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문의 사이에서 유명한 도선생님께서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다.
환자들이 그의 말을 듣고 나오면 조금 지쳐 보이는 느낌이 있을지라도, 동기들 사이에서 찬란히 빛나는 존재라는 사실을 인정 않을 수 없었다.
조금 돌아가서 그를 지켜보자면 그는 동료에게는 특유의 시니컬한 표정을 짓고는 하지만
힘 없이- 또는 과하게 상기된 표정으로 병원을 돌아다니는 환자에게 덧없이 상냥하고 아름다운 미소만을 보여주곤 했다.
대학시절 연합동아리에서 만난 지 석 달째나 되어 갖는 첫 술자리. 왁자지껄 모여있다가 다들 취해서 난리 통이 됐던 테이블에서
나더러 들으라는 듯이 조용히 내뱉은 그것이 잊히지가 않는다. 고등학교 때 자신의 선생님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로 그는 짧지만 강하게 사회공포증을 앓아왔다고.
자존심 세고 비밀이 많던 그가 취해서 그렇게 말한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여태 숨겨놓았던 이야기를 누구에게든 털어놓고 싶었을 테지.
"옆집 형이 정신과 의사였어, 그래서 조용히 치료받고. 가족한테도 알려지지 않고 감사했지 참."
그리곤 딱히 상관은 없었지만 (난 이걸 아직까지 고등학생 시절의 도경수가 마땅한 장래희망이 없어서였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을 보살펴 주었던 그 형'에게 보답하려는 의미로 고등학교 2학년 이후로 정신과 의사를 생각해왔다고 말하는 그였다.
치욕스러웠던 일 년이었지만. 하며 먼 곳에 시선을 두는 그에게 나는 위로의 말을 해봤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며
이미 떨쳐내었을 텐데 무슨 상관이겠나 싶어 잔에 든 과일소주를 입으로 쏟아내었다.
'도경수 너의 정신력이 뛰어나서 참 다행이었네.'
감사했다. 엄청난 동료를 알게 해 준 그 의사 형에게.
어떤 경로로 앓게 되든 간에, 우리가 항상 잡으려 애쓰는 정신병이라는 것은 정말 까다로운 존재니 말이다.
The difference between M and M.
(01)
까딱까딱, 흔들흔들
"..."
부스럭거리는 몸짓이 자꾸만 신경 쓰인다.
"야 변백현"
"어???"
논문을 읽느라 바쁜 내 앞에서 자꾸만 방해를 하는 저 몸짓.
눈에 얌전한 주름을 잡고 엷게 웃으며 자세를 고쳐 앉는다.
"방해됐다면 미안하다. 그러니깐 그런건 집에 가서 읽으라구, 여자친구 없는 노총각인거 티내는 거냐."
제가 뭐라도 되는 양 입에 웃음을 건 체, '도경수가 모든 업무를 마무리했을 금요일의 퇴근시간' 에만 찾아와 내 시간을 방해하는 시끄러운 동료.
공중에서 백현과 눈이 마주치고, 그가 입을 열기 전에 선수를 친다.
"됐어.오늘은 안마실거야."
단호히 내뱉은 음성에 풀이 죽은듯 눈꼬리가 주욱 처진다.
엘리베이터에서부터 병원을 나올 때까지 낑낑거리며 한잔하자고 하지만 오늘은 꼭 이 논문을 읽어야만 한다.
"다음 주에."
만족스럽지 않은 듯 웃음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목소리는 한 층 밝아져 내게 작별 인사를 건넨다.
"그래라 도경수! 그럼 들어가서 그 논문이나 잘 읽어!"
그리곤 약 올리듯 한마디 덧붙인다.
"빨리 자야 키 커요 도선생님!!"
한대 치려는 폼을 취하니 어느샌가 사정권 밖으로 사라진 변백현.
크게 손인사를 한 후 자신의 차를 타고는 멀리 사라진다.
"휴-"
대체 서른다섯이나 되도록 뭘 하고 산 건지.
그의 순수한 행동으로 보아 소아과 의사로 지내다가 영유아들에게 전염이 된 듯하다.
터덜터덜 어느새 미지근히 식은 아스팔트를 걸어 '삐빅' 하며 차 키로 자동차 문을 연다.
이렇게 업무가 모두 끝난 후 한숨을 쉴 때마다 피곤함을 밖으로 내쉬지 말라며 항상 소리치는 외과 전문의 종대가 생각나지만,
노곤해진 몸을 어쩌랴- 이것이 습관이 된 것을. 이내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는 검은색 차에 시동을 걸고 자연스레 항상 오가던 길을 향한다.
"불타는 금요일은 개뿔. 밖에 나돌아다니지 말고 다들 치킨 먹으러 집으로 사라졌으면 좋겠다..."
핸들에 팔을 얹어 그 위에 머리를 두고 마지막 신호를 기다린다.
나는 쉬고 싶어 죽겠는데 다들 신 나게 돌아다니는구나.
시원하게 나오는 에어컨 바람에 조그맣게 위로를 받으며 나는 앞을 바라본다.
38... 37... 대형 횡단보도에 의해, 흘러가는 초록빛 신호에 맞춰 움직이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꿈을 꾸는 기분이 든다.
오늘의 횡단보도에서는 술에 취한 것과는 조금 달라 보였지만 기분 좋게 흔들거리는 남자애들이 눈에 띄었다. 대학생인 것 같지, 차림이.
"나도 저런 때가 있었는데..." 올해로 서른넷이 된 전문의였다.
죽어라 공부를 했지만 또 신 나게 놀았던 기억도 존재한다.
운이 좋아서 같이 놀았던 친구들 모두 군대도, 시험도 하이패스로 통과를 해서 엘리스 코트를 정상적으로 밟았다지만 청춘은 금방 끝나버리니깐.
물론 그 '청춘'을 불태울 시기에는 사람을 가려 사귀긴 했지만 그는 그것에 만족한다. 많은 사람들을 사귄다고 해서 나에게 복이 될 거란 보장이 없지 않은가.
흘러가는 사람들을 계속 지켜보는 와중 취한 듯, 히죽 웃으며 반들반들한 검정 보닛을 검지로 콕 집더니 살금살금 손가락을 움직이며 걸어가는 커다란 소년.
23... 22... 점점 시간이 지나가는데도 횡단보도 위에서 몇 초전과 같은 자세로 검지만을 내 차의 보닛에 대고 그 손가락 끝을 가만히 지켜본다.
"뭐야?" 어제 세차했건만... 기분이 조금 상한 나는 클랙슨을 울릴까-하며 소년을 쳐다본다.
시선을 점차 올리며. 나는 조금 철렁했다.
조금-(많이) 탔구나 싶은 피부를 가진 남자아이가 턱을 살짝 치켜들고는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으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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