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인간은 성악설을 바탕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인간은 종특상 승산이 없는 게임이란걸 직감적으로 알게 되어도 그만두지 않는다. 아, 물론 주제를 파악하고 일찌감찌 졸렬하게 꽁무니를 내빼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후자가 통계적으로 많을 것이다. 나 또한 지금껏 그래왔고. 그렇다면 앞의 인간의 성악설에 포괄적으로 속해있는 인간의 종특은 계산값에 어긋나는 단어일까?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한단계 더 나아가 '얍삽한 인간이 내 오기를 건드린다면' 이라는 단어를 추가해보자. 과연 그 후에도 계산값에 어긋난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더하기 빼기 정도는 할 줄 알죠?"
"누굴 바보로 알아요?"
"아, 똑똑한 편은 아닌것 같아서."
"지금 뭐라,"
"열 그만 내고. 그 쪽 차례예요."
".."
"카드 고르라고요. 바보 아니라며."
현재 내 상태를 동물에 비유해 보자면, 작은 토끼였다. 뱀 똬리에 제대로 얽매여서 점점 숨통이 조여와 옴싹달싹 하지도 못하고 잡아 먹히기 만을 기다리는 어린티가 나는 토끼. 눈 앞의 남자가 눈짓으로 카드를 가르킨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과 더이상의 배려는 없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모 아니면 도, 낙 아니면 승이였다. 물론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도 아니면 낙이였다. 끌어봤자 빙빙 돌기만 하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는 노릇이였다. 이가 제대로 빠져 중심을 잡지 못하는 젠가처럼 손이 덜덜 떨려온다. 한 대만 툭 치면 와르르 무너져 버릴 것 같은 손으로 카드를 집는다.
"그럼 볼까."
내 손으로 뒤집은 카드에서 클로버와, 클로버. 두 개의 클로버가 나왔다. 합이 여덟. 합해서 아홉이 나와야 하는 게임에서 실날 만큼의 희망이 보였다. 얼굴이 삽시간에 달아 오르는게 느껴졌다. 남자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저 눈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어떤 카드를 가르키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멍청하게 손가락을 짤깍대며 기다릴 뿐이였다.
" heart."
그가 뒤집은 카드에서 숫자 9를 가르키는 하트가 나왔다. 점점 차오르는 희망에 고개를 미어캣마냥 빼들고 나머지 카드를 응시했다. 저 뒤집힌 카드에서 일이 나오지 않는 이상 나의 승리였다. 일이 나온다 해도 동률에 그칠 뿐이였다.
"그리고,"
".."
"king."
".."
"구 더하기 영은 구인걸로 아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뒤집은 카드에서 0이 나왔다. 생각치도 않고 있던 숫자, 0이. 거짓말처럼. 눈덩이처럼 불어났던 희망이 순식간에 바위에 걸려 부서진다. 나뒹구는 눈조각이 발자국에 눌린 눈바닥 보다도 못 하다. 눈 앞에 남자가 혀를 날름대며 비열하게 웃는다. 남자의 혓바닥이 꼭 뱀처럼 갈라져 보인다. 이젠 모르고 양귀비를 삼켜버린 사람처럼 환각이라도 보이는 수준에 도달 했나보다. 고개를 들자 색색의 글자들로 수놓아진 화려한 간판이 눈에 정확히 꽂혀 들어온다.
[로얄텐 카지노]
그래 알아, 뱀 덫에 걸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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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베가스 카지노 A: Another one, another you.
w. 토끼털
사건의 발단은 간단했다. 그저 대한민국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학점을 소맥 말아먹듯 말아먹어 버린 대학생으로써 이대로 가다간 흔히들 말하는 한강 물 온도가 어떻냐는 둥의 대화가 나올 것을 예방한, 즉 자해공갈 따위를 막기 위해 방학 기간 만이라도 외국으로 잠시 떠있자는 결론 하에 이루어진 즉흥 여행이였다. 한마디로 말해 자살예방 캠페인, 뭐 그 쯤 되는. 이 캠페인의 참가자는 나를 포함하여 세 명이였는데 한명은 믿고 있던 전공 과목에서 큰 실수를 하고 멘탈에 하자가 와 버린 과 동기였고, 나머지 한 명은 나와 고등학교 시절까지 껌딱지처럼 붙어 다니던 근방에 있는 모 여대에 재학중인 친구였다. 둘은 나의 걱정과는 달리 희한한 사교성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셋 모두 어릴적 동네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 처럼 성난 코뿔소가 되어 광란의 시간을 즐겼다. 여기까진 정말 더할 나위 없이 좋았는데.
