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독자님♡ 인사는 사족에서 드리겠습니다.)
뒷골목 40
놈은 휴대용 사이즈인 칼을 내 목에 들이밀고는 전정국을 노려봤다. 놈의 손이 달달 떨리는 통에 칼이 움직여 살을 파고들었다. 칼에 베인 부분이 쓰라렸다. 이깟 아픔도 통증도 내겐 아무렇지 않았다. 내 삶이 그랬다. 아직 끝나지 않은 가정 폭력부터 시작해 직업 상 겪는 잡다한 폭력까지. 이따위 것들은 내게 아무런 흠집도 낼 수 없다. 다만 내가 아픈 이유는. 그의 눈동자가 번졌기 때문이다. 흐릿한 강물이 그의 눈을 채웠다.
실은 이대로 이 칼에 죽어버려도 나쁘지 않았다. 목적도 목표도 없는 데다 매일같이 추잡한 냄새나 풍기는 역겨운 인생을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힘이 빠져버린 몸에 생명력을 다시 불어 넣으려 발악하는 건 온전히 전정국 탓이다.
팔을 천천히 뒤로 밀어 놈의 배를 팔꿈치로 찍었다. 목이 조금 더 깊게 베임과 함께 놈이 신음을 냈다. 전정국이 내 옆으로 달려왔다. 알고 있듯이 이따위 저급한 협박같은 건 일말의 타격도 주지 않는다.
전정국은 내 눈을 가렸다. 몇 차례 과격한 소리가 들리고 시야가 밝아졌다. 내 목에 칼을 댔던 놈이 다리를 절뚝이며 사라지고 있었다. 그가 목의 상처를 보더니 인상을 쓰며 날 안아 들었다. 이대로 시간이 멎어도 괜찮을 것 같다.
전정국이 들고 다니는 조그만 가방엔 온갖 약이 다 들어있었다. 제가 깡패임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익숙하게 목에 거즈를 대고 소독을 하고 드레싱도 하고. 일련의 과정이 자연스러웠다. 나는 언제나 이런 게 못마땅했다. 당연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우리에겐 당연하다. 총알이 박힌 뒷좌석의 모습이나.
전정국은 말이 없다.
“설명해.”
내 말에 전정국은 고개를 홱 돌려버린다. 무언의 시위라도 하는 마냥. 내가 싫어하는 순간이 또 한번 찾아왔다. 이런 게 싫다. 날 지키겠다는 같잖은 명목으로 입을 닫아버리는 그의 순간들이. 웃긴 건 그렇다고 난 닦달하지 않는다. 내가 알아내는 편이었다. 줄곧.
“내가 직접 알아내? 그래서 욕이라도 실컷 해? 그러길 바라?”
이번에는 싫었다. 핸드폰에 띄워진 김검사의 부재중 전화 몇십 통을 무시하고 있는 내 이유를 좀 알아주었으면 했다. 저 나쁜 자식이.
“주아야.”
“내 이름 부르지 마.”
저 입술이 내 이름을 부르면 혼란스럽다. 그의 세계 속에 갇힌 느낌이다. 헤어나올 수 없도록. 그의 세계 속에서 내 의지는 위태롭다.
“설명부터 해.”
어차피 알게 될 테니 그저 난 네 목소리로 듣고 싶을 뿐이다. 내 우주를 담은 목소리를 그저 좀 더 듣고 싶다. 내 바람과는 다르게 익숙한 사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다시 다시 김검사의 전화가 오고 있었다. 바싹 말라가는 나와는 달리 전정국은 평온했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
“전정국.”
“......”
“이러지 마. 나와.”
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전정국의 손목에 수갑을 채울까.
“그래, 가자.”
“......”
“네가 그때 했던 말처럼. 도망가.”
“네가 뭔데.”
“뭐?”
“네가 뭔데 나랑 도망을 가. 깡패가 미쳤다고 형사랑 도망을 쳐?”
전정국이 비릿하게 웃었다.
“전정국, 시동 걸어.”
“이주아. 똑바로 생각해.”
그가 내 어깨를 양손으로 잡았다. 그의 눈과 입이 서로 다른 이야길 하고 있다. 전정국에게서 차 키를 뺏으려 팔을 들었다.
“왜 이래. 진짜!”
전정국은 뻗은 내 팔을 무시하곤 보란 듯이 차 키를 창밖으로 내던졌다. 곧이어 차창에 그림자가 졌다. 새빨간 불빛이 우리 주변을 에워쌌다.
“마약 제조 및 유통.”
전정국은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내 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우리가 탄 차의 조수석 문을 연 박지민이 내게 수갑을 건네며 속삭였다.
“지금 전정국 안 잡으면 범인 은닉죄로 누나도 같이 잡혀요.”
전정국이 제 손목을 흔들어 보였다. 오늘에서야 알았는데, 전정국은 눈물을 잘 참았다. 태연하게. 흰자의 실핏줄이 다 터지는 것도 모른 채. 눈에 힘을 주고.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유난히 날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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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으십니까.”
