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이야기 |
모두가 잠이 든 새벽 3시. 사람은커녕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인천의 한 부둣가에 번쩍이는 검은색 세단 여러 대가 줄을 지어 들어섰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검은색으로 치장을 한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차에서 내리자마자 일제히 건너편에 세워진 하얀 차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팡이를 짚은 백발 머리의 남자가 자신의 차만큼이나 하얀 정장을 입고 내렸다. 남자가 조금은 쉰 듯한, 걸걸한 목소리로 물었다. 물건은 도착했나. 사람들의 고개가 일제히 숙여지고, 그 모습을 본 남자의 한 쪽 입꼬리가 위로 휘어졌다. 잘했어, 이만 가지. 사람들이 남자의 주위를 에워쌌다. 딱딱거리는 구두소리가 멀어질 때 즈음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성규가 남자가 방금 전까지 서 있던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팀장님, 근방에서 수상한 움직임이 포착되었다는 연락이 왔어요. F5구역, 지금 팀장님 있는 곳 이예요. 이한석이 뜬 것 같은데, 확인하고 지원 요청 해주세요.
체크. 성규가 귀에서 지지직거리는 무전기를 꺼버리고 휴대폰을 들어올렸다. 지원 요청을 위해 희영의 번호를 찾는 도중,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알람이 징하고 울렸다. 확인 버튼을 누르기 무섭게 [아빠, 오늘 하루도 파이팅! ′∇`잠복 끝나는 그 날까지!] 이라는 문구와 함께 우현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그대로 담긴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문자 내용 옆의 귀여운 이모티콘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던 성규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왔다.
“ F5. 지원 요청 바랍니다. ”
아들 힘도 받았겠다, 얼른 끝내고 집에나 가 볼까. 며칠째 잠복근무를 한다고 감지 못했던 머리에서 퀴퀴한 냄새가 나는 것도 같았다. 10시 전까진 느긋하게 끝낼 수 있겠지. 성규가 방금 전에 온 우현의 사진을 바탕화면으로 설정하고는 주머니에 넣어뒀던 총을 만지작거렸다. 팀장님! 저 멀리서 희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던 그가 자신의 입가에 검지손가락을 가져다대고는 오른손을 위로 살포시 들어올렸다. 성규를 향해 달려오던 걸음들이 우뚝 멈추어 섰다. 희영과 상혁이 천천히 성규의 곁으로 다가왔다.
“ 팀장님, 여기 방탄복이요. 경특은 옆쪽에서 대기 하고 있어요. 신호만 주시면 바로 먼저 공격 들어갈 거예요. ”
두꺼운 방탄복을 몸에 걸친 그가 벽에 바짝 붙었다. 그를 따라 희영과 상혁, 그리고 특공대 대원들과 형사들이 컨테이너 박스 주위를 빙 둘렀다. 3. 성규가 손가락 세 개를 번쩍 들어올렸다. 2, 총을 장전 하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렸다. 1.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있던 컨테이너의 문이 활짝 열렸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잔뜩 당황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멍하니 저를 바라보는 호석을 향해 성규가 손을 흔들며 씨익 웃었다. 안녕. 하얗게 질린 얼굴이 허겁지겁 그와 마주친 시선을 피했다. 자그마한 틈새를 이용해 도망가려는 그를 향해 총을 들어올렸다. 탕. 커다란 총성이 울림과 동시에 경찰들이 발을 빠르게 놀렸다.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는 사람들을 보는 성규의 고운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 8시까지 보고서 내고 가야되는데. 성규가 펄쩍펄쩍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아들 보고 싶다. 이 와중에도 우현의 얼굴을 떠올리는 성규의 입가에 미소가 번져왔다.