"야, 라스베가스 하면 뭐다?"
"뭔데?"
분위기가 꽤 조화로운 주점에서 난데없이 시작된 라스베가스의 명물에 대한 논쟁은 나를 제외한 친구와 과 동기의 흥분 지수를 꽤나 높게 끌어 올려 주었다. 왜 나를 제외한 둘만 신이 났냐면, 솔직하게 말해 명물에 대한 이야기를 해 봤자였다. 어차피 우린 또 술을 마시러 떠날거고, 또 토할거고, 또 마실거고. 토마토나 할 게 뻔한데 저런 대화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차라리 어디 술집이 더 나은지에 대한 이야기가 더 유의미 할 것 같았다. 그렇게 대충 둘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척 하며 안주발만 잔뜩 세우며 천천히 잔을 비우고 있을 때였다.
"라스베가스에 오면 의무적으로 카지노에 가야 한다는 속설이 있어."
"대체 그 개똥벌레 같은 속설은 누구의 뇌를 거쳐 나온건데."
살다보면 다들 한번쯤은 그런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허락되지 않은 금단의 구역에 대해서 말이다. 왜 인간이란 참 모순적인 동물이여서 가지 말란 곳은 어째서인지 더 가고싶고, 하지 말란 일은 왜인지 더 하고 싶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 때 간장에 잔뜩 절여진 새우만큼 술에 잔뜩 절여져 제대로된 사고 방식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무식하면 용감해지고, 술만 들어가면 용감해 진다고. 범죄에 대한 포괄 범위가 넓어진다는 뜻이였다. 위험하게도 지금 상황이 딱 그랬다. 우리의 근거없는 용기는 적어도 여기서 그만 두었어야 했다. 쓸데없는 실천력 따위는 리포트 작성 할 때나 발휘해야 하는 것이였다. 어리석게도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후에 과 동기가 '나 돌아갈래' 따위의 울부짖음을 시전했을 쯤이였다.
"가위바위보 해서 지는 사람이 다녀오는거 어때."
"거기가 뭔 애들 놀이턴 줄 아세요?"
"아, 왜. 김아미도 가고 싶대잖아."
"내가 언제."
"아, 진짜 야박하게 구네. 너네 한번 사는 인생 그렇게 시시하게 보낼꺼야?"
한번 사는 인생을 한번에 망치는 길이라는 사실은 간과해 버린듯한 과 동기의 태도에 피곤에 벌개진 눈을 비비며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바라 보았다. 시곗 바늘이 벌써 새벽 두 시를 넘겨 가르키고 있었다. 해가 질 때쯤에 자리를 잡았으니 거의 여섯 시간 째 죽치고 앉아있는 셈이였다. 안 쫓겨난게 다행이지, 라는 심산으로 의자에 걸어둔 얇은 가디건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아무리 찌더움이 가득한 여름이라 해도 새벽 공기는 여전히 쌀쌀했다.
"왜 벌써 옷 입냐. 아, 2차 가려고?"
"내일 아침에 죽는다는 소리 하지 말고 일어나."
"야, 차라리 여기서 죽는게 낫지. 너 또 돌아가서 학점으로 롤러코스터 탈래? 어? 일주일을 갈아 넣으면 뭐해, 돌아오는게 없는데."
"미안한데 난 롤러코스터 안 타. 그리고 지식인이 몇 세기동안 갈고 닦은 정보들을 일주일 안에 얻으려고 하니까 그렇지."
"와, 존나 재수없어. 저 새끼 공부 잘한다고 개무시 하는 것 봐. 너 지금 약간 그거같아. 공낳괴."
