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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BGM 추천
IU - (Bonus track) Voice Mail (Korean Ver.)
“ ...어? “
“ 아... “
“ 아, 안녕. “
“ ... 안녕. “
한껏 어색한 몸짓과 표정으로,
“ 너 왜 안들어... 여주? “
반장을 데리고.
/
일단 생각 정리는 확실히 글렀음을 직감했다.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곳이라 안심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오늘은 주말이고, 나와 김태형의 집은 그리 먼 편이 아니었다는 점을 간과했다. 어쩐지 처음 오는데 익숙하게 느껴지더라니. 계정이 없어 어쩌다 웹으로 염탐하는 김태형의 인스타그램에 몇 번 올라온 곳이 아무래도 이 카페인듯싶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이야.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 빨간불을 켠 것은 갑자기 만난 김태형이 아니었다. 김태형만 봤다면, 우연한 만남에 놀라움이 가시고 난 뒤엔 반가웠을테니까. 반가움이 아닌 당혹스러움을 불러온 사람은 문가에서 멈춘 김태형의 등을 툭툭 치다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얼빠진 김태형의 시선을 따라가다 나와 눈이 마주친 반장이었다. 항상 활발하고 잘 웃는 반장은, 나의 기억에 따르면 아마 작년에 김태형이 무지 좋아했었다던 애였다. 작년 김태형과 같은 반이었던 친구와 놀다가 최근에 알게된 사실이었는데, 알고 나서도 나는 질투보단 수긍을 택했었다. 그냥저냥 친하게 지내던 반장이었건만,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에 이렇게 만나니 참 착잡할 수가 없었다.
그 애는 예뻤다. 외적으로 보여지는 모습 외에도 항상 밝게 웃고 다니는 모습이, 볼 때마다 느껴지는 힘찬 에너지가 참 예뻤다. 그냥 그 자체로 빛이 난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싶었다. 작년에 김태형 말고도 많이 좋아했었다고 덧붙인 말에도 난 일말의 불신도, 부정할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나였어도, 내가 김태형이었어도 내가 아닌 반장을 좋아했을 것 같았으니까.
/
“ 이건 서비스. 여자친구분이랑 같이 드세요! “
“ 얘요? 여자친구 아니에요~ “
주문을 막 마친 김태형이 직원의 오해에 웃음으로 답하며 쿠키를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갔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온 몸의 모든 감각이 김태형이 앉은 쪽으로 집중됐다. 그 상황을 멍하니 곱씹다보니 둘이 정말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기분이 바로 비참함일까. 가까스로 시선을 떼어내어 애써 죄 없는 노트에만 괴롭히다 문득 그 자리가 나였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테이블에 펼쳤던 노트와 함께 접었다. 환상일 뿐인 신기루를 좇아 사막을 헤메는 나그네보단 텔레비전 속의 풍경을 보면서 사막을 동경하는 백수가 나을 것 같았다.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반장과 김태형은 정말 많이 친한 것 같았다. 둘이 장난을 치는 모습을 보며 몇 달 전의 우리가 머릿속에서 필름 영화가 재생되는 마냥 떠올랐다. 나한테도 장난 많이 쳤었는데.
/
“ 엥? 너 그냥 완전 박지민... “
“ 와... 진짜 말넘심... “
“ 박지민을 박지민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 지민아~ “
“ 아 하지 마! “
이상하게 그날따라 텐션이 높았던 건지, 김태형은 별 것도 아닌 일로 아침부터 나를 신나게 놀려댔었다. 괜히 한 번 더 대화하고픈 마음에 틱틱대며 김태형을 건드리던 나에게 뜬금없이 박지민을 소환해댔다. 평소라면 그냥 하지 말라며 같이 틱틱대며 응수했을텐데, 종지엔 박지민이 낫냐 김남준이 낫냐를 시전하고는 그냥 나로 있으면 안되냐는 대답에 그냥 김지민 하라면서 웃어제꼈을 정도였으니.
