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O/백도] 괴물을 보았다 00
"3차 살인사건, 경찰은 뭐 하나?"
"3차 사건, 계속되는 연쇄살인."
"또 일어난 3차, 치밀한 살인."
쿵.
둔탁한 소리와 함께 탁자가 흔들렸다. 거실의 무거운 분위기에 그 누구도 쉽사리 입을 뗄 수 없었다.
"그 짐승 같은 새끼, 잡히기만 해봐!"
"아빠, 진정하세요."
언제부턴가 일어나기 시작한 연쇄 살인 사건. 밤길의 힘없고 약한 여성들만을 노리는 범인.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살인 사건인 줄로만 알았지, 그 누구도 그것이 끔찍한 연쇄살인의 시초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짐승 같은 새끼 때문에 우리 경찰이 욕만 먹고 있는데, 도대체 그 새끼가 증거를 남겨야 잡던가 하지 이거야 원,"
어느덧 연쇄살인은 3차로 접어들었고, 아직도 범인의 정체는 암암리에 있다. 여자인지 남자인지, 몇 살인지, 키는 몇인지, 또 외모은 어떤지, 알려진 것 하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범인은 그 흔한 머리카락 한 올 조차 남기지 않고, 오히려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사체에 자신만의 표식을 남겨두고 홀연히 사라진다, 뻔뻔스럽게.
수요일 밤이었다. 하늘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마냥 비가 추적추적 오던 날, 그날에 1차 사건이 일어났다.
경수는 범인이 무슨 생각으로 이런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게 된 것인지, 어째서 이런 살인을 저지르길 원하는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고, 또 생각하기를 끝에 잡고 있던 펜을 책상에 무심하게 내려놓곤 머리를 책상에 기대었다. 까맣고 숱 맡은 짧은 머리카락이 황갈색의 나무 책상 위에 이리저리 흩어졌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 책상 위의 하얀색의 스탠드 불빛만이 경수의 정수리를 밝게 비추었다. 뭐지? 왜지? 이런 끔찍한 살인을 무려 세 차례나 저질러놓고서는 죄책감도 느끼지 않나? 아, 그래서 사이코패스라는 건가? 아니, 아무리 사이코패스라도 그렇지 그럴 수는...
경수의 머릿속에 곧 무한 가지 의문점이 떠오르려던 찰나, 왠지 모르게 방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 날카로운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려대었다.
"여보세요."
"3차 발생, 치밀한 살인, 3차 사건, 경찰은 뭐 하나."
백현은 항상 생각해왔다.
사람을 죽이면 어떤 기분일까?
사람을 죽인다는 건 뭘까?
"뭐야, 기삿거리들이 다 살인사건에 대한 거야, 시시하게."
백현은 인터넷 기사들을 읽어내리기를 그만, 곧게 선이 뻗은 두 팔을 위로 뻗고 입을 크게 찢어 하품을 한 번 하고는 컴퓨터 전원을 무심하게 껐다.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있느라 뻑뻑한 눈을 한번 깜빡인 후 느릿하게 일어났다.
백현은 운동화를 구겨신었다. 백현의 움직임에 현관문에도 주황색 불빛이 일렁였다. 주황색 불빛 아래 백현의 미세한 움직임에 일어난 하얀 먼지들이 비추어졌다.
"또 무슨 재밌는 일이 있으려나."
차가운 현관문 손잡이에 백현의 흰 손이 닿았다.
새까만 밤 하늘. 대기공해로 별 하나 보이지 않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 두 남녀가 손을 맞잡고 있는 모습이 눈에 비쳤다.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조심히 들어가. 요즘 위험하니까 빨리 들어가야 한다, 알았지?"
"응, 나도 알아. 너도 빨리 가. 들어갈게!"
두 남녀가 곧 맞잡고 있던 손을 놓고 뭐가 그리 아쉬운지 서로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는, 어쩐지 무섭게 일렁이는 주황색 불빛 아래에 여자 혼자, 여자 혼자 걷고 있었다. 여자는, 이제 혼자가 되었다.
여자의 밑에 그림자가 비추어진다. 그리고 그 뒤에도 그림자가 하나 비추어진다. 빈틈 없는 새까만, 그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은 그림자가. 여자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여자의 발걸음이 빨라질수록, 남자의 발걸음도 조여들듯이 빨라진다. 빨리, 더 빨리, 음산한 골목을 울리는 발소리는 목을 조여들듯이 빨라졌다. 그리고, 여자는 뛰었다. 정말, 가엾게도.
꽃잎이 흩뿌려졌다.
개미 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어딘가 모르게 불쾌한 냄새가 나는 골목에 꽃잎이 흩뿌려졌다. 무더운 날씨 텁텁한 사막 한가운데의 화원처럼, 이 음산한 골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화사한 분홍 꽃잎이 무수히 흩뿌려졌다. 여자의 몸 위로.
백현은 웃고 있었다. 잔인하게? 아니, '잔인'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게 웃고 있었다. 한 치의 두려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미소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백현의 구겨진 운동화 위로 마지막 꽃잎이 떨어졌다. 다 낡아서 닳아버린, 흙먼지 투성이가 된, 핏물이 튄 운동화 위로 마지막 꽃잎이 춤추듯 떨어졌다. 아무 미동도 없는 여자. 분홍색 카디건을 입고 하얀색 천 치마를 입은 여자는 이제 한기가 서린 비좁은 골목길 바닥에 누워있었다. 달빛이 여자의 몸을 비추었다. 바닥의 서늘한 기운이 여자의 몸으로 전해지는 듯 여자의 몸도 점점 그의 열기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그러게 왜 혼자 남았어, 응?"
좁은 골목길에 백현의 목소리가 울린다. 백현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서 있다 눈을 내리깔아 미동 없는 여자를 쳐다보다 외투 주머니를 뒤적였다. 싸늘한 바깥공기와는 달리 따뜻한 백현의 체온으로 달구어져 따뜻한 주머니.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어 아무리 뒤적거려봐도 백현이 찾고 있는 담배는 없었다.
"뭐야 놔두고 왔나."
그때였다. 골목 저 편에서 무언가 움직이는,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백현은 황급히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난 쪽을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백현은 생각했다, 자신이 잘 못 들은 거라고. 백현은 다시 자신의 주머니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백현은 확신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경수의 머리 위로 희미한 달빛이 쏟아졌다. 그때, 백현은 마주했다. 아니, 서로가 서로를 마주했다. 긴 정적 속, 한 쪽의 서늘한 바람이 공간을 메웠다. 그리고 두 쌍의 눈동자가 빈 공간을 교차했다.
백현은 경수를, 경수는 백현을.
그렇게, 서로를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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