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숙사 안은 소년들로 북적였다.
부모님을 따라 온 소년들은 각자 번호가 적힌 옷장과 책꽂이를 배급받아 준비해온 생필품들을 풀었다.
소년들이 준비해온 물품은 모두가 비슷했다. 소년들은 짐을 풀어서 옷을 펴 놓고 내의를 잘 접어놓았으며
또한 책을 쌓아올렸고 신발과 실내화를 나란히 줄을 지어놓았다.
기숙사 안은 모두가 몹시 분주하였고 약간 들떠 있었으며
소년들의 어머니들은 항상 그래왔듯이 모든 일을 거의 도맡아했다.
의복이나 내의를 하나씩 집어들어 주름을 펴기도하고 허리띠를 바로 하기도 하면서
주의깊게 살펴보아 될수있는 대로 가지런하고 쓸모있게 옷장 안에 분류해 넣었다.
경수는 그것들을 멍하니 바라 볼 뿐이였다.
넥타이를 고쳐 매어주거나 다음 만날 날을 기약하며 뺨을 쓸어 줄 어머니가 경수에겐 없었다.
새삼 어머니의 부재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밤이였다. 신학교의 입학식 첫날 밤은.
학교에는 다양한 출신의 아이들이 있었다.
명랑하고 활발한 저지대 출신, 품행이 험하고 말이 빠른 고지대 출신
밝은 갈색톤의 머리에 입이 크고 다혈질인 슈바르츠발트 출신까지.
학교에 있을 동안 자신이 지내야 할 방을 배정받은 경수는 '아테네' 라고 적힌
쪽지를 들고 복도 중앙에 한참을 서 있었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멍청한 짓은 하지말라고 몇번이나 당부했던 아버지의 말이
귓가에 울리는것 같았다.
이내 정신을 차리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어 어렵사리 찾아 온
제법 넓직한 방에는 소년 여섯명이 있었다.
침대가 아홉인걸 보니 저 말고 도착하지않은 사람이
둘씩이나 있다는 사실에 경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곤
자신의 것으로 보이는 침대의 끝에 살짝 걸터앉았다.
방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간혹 짐을 푸는듯한 달그락 걸리는 소리가 나긴했지만
시끌벅쩍한 복도와 대조적으로 방안은 무서우리만치 조용했다.
적어도 키가 멀대같이 크고 웃을때 입안 가득 하얀 이가 보이는
슈바르츠발트 출신인 소년이 오기전까진.
"여긴가? 아아, 맞네 맞아. 제대로 찾아왔네."
문이 열리며 갑자기 들이닥친 소음에 방 안에 있던 소년들의 눈이 모두 한쪽으로 쏠렸다.
그와 동시에 경수 옆 침대에 있던 키가작고 방에 들어온 순간부터 줄곧
음악만 듣고있던 소년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키가 큰 소년을 아는 체 했다.
"박찬열 너도 이 방이냐?"
"와 진짜 오랜만이네. 깜짝이야 "
"아까 강당에서 찾아도 없길래 시험 떨어진줄 알았지 나는."
"형이 고작 학교 시험 하나를 못볼까봐?"
"떨어진것같다고 징징 댈땐 언제고."
경수의 옆 침대인 소년과 슈바르츠발트 출신인 소년은 그 후에도 대화를 몇번 주고받았고
그 덕분에 방에는 왠지모를 생기가 띠였다.
막간을 이용해 히브리어 문법을 외우려던 경수에겐 갑지기 시끄러워진 방 분위기가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구분이 가지않았다.
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아홉시까지 저녁을 먹고 다시 방으로 모이라는 방송이 울렸다.
점호를 할 것이니 늦으면 안된다는 조교의 엄포에 소년들은 하나 둘 씩 방을 빠져나갔다.
경수도 천천히 그들을 따라 방을 나갔다.
여전히 비어있는 한 침대의 주인이 아직까지 나타나지않았다는 것을
모두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아는 사이라고 해봤자 슈바르츠발트 출신인 키 큰 소년과 경수의 옆침대인 소년 둘뿐이였기에
소년들은 너 나 할것없이 급식소 의자에 섞여 앉았다.
식판 위엔 방금 배식을 받은 정갈한 음식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지만
경수는 음식을 입 안에 넣을 생각이 없었다.
주위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이 오늘 처음 온 학교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까.
생각은 했지만 막상 닥쳐보니 상황은 가히 절망적 이였다.
입 안이 까끌까끌 한게 한 숟갈도 목 뒤로 넘기지 못한것이다.
억지로 씹어 삼킨다면 금방 또 게워낼것이 분명했다.
