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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인은 뒤에서 저를 안아오는 경수에 걸음을 멈췄다. 기분 같아서는 이거 놓으라고 당장에라도 뿌리치고 싶었지만 지금 제게 전해지는 이 온기는 또 언제, 어떻게 사라질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섣불리 행동하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봐, 이대로 끝일까 봐. 그런 종인의 마음을 알아챈 건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더 세게 그를 안아오는 경수였다.

 “넌 이러다 사라지면 그만이겠지만 난 정말 죽을 것 같아. 형이 언제 돌아오게 될지는 형도 모르고, 나 또한 몰라.”
 “그래도 난 그곳에서 늘 너를 만나.”

 제 말에 대답이 없는 종인에 제가 또 기분을 상하게 한 건 아닐까 싶어 경수가 조그마한 목소리로 그에게 속삭였다. 그 순간 제 허리를 감고 있던 무게와 제 몸을 감싸고 있던 온기가 한순간 사라졌다. 종인은 이를 악물었다. 경수를 만나고 그와 함께 생활하면서 매일, 수백 수천 번을 겪었지만,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은 일이었다. 형, 나는 네게 화가 났던 게 아니라 그냥 이 상황이 싫었을 뿐이었어. 종인은 마른세수를 몇 번 하더니 헛웃음을 지었다. 경수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것 같았다.

 “종인아, 꼭 돌아올게, 네가 있는 시간으로.”

 그것은 경수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엄마, 나 놀이터 가도 돼?”

 어린 시절부터 집에 있는 걸 싫어했던 종인이 주로 했던 말이었다. 집에 있어 봤자 늘 부모님의 싸우는 모습뿐이었고, 그 옆을 알짱거렸다간 모든 화살이 제게로 향했기 때문에 늘 큰 소리가 나기 전에 밖으로 도망치고 싶어 했다. 오늘도 역시나 부모님의 다툼으로 집은 시끄러웠다. 일곱 살이던 종인은 방에 틀어박혀 머리에 들어오지도 않는 구구단을 외우며 얼른 모든 상황이 끝나길 빌고 있었다. 팔 사 삼십이, 팔 오 사십, 팔 육에…. 큰 소리가 나며 현관문이 닫혔다. 대충 상황을 보아하니 결국 아버지가 화를 내며 나가시고 집엔 어머니와 종인, 둘만 남아있는 것 같았다.
 째깍거리는 시계 소리가 숨통을 조여왔다. 종인은 결국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와 재차 물었다. 엄마, 나 놀이터 가도 돼? 대답을 들을 생각도 없었던 종인은 자연스레 현관으로 향했다. 아이가 신발을 신을 때까지도 어머니란 여자는 종인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아이가 현관문을 열고 나설 때쯤에야 늦지 말고 들어 와, 저녁에 돈가스 해줄게, 하고 말을 걸었다. 종인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 노래를 흥얼거렸다. 집을 나오니 모든 게 즐거웠다. 얼른 가서 그네 타고 놀아야지.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종인은 제 앞을 막은 한 남성에 의해 걸음이 멈춰졌다.

 “저, 아저씨, 이렇게 앞에 딱 서 있으면 사람들이 불편하잖아요.”

 종인이 남자의 등을 치며 말하자 남자는 놀란 듯 움찔거리더니 뒤를 돌았다. 세미 정장을 입은 남성을 위아래로 훑던 종인은 그의 눈에 시선을 고정했다. 평소 키우고 싶다고 징징대던 그 강아지 종과 인상이 비슷해서였을까. 종인이 빤히 쳐다보자 남자 또한 종인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러더니 씩 웃으며 그런다.

 “어릴 때랑 똑같네.”
 “네?”
 “근데 지금이 훨씬 낫다.”

 종인은 대체 무슨 말인가 했다. 꼭 자신을 아는 것처럼 말하는 남자가 이상했다. 종인은 주춤거리며 뒷걸음질을 치더니 빠르게 남자를 지나쳐 뛰어 나갔다. 남자는 뭐가 그렇게 즐거운 건지 웃음을 머금은 채 종인의 뒤를 따랐다. 자꾸만 저를 졸졸 쫓아오는 남자가 제가 그네를 타자 이젠 가까운 벤치에 앉아 저를 보고 있다. 그것도 웃는 얼굴로. 종인은 괜히 이상한 기분에 엄마 친구인가, 아빠 친구는 아닌데 하며 온갖 생각을 다 했던 것 같다.

 “종인아, 그네 밀어줄까?”
 “네? 아니 괜찮은데…, 밀어주세요.”

