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 명수야~ 박명수~
W. 라임추종자
"성열아."
"...어."
"내가, 음... 너를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아. 미안해."
미안한 듯 어색하게 이별을 고하는 네 도톰한 입술 위로, 안타까운 미소가 그려졌다.
_
명수는 여전히 다정했다. 그저 친구였을 때도, 얼결에 뱉어버린 투박한 내 고백에 웃어주던 그때에도, 좋아하진 않았던 것 같다며 한겨울의 싸늘한 추위로 나를 내몰 때도 말이다. 그리고, 친구로 남겨둔 지금의 나에게도. 싸늘한 바람이 뺨을 할퀴며 지나갔다. 춥다.
"성열아, 집 가자."
"그래."
반쯤 넋을 잃은 상태로 찬바람을 맞으며 선 나에게로 다가온 명수가 말했다. 같잖은 이별 이후 어색해진 친구임에도 불구하고 난 오늘 네게 말을 전하기 위해 같이가자 했었다. 옆에 바짝 붙어 내가 응시하던 하늘을 흘긋 올려다보곤 빨리, 라며 나를 재촉했다. 고개를 푹 숙인 나는 그려놓은 듯 아름다운 네 얼굴을 볼 자신이 없어 작게 고개를 까딱였다.
기울어진 경사면에 차려 둔 하굣길은 조용했다. 정작 할 말이 있어 명수와 하교를 하기로 한 나는 무슨 말이 튀어나올 지 몰라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래서 침묵을 지키려는 내게 다정한 명수는 내게 말을 걸지 않았다. 나를 존중해주려는 건지, 신경을 쓰지 않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는 편안한 안정을 표면으로 안에서 곪아가고 있었다. 아마, 미련한 내가 너에게 고백을 했을 때부터.
친구에서 멈춰있던 넌, 내 고백에 꾸역꾸역 내가 마려해둔 애인이란 틀에 들어와주려 노력했고, 거기에 기뻐하며 친구로는 남을 수 없을 만큼 커져버린 내 마음을 따라와 주느라 너는 지쳤다. 니가 바랬던건 소중한 친구를 잃지 않는 것뿐이어서 그때 내 고백에 마지못해 웃어줬으리라. 그리고 난 그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기적인 나는 '애인' 이란 이름 안에 행할 수 있는 모든 행위를 바랬기에 그 이름뿐인 애인을 자처했다. 그 결과 끝내 너는 나를 따라오지 못했다. 그럴 생각조차 없던 너였으니 당연했다. 비틀려 어긋난 채로 쉴새없이 달리던 우리는 그 겨울, 첫눈오던 날에 넌 스스로를 내게서 떨구었다.
떨구었다, 라. 과연 그랬을까. 어쩌면 니가 나를 내친 건지도 모른다. 너를 향한 결코 떳떳치 못한 더러운 감정을 품은 날 내친게 아닐까. 열심히 달렸던 날, 다정하게 내친 명수. 넌 내게 맞춰 달려주느라 지쳤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참 전부터 지쳤있던 나는 차마 너를 붙잡을 수가 없었다. 애인이란 틀은 버려졌고, 우린 친구로 남았다. 그렇지만, 명수야. 난 지친 탓에 친구로조차 네 옆에 남을 수 조차 없어.
"명수야."
"응."
"명수야, 김명수."
조용한 거리는 멈추었다. 그 멈춘 공간 속에 움직이는 것은 싸늘한 바람. 틈없이 떨리는 볼품없는 내 손, 그리고 입에 담기조차 버거운 네 이름을 읊는 내 입술.
"사랑해."
나의 고백을 위해 움직이길 포기해준 거리는 여전히 멈춰있다. 칼같은 바람에 실린 너덜거리는 내 고백은 너의 유연한 얼굴 근육을 딱딱하게 굳혀버렸다. 예상했다는 표정. 불쾌감까지 서려있다. 아아, 그러나 아름답다. 너는 정성껏 빚어낸 유려한 곡선과 필요치 않은 선은 가차없이 깎아낸 선들이 그려낸 그림. 아름답기 그지 없는 신의 걸작. 그래서 살아숨쉬며 따듯한 숨결을 뱉어내는 너. 다정하기까지 한 김명수.
