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원/동우] 안녕하세요, 나의 로맨스 (Hello, my romance)
W.전라도사투리
*로맨스 제 1장*
그러니까 그 날은 그와 만난지 딱 3년이 되던 날이었다. 기억속 그 날에는 따듯한 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추적추적 내리는 봄비덕에 약간 쌀쌀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3주년임에도 불구하고 그날은 이상하게도 기분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만나자는 그의 전화에 몸이 축 늘어졌었고 어쩐지 그날만큼은 그와 만나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럼에도 그를 만나기 위해서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영화관으로 향했었다. 그는 활짝 웃어보이며 나를 반겼었고 나 또한 미소를 머금고 그에게 달려갔었다. 3주년이라고 별 달라질 것은 없었다. 평소처럼 영화를 보고 밥을 먹고 길을 거닐고. 우리는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었다.
'헤어지자-'
평소처럼 언제나 나를 집으로 데려다주던 그의 입에서 나온 이질적인 말은 생각보다 평온하고 부드러웠었다. 항상 똑같았던. 평소와 모두 같았는데 달랐다. 그는 나의 대답을 가만히 기다렸었고 나는 물끄러미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래.'
*
사람이란게 그랬다. 죽을만큼 사랑하다가도 그 사람이 떠나가 크나큰 열병을 앓다가도 시간이 가면 점점 떠나간 이를 잊어가는. 나 또한 그랬다. 그리고 가끔 추억에 젖으면 나만 볼 수 있는 소중한 보물상자처럼 꺼내보았다. 아, 그런 사람이 있었고 참 좋은 사람이였었지라며. 추억할 수 있는.
스물여덞 그와 이별을 맞이한지 벌써 5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리고.
"안녕세요."
그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와의 재회를 뭐라 설명해야 할까. 참, 묘했다. 그는 나를 기억조차 못하는 듯 보였으니까 말이다. 그의 옆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여인. 그리고 그들은 아름다운 연인. 평생을 함께 하기로 맹세하려는. 이제는 부부라는 이름아래 새로이 삶을 시작하려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
"웨딩플레너는 보통 여자분이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남자분이셔서 놀랐어요."
"다들 그러셔요. 가끔 남자라 섬세하지 못할거 같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소소한 농담이었다. 그는 그저 여자를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 나에게 눈빛 한 번 흘리지 않았다. 여자는 외소한 체구에 청순함을 가득 안고있었다. 보통 남자라면 한 번 쯤 뒤돌아볼만 한 외모였다. 그도 그런 그녀의 매력에 끌린 것일까. 아무리 그래도 나또한 한 때 너무나도 사랑했던 연인이었단 것을 완전히 자신의 머릿속에서 삭제 시켜버린 것인지. 서툴리 그를 아는 척 할 수도 없다. 그저 결혼식 절차와 여러 매체를 소개한 책자를 그들 앞으로 내밀었다. 평소처럼 웃으며 다른 평범한 고객을 대하듯이 그렇게.
"식장은 성당에서 하고싶은데."
"성당이요?"
"네. 둘다 신을 믿지는 않지만 그 순간만큼은 신 앞에서 맹세하고 싶거든요."
처음 그가 말을 꺼내었다. 첫 인사 이후로. 촤르륵 하고 기억을 필름에 돌아간다. 외딴섬으로 첫 여행을 갔던 때 날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 길을 거닐다 조용한 성당을 찾아 단 둘이 맹세를 했던 때를. 그 때만해도 평생 함께할 줄 알았으니까.
'난 예수 안 믿는데?'
'나도 안 믿어.'
'근데 왜 온거야?'
'신 앞에서 맹세하고 싶거든.'
'뭘?'
'너와 내가 평생 함께 할 거라고.'
그렇게 즉흥적으로 소소한 결혼식을 올렸었다. 그저 맹세일 뿐이었는데 그의 말에 설래었었다. 그리고 그 날. 그에게 나의 모든 것을 내주었던 날이었다.
"저기요?"
"아. 네. 죄송해요. 잠시 생각 좀 하느라."
미소를 지었다. 그 또한 나를 따라 작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5년만에 보는 그의 미소였다.
"요즘은 성당에서도 많이 하는 추세에요. 이렇게 보시면 호텔이나 예식장에서 하시는 것보다 더 수수하고 아름답거든요."
나의 말에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자신의 옆에있는 사랑스러운 여인을 쳐다보았다. 우리의 사랑은 언제나 숨기기 급급했는데 이들의 사랑은 당당하고 밝기만했다. 전혀 다른 사랑의 방식이었다. 동성애자라는 사랑으로 숨어살기 급급했던 나의 가엾던 사랑.
