나 내 이름이 아니라 김성규 여자 친구로 불리는 거, 모르는 사람한테 욕 듣는 거. 기분이 좋은 일은 아니더라고.”
하. 긴 한숨을 내뱉는 성규. 나도 몰래 작게 한숨을 쉬었다. 준비했던 말들을 다 해버리고 나니까... 시원한 건지 먹먹한 건지 모를 감정이 가슴 가득 차올랐다. 이제 마지막 말을 할 차례다.
“이제 김성규 여자 친구가 아니라 인피니트 팬으로, 뒤에서 내가 늘 응원할게. 꼭 잘 돼서.... 나 후회하게 만들어. 알았지?”
“.....너 진짜 내가 후회하게 만들 거야.”
애기들 투정같은 말투로 성규가 대답했다.
“그럼.... 우리 여기서 이만, 헤어지는 거다?”
내 말에 성규가 흠칫하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다. 더 화내지 않고 차분하게 내 얘기 들어줘서. 성규가 성질내고, 내게 따져 묻기라도 했으면 나는 헤어지지 말자고 말해버렸을 지도 모른다. 왠지 모를 안도감에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먼저 가볼게. 안녕. 인사를 하고 막 돌아서려는 내 팔목을 성규가 붙잡았다.
“...나 성공하면, 너 다시 잡아도 돼?”
약하게 떨리는 손, 물기 어린 눈동자.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너무 가련하고, 애절해서 나도 눈물이 날 뻔 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피하며 가볍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제야 서서히 내 팔목을 놓는 성규. 그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지만, 고개를 끄덕이고 싶었지만... 눈물이 될까봐... 후회가 될까봐....
내가 먼저 발을 뗐다. 뒤를 돌아볼 용기가 없어서 계속 걸어가기만 했다. 어느 새 얼굴에 흐르는 눈물이 느껴졌다. 헤어지면 너를 놔줬다는 후련함에 웃음이 날 줄 알았는데 눈물이 난다. 이건 기뻐서, 흘리는 눈물이겠지. 그럴 거야. 아니, 그래야 해. 내가 다시 그에게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
내가 너를 떠나는 이유.
사실 평범한 일반인인 내가 화려한 삶을 살고 대중의 시선 속에 살아가는 연예인인 너와 사귀면서 겪게 될 해프닝들은 다 어느 정도 각오를 했었다. 신상 정보가 털리고 나서 하루에도 몇 백 통씩 협박 전화가 오고, 문자가 오고, 집으로 찾아오고 했지만 다 견딜 수 있었다. 사랑한다, 사랑해. 이 한 마디면 모든 걱정과 염려가 다 스르르 풀어지곤 했다.
하지만 너와 나 사이에는 궁극적인 차이가 분명히 있었다. 나는 가진 것도 없고, 줄 건 더더욱 없어서 너를 보냈다. 사랑만으로 너를 갖기에 너는 너무 크고 아름답다. 그래서 나는 더 많은 것을 가지고 누리게 될 너를 위해서 너와 이별한다.
사랑해서 보낸다는 말...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이제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너무너무 사랑하니까, 벅찰만큼 너를 아끼니까, 넘치도록 너를 생각하니까... 너를 위해서 헤어지는 거야. 내 맘 알지?
사랑해. 그리고... 행복해.
| 더Talk |
ㅋㅋㅋㅋㅋ이걸 이제야 올리넼ㅋㅋㅋㅋㅋㅋㅋ게으름이아주터짐ㅋㅋㅋㅋㅋㅋㅋ
스아실 글잡에 원래 닉이 있는데ㅋㅋㅋ게으름 피우고 있어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걸론 차마 못 올리겠더라구요ㅋㅋ
팬픽 쓰는 거도 홍보 해야 되는데ㅋㅋ난 홍보 안 해서 고정독자 4분 밖에 없는 여자ㅋㅋㅋㅋㅋㅋㅋ
근데ㅋㅋㅋㅋㅋ내 그지같은 글 기다리실 분들 생각하면ㅋㅋㅋ그걸론 올리면 안 될 거 같아가지고ㅠㅠ엉엉ㅜㅠㅠ
그래도 원래 닉이나 이 닉이나 뜻은 똑같은 거임ㅋㅋ제 글 찾아보실 분들은 봐도 돼영 근데 그지같아......ㅠㅠㅠㅜㅜㅜㅠㅠㅠ
+발로 써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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