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구렁이 고딩 찬열x성깔 있는 회사원 너징 2
(역아고물)
어제는 김준면만 진탕 마신 탓에 별로 속이 쓰리지 않았다. 시원한 콩나물국 한 그릇을 다 먹자 개운해지는 게 딱이었다. 부랴부랴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회사에 차를 두고 나와 버스를 타고가야만 했다. 가는 길에 전화음이 울렸다. 상대는 어제 중얼중얼 술주정의 주인공 님이지. 뻔했다.
― 어제 잘 들어갔냐. 매니저 형이 너 안 데려다 줬다는데.
"내 걱정은 됐고. 어제 너 혼자만 다섯 병 마신 것 같은데. 속은 어때?"
― 죽을 것 같아... 물만 마셨는데 속이 쓰리다 못 해 타. 으으.
바빠서 밥도 못 먹은 건지, 배를 붙잡고 끙끙 대는 게 눈에 훤히 보였다. 병신아, 작작 마시랬지. 걱정 투로 말하니 그것도 뫃은지 헤헤 웃어댄다. 뭐가 좋다고 웃긴 웃어.
쓸데없이 웃음이 많았다. 연예인이라 더 그런가. 전화 너머로 차의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왠 클락션 소리야. 스케줄 있다며. 가는 길에 사고 났어?"
― 라디오. 지금 가는 중이야. 그냥 앞 차가 문제 있나봐. 아무튼, 어제 혼자 가다가 나쁜 일은 없었지?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이야.
"나쁜 일?"
나쁜 일은 아니지만, 좀 켕기는 일은 있었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왠지 해코지를 당할 것만 같기도 하고... 이제서야 드는 두려움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내심 불안했지만 알 게 뭐야. 당해도 모두 법으로 해결해야지. 애초에 내 얘기를 꺼낸 건 자기들인걸. 나쁜 일? 하고 내가 말이 없으니 정말 무슨 일이 있던 거냐며 재촉해왔다. 맞다, 나 통화중이었구나.
"없었어. 있으면 내가 지금 전화를 받겠냐고."
― 진짜 없는 거지? 나 라디오 가야 되겠다. 끊을게. 근데 진짜 없,
"없다고! 라디오 가서 말이나 잘 해!"
신경질적으로 말한 후에 결국 주눅든 준면이의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었다. 과도한 관심은 감사하지만, 피곤했다. 버스를 타려고 할 때, 문득 생각난 게 있었다. 아, 술값. 매니저 오빠가 아닌 김준면 본인한테 꼭 받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성질 내며 전화를 끊어버린 탓에 다시 걸기도, 나중에 다시 달라기도 좀 민망한데.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넘겨야겠구나. 털털 털리는 내 지갑이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
아무리 젊어도, 아무리 숙취 해소가 되었다 해도 술 먹은 다음 날 야근은 지치기 마련이다. 축축 늘어진 어깨에 가방끈을 걸치고 회사 주차장으로 가 차에 탑승했다. 시동을 걸고 바삐 운전했다. 오랜만에 자신이 예능에 나온다며 안 보면 내 얼굴도 다신 보지 않겠다는 김준면의 말 때문이다. 정말로 안 봤다간 며칠을 토라져선 연락도 안 받을 게 분명했다. 한다면 한다는 (남이) 귀찮은 성격 탓에 이렇게 친구를 귀찮게 만들지. 퇴근길은 항상 길이 막혔다. 빠를 수 없는 속도를 유지하며 집 근처에 주차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시계를 보니 십 분 정도 여유가 생겼다. 맥주 한 캔 사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 어제 죽어라(?) 마셨던 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궁색한 변명인가. 마침 보이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짤랑거리다 닫혔다.
"어서 오세,... 요."
알바생의 드문한 인사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유 넘치게 걸어왔다가 2분이 남아버렸다. 홧김에 '오프닝 부분 찍어서 보냄' 이라는 망언을 해버려서... 입과 손이 방정이야. 미션 아닌 미션 때문에 점점 다급해졌다. 어딨지, 어딨지! 하다 찾은 맥주 세 캔과 야식으로 먹을 인스턴트 오리 구이 하나를 들고 계산대 앞으로 향했다.