그렇게 나를 놀리느라 1교시를 홀랑 날려먹은 뒤 김태형은 종이 울리자 마자 매점에 다녀와 초콜릿을 왕창 구매해왔었다. 평소보다 눈에띄게 넘치는 갯수에 당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어 걱정했던 나의 작고 소중한 선행세포는, 내 주변 아이들에게 초콜릿을 하나씩 다 나눠주던 김태형이 내가 내민 손은 무시했을 때 파업을 하고 말았다.
“ 나도! “
“ 엥? 박지민은 초콜릿 줘도 안 먹던데. “
“ ...? “
“ 지민이는 패스~! “
시발. 김여주는 초콜릿 졸라 좋아한단 말이야. 한 교시 내내 자진모리장단으로 휘몰아치던 김태형의 놀림을 꾹꾹 참아내던 나의 인내심은 초콜릿이라는 라스트 팡을 맞고 바닥을 보이고 말았다. 나는 갈 곳을 잃은 손을 수거하고는 안 먹겠다고 선언한 뒤, 단단히 삐진 상태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실실 쪼개던 김태형은 그제서야 심각성을 느낀 건지, 내 이름을 부르며 쫓아나왔다.
교실을 나서며 습관처럼 문을 닫아버려서 바로 따라오던 김태형이 나무로 된 문에 우당탕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뒤에서 따라온 앓는 소리에 아무리 화가 난 상태라지만 나에겐 김태형의 안위(?)가 1순위였으니 다쳤나 싶어 괜찮은 거냐며 뒤돌아 사과를 하려던 찰나,
“ 야, 태형아 할리우드 액션 대박이다. “
앞에서 우리를 향해 걸어오던 정호석이 내 뒤의 김태형을 보고는 웃음이 터져 박수까지 치며 감탄했다. 정호석 덕에 이번은 넘어갔지만, 또 속아넘어갈 뻔 했다는 사실에 더욱 분했다. 저번부터 느꼈던 거지만, 올해 남우주연상은 아무래도 김태형이 받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나게 놀릴 땐 언제고, 지민이라고 부르던 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쩔쩔 매는 목소리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닳도록 부르는 내 이름이 온 복도에 울려퍼졌다. 김여주, 웃지 말자. 웃으면 지는 거야. 다시 교실로 들어가자 교복 가디건을 붙잡고 매달리기에 잡지 마, 하고 차갑게 말하며 가디건을 벗어제끼 뒤 태연하게 내 자리로 돌아갔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김태형은 정말 당황했다. 항상 능글거리던 김태형도 당황을 하긴 하는구나. 쌤통이다.
/
김태형의 난리에 그동안 못하고 있었던 숙제를 다시 재개하려 샤프를 쥐었다. 놀리는 애가 없으니까 참 조용하고 좋았다.
“ 아직두 화났어? “
딱 하나, 어느새 앞자리를 꿰차곤 시무룩한 표정으로 얼굴을 들이대며 물어보는 김태형만 빼고. 프린트의 첫번째 빈칸을 채워넣자마자 훅 들어오는 김태형의 섬유유연제 냄새에 얼굴이 점점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비상이었다. 얼굴이 빨개질 때 매뉴얼 3번, 신속히 귀에 꽂아놓았던 옆머리를 내려 얼굴을 가림으로 응급처치를 마쳤다.
“ 헐...! “
김태형은 그게 내가 아직도 화가 나 저를 보기 싫다는 뜻으로 이해했던지, 헛숨을 들이키며 염불마냥 줄줄 뱉어내던 사과마저 뚝 멈춰버렸다. 빨개졌던 나의 얼굴은 시간이 지나자 찬찬히 잘 가라앉았지만, 얼굴 색이 완전히 돌아온 후에도 나는 머리를 다시 넘길 수 없었다.
그냥, 바로 웃어버릴 것 같아서. 솔직히 앞에서 짝남이 이러고 있는데 어느 누가 안 웃을 수 있겠느냐만은.