공부가 낳은 괴물이라고 히덕대는 둘의 목덜미를 잡아 채곤, 친구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슬쩍 꺼내 계산을 했다. 어차피 돈을 물 쓰듯하는 애라 술에서 깬 후에도 눈치채지 못하리라. 딸랑, 하는 작은 종소리와 함께 가게 문을 열자 펼쳐진 썩 달갑지 않은 상황에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서있었다. 진짜 상황 내 학점같네. 중얼대며 발치에 있던 돌맹이를 툭, 걷어 차버리는 과 동기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을 뿐이였다. 그러게, 상황 참 네 학점같다.
".. 야, 지금 우리 육지에 있는거 맞지?"
"난 여기가 캐리비안의 바다인 줄 알았잖아."
캐리비안 베이도 아니고 캐리비안의 해적도 아닌 캐리비안의 바다는 도대체 이 지구상의 어느 지점 쯤에 존재하는 곳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나 또한 그럴 상황이 아니였기에 입을 가만히 다물고 있었다. 가게 가장 안쪽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아 있느라 몰랐는데 비가 장대처럼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어쩐지 평소보다 피곤하고 여기저기 쑤시는게 어딘가 불길하긴 했었다. 거기에 죽어라 마셔라 부어댄 술 덕분에 바닥까지 일렁거리는게 꼭 바다 한 가운데에 표류한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뭐랄까, 지금 당장 라스베가스 표류기를 찍어도 아무런 위화감이 없을 것 같은 느낌이였다. 우리는 우산도 없는 상황에서 무작정 냅다 뛰었다. 그러다가 가게 처마같은 곳에 잠시 서서 숨을 고르고, 다시 뛰고.
"아, 존나 못 해먹겠어. 그냥 여기서 자고 가자."
잔뜩 상기된 얼굴로 하룻밤을 새우고 가자는 동기의 말에 잠깐 솔깃 했지만 다음날 cnn 실시간 뉴스에서 '길바닥에서 잠을 자다가 입이 돌아간 채 발견된 동양 여자 세명' 따위의 뉴스는 보고 싶지 않았기에 단호하게 거절했다. 뭐 그거 말고 대책이라도 있냐며 나를 부추기는 둘에 천천히 주위를 살폈다. 무작정 뛰는 바람에 숙소쪽이 아닌 엉뚱한 방향으로 들어섰고, 더 가면 큰길이 나올거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점점 더 으슥진 곳으로 들어갈 뿐이였다. 덕분에 사람 그림자라곤 코빼기도 찾기 어려웠고, 운영하고 있는 가게조차 없었다. 빗방울은 점점 더 굵어져 우리의 뺨을 때려왔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은 없었다. 최악을 피하고 차악을 찾을 뿐.
".. 너희 아까 카지노 가고 싶다고 했지."
제정신이 아니였지. 딱 그 말이 어울렸다. 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의 정신 상태에서 차악의 선택지가 아닌 최악의 선택지를 고른것은 동기도, 친구도 아닌 바로 나였다. 다같이 망령이라도 쓰였는지 우리는 홀린듯이 걸음을 옮겼다. 암흑같은 어둠속에서 유일한 빛을 내고 있는, 산속의 도깨비불 같은 건물로. 조심스럽게 건물 안으로 발을 디디자 외관보다 더 빛을 내는 내부가 우리를 반겼다. 빛을 내긴 했지만 밝은 분위기는 아니였다. 전체적인 조명은 꺼져 있었고, 테이블 위에 간간히 달린 조명들이 은은하게 내부를 밝힐 뿐이였다. 예상보다 더욱 바글대는 인파에 술이 확 깨는 기분이였다. 밖에는 쥐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은 마치 설국열차의 맨 끝 칸을 연상 시켰다. 말 그대로 '진짜' 돈냄새가 났다. 담배 냄새와 술 냄새와 알 수 없는 독한 냄새가 섞여 어지러운 냄새를 만들어 냈다.
"잠시만. 설마 여기 로얄텐이야?"
"그게 뭔데."
"와, 너 로얄텐을 몰라? 라스베가스에서 제일 유명한 카지노잖아. 지도에도 안 나와 있고, 네비로 찍어도 안 나오고. 진짜 아는 사람만 아는. 거기를 우리가 아무 정보 없이 오다니. 이거 진짜 운명이라고."
