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왈츠 0
w.모꾸
봄을 알리는 비가 내렸다. 3월은 여전히도 춥다. 택시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세희는 어깨에 메어진 케이스 끈을 단단히 붙잡았다. 이런 날이면 바이올린에 습기가 가득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연습용 악기로 챙겨왔다는 거다. 집에 가면 악기 케이스에 넣어 놓을 물먹는 하마나 더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 세희의 등에 붙은 빨간 바이올린 케이스가 발걸음마다 달캉 소리를 낸다.
그녀는 항상 의문이었다. 다른 아파트 단지들에선 길고양이가 흔해빠졌는데, 이 동네는 고양이의 털 끝 하나도 구경할 수가 없었다. 고양이 덕후 세희는 그게 늘 불만이었다. 캣맘이든 캣대디든 간에 세희는 언제나 준비가 되어있었단 말이다. 집사가 될 준비가! 그렇기에 그녀의 책가방과 바이올린 케이스 주머니엔 언제나 츄르가 있었다.
근데 지금 또 의문인 건, 왜 눈앞에 고양이가 있단 말임...? 집에 도착하기 바로 전 동에 다다랐을 때, 그녀는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냐앙-. 냐아앙-. 눈에 쌍심지를 켜고 둘러보니, 201동 화단에 고양이가 있다. 진짜로-?! 대애박. 케이스가 비에 젖을 새라 조심조심 걷던 세희는 악기고 뭐고 모르겠고 그냥 걸음이 빨라졌다.
“미친 귀여워...”
까만 코트에 배 부분이 하얀 고양이. 이건 턱시도 고양이다. 세희는 조심스레 몸을 숙이고 쭈구려 앉았다. 그러니 고양이와 눈높이가 딱 맞다. 비를 맞으며 두려움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고양이. 세희는 조심스레, 그리고 천천히 손등을 내밀었다. 멈칫하며 몸을 뒤로 빼더니 이내 손등에 뺨을 비벼온다. 따뜻하고 또 보들보들하다.
어느새 세희는 화단에 엉덩일 걸치고 앉아있었고, 악기는 201동 입구 처마 밑에 버려버렸다. 우산은 고양이와 사이좋게 나눠 쓰는 중이었다. 자기가 생각해도 그 모양새가 퍽 웃겨서 누가 사진이라도 좀 찍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넌 어느 별에서 왔니? 여타 길고양이들과는 달랐다. 사람을 경계하지 않는 모습에서 집고양이 스멜이 물씬 나는 것이 집 탈출이라도 한 모양이다. 고양이는 어느새 세희의 무릎 위에서 골골송을 부르는 중이었다. 내 인생에도 이런 날이 있구나.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애교에 심장이 남아나질 않는 것 같다. 비 맞아 축축한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제 이 애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해 생각하던 참이었다.
“김까막!!!”
“냐아아아앙-!!!!”
“악!!!!!!”
201동에서 난데없이 튀어나온 남자의 샤우팅과 우렁차게 대답하는 고양이. 세희는 그 이중창에 놀라 들고 있던 우산을 놓쳤다. 참고로 화단과 동 입구는 30cm 정도였다. 달팽이관 뒤집어지는 줄!!!! 그리고 정수리에 비가 닿기 시작한다.
남준은 샤워를 하던 중이었고 밖에서 엄마 아빠 장보고 올게!! 하는 말에 그러라고 대답했다. 거기까진 아무 문제 없었다. 나와서 로션찹찹에 머리 말리겠다고 드라이길 집어 들 때까지도 아무 생각 없었다. 거실로 가지고 나와 콘센트에 코드를 꽂으려 하는데 그때부터 뭔가 싸한 거다. 보이질 않는 까막이? 그건 문제가 아니다. 고양이는 어디에든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럼 뭐가?
저기 주먹만 한 틈새가 있는 게.
현관이 덜 닫혔다.
남준은 급해졌다. 까막아! 까막아! 소리 지르며 집 안을 뒤지는 데도 애가 안 나온다. 까막이는 개냥이라 제 이름도 알아먹는다. 진즉에 냥냥 거리며 나왔어야 한다. 그리고 남준은 지체 없이 현관을 나섰다. 12층 되는 계단을 다다닥 내려가면서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살펴봐야 하나 생각했다. 어쨌든 멀리 가진 않았을 거라는 결론이었고 그래서 초장부터 소리 지른 게 맞다.
하, 까막아. 세희의 무릎에서 내려온 까막이는 남준에게 안겼다. 비는 추적추적 내렸다. 홀딱 젖은 두 사람은 입을 우물거렸다. 무슨 말을, 누가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는 거다. 한 1분 흘렀나.
“음... 저기 안에 들어갈래?”
남준이 바로 옆을 가리켰고, 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준은 집에서 긴 타월을 가지고 내려왔다. 세희는 까막이를 안은 채 타월을 뒤집어썼다. 빨간 바이올린 케이스. 그 옆에 두 사람은 벽에 등을 기댄 채 나란히 쭈구려 앉아 있었다. 우우웅 귀여워 까막이야-. 까막이의 정수리에 뺨을 부비는 세희를 턱을 괴고서 쳐다보던 남준이 말했다.
“같은 동넨 줄은 몰랐네.”
“그러게? 너 언제부터 여기 산 거야?”
“어... 10년은 된 것 같은데.”
“난 11년 정도?”
이 정도로 안 마주치기도 어렵겠다야. 세희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고등생활 2년의 시작. 2학년 1반에서 둘은 생전 처음 본 사이였다. 남준은 투표도 없이 선생님의 권유로 반장이 되었는데, 어쩌라구 세희는 별 관심 없었다. 남준도 관심 없기는 피차일반이었고. 난데없는 고양이 대탈출 소동으로 둘은 같은 반이 된 지 2주 만에 처음 서로를 똑바로 쳐다봤고, 대화를 나눴고, 같은 동네 주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세희가 바이올린을 전공한다는 것도, 남준이 고양이를 키운다는 것도.
“나 까막이 사진 보내주면 안 돼?”
“어?”
“반톡에 내 카톡 있잖아.”
그거 친추하구 나 까막이 사진 보내주라, 응?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고양이 같다. 어쩐지 거절할 수가 없는 마음이 드는 남준이었다.
그날 저녁 남준에게 카톡이 왔다. 고양이 사진 10장에 동영상 1개. 혜자다 혜자야. 세희는 킥킥거리며 남준의 카톡을 친구 목록에 추가했다.
“나도 이제 (아는)고양이 있다-!”
세희는 이불을 팡팡 차댔다. 기분 죠아져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