잠시 정적, 복도에서 추격전을 벌일 때부터 너 좋아하는 거 알고 사온 거라고 먹으라며 계속 초콜릿을 쥐어주는 손을 낚아채 도로 김태형 주머니에 꽂아넣은 탓에 아직 김태형의 주머니에 가득한 초콜릿이 바스락거렸다.
“ 이... 이거 내 화이트지! “
“ ... “
“ 어어? 내 거 막 가져다 쓰구. “
“ 이제 안 쓸게 가져가. “
바스락 바스락. 점점 멀어지던 김태형에 맞춰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서서히 줄어들었다. 하도 들썩이길래 그대로 일어나는 줄 알았건만, 김태형은 자리를 고쳐잡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러고는 겨우 하는 말이 화이트였다. 아까 바빠보이길래 그냥 뒤돌아서 필통에서 말 없이 빌린 제 화이트. 주머니에 꽂혀있는 초콜릿들은 잠깐의 정적을 만회하려는 듯 더욱 격하게 바스락거렸다.
아직까지 차가운 내 반응에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음을 눈치챈 건지, 김태형은 한 층 더 시무룩한 말투로 다시 한 번 사과를 건넸다.
“ 미안해... “
“ ... “
“ 그러고 바로 주려고 그랬는데 너가 나가버려서... 아 그래서 너 잘못이라는 건 아니구... “
“ ... “
“ 이거 다 너 먹어. “
웃음을 참으며 가까쓰로 샤프를 움직여 다음 빈 칸을 채우는 동안, 김태형은 저 말을 마지막으로 주머니를 탈탈 털어 내 책상 귀퉁이에 초콜릿들을 차곡차곡 쌓기 시작했다. 책상 귀퉁이에 올려둔 초콜릿 산은 말이 없었지만, 초콜릿으로 변한 김태형 여러개가 용서해달라고 쫑알대는 것 같았다. 포장지에 그려진 호랑이 일러스트가 김태형을 닮아서였나. 하여간 맨날 꼭 자기 같은 거만 사와요.
이내 앉아있던 의자를 정리하고는 쭈빗거리며 다시 교실 앞문으로 향하다가 별안간 다시 돌아온 김태형은 잠시 어색하게 내 주위를 맴돌았다. 화이트를 돌려달라는 건가 싶어 화이트를 집어 앞으로 내밀자, 받으라는 화이트는 안 받고 제 손에 들고있던 가디건을 나의 머리 위로 살포시 올려두었다. 아까 벗어둔 내 가디건을 계속 갖고있었던 것 같았다.
“ 오늘 내 건 다 네 거니까, 너 다 써도 돼. “
예상 못한 전개에 갈 곳을 잃은 내 손이 다시 한 번 뻘쭘해질 즈음, 김태형은 다정한 목소리와 함께 내 손을 내려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가디건 위로 제 손을 한 번 얹은 뒤 교실을 나갔다. 초콜릿 꼭 혼자 다 먹으라는 말을 덧붙이며.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그때를 떠올리니 괜히 더 울적해지는 것 같았다. 벽 하나를 두고 앉은 탓인지, 뒤 테이블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계속 벽을 타고 내 귓 속으로 걸어왔다. 수능 끝나고 고기 집에서, 제작년에 교무실에서, 저번에 다같이 놀았던 날, 내 생일 당구장에서, 당구장 다음 간 노래방에서. 가인이의 입술에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둘의 시간들이 나를 점점 짓누르는 것 같았다. 나는 김태형을 생각하면 학교밖에 없는데, 얘네는 학교 밖에서도 여기저기 많이 다녔나보다.
그리고 난 얼마 지나지 않아 접어놓았던 노트와 잔뜩 늘어놓았던 펜을 차곡차곡 가방 안에 넣기 시작했다. 김태형과 반장이 들어온지 1시간이 채 안됐지만,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나는 이 이야기의 주연이 아니었다. 저 사이에 잠시 끼어들었던 불청객이었을 뿐.