멍하니 앉아있는 내 옆으로 김검사가 다가왔다. 괜찮을 리가 없는 데도 그는 애써 물음을 던진다. 왜 자신의 전화를 받지 않았냐는 물음 따윈 사라졌다. 결국 전정국에게 그 어떤 설명도 듣지 못했다. 김검사는 알 터였다.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의미였다.
마약 외에 김기환 살이 교사 건까지 더해진다면 중형이었다. 먀약 제조와 유통 역시 전정국이 하지 않았음을 우린 알고 있다. 교묘하게 조작된 증거와 갑자기 나타난 증인들이 모두 그를 지목했다는 게 문제였다. 애초에 마약 제조와 유통은 중역파의 지시로 김기환이 맡아했던 일이었다. 전정국은 최홍식의 말대로 그것을 가로채려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알고있는 부분이다. 게다가 김기환 살인 교사는. 전정국이 그랬을 리가.
단지 전정국은 내가 죽을까봐 모든 죄를 뒤집어쓴 것이다. 스스로. 미련하기 짝이 없다. 내가 저들의 손에 죽는 것만큼 허무맹랑한 얘기가 없다. 내 몸 하나쯤은 전정국이 돕지 않아도 충분히 지킬 수 있다.
내게 모든 설명을 끝낸 김검사는 유감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뭘 하면 되죠?”
“이 경위님.”
“네.”
“전정국 씨가 어떻게 되던 저랑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김남준은 언제나 그렇듯 자신의 입장에서 맞는 말만을 골라서 했다. 그의 말대로 전정국이 교도소에 가든 무죄를 받든 김남준에겐 어떤 이해관계도 걸려있지 않다.
“저는 기회를 드렸습니다.”
“......”
“체포영장이 나오고 나서 연락을 드렸죠. 가능하다면 두 분 다 도망가시라는 의미였습니다.”
“홍록파를 없애버리겠다는 얘기는 이제 끝난 건가요?”
“글쎄요. 저도 조사 중인 게 있어서 지금 확답을 드리긴 어렵네요.”
“놈들이 도로 한복판에서 총질을 해댔는데. 기사 하나 나오지 않은 건 뭐죠?”
분명 전정국과 내가 타고 있던 차에 난 총알구멍을 보았을 터였다. 내 목의 상처를 김남준에게 보였다.
“내 목숨 갖고 협박도 했는데. 이건 어쩔 거고요.”
“이 경위님.”
더는 물러설 곳이 없다. 가진 게 없다면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김남준은 정회장 쪽 사람이다. 정회장은 최홍식의 죽음 후 홍록파에 별 볼일이 없는 것처럼 굴었다. 김남준은 그것에 대해 ‘글세’라고 답했고. 최홍식이 없는 홍록파엔 그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김남준이 여태껏 날 도운 이유는 그의 직업이 홍록파와 같은 범죄자들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난 그의 약점을 안다.
“검사씩이나 되는 사람이 가까이에서 일어난 범죄를 눈감아주는 건가요?”
“이 경위님.”
“앞에선 멋있는 척, 이성적인 척하더니 결국 그저 그런 사람이었네요.”
김검사가 날 빤히 바라보았다. 누군가의 약점을 건들고 흔드는 악취미는 없었으나 지금은 없는 취미라도 만들어야했다.
“하고 싶으신 말이...”
“홍록파든 뭐든 잡아넣자고요. 황만식 그 새끼 내 손으로 족쳐야겠으니까. 그리고 이게 검사님 일이시잖아요?”
“황만식을 잡아 전정국 씨의 결백을 증명하기라도 하실 건가요?”
“전정국이 완벽하게 결백하지 않다는 건 나도 알아요.”
그래, 나도 안다. 그가 범죄자라는 것을.
“그렇다고 남의 죄까지 뒤집어쓰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까.”
“다시 하자고요?”
어차피 그는 하게 될 것이다. 최홍식이 없는 홍록파에 볼일이 없다던 정회장은 이제 황만식이 있는 홍록파에 볼일이 생겼으니까. 정채희가 죽었으니 이제 곧 움직일 터였다. 다만, 김남준은 여전히 황만식과 이해관계가 불투명하다. 그랬기에 그의 곧은 성정을 건드렸고.
“그래요. 도와드리겠습니다.”
성공했다.
“돕는 게 아니라 동업이죠.”
“네. 같이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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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정국의 구속 영장 신청이 들어갔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빌어먹을. 담배를 태우고 있으니 김남준이 서류 보따리를 한 움큼 가져왔다. 눈으로 이게 다 뭐냐고 묻자 김남준이 서류들을 책상에 놓았다. 먼지가 폴폴 날렸다.
“김기환 사건 서류입니다.”
이쪽부터 파보자는 얘기였다. 김기환이 죽은 지도 아주 많이 지났는데 그가 자살인지 타살인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조폭이라해도 끝내 이런 것이다. 결국 돈을 가져가는 것 다 윗대가리들이다. 김기환같은 사람들은 평생을 몸 바쳐 일해도 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타인에 의해 죽었는지 판명나지도 않는다. 전에 봤던 그의 어린 딸이 떠올랐다. 날 붙잡고 울던 아내 분도. 그저 잘살고 있길 바랐다. 하기야 내 코가 석자긴 하다.