"그럼 플레너님만 믿을게요."
"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결혼식으로 만들어드릴게요."
이제는 끝이나버린 나의 사랑. 과거의 우리.
호원과 호원의 그녀가 떠나간 자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식어버린 커피잔을 들었다. 이 식어버린 커피처럼 우리 또한 식어버렸겠지. 아니 진즉에 식었으려나...
그와의 이별한 이유는 모른다. 그가 헤어지자고만 내게 통보를 내렸으니까. 그의 통보에 나는 이유도 묻지 않고 그를 떠나보냈었고.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을까 싶다. 왜?라는 이유는 한 번 쯤 물어볼만도 했을텐데 말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야 그런생각을 한듯.
"날 기억 못하잖아."
*
눈물이 뚝뚝 흘렀다. 비참하다. 그래. 딱 지금의 내 기분이었다. 이유도 모른 체 그를 떠나보내야만했다. 나를 정말 모르는 것 일까? 아니면 나를 모르는 척 하는 것일까? 왜? 그래도 한 때는 사랑했던 사람인데. 서로 사랑했었는데...
"못된 놈."
툭툭- 비가 떨어진다. 3년 전 그날처럼. 후두둑 하고. 내마음을 대변이라도 해주는 것일까?
"그런거면 더 쏟아져. 쏴아, 쏴아- 후두둑하고..."
그만큼 내가 지금 아프고 슬프거든.
목구멍으로 내려가는 술들이 쓰지만 달았다. 취기가 몸을 뒤덮는다. 머리는 암흑으로 가득 찼고 시야는 빙글빙글 내가 축이되어 돌아간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세상에 그는 없다. 지워져야 한다. 지워졌다...
*
머리가 울리고 구토가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듯 했다. 뜨여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려고 해보지만 간간히 빛만 눈에 비춘다. 어제 너무 과음을 한 듯 싶었다. 갑자기, 다시 나타난 그 때문에. 그가 나를 모르는 척해서? 아니면 그가 나를 잊고서 행복해보여서?
"일어났으면 폼잡지 말고 일어나지?"
"...명수?"
"그래 나 명수야."
"어떻게 네가 여기있어?"
"술에 잡아먹힌 장동우를 내가 구해왔지."
무거운 눈이 떠지더니 시야가 탁트였다. 그리고 언제봐도 잘생긴 명수가 서 있었다. 호원을 만나기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였다. 호원과 사랑을 나누어 행복했을 때도 그와 다투고 슬픔에 잠겼을 때도 그와 헤어져 열병을 앓고 헤메였을 때도 명수는 항상 내 옆에서 나를 이끌어주었던 인물이었다.
"웃지만말고 정신차리고 일어나서 밥먹어."
"응."
어기적 어기적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벗어났다. 방을 나오니 식탁에 차려진 음식 내음이 쓰라린 속을 유혹한다. 안주없이 빈속에 술만 들이켰으니 그럴만도 하겠지.
"무슨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
"...호원이 만났어."
자리에 앉자마자 국을 한 번 떠먹고 나니 묻는 질문이었다.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고 천천히 입을 때어내니 호원이라는 말에 명수의 얼굴은 조금 굳어져있었다. 그리고 그의 행동도 멈추었다.
"날 기억 못 해."
"...왜?"
"몰라. 고객으로 만났는데 아예 모르는 사람처럼 굴더라."
"그래서?"
"그냥 나도 모르는 척했어."
다시 국을 퍼 입속으로 넣었다. 따듯한 국물이 목구멍을 타고 흘렀다. 첫 사랑에 열병을 꽤나 길었다. 잊은 거 같으면서도 잊지 못했다. 그게 미련한 나의 사랑방식이었다. 호원이 떠난 후 진심으로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만나도 호원과 닮은 사람이거나 비슷한 사람이여만했다. 하지만 그들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당연히 사랑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잊었다고 추억에 보물처럼 꺼내보던 그는 참으로 지독했다.
"나는 분명히 잊었다고 했는데 아닌가 봐."
"잡으면되잖아."
"걔 결혼하더라. 내가 담당으로 맡았어."
"미친놈."
"응. 나 미친놈인가 봐. 아무렇지 않게 5년을 보냈는데 막상 다시 나타나니까 눈물이 다 나더라고."
"..."
"근데 잡을 생각은 없어. 호원이의 머리속에서 나 장동우는 삭제된... 과거의 사람이니까."
삭제된 프로그램은 복구 불능이다.