같잖은 운명 따위를 운운대며 잔뜩 흥분한 동기를 가라 앉히며 내부를 슬쩍 흘겨보았다. 동양인은 우리를 제외하고는 없는 듯 했다. 전부 배가 잔뜩 나온 미국 아저씨들, 이상한 품위를 부리며 배가 나온 남자들 옆에 딱 붙어 담배에 불을 붙여주고 있는 여인네들, 그리고 딱 봐도 양키 스타일인 미국 양아치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영화 속에서만 보던 장면들을 실제로 눈에 담아내니 신기하긴 했는데, 딱히 판에 끼고 싶진 않았다. 저들 사이에 끼어봤자 잃었으면 잃었지 절대 얻진 않을 것 같았으니까.
"근데 진짜 특이한게 뭔 지 알아? 여기 운영자가 한국인이래. 심지어 본 사람들 말로는 엄청 젊고 잘생겼대. 근데 얼굴은 잘 안 비춘다고 하더라고."
신이나서 조잘 대더니 마지막에 풀이 잔뜩 죽어 시무룩해진 그녀를 보고 있자니 최근 인터넷에서 본 그라데이션 분노가 떠올랐다. 아, 이건 그라데이션 시무룩 이라고 해야하나. 나는 정말로 비만 피하고 갈 심산이였는데, 둘은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다. 진행중인 게임을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더니,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는 내 눈치를 한 번 살피더니.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안쪽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지럽고 휩쓸리기 딱 좋은 분위기 속에서 분위기에 약한 둘을 내버려 두다니, 내 실수였다. 어두운 공간에서 시야에서 사라져 버린 그들을 찾기 위해 소리 쳐 봤자 알파벳으로 이루어진 웅성거림 속에서 모국어는 힘을 잃고 금세 흩어져 사라져 버렸다.
"진짜 어쩌자는거야.."
이대로 혼자 나가버릴까 생각 해 봤지만 차마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한시간 후에 돈을 전부 탕진하고도 신체 포기 각서에 도장을 찍고 있을 그들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그런 상황 만큼은 온 몸을 날려서라도 막아야 했다. 죽어도 모국에서 죽었지, 타국에서의 죽음은 내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였으니까. 친화력도 넉살도 좋은 둘에게 공통 분모로 이루어진 단점이 딱 하나 있었는데 바로 상황 판단력이 초등학생 수준으로 낮다는 것이였다. 상황의 심각성을 깨닫자 마자 그들을 찾기 위해 인파를 헤집고 돌아다녔다. 무서울 정도로 넓은 공간 속에서 혼자서 그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 특히 지나갈 때마다 잡아 먹을듯 노려보는 교도소 수감자들 뺨치는 눈빛들에 원체 약해빠진 기까지 잔뜩 빼앗겨 버린 상태였다.
"한국인?"
순간적으로 귓전을 스치고 자나간 한국어에 황급히 뒤를 돌았다. 빙글빙글 어지럽게 돌고 있는 룰렛들 사이에서 의자에 외롭게 앉아있는 동양인과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의 동공이 세차게 흔들렸던 것도 같은데, 아마 착각일 것이리라. 그는 물을 잔뜩 뺐는지 머리가 샛노란 색이였는데 얼굴이 지극히 동양쪽 이였다. 쌍꺼풀 없이 긴 눈에 작고 오똑한 코까지. 귀여운 이목구비 였지만 날렵한 턱선과 풍기는 분위기가 마냥 앳된 느낌을 주진 않았다. 한국어를 하는걸 보니 한국인일 가능성이 가장 높긴 했다. 반가운 마음이였는지, 뭐였는지 모르겠지만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나의 응답에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더니 턱짓으로 옆에 빈 의자를 가르켰다. 22년간 한국인으로써 배워온 모션으로는 옆에 앉으라는 소리 같은데, 여기 언어로는 살인 예고 쯤 되는 제스처 같아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서있자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덧붙였다.
" 와서 앉아요."