 먼저 웃으며 말해오는 그에게 괜찮다며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이미 걸어오던 중이기도 했고 뭔가 궁금하기도 해서. 종인은 차오르는 궁금증에 뭘 물어볼까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높아지는 그네의 높이에 즐거운 듯 여느 아이와 다를 바 없이 웃으며 와, 더 멀리! 하고 소리쳤다. 남자는 그런 종인의 반응에 저 또한 즐거워져 더 열심히 그네를 밀었다. 물론 종인이 떨어지지 않을 정도의 높이를 유지하면서. 한참 그네를 타다가 이제서야 내려온 종인이 남자를 쳐다보더니 엄지를 치켜세웠다.

 “아저씨, 짱. 우리 아빠보다 더 잘 밀어요.”
 “그래? 근데 너 몇 살인데 자꾸 아저씨라 그러냐? 나 아직 젊다?”

 젊…다니요? 우리 아빠 친구 같은데. 종인은 눈만 깜빡이다가 남자가 몇 살이냐며 재차 묻자 고개를 쳐들며 일곱 살이라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그렇게 안 보인다며 너야말로 나이 속이지 말라며, 초등학생이지? 하고 종인에게 장난을 쳤고 종인은 진짜라고 소릴 질렀다.

 “근데 아저씨 누구세요?”
 “나? 난 말이지….”

 남자가 잠시 말을 멈췄다. 흙을 만지던 종인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남자는 무슨 생각에 잠긴 건지 벤치에 앉아 눈만 끔뻑였다. 종인은 다시 흙을 만지는데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더니 종인의 앞으로 가 함께 두꺼비 집을 만들었다. 처음엔 눈치를 보던 종인도 어느새 웃으며 함께 장식했다.

 “내 이름은 경수야, 도경수. 나중에 우린 친구가 될 거야. 서로가 아니면 안 될 정도로 친한 친구.”

 종인은 그렇게 말하는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웃으니 하트 모양이 되는 그 입이 정말 맘에 드는 아저씨였다. 아버지와 나이가 비슷해 보였지만 웃는 얼굴을 보니 전혀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정말 강아지 같고, 또…, 또…, 예뻤다. 경수는 제게 꽂힌 종인의 시선이 어색한지 웃더니 손을 털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인아, 이제 집에 가야지. 얼른 들어가, 부모님 걱정하시겠다. 그 말에 종인이 더 놀고 싶다는 듯이 뭉그적거렸지만 그래도 경수는 그를 붙잡지 않았다. 입이 툭 튀어나온 채로 일어나 손을 털더니 자신은 쳐다도 안 보고 그대로 뛰어가는 종인에 경수는 한참을 웃었다. 하여간 똑같다니까. 
 종인은 현관문을 열기 무섭게 신발을 벗고 방방 뛰었다. 신이 난 종인이 엄마를 부르는데 그의 어머니는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느라 바빴다. 아이는 빠르게 걸어가 베란다로 향했다. 그네에 앉아 있는 동그란 뒤통수가 보였다. 아직 안 갔네!

 “엄마, 엄마, 있잖아요!”
 “종인이 너, 엄마가 밖에 다녀오면 뭐부터 하랬지?”

 손, 손 씻어야지. 근데 아저씨 간단 말이야, 경수 아저씨. 엄마의 뒷모습과 혼자 그네를 타는 경수의 뒷모습을 번갈아 눈에 담던 종인은 얼른 달려가 손을 씻고 오기로 했다. 하지만 종인이 다시 왔을 때는 경수는 가고 없었다. 아쉬움에 입을 삐죽였지만 그래도 다음에 또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아이는 식탁에 앉아 차려지는 밥상을 보며 다시 얘기를 이어 나갔다. 

 “엄마, 아까 내가 하려던 말이 뭐였느냐 면은….”
 “아가, 밥 먹고 얘기하면 안 될까?”

 그래서 이번엔 밥을 먹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종인이 소파에 앉아 재차 말을 이어나갔다. 엄마 오늘 이상한 아저씨를 봤는데 눈이 막 이렇게, 이렇게, 입도 막 이렇게 하트 모양이야! 그리고 막, 나랑 아저씨랑 나중에 친구가 된대. 엄마, 듣고 있어? 누군가와 전화를 하던 그녀는 종인이 시끄럽게 저를 부르자 짜증이 난 건지 무서운 얼굴을 하고 종인을 바라봤다. 엄마 지금 전화하잖아. 시간 됐으면 가서 자, 얼른.
 종인은 축 처진 채 혼자 방에 들어왔다. 아까 급하게 나가느라 펼쳐놨던 구구단 책도 덮어 정리하고 장난감들도 정리한 채 침대에 눕자 경수의 얼굴만 천장에 아른거렸다. 아저씨 다음에 또 오면 좋겠다. 종인은 이불을 덮고 눈을 꼭 감았다.

 아저씨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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