/
그 날 이후로 김태형과는 괜찮지 않았지만 괜찮은 척을 하며 그럭저럭 잘 지냈다. 그저 평범하게 같은 반 친구로서 칠 수 있는 장난을 치고, 내가 먼저 설레버리기 전에 선을 긋고, 가인이와 함께 있을 땐 최선을 다해 자리를 피해줬다.
애써 멀쩡한 척을 하는 나에게 박지민은 굳이 그렇게 힘 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그랬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김태형은 연애 쪽에는 눈치없는 모태솔로라 상관 없다면서. 나를 걱정해주는 지민이이가 고마웠지만, 생각은 스스로 제어할 수 없었고 몸이 자꾸만 생각과 다르게 움직였다. 정답을 알고 있어도 적어내릴 수가 없었다.
박지민이 멍청이라고 욕을 할 줄 알았다. 김태형이 다른 여자한테 넘어가게 생겼는데 방해는 못할망정 오히려 자리를 피해주면서 심지어는 먼저 선을 그어버리는게 말이 되냐면서. 예상 밖으로 돌아온 위로는 더 따듯하면서도 더 아팠다. 어쩔 수 없었다. 이것이 김태형을 좋아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옆 자리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더라도, 그저 김태형의 행복을 바라는 것. 그게 김태형을 좋아하는 내가 해야 했던 우선이었다.
6년 전 첫사랑을 런던에서 마주칠 확률은?
대학은 다행히 문을 닫고 들어가면서 아슬아슬하게 재수의 길을 비켜갈 수 있게 되었다. 김태형 또한 최저를 맞추고 원하던 대학에 붙었다. 눈을 질끈 감고, 실눈으로 결과를 확인한 뒤 방방 뛰며 아이들 한 가운데에서 기뻐하던 너를 보며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았다. 집에 가기 직전이 되어서야 수고했다며 심심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고맙다, 너도 축하해. 짧은 대답을 건네는 김태형은 웃고 있었다. 다음날에도 많이 웃었다. 그래, 이거면 됐지. 김태형이 좋으면 된 거야.
/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졸업식,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막 시작할 즈음 몰래 빠져나와 어젯밤 고민고민을 하며 써내려간 엽서와 내 것인 마냥 들고있던 꽃다발을 쥐고 교실로 향했다. 지금이면 엽서 한 장과 장미꽃 한 송이를 가방에 몰래 꽂아넣는 일 따위는 그리 어렵지 않게 성공할 수 있을 터였다.
졸업식 일주일 전 친구와 하던 연락 중에 가인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김태형이랑 잘 되고 있던게 아니었나. 하지만 아무래도 그건 내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현재 김태형은 썸녀 없음, 여친 없음. 이 정도면 고백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이어지지 않더라도 좋으니 마음 만이라도 전달하자는게 나의 유일한 목표였다. 짧은 심호흡을 한 뒤 조심스레 교실 문을 열었다.
“ 어? 웬, 웬일이야? 순서 벌써 끝났어? “
교실 안으로 발걸음을 내딛자마자 책상들 사이에 숨어있던 동그란 뒤통수가 눈에 들어왔다. 김태형이었다. 김태형이 여기에 있을 거라는 건 예상에 없었는데. 하지만 나 못지않게 잔뜩 당황한 김태형의 표정에 수상함을 느끼고 재빨리 김태형을 스캔했다. 타박타박 다가가자 김태형의 손에는 누가 봐도 정성이 가득 담긴 손편지가 눈에 들어왔다.