다행히도 전자에 속하는 것 같은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그의 옆에 착석했다. 간만에 만난 모국인에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샘솟았다. 나중에야 깨달은 사실이지만, 그가 이 곳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 한채. 가까이에 앉은 나를 배려한 것인지 그가 물고 있던 담배를 테이블에 지져 껐다.
"여기는 어떻게 왔어요?"
사교성이 많지 않은 내가 입을 다무니 그도 딱히 할 말이 없는지 애꿏은 테이블만 톡톡 두드려 댔다. 어색한 정적을 껜건 어떻게 왔냐는 그의 물음이었다. 나는 도움이라도 얻고자하는,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자라는 심정으로 그에게 처음부터 끝까지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었다. 나보단 이 곳을 훨씬 잘 아는 사람처럼 보였으니까. ㅡ어쩌면 당연한 소리였다ㅡ 이야기를 해 주는 내내 리액션도 줄곧 잘 해주어서 괜히 쓸데없는 말까지 했던 것 같다. 이를테면 '술을 마시고 밖에 나섰는데, 바닥이 바다처럼 일렁이는거 있죠.' 라던가, '저는 여기가 무슨 불법 도박장인 줄 알았잖아요.' 하는. 생각해 보면 판단력이 흐린 것은 과 동기도, 친구도 아니였다.
"근데 여기 불법 맞는데."
"네?"
"여기 합법 아니고 불법 맞다고요."
"어, 아.."
"설마 합법인 줄 알고 왔어요? 진짜 바본가."
"불법 도박장이 무슨, 이렇게 크고, 유명하고, 또, 영화에서 본 거랑은 많이 다르고.."
"빙고."
그가 손가락을 딱 튕기며 능숙하게 카드를 판 위에 펼쳐냈다. 그러더니 카드를 한 장 뽑아서 본인의 앞에 가져다 두었다. 그러더니 하는 말이 답지 않게 큰 규모 덕분에 짭새들도 오지 않으니 긴장 풀란다. 말인지 막걸린지 분간하기 힘든 우스갯 소리를 내뱉는 그에 주름이 질까 곱게 펴두었던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불법 도박장에 있는게 자랑이세요? 라고 묻고 싶었으나, 나도 이미 이곳에 발을 들였으니까. 만약 운이 쥐똥같아서 오늘 경찰들이 들이닥치면 어떡하지. 도움을 얻으려고 했는데, 걱정만 한 짐 더 짊어진 꼴이 돼버렸다.
"근데 당신을 여기서 볼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네?"
"나랑 게임 한 판 할래요?"
"아, 게임 같은거엔 소질이 없어서.."
"누가 게임을 소질로 해요."
".."
"운으로 하지."
말을 마친 그가 얼굴에 웃음꽃을 활짝 피워냈다. 진짜 웃겨서 웃는게 아닌 웃음이란건 아마 지나가던 보충반을 하는 초등생이 봐도 알 것이였다. 더 이상 진행했다가는 정말로 무슨 일이 날 것만 같아서, 죄송하지만 저 이만 일어날게요. 하는 말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순간 내내 얼굴에 미소를 유지하던 그의 얼굴에 웃음기가 싹 가셨다. 이 때 나는 그의 페이스에 휘말려지 말았어야 했다. 가장 큰 테이블에 혼자 앉아있는. 돈 따기 따위에는 관심도 없어보이는 그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 봤다면, 조금만 주의를 기울였다면 그가 카지노 운영자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을 텐데.
"그런 의지로는 뭘 해내겠다고."
"뭐라고요?"
"당신이 뭘 하던 못 해낸다고. 이렇게 꽁무늬부터 내 빼는 의지로 뭘 하겠다고."
"이봐요, 나를 얼마나 안다고 막말이예요?"
"그쪽이 이기면 이 카지노, 그 순간부터 당신께 되는거고."
"네?"
"지면, 나랑 해요."
"..뭘요,"
"연애."
"..진짜 미친 인간이네."
"아무리 생각해도 그쪽이 이 게임으로 인해서 잃는건 없을 것 같은데, 어때."
나랑 게임
.
.
.
연애 할래요?
*
좋은 연말 보내세요 다들!
나랑 같이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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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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