*
하루가 바쁘게 흘러갔다. 직업상 여러 고객을 동시에 맡아야 하고 여러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내 고객들의 또다른 시작을 아름답게 그려내주어야만했다. 그들이 원하는 그림을 그려주기 위해서.
"그럼 청첩장은 이 디자인으로 만들겠습니다."
"부탁드릴게요."
무더웠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어느새 훌쩍 다가와 있었다. 꽃 내음이 사라지고 뜨거운 태양이 내려 쬐었다. 슬 흘러내리는 땀방울를 닦아내고 손에 들려있는 여러 팜플렛을 고쳐 들었다. 그리고 가끔 그런 아이들이나 그런 경우가 있다. 튀려고 저 혼자 툭 튀어나오는.
"후-"
떨어진 하나의 팜플렛을 주우려 몸을 숙이니 이번에는 와르르 쏟아져 내린다. 무더운 날씨에 짜증도 이런 짜증이 없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힐끔 힐끔 무슨 재미난 구경이라고 이걸 쳐다보고 가는지. 툭- 하고 방울이 떨어진다. 씨발- 그냥 날씨가 더워서 눈물이 난다. 그래. 너무 더운데 짜증이 나서. 그래서.
"바보가 왜 울어."
"...너..."
"떨어졌으면 주우면되는 거지 뭐가 서러워서 울어?"
이리저리 흩어진 팜플렛을 차곡차곡 정리하는 손길이 정성스럽고 섬세했다. 굵은 손 마디 하지만 예쁘게 길쭉이 뻗은 손.
"이호원."
이호원 그였다. 진한 눈썹은 그대로였고 다정한 목소리 또한 그대로였다. 눈물이 멍청하게 흘렀다.
*
한산하고 시원한 카페에 들어서 둘이 마주 앉았다. 이렇게 시선을 마주하고 앉아있다는 거 자체가 꿈같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서웠다. 또 저 입에서 어떠한 말들이 쏟아질까. 헤어지던 그 날처럼 덤덤한 목소리로 상처를 낼까. 또 나는 그가 주는 덤덤한 상처를 덤덤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까.
"더 예뻐졌어."
"잘생겨진거겠지."
"아니. 넌 잘생김보다 예쁜거지."
잠시 정적.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할지 망설여졌지만 그의 곧은 눈을 마주했다.
"결혼 축하해."
"할말이 그거 뿐?"
"아니. 많은데. 많았는데. 지금은. 이제는 없어."
"왜?"
왜라는 질문은 이기적이었다. 그는 뻔히 내가 자신에게 던질 질문을 알고 있다. 내 목구멍까지 차올라 있는 질문을. 헤어지던 날 열병을 앓았을 때 내게 혼자 던지던 질문. 네가 무뎌지기 전 까지 네가 듣지 못했던 질문을.
"다시 시작하자."
그의 말에 헛웃음이 비집고 나왔다.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자에게서 나오는 말이라고 할 수 없는 말이였으니까.
"너 미쳤구나?"
"응. 나 미쳤어. 너한테."
"심심하니? 이유도 모르고 헤어져줬잖아. 그래서 앓았잖아."
"나도, 나도 널 앓았어. 지금도 앓고 있어."
"그거 알아? 난 이제 너 앓지 않아."
다 거짓말. 나를 지키려는 거짓말에 불과했다. 그냥 그를 밀어내야만했다. 그의 얼굴을 보고있자니 전에 보았던 가련한 여자가 생각났다. 맑은 눈망울의 여자. 죄를 짓는 거다. 너는.
"시간을 되돌리려고 았어. 널 찾으려고..."
시간은 가고 있다. 지금 이순간에도.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오고 올해가 지나면 또 내년이 오고. 지금이 지나면... 이순간은 없다. 우리가 그랬다. 우리는 이미 과거의 사람들이었고 우리의 사랑은 지나가 버렸다.
"돌아갈 수 없어."
우리의 로맨스는 이미 돌아갈 수 없는 시간에 머물고 있다.
- 오랜만이라고 해야하나요? 캐스트 올리고 얼마 안됬지만 그냥 반갑네요~.~ 예전 암호닉 신청해주셨던 분들이 댓글을 달아주셔서 얼마나 기쁘던지! 그리고 암호닉 신청해주셨던 분까지! 너무 감사합니다! 제가 지금 얼른 꺼야해서 길게는 말씀 못드리지만! 이번 팬픽에서는 여러분과 소통을 열심히 하려고 마음먹었어요!ㅎㅎ 그럼 여러분들 마음에 들기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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