∞
야옹, 고양이 울음소리가 으습한 골목길을 한가득 메웠다. 높은 담장 위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우현이 낑낑 앓는 소리를 내며 천천히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멍멍. 저 멀리서 인기척을 느낀 나무가 제 주인의 얼굴을 보고선 반가움에 꼬리를 좌우로 흔들어대며 큰소리로 짖기 시작했다. 으아아, 나무야. 쉿! 우현이 움찔거리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멍멍.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모습이 꽤나 위협적이다. 점점 담장 쪽을 향해 달려오는 그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간신히 버텨오던 몸뚱아리가 떨어질듯 말듯 아슬아슬하게 이리저리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 나무야! 나무야! 멈춰! 멈춰봐! "
멍. 머엉. 날쌘 몸이 펄쩍, 담장 쪽으로 뛰어올랐다. '쿵' 하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우현의 엉덩이가 땅바닥과 마주했다. 꼬리뼈 부근에서부터 올라오는 쓰린 통증에 그의 입에서 나지막한 욕설이 흘러나왔다. 아씨, 아파라. 남나무. 이 자식을! 얼굴 한가득 울상을 지어보인 우현이 옆을 둘러보며 다시 담을 오르기 시작했다. 꼼지락, 꼼지락. 겨우 담장 위에 몸을 올린 우현이 가방을 먼저 떨어뜨리기 위해 한 쪽 팔을 뒤로 젖혔다.
“ 아. ”
물컹거리는 뭔가가 손끝을 통해 느껴졌다. 깜짝 놀란 눈동자가 동그래졌다. 삐꺽 거리는 고개가 천천히 뒤를 향한 순간, 우현이 중심을 잃고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점점 기울어지는 몸에 질끈 눈을 감았다. 엉엉, 남우현 이대로 열여덟, 이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까, 정녕? 왈칵 눈물이 치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땅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몸에 힘이 쫙 풀리기 시작했다. 아야! 우현이 비명을 지르며 주먹을 꽉 쥐었다.
“ 뭐해. 여기서. ”
하느님, 부처님. 엉엉. 그 짧은 사이에 생과 사를 오락가락한 우현이 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자 슬그머니 감았던 눈을 떴다. 제 허리에 감긴 하얀 손을 한 번, 바로 앞에 보이는 가슴팍을 또 한 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품에 안겨 손을 꼼지락 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던 성규가 참았던 웃음을 입 밖으로 뱉어냈다. 야, 남우현. 한동안 대답조차 없던 작은 어깨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치 발작을 일으키는 사람의 것 마냥 푸드덕거렸다.
“ 아, 아빠! 안녕! ”
우현이 울상을 지으며 성규의 팔을 꽉 잡았다. 끼잉, 낑낑. 아빠. 아빠? 성규가 표정을 굳히며 천천히 뒤를 돌았다. 남우현, 너 따라와. 우현은 앞서 걸어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망했어, 망했어. 발을 동동 구르는 소리에 성규가 몰래 웃음을 지었다. 아, 진짜 귀여워 죽겠다. 오랜 잠복 기간 동안 쌓여있던 피로가 한순간에 풀리는 것만 같았다. 아빠, 같이 가! 우현이 허겁지겁 가방을 고쳐 매고 성규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
집 안 공기가 원래 이렇게 삭막하고 무서웠나. 우현은 성규의 눈치를 보느라 과일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너, 아빠 없다고 이렇게 야자를 째도 되는 거야? 그것도 3일씩이나. 한동안 지속되던 정적을 깨고 성규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은 제 아들의 모습에 그가 웃음을 참으려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그러니까 아빠. 그게 다 사정이 있어서 그런 거야!
“ 무슨 사정? ”
눈동자만 또르륵 또르륵 굴리던 우현이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듯 성규의 옆에 바짝 몸을 붙였다. 그리고는 대뜸 성규의 주먹을 꽉 잡으며 그의 어깨에 제 머리를 콕, 박았다. 미안해, 아빠! 잘못했어! 축 늘어져있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복슬 거리는 우현의 머리카락이 제 목덜미를 자꾸만 간질이고 있었다. 아, 미치겠다. 목구멍이 간질거리는 게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성규가 우현을 휙, 밀어내더니 새침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야, 애교 부리지마. 안 통해.
“ 아아, 아빠. ”
잠시 고민하는 듯 턱을 괴고 우현만 빤히 바라보던 성규가 인심 썼다는 표정을 지으며 제 무릎을 딱 쳤다. 그렇게 미안하면 아빠한테 뽀뽀. 우현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여전히 방실거리며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툭툭 건드리는 꼴이 참 얄미웠다. 아빠! 우현의 외침에 성규가 이제껏 참아왔던 웃음을 보따리 채 내놓았다. 하여간, 귀여워 죽겠어. 어떻게 매일 그렇게 속아.