“ 들고 다니기 거추장스러워서, 이거 좀 가져다놓으려고. 너는... 마음이 담긴 편지? “
주인이 바로 앞에 있는데. 내가 봐도 이 상황 속의 나는 정말 안쓰러웠다. 이미 김태형의 눈길이 닿은 꽃다발과 엽서는 목적을 잃은 채 그대로 내 책상 위에 안착했다. 김태형이 서있는 곳 바로 왼편은 가인이의 자리였다. 그 반대쪽 책상은 나였지만, 김여주와 김태형이 썸을 탄다는 예전의 소문은 사그라들고 최근 김태형이 걔 다시 좋아하는 아니냐는 이야기가 퍼지는 지금의 상황을 미루어 보았을 때 편지의 행방이 오른쪽이 될 가능성은 희박했다.
“ 아, 별 거 아냐! 아무것도 아냐. “
김태형의 동공에 규모 8.0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말을 더듬으며 편지를 뒤로 숨기고는 황급히 교실 밖으로 나가버리는 김태형의 뒷모습을 나는 그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눈에 띄게 대답을 피하는 모습을 보니, 슬쩍 떠본 내 물음에 정곡을 찔린 것이 분명했다. 가인이 남자친구 생긴 거 모르는구나. 아, 고백 하기도 전에 차였네. 너도 나도.
졸업식 내내 펑펑 울었다.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는 내 모습에 많은 친구들과 선생님이 아예 못보는 것도 아니니 뚝 하라며 달래줬지만, 김태형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쉬이 그치지 않았다. 친구들은 약속 잡고 만나면 되고, 선생님들은 학교를 찾아가면 되는데 과연 김태형과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
“ 대학교 가서도 잘 지내라. “
“ 밥 사기로 한 거 잊기만 해봐. “
“ ㅋㅋㅋ 알았으니까 그만 울어. “
반에서 마지막 종례를 마치고 친구들과 교문을 나설 즈음, 저 멀리 사람들 사이에서 김태형이 내 쪽으로 달려와 이제 가는 거냐며 물어왔다. 비밀로 해달라는 건가. 각자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어 짧게 대화하느라 그다지 감동적인 말을 주고받진 못했지만, 나름 감동적인 포옹은 했다. 서로 롱패딩에 파묻힌 상태로 상대의 등을 도닥였다. 그제야 실감이 났다. 진짜 마지막이구나.
/
캠프에서 귀가한 다음, 집에 도착해 현관 앞에서 주저앉아 다시 주머니로 욱여넣었던 엽서를 다시 꺼내 펼쳤다. 주인을 잃은 편지는 버려지지 않고 내 방 책상에 있는 맨 밑 서랍 깊숙한 곳에 자리잡았다. 이깟 종이 한 장이 뭔데 싶었지만 차마 버릴 수가 없었다. 전해지지 못한 내 진심이 꾹꾹 담긴 두 문장이 쓰레기통에 들어가자마자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아서.
「 나의 열아홉에 있어줘서 고마워,
많이 좋아했어. 」
4. 나의 끝
김태형을 거의 떨쳐내는 데에는 꼬박 3년이 걸렸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을 내리다가 간간히 바뀌는 프로필 사진으로만 보는 것이 다였지만, 내가 인지하고 있던 것보다 많이 좋아했던 것 같다. 나는 벌써 대학교 2학년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다 게워내지 못하고 꾸역꾸역 아직 교복 안에 갇혀있던 마음을 삼켜냈다.
한연우님이 김태형님과 함께 있습니다.
연애 중
김태형 ❤️ 한연우
좋아요 292개 댓글 97개 공유
김지연
한연우 아 뭐야 결국 사귈 거면서! 좋아요 1개
ㄴ 한연우
ㅎㅎㅎㅎㅎ
박윤재
어우 선배님 축하드립니다 좋아요 1개
ㄴ 한연우
나는 축하 안하냐 ㅡㅡ
ㄴ 박윤재
ㅇㅇ... ㅊㅋㅊㅋ
ㄴ 한연우
고마웡 윤재 ><
박지민
야 김태형 너 뭐야 김태형
ㄴ 박지민
어쭈 전화 막 씹어
ㄴ 박지민
이거 보면 바로 연락 받아라
임예주
야 머야!!! 썰풀어죠!!!!! 아 그리구 롱런해 ♡♡♡ 좋아요 1개
ㄴ 한연우
페메해 쟈기♡
정호석
김태형 ?????
