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준]좋았던 건, 아팠던 건
w.봉봉 쇼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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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21일 목요일
내가 학교를 자퇴한지 거의 반 년이 지났고, 세훈이를 만나지 못한지도 거의 반 년이 지났다. 그 때 사고 이후로 내 다리는 여전히 불구이다.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차마 세훈이를 만날 엄두를 못내겠다. 나를 이상하게 볼까봐. 세훈이가 너무 보고 싶다.
2013년 12월 31일 화요일
벌써 계절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날씨가 추워지고 겨울이 되니까 세훈이가 더 보고싶다. 세훈이는 겨울을 참 좋아했다. 하얀 눈이 너무 좋다고 그랬었다. 작년 오늘에는 세훈이와 같이 시내를 뽈뽈거리며 돌아다녔는데... 언제 또 그런 날이 올까? 어쩌면 다시는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2014년 3월 4일 월요일
이제 세훈이는 대학생이 됐을 것이다. 나와 같은 대학교에 다니겠다는 것을 '넌 공부 못하잖아'라며 괜히 싫은 척 했던 적이 있었다. 내가 세훈이를 좋아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늘 그렇게 세훈이에게 틱틱댔다. 친구의 감정이 아니라서 그랬다. 세훈이는 항상 내가 좋다며 재잘거렸지만, 분명 좋은 친구로서의 의미였을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세훈이에게 더 연락을 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겠다.
2014년 4월 12일 토요일
오늘은 세훈이의 생일이다. 매년 세훈이의 생일마다 생일 축하 카드와 소원 들어주는 것을 선물로 주곤 했었다. 참 초딩 같은 선물이었지만 세훈이는 좋아해줬다. 오늘도 카드를 만들기는 했지만, 세훈이에게는 줄 수 없을 것이다. 오늘따라 세훈이가 더 보고 싶다. 세훈아, 생일 축하해.
2014년 5월 22일 목요일
어제는 내가 사고를 당한지 딱 1년 되는 날이었고, 오늘은 내 생일이다. 계절이 한 바퀴를 돌아 벌써 봄의 막바지다. 벌써부터 가까워지는 여름이 실감난다. 그런데 아직도 세훈이가 보고싶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내 다리는 영영 쓰지 못한다고 말씀하셨다. 오늘은 내가 세훈이에게 축하 받지 못한 두 번째 생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축하 받을 일 따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조금은 극단적일지도 모르는 선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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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어느 후미진 정류장에서 멈추었다. 내리는 사람은 검은 양복을 갖춰 입은 세훈이 다였다. 손에는 하얀 국화 한 송이와 낡은 수첩이 들려져 있었다. 세훈은 외관과는 달리 깔끔한 납골당 내부로 들어섰다. 세훈이 준면이 안치된 곳을 찾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준면의 사진 앞에 가져온 국화를 두고, 아직 보지 않은, 차마 보지 못한 수첩의 마지막 장을 펼쳤다.
세훈이에게
세훈아, 안녕. 나 준면이야. 미안해. 1년 동안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려서. 그렇지만 너를 볼 자신이 없었어. 그래놓고 고작 이런 편지로 인사해서 미안해. 이게 아마 너한테 하는 마지막 말들이 될 거야. 나는 이제 죽을거거든.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는 중이야. 손목을 그으려고. 사실 목을 메는 게 더 확실할 것 같았는데, 내가 다리를 못 써서 일어날 수가 없거든. 그래도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네 초승달 눈웃음을 보고 싶었는데, 많이 아쉬워. 넌 오래오래 살다 와. 좋아하는 사람도 사귀고, 많이 웃어. 저 멀리 가서도 너 웃나, 안 웃나 다 지켜볼 거니깐. 세훈아, 나는 널 많이 좋아했어. 너한테 툴툴거리던 것도 다 그거 숨기려고 그런 거야. 세훈아, 고마워. 그래도 네가 내 삶의 유일한 낙이었어. 세훈아, 사랑해. 안녕. 잘 지내.
준면이가
"…준면아, 안녕. 나, 왔어."
세훈이 고개를 빳빳이 들고 액자 속에서 웃고 있는 준면을 바라보았다. 언젠가 세훈이 빙구 같다고 놀렸던, 아주 해맑은 미소.
"나도 니 미소 한 번 더 보고 싶었는데."
웃고 있는 세훈의 눈에는 조금씩 눈물이 고이다가, 결국엔 참지 못하고 와르르 쏟아져버렸다.
"하으, 준면아, 왜, 왜… 흐으, 왜 그랬어… 나는 니 다리가, 어떻든, 그게 아니라, 너를, 너를 좋아한 건데…나는 그냥 니가 내 옆에 있어줬으면 됐단 말이야… 큰 걸 바라는 게 아니었다고…"
-더 이상은 너의 그 환한 웃음을, 나는 볼 수 없다. 준면아, 너는 내게 잘 지내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일에 누군가가 내게 잘 지내요? 라고 묻게 되었을 때, 내가 긍정의 대답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일 것이다. 지난 1년 간 그래왔듯, 네가 없는 나는 죽은 것과 다름 없을 터이니.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은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은 나를 기쁘게 만들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너 또한, 나를 사랑해서.
울음을 그친 세훈이 주머니에서 은빛의 목걸이를 꺼냈다. 작년 준면의 생일날 선물로 주며 고백하려 했던 목걸이. 오래된 것이라 그런가, 어쩐지 살짝 녹이 슬어 있는 것도 같았다. 목걸이는 결국 제 주인을 만나지 못하고 여지껏 세훈에게 있었다.
"이걸… 이런 식으로 주게 될 줄도 몰랐고, 그러기도 싫은데…."
어쩌겠어. 일단 니 껀데.
목걸이는 국화꽃 옆에 가지런히 놓여졌다. SJ. 둘의 이름의 한 글자 씩을 딴 이니셜이 깔끔하게 수놓여 있었다. 세훈의 목에 걸린 목걸이에도 똑같이.
-준면아, 네 말대로 좋아하는 사람도 사귈 것이다, 나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게 된다면 말이다. 내가 혹 여자를 만나게 되어 아이를 낳는다면, 이름은 세준이로 지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일은 영영 없을 것 같다, 준면아.
"준면아."
부름에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세훈에게만은 그 대답이 들려왔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사랑해."
세훈이 눈을 감았다가 뜨며 미소 지었다. 준면이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초승달 눈웃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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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글 다쓰고 쓰려던 세준 단편글..
노래 모티브로 해서 세준 여러개 써놨는데.. 쉬어가는 차원에서 한 번 끄적여 봤어요..ㅎㅁㅎ..
이번 단편 주제는 종대와 우리 쑤정이 크리스탈이 함께 부른 슴더발 좋았던 건, 아팠던 건!
..예, 뭐 그렇다구요..ㅎㅎㅎ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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