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와보렴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노란 장판을 딛고 일어서자 쩌억쩌억하고 소리난다
창호지 덧대어 바른 문을 열자 짚 태우는 탄내가 얼굴 감싸안는다
아버지는 논과 논 사이의 길에 서있었다
따라와봐라
왠지 쌀쌀한 날씨에 겉옷을 챙겨입고 쫑쫑쫑 아버지를 따라나섰다
꺼무죽죽하니 푸른빛이 도는 하늘은 알전구를 박아놓은 것 마냥 반짝거리는 것들로 온통 매워져 있다
그것들은 보다보면 사라지기도 하고 자리를 바꾸기도 했다
이윽고 시원한 바람이 산에서부터 불어왔다
파사사사...하고 나뭇잎이 부닥쳐 내는 소리가 여까지 들린다
숲내음이 난다
때맞춰 달님 가리고 있던 구름이 이만치 움직였다
구름은 밤이되어도 흰색이었구나
달빛에 비친 구름이 창백하다
너는 그때 하늘을 보고 있었다
너의 아버지도 하늘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 너는 그 하늘이 참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아버지는 지긋이 하늘을 바라보다가 발걸음을 옮기셨다
너도 그제서야 '아'하고선 발을 옮겨 아버지를 좇았다
걷고 걸었다
아버지는 앞을 보았고
너의 손을 꽉 쥐었다
너는 하늘을 보았고
달은 밝게 얘기했지
맑은 눈동자에 비친 달님은
자꾸 너를 따라오는 것 같아
아버지
달님이 자꾸 저를 따라와요
그렇구나
아버지는 묵묵히
앞을 보고 걸으셨어
그 손은 따스했다
물소리 들려오는 냇가에는 갈대들이 숲을 이루었다
아버지는 너를 훌쩍 들어올려 목말을 태우셨다
그리고 걸으셨다
갈대들은 하얀빛을 내며 바람에 맞춰 일렁였다
목말을 태우고 지나가는 아버지의 위에서 본 갈대밭은
마치 은빛 파도같아
갈대 홑씨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나와 하늘위로 올라가기 시작한다
너는 그것을 잡으려 손을 뻗는다
우리 사랑하는 딸내미
다리를 잡은 아버지 손이 뜨듯하다
엄마 보고싶지
너는 아버지 말에 목이 매여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아버지 머리만 쓰다듬는다
엄마는 저기있단다
아버지는 달님을 보며 얘기하신다
아버지 손이 뜨듯하다
아버지 어깨가 몇번 떨렸다 말았다 반복한다
목이 매여 목구멍이 아프다
그래서 계속 나 따라온 거구나
너도 어깨를 들썩인다
갈대밭은 아는지 모르는지 마냥 흔들리며
달빛 바다를 일렁인다
너는 자꾸만 그것이 우리 엄마 웃는 얼굴같아서
왠지 저기서 외투자락 여미며 둘이 뭐하냐며 물어올 꺼 같아서
그러면 돌아볼 아버지와 나의 얼굴이 어떨지 생각해보니
소리낼 수가 없었다
소리낼 수가 없었어
메이고 메여서 쑤셔오는 목을 한 손으로 감싸며
가을밤에 너와 너의 아버지는 그렇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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