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머리가 눈을 찔러 ”
지겨운 수학시간이다. 알지 못하는 기호들이 초록 칠판을 가득 채워질동안 난 세훈과 이야기 꽃을 가득 채웠다. 녀석이 살갑게 대답을 해주거나 대화의 주제를 정해 이끌어가는건 결코 아니다. 내 말과 물음에 짧게 대답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인다거나 작게 웃어주는 리액션 정도이긴 하지만 난 그것만으로도 만족한다. 그렇다고 매번 무뚝뚝하게 구는건 아니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수업 시간에는 더욱 말이 없던 녀석이다.
“ 내가 잘라줄까? ”
녀석이 눈을 찌르는 앞머리를 삐쭉 세우며, 자른지가 언젠데 벌써 길었다며 투덜거린다. 내가 책상 속에 박아두었던 가위를 내보이며 잘라줄까? 묻자. 표정이 확 굳는다. 뭐지. 저 반응은? 상당히 기분이 나쁘네요. 내가 녀석의 앞머리를 만지작 거리며 “조금만 잘라도 앞이 잘보이겠다.” 라고 했더니 녀석의 표정이 살짝 풀리더니 “정말 조금만 잘라줄꺼야?” 란다. 난 물론 이라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 좋아. 한번 믿고 맡겨보지. "
다음시간은 영어 회화 시간이다. 샐리라는 섹시한 금발의 여자 외국인과 함께하는 프리토킹 시간이었다. 나와 세훈을 제외한 모든 아이들이 이 시간을 손꼽아, 목이 빠져라 기다리곤 한다. 아니다, 나와 세훈도 저 원어민 시간을 기다렸던것 같다. 장작 2시간이나 되는 시간을 자유시간으로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당연스레 세훈과 난 음악실로 내려왔다.
“ 약속한거다? ”
“ 알았어. 이 누나만 믿어. ”
녀석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린다. 하긴, 자기머리를 목숨 같이 하는 녀석인데 걱정 될만도 하겠지. 세훈의 불안감이 나에게도 전달이 된건지 가위를 꼭 잡은 내 손도 덜덜 떨려온다. 애써 “괜찮아. 아주 조금 자르는데 뭘..” 이라며 나도, 세훈도 안정시킨다. 싹뚝, 싹뚝 과감하게 가위질을 시작한다. 눈을 꼭 감고 있던 세훈의 날렵한 콧날에 머리카락 뭉치가 턱 하니 앉아있다. 헐? 세훈아 그 약속 못지킬것같아.
*
“ 미안하다니까? ”
“ 됐어. 널 믿은 내가 등신이지. ”
“ 나쁘진 않았는데.. ”
“ 가운데 구멍 뻥 뚫어놓고 뭐? 나쁘지 않아?
녀석이 숟가락으로 미역을 퍼먹으면서까지도 투덜거린다. 사내놈이 뒤끝이 이렇게 길어서야. 거짓말 하나 안보태고 미안하다고 몇번이나 말했는지 모른다. 사과의 의미로 문어 모양 비엔나 소세지를 두번이나 녀석의 숟가락에 얹어 줬다. 받아먹기는 그렇게 잘하면서 왜 풀리려고는 안하는지. 내 맞은 편에 앉은 백현과, 세훈의 맞은 찬열의 웃음소리가 심상치가 않다. 어쩌면 저 두 아이들의 비웃음의 원인으로 세훈의 화가 풀리지 않는것 같다.
“ 그만 웃어라?!!! ”
구멍이난 앞머리를 큼지막한 손으로 가리며, 입술을 삐쭉거린다. 여기서 터진거다. 백현과 찬열이 본격적으로 수저를 집어 던지고 웃기 시작한게 말이다. 나는 웃지 않을 예정이었다. 내 작품이지만 미안하게도 너무 웃길걸. 세훈을 제외한 백현, 찬열, 그리고 나의 웃음 소리가 급식실 안에 울려 퍼졌다. 저마다 수다를 떨며 밥을 먹던 아이들의 시선이 우리에게 집중된다. 세훈은 들고 있던 젓가락 두 쌍을 앞에서 얼굴이 터져라 하고 웃고 있는 애들을 향해 던지고는 일어나려고 한다.
“ 풉! 밥은 남기는거 아니랬지? 앉아. ”
“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
“ 알아- 다 나 때문인거. 나 좀 봐. ”
토라져 급식실을 나가려는 녀석의 얇은 팔목을 잡았다. 앞머리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오늘따라 바보 같은 얼굴로 나를 노려본다. 녀석을 의자를 톡톡 치자 힘없이 팍 앉는다. 녀석의 팔을 잡아 돌려 눈을 마주 했다. “ 임시방편으로 이거라도 해줄게. ” 주머니에서 실핀 두개를 꺼내 입에 물었다. “ 뭐할려고! ” 라며 끝까지 툴툴 대지만 순순히 머리를 숙인다. 세훈의 앞머리를 들어 위로 올려 실핀으로 고정시켰다. 그것도 크로스 자로 말이다.
“ 크하하학, 기집애가 따로 없네. ”
“ 고추 떼라 오센.”