경수는 남 몰래 한숨을 푹 내쉬곤 젓가락을 들어 반찬을 뒤적댔다.
적당히 시간을 끌다 두어명이 식사를 끝낼 즈음에 자리에서 일어 날 심산이였다.
"음식은 입에 좀 맞나?"
학교의 영양사 쯤으로 보이는 아저씨의 질문에 대답하는 사람은 한명도 었었다.
영양사는 사내놈들이 수줍음이 많다며, 특별히 입학 첫날이라서 자신이 식단에 신경 좀 썼다고
말한 뒤 뭐가 그렇게 웃긴지 호탕하게 웃어댔다.
하지만 그 뒤에 아저씨가 한 말은 전혀 웃기지않았다.
"음식은 남기면 안돼. 저기 저 보이지? 저 남자가 너희 학생주임 되는 사람인데
음식 남기는걸 보지 못하거든. 입학 첫날부터 찍히고 싶지않으면 다 먹어야 할거다."
경수는 들고있던 숟가락을 잠시 내려놓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 소녀들은 영양사의 말 따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식사에 집중하고 있었다.
경수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 쉬곤 숟가락을 들어 국을 한번 크게 떠 먹었다.
체할것을 알면서도 음식을 먹는다는 건 고통스러웠다.
"우웨엑, 으..우욱!'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음식을 꾸역꾸역 집어 삼키곤 급식실을 나가자마자
경수는 미식거리는 속을 느끼곤 기숙사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걸음을 빨리 할수록 더 미식거리는 속 탓에 더이상 한발짝도 못 움직이는 상황에 부딪쳤다.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는게 느껴지고 처음으로 집 생각이 간절했다.
순간 지저분하고 바퀴벌레가 가득한 제 방이 떠올랐지만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금방 생각을 지우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아까 그 길을 지나올때 숲이 있었다는것을 기억해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숲이 멀지않은 곳에 있었다.
경수는 힘겹게 발 걸음을 옮겼다.
"욱, 우에웩, 으..커헉,"
숲에는 다행히 도착 했지만 단단히 체 했는지 음식물이 계속 올라왔다.
오늘 뭘 먹었더라. 이모가 든든히 먹고가야 한다며
이것저것 건낸 것을 다 받아먹은 탓에 이 사단이 났구나.
경수는 가볍게 두 눈을 감았다. 욕지기가 턱 끝까지 올라왔지만 내뱉지 않았다.
본래 욕을 잘 하지않으며 온순한 성품을 가지고있는데다
이제 신학교의 학생이라는 신분이 저를 무겁게 짓 누르고있었다.
어쩌다 이 학교에 들어와서는.
오늘 둘러본 바에 의하면 이 학교에 동양인은 저를 포함하여 몇 없는것 같았다.
영어도 완벽하게 하지 못하는데 히브리어와 라틴어 까지 배우려니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왔다.
아, 아홉시까지 점호라고 그랬는데. 순간적으로 경수는 손목시계를 바라보았다.
씨발, 아까했던 말들이 무색하게 경수의 입에서는 욕지기들이 마구 튀어나왔다.
첫날부터 찍히면 안되는데
하지만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다시 올라오는 토사물에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울고싶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풀 숲이 살짝 움직였다.
뭐지, 고양인가? 눈에 힘을 주고 바라보니
잔뜩 움크리고있는 고양이, 가 아니라 사람이였다.
"뭐야, 누구야."
잔뜩 불쾌해진 경수는 노골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내며
그남자를 쏘아보았다,
"나도 불쾌해. 본의아니게 너 토하는걸 생중계로 봐 버렸거든."
영어로 물었지만 한국어로 돌아오는 대답에 놀란 듯 경수의 눈이 동그래졌다.
학교에서 아버지와 헤어진지 반나절만에 듣는 한국어에 어안이벙벙했다.
그 까무잡잡한 사내는 풀 숲을 걸어나오며 뭐가 문제냐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아마도 나의 반응이 이해가 되지 않는듯 했다.
"어떻게 알았어?"
"영어가 아무리 익숙해도 욕은 모국어로 나오지."
제 2외국어의 한계라고 해야되나.
남자는 몇 마디를 남겨놓고 벌써 저만치 걸어가 버렸다.
이 넓은 땅 덩어리에서 같은 국저끼리 만났는데 반갑지도 않나.
경수는 야속한 뒷 모습에 대곤 욕을 하며 대충 진정이 된듯 해
옷 매무새를 가다듬다 9시를 훌쩍 넘긴 시간에 한숨을 내 쉬었다.
입학한지 하루만에 벌써 다섯번째로 내 쉰 한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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