“ 완전 나빠. ”
정강이에서 찌릿 거리는 고통이 올라왔다. 악. 다리를 쥐며 바닥으로 쓰러진 성규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우현을 바라봤다. 갑자기 등 뒤로 느껴지는 쎄한 기운에 우현이 머쓱하게 웃으며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투닥거리는 소리가 집 안 가득 울려 퍼졌다. 이제 막 카페 문을 닫고 들어오던 명수와 성열은 신발장에 가지런히 놓여진 성규의 신발을 한 번, 쿵쾅거리는 소리가 나는 2층 계단 쪽을 한 번 바라보고는 동시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펄떡펄떡 뛰며 2층에서 내려온 우현이 명수를 보고는 허겁지겁 그의 등 뒤로 숨어들었다.
“ 우현아, 또 왜 그러고 있어? ”
명수가 성규를 향해 손을 흔들어보였다. 형, 우현이 좀 그만 괴롭혀.
“ 아, 내가 언제 괴롭혔다고 그래. 그냥 뽀뽀 한 번 해달라고 장난 친거지, 장난! ”
그게 그거구만, 뭘.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친 성열이 가만히 명수의 뒤에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는 우현의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우현아, 방에 들어가. 니 아빠, 삼촌들이 잡아 놓을게.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현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갔다.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진 그의 모습에 성규가 잔뜩 성질을 부렸다. 짜증나, 짜증나. 짜증나!
“ 너네 때문에 또 못했잖아, 뽀뽀. ”
하여간, 철이 없어가지고. 성열이 결정타를 날리고는 유유히 방 안으로 들어갔다. 뻥진 성규의 앞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던 명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성열이 들어간 곳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순식간에 혼자 거실에 덩그러니 남겨진 성규가 소리를 한 번 크게 지르고는 그대로 소파에 철푸덕 엎어져버렸다. 우현이 조용해진 틈을 타 조심스럽게 1층으로 내려왔다. 소파에 누워 삐죽삐죽, 욕을 중얼거리는 성규를 발견하고는 활짝 웃는 모습이 귀엽다.
“ 아빠! ”
쪽. 우현이 발그레진 볼을 감싸 쥐며 허겁지겁 계단을 올랐다. 성규가 손을 제 입술 위로 조심스레 올렸다. 방금, 뭐가 지나갔나? 그의 입가에 한가득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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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닉과 조각 하나 왔어요 '-'* | ||
안녕하세요, 라우입니다. 뭔가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데, 처음 올렸을 때 처럼 막 설레고 그러네요. 새 연재작이라서 그런가봐요. 좀 짧은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몇일동안 계속 수정작업을 한 아이랍니다T^T 소개글에서만큼 아련하거나, 그런 분위기는 아니예요! 초반에는 아무래도 오늘처럼 달달한 분위기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망록은 현재 열심히 메모장에 끄적이고 있는중이예요! 그래도 아직 C 초반 부분까지 밖에 못 썼지만…. 최대한 빠르게 쓰려고 열심히 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메일링은 암호닉 없어도 다 받으실 수 있으니, 그 때 말해주셔요! (암호닉이 있으면 번외까지 받으실 수 있어영!)
피존, 콩콩이, 아이비, 귱, 미로, 마가렛, 육급수, 흥, 윤조, 김난, 월요일, 클레오, 뽀뽀로, 렝도찡, 빵형, 씨리얼, 잉피, 남군, 사과맛규, 31, 음표, 꼬마아이, 뀨, 까또, 깡통, 나무정령, 규밍, 새벽, 흥배,딸기규, 성규라스, 감자
암호닉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있어요! 항상 부족한 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그대들 덕분에 언제나 빠샤빠샤 힘내고 있어요!
+ 아, 그리고 요새 글 하나를 더 쓰고 있어요! 이것도 최대한 빨리 데리고 올게요! 이건 아마, 바로 메일링할 것 같아요! 지금은 이정도 밖에 안적었지만, 메일링 받아보고 싶으신 분들은 읽어보셨다가 나중에 메일링 글 올라올 때 신청해주세요! 암호닉 필요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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