자존심 제대로 상했다. 저 놈들이. 확! 하며 내가 손까지 들어 위협하자 그대로 합죽이가 된다. “ 넌 날 두번 죽인거야.” 라며 신경질 적으로 핀을 빼려던 녀석의 손을 막아냈다. “핀 빼면 봐.” 내가 노려보고 난 후 숟가락으로 흰 쌀밥을 떠서 입에 넣었다. 녀석이 슬슬 내 눈치를 살핀다. 그리곤 “아오씨!” 라며, 포기하고 숟가락을 든다. 귀여운 자식. 저 녀석은 항상 그래왔다. 자신의 감정보다는 내 감정을 더 중요시 했다. 오세훈을 알아온 세월동안 오세훈이 제일 잘 하는걸 말해보라면 내 눈치 살피는거라고 말할 수 있다.
*
“ 다풀렸지? ”
“ 응.”
“ 머리 금방 자랄꺼야.”
“ 응. ”
급식실을 나와 곧장 매점으로 향했다. 오세훈이 가장 좋아하는 조아조아 쭈쭈바를 입에 물려주니 그제서야 툭 하고 나와있던 입술을 쑥 들어갔다. 단순한 녀석. 운동장 스탠드에 앉아 쭈쭈바 하나씩을 물고 앉아 있는 지금 이 시간이 난 가장 좋다. 내게 의미 없는 학교를 다니는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스크림과 함께 입에 들어간 머리칼을 빼내주며 “머리카락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냐?” 라며 시비를 터온다. “먹어볼래?” 라며 내 머리칼을 입가에 가져다 대자 진짜 입을 벌린다. 갈때까지 가보자 진짜 넣으려고 들이대니 입을 꾹 담고 고개를 돌려 피한다.
“ 집에 가고싶다. ”
“ 나도. ”
“ 갈까? ”
“ 아니. 졸업해야지. ”
글쎄, 딱히 우리가 학교에 남아 있을 필요는 없다. 우리의 목적은 좋은 대학 진학? 아니다. 그저 고등학교 졸업장 뿐이다. 가까운 미래 말고는 미래를 생각 해 본적이 없다. 엊그제와는 다르게 이번엔 내가 먼저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난 녀석이 집에 가자고 할 줄 알았다. 한 98% 정도. 세훈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확실히 빗나갔다.
“ 들어가서 잘래. ”
내가 먼저 엉덩이를 털고 일어섰다. 녀석도 뒤따라 엉덩이를 털고 일어난다. 쭈쭈바를 입에 물고 녀석이 핀을 꽂은게 어색한지 만지작 거리며 녀석이 스탠드 한칸을 내려 가는 틈을 타 세훈의 등을 노려 올라탔다. “악, 뭐야!” 놀랐는지 빽 소리를 지르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내 발 밑에 손을 넣어 딱 고정시킨다. 넓다. 세훈의 등
“ 오랜만에 업어줘. 나 다리아파. ”
“ 업히고 싶으면 좋게 말로 하지. 놀랐잖아. 넘어지면 어쩔뻔했어? ”
“ 안넘어졌음 됐지. 잔소리는 ”
“ 너 살쪘지. ”
“ ... ... 당장 걷는다 실시. ”
목을 꼭 감싸 안았다. 어릴때는 녀석의 등에서 앞으로 넘어진 이후로 생긴 습관같은거다. 그때 크게 다치고 나서도 여전히 등에 업히는걸 좋아했다. 이 모습을 보던 엄마는 내게 “덜 다쳤구나?” 라며 핀잔을 주긴 했지만, 편하고 좋은걸 어떻게. 그리고 지금의 세훈은 그때 처럼 약하지 않은걸. 어깨도 넓어졌고, 등도 포근해졌고, 키도 컸고, 변성기가와 목소리도 제법 남자다워 졌는데. 엄마 눈엔 그저 어린애 같은가 보다.
“ 하악하악, 계단은 좀 힘들..다.. ”
“ 내려줘, 걸어갈게. ”
녀석이 바로 날 내려준다. “칫, 그렇다고 바로 내려주냐?” 라며 등짝을 살짝 후려 쳤다. 살짝이라기 보다는 좀 세게. 세훈은 계단 기둥을 부여 잡고 거친 숨을 내쉬는데 그 모습이 조금 안타까워 보인다. 이마의 송글송글 땀이 맺힌게 훤히 보인다. 미안하긴 하네. 내가 손으로 땀을 닦아주려 까치발을 들자 “됐어. 더러워” 라며 고개를 획 돌려 버린다.더럽긴 뭘, 넌 내가 토한것도 손으로 받아냈으면서.
“뭐가.이리와바”
“ 세수하면돼. ”
그러곤 쌩 하니 계단 위로 성큼성큼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올라간다. “꼭 저런다니까” 낮게 내 뱉었다. “ 안와? ” 라며 손까지 흔들며 나를 부른다. 간다가! 총총 거리며 녀석이 밟은 계단을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다. 계단에 발이 걸릴까 바닥만 보고 올라가다 고개를 들었을때. 날 기다리고 있는 녀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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