김검사는 김기환 사건을 가져왔으나 나는 분명히 해둘 것이 있었다. 김태형은 어떻게 전정국의 친부가 최홍식임을 알았을까. 전정국조차도 최근에야 알았다고 했다. 둘의 연결고리가 있을까. 전에 마주쳤던 둘은 분명 친분이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김태형은 정채희도 알고 있었다. 최홍식의 장례식장에서 나와 친구인 척을 했었고 그때 내게 최홍식의 머리카락을 쥐여주었다. 내가 전정국의 친부가 최홍식임을 알아야 할 이유가 뭘까.
“전정국 씨, 조사실에 있다는데. 같이 가시겠어요?”
김남준을 따라 일어났다.
수갑을 찬 채 앉아있는 전정국은 여느 때와 다름 없었다. 밖에 내가 있음을 알고 일부러 씩씩한 모습을 보이는 것같기도 했다. 낯빛은 딱히 좋아 보이지 않았으니까. 결국 모든 걸 뒤집어쓰기로 저 혼자 선택한 것과는 달리 전정국은 내 마지막 부탁을 들어주고 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조사실에서 김남준이 나왔다.
“경위님이시죠?”
“뭐가요?”
“전정국한테 묵비권 행사하라고 한 거.”
“제가요?”
“수갑 채울 때 속삭이는 거 봤어요. 그때 맞죠?”
나 역시 그의 물음에 침묵으로 답했다. 김남준은 내게 안으로 들어가보라고 했다. 검은 벽이 사방에 둘러쌓인 공간은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위압감을 줬다. 숨이 막혔다. 조사실 안 녹음기와 카메라를 모두 껐다.
“밥 안 먹었지.”
전정국이 말했다. 그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모를 노릇이다. 답답함에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웃는 꼴을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였다.
“욕부터 해도 돼?”
“키스부터 해도 돼?”
“지금 장난해?”
“장난 아닌데.”
입술을 말아 물었다. 능글거리는 게 더 늘었다.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안다. 시간이 별로 없으니 물어볼 것부터 물어야 했다.
“김태형이랑 무슨 사이야.”
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가셨다. 그래, 여기서부터다. 김남준이 내게 깊이 들어오지 말라고했던 경고도 뭐도 다 여기서부터다. 그리고 전정국도 이것과 관련이 있었다. 그의 표정이 모든 걸 증명했다.
전정국을 만나고부터 내 옳고그름이 무너졌다고 생각했었다. 그렇게 여기고 싶었던 착각이었다. 나는 원래부터 선과 악을 따질 형편이 되질 않았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에게 악을 쓰고 달려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도덕은 사치일 뿐이다. 부친을 피하겠단 명목으로 나 역시 폭력을 쓰지 않았나. 게다가 무고한 사람을 죽인 적도 있다.
가까스로 인정한 내 양심은 내 앞의 사람을 가리켰다. 저 사람을 내 옆으로 데려오겠다고. 언젠가 그들이 내게 했던 경고들을 모두 무시할 차례였다.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곳에서 전정국을 무죄로 만들어줄 사람을 만나야겠다. 그를 압도할 무기를 들고. 날 비난해도 어쩔 수 없다. 돈이면 모든 게 해결되는 꼬라지를 지겹도록 봐왔으니. 나라고 못할 이유가 있기라도 한가. 그러는 댁들은 얼마나 투명하시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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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사과부터 드리고 시작하겠읍니다,,
39편이 작년 8월이네요. 이게 무슨 일이람. 늦게 온 이유는 단순합니다. 제가 현생이 바빠서 글을 쓸 여력이 없었어요ㅜ 그래도 최대한 빨리 와야지 생각했던 건 독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댓글들 때문입니다. 이게 뭐라고ㅜㅜ 일부러 찾아주셔서 기다린다고 해주셔서 진심으로 고맙습니다. 매일 들리신다는 독자님도 계시더라구요ㅜㅜ 아마 독자님들이 말씀 안해주셨으면 진짜 영영 늦게 올 수도 있었을 거예요...
그리고 하나 더 문제가 생긴 게 제가 뒷골목을 쓴 지가 쬐끔 오래된 지라 감을 잃은 것 같습니다...(이실직고) 결말까지 시놉이 있긴 하지만 오래 기다려주셨는데 노잼이면 어쩌지 하는 그런 걱정도 듭니다. 현생도 다 뿌시고 온 건 아니라 연재 텀도 좀 길 것 같긴해요. 오랜만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이런 얘기 밖에 없어 미안합니다. 그래도 약속 어쨌든 완결 편은 다 쓸겁니다.. 다만, 얼마나 걸릴 지는 장담 못드리겠어요. 그래도 독자님들도 대충 아시겠지만 거의 끝부분입니다 이제.
사족 한 번 엄청 기네요. 다시 한 번 너무 감사드리구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합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