명수야, 김명수.
"... 이성"
"명수야."
아무말도 하지 마, 사랑해달라고 빌지 않을게.
"나 미국가."
"뭐?"
"아빠가 미국가래, 가서 공부하고 오라셔."
"아..."
명수의 짧은 탄성 뒤로 무겁게 이어지는 침묵이 내 목울대를 짓눌렀다. 미국간다는 내 말에 짧게 동요하던 명수의 눈동자는 이내 잔잔한 호수처럼 가라앉았다. 한참만에 마주한 네 눈동자는 여전하다. 여전히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고요하고, 또 다정하다. 피폐함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따듯하진 않다. 네가, 네가 마주하는 내 눈동자는 아니겠지. 탁할 것이 분명하다. 네 다정함에 난자당한 초라한 사랑, 애정을 갈구할 수 조차 없는 피폐함, 여전히 멈춰서 움직이지 않는 너를 향한 애정, 원망. 그리고.
"왜 뜬금없이 유학인지."
"..."
"언제가는지."
"..."
"어디로 갈지, 언제 돌아오는 건지."
그리고, 포기.
"아무것도... 안 물어보네."
친구로서 당연히 물을 수 있는 것들. 아니, 네가 나를 친구라고 생각한다면 당연히 물어야 할 것들 조차 묻지 않는구나, 명수야. 그래, 네가 이별을 고했던 그 때부터 우린 이미 친구도 아니었던 거였다. 난 그래도 우리가 어색할지언정 친구사이로 남아있는 줄 알았다. 멍청하다. 어쩌면 애초부터 우린 같은 틀에 박힌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난 너를 친구로 느낀 적이 없었고, 너또한 날 친구 이상으로 느낀 적이 없을 테니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친구만도 못한 존재. 허탈함에 웃음이 터졌다.
"명수야, 김명수."
"미안해."
"아니, 내가 미안해. 정말 미안해."
너에게 짐을 얹어서.
"..."
"명수야."
나는 내일 출발할거야. 그리고 언제 돌아올지는 나도 잘모르겠다.
"그리고."
펜실베니아에 있는 사촌집가서 생활 하게 될거래.
"마지막으로."
네가 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진 여기 안올거야.
"사랑해."
그리고, 이 겨울의 비참하기 짝이 없는 내 고백을, 오늘을 잊었으면 좋겠다.
너는 내 고백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네게 마지막으로 전하는 절절한 사랑고백은 결국 너의 말한마디 끌어낼 수 없는 쓰레기로 전락해 버렸다. 여전히 말이 없는 명수를는 하릴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싸늘한 네 시선이 내게 머무른다. 전율이 일 정도로 감격스러워 건조한 입술을 비틀어 작게 웃었다.
"갈게."
너는 내게서 너를 기억할 기회조차 앗아가는 구나. 오래 머문 그 시선속에서 너는 내게서 정을 떼었을 게 분명하다. 아니라면, 네가 그렇게 매정하게 돌아설 수가 없을 테니 말이다. 돌아선 너의 등은 차갑다. 난 짐작할 수 있었다. 네 얼굴또한 못지 않게 차가울 것이다.
"잘, 가. 잘가. 명수야."
들리지 않았겠지. 단정한 뒤통수 위로 살랑거리는 머릿카락이 너대신 내게 작별을 고하며 손을 흔들었다. 딱딱한 네 뒷모습에 작게 웃었다.
네 등만은 나를 기억했으면, 차가운 너에게 따뜻한 애정을 담은 미소를 짓던 나를, 이성열을 기억해 줬으면.
우린 아마 다시는 만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난 너를, 명수를 다정했던 명수를 잊지 못한다. 아마, 너도 모르는 새 새겨놓은 네 얼굴이 차츰 흐려지기 전까지는.
명수야, 김명수.
사랑해, 명수야. 내겐 차가운 너의 등마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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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죄송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노트에 써둔 제목이 저거라 딱히 다른게 생각이 안나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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