ㄴ 김남준
엥...? 해명 부탁
강다은
헐 대박 오래가~ 좋아요 1개
ㄴ 한연우
웅웅 고마워 ㅎㅎ
아무 생각 없이 내리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김태형의 연애 중이 뜨기 전까지.
아무래도 마음을 너무 많이 삼켜서 이러는 것이었다. 지금껏 잘만 삼키다 그 게시물 하나를 잘못 넘겨 심장이 체를 한 것이 분명했다. 나도 모르는 새에 후두둑 눈물이 떨어졌다. 한 번 터지고 나니 겉잡을 수 없었다. 그동안 억지로 삼켜왔던 마음들이 다 눈물로 쏟아지는 것 같았다. 차마 하지 못하고 억지로 밀어넣었던 이야기들을 이제서야 토해냈다.
좋아했어. 아니, 지금도 좋아해. 진짜 너무... 너무 좋아해, 태형아. 네 생각을 하다 잠드는날이면 네가 나에게 고백하는 꿈을 꿀 만큼, 고등학교를 떠올리라면 네 생각이 반 이상일 만큼, 아직도 네 섬유유연제 냄새를 기억할만큼.
내가 생각났던 모양인지, 한참을 울다보니 박지민에게 괜찮냐는 내용의 카톡이 날아왔다. 차마 괜찮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서 확인을 나중으로 미뤘다. 그 날은 아마 울다 지쳐서 쓰러지듯이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다음날, 나는 동기들의 연락을 싸그리 무시한채 자체 휴강을 때리고 우연히 김태형을 만난 뒤로 다시 간 적 없는 그 카페로 발을 옮겼다. 그때와 똑같은 음료를 시키고, 똑같은 자리에 앉았다. 너만 없었다.
' 그 개 뭐야? '
' 몰라. 근데 귀엽지. '
' 응. 근데 너 걔 다 만지고 손 씻어. 지지야. '
' 얘 되게 너 닮았당. '
' 지금 너 나 개같다고, '
' 바보하고 애교많고. '
' 야! '
' 귀엽고. '
나는 그렇게 김태형을 지웠다.
' 야, 박지민. 박지민? 박지민! '
' 아 하지 마라고! '
' 어휴, 우리 지민이. 형아 마음은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거야. '
나는 이렇게 김태형을 묻었다.
' 그래도 수능 끝나고 집 혼자 안 가서 좋네. 수능 생각하면 너만 생각날 것 같아. '
나는 이제야 김태형을 놓았다.
2018.11.11
: 망개찜니, 키딩미, 깜비, 17, 라벤더허브, 미대누나, 현, 라온하제, 주디, 얍, 1101, 1013, 미피, 홀롤로, 단델, 카루시파, 욤, 뀨잉
2018.11.18
: 초코우유, 태황무무, 밍늉기, 글읽다 돌연사, 땡구, 동구래미, 빙구, pp_qq, 깜빠기, 홉흅, 봄날엔꾸꾸, 짜왕, 블루베리푸딩, 제로미터, 감귤주스, 슈가나라, 부리부리, 잠만보, 0729, 천칭자리
오와아아앙 2화도 초록글에 올라왔어요 (박수짝짝)
제가 현생이 바빠서 일주일만에 왔네요 죄송해요 ㅜㅜ 수능 끝나고 감기가 걸려가지구 크흥 수험생 여러분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벌써 암호닉이 이렇게 많이 생겨서 디게 감사하고 황송해요 ;ㅅ;
항상 읽어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립니다! 독자님들 신알신 쌓일 때마다 알람 오는 것두 너무 좋아여 이야항
아푸지 마시고 이번주도 화이팅 합시다 빠이팅 빠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