"봉투에 담아 주세요."
"아, 네, 네에."
지갑을 거내기 위해 가방 안을 뒤적거리고 있는데 알바생이 저기, 말끝을 끌며 부르는 게 들렸다.
뭐 잘못 됐나 싶어 지갑을 거내고 나서야 네? 하며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저, 어제..."
"...?"
"그... 밤에..."
"...아."
"안녕하세요."
이것도 인연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어젯 밤 그 무리들 중 먼저 죄송하다며 간 키 큰 남자애가 유니폼을 입은 채 꾸벅 인사를 해왔다. 어, 안녕. 어색한 말투 후에는 정적이 흘렀다. 당황도 당황스러웠지만 은근 꼴이 신기했다. 어제 그렇게 쎈 척을 하더니. 알바생과 고객 사이는 깍듯이 지키는 게 퍽 웃겼지만 내색하지 않고 시계를 확인했다.
"미친."
"네?"
"아, 아니. 빨리 좀 담아줄래?"
"아, 네."
시계를 확인해보니 이미 예능 프로그램이 시작했을 것 같은 시각이었다. 오 분이나 지났어... 휴대폰에서는 진동이 울리는 듯 했다. 체념을 해야할까, 당장 뛰어가야 할까.
재빨리 담는 알바생 고딩의 봉투를 받아들자마자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다. 안녕히 가세,... 알바생의 뒷말을 다 듣지 못 한 채 나왔다.
-OOO 오프닝 사진은 잘 찍었냐?
-아까 그렇게 호언장담을 하더니
-안 찍었기만 해봐
**
"내가 뭐 잘못했나."
편의점 알바생의 신분으로서, 뭐 다른 의도로서라도 인사만 했을 뿐인데! 자신이 인사를 하자마자 욕을 뱉은 누나(욕쟁이 회사원, 나이 모름)때문에 덜컥 겁을 먹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계산대에 턱을 괴고 의문에 빠진 채 문을 통해 들어오는 변백현 외 나머지들이 들어오는 것도 보지 못 했다.
"이 새끼는 왜 얼 빠져있어. 손님 들어왔잖냐, 엉?"
"야."
"뭐."
"어제... 그 누나."
"어제? 아. 그 무서운 누나가 왜."
"금방 왔다 갔어."
"헐."
변백현 뿐만이 아닌 오세훈와 김종인 셋 다 헐, 이라며 눈이 동그래졌다. 단체로 짰나 싶었지만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니까...
어리숙한 내 말투에 무슨 일 있었냐며 캐묻는 녀석들에게 털어놓았다. 인사를 했다. 그리고 시계를 보더니 갑자기 욕을 했다. 근데 그게 나 때문인가?
"인사만 했는데 욕을 했다?"
"너 기억 안 났다가 아는 척했는데 기억 나서 그런 거 아니야?"
"뭔 일 있나보지."
"박찬열이 싫은가보지."
"변백현 뒤지고 싶나보지."
손을 들어 곧 때릴 포즈를 취하자 금새 뒤로 도망가는 변백현에게 중지 손가락을 날려주었다. 병신. 그틈에 컵라면 하날 들고 계산해달라는, 그나마 정상적인 인물인 세훈에게 다시금 물었다. 이거 내가 잘못한 거냐? 지폐와 동전들을 내 손에 얹어주며 감흥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겠다. 어제도 네가 사과했고, 딱히 걸릴 건 없는 거 같은데..."
"아, 진짜. 이런 걸 왜 걱정하고 있어. 그냥 밀어부쳐! 너 답지 않게 왜 이러냐?!"
"그러게.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여자 잘 끼고 살던 놈이."
김종인이 커피 우유에 빨대를 꽂으며 쭈욱 드링킹 한 후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안 되니까 그렇지, 개놈들아. 내 작은 한탄이 들리지도 않는지 김종인의 커피 우유를 한 입 달라며 옆에서 온갖 추태를 부리는 변백현을 보고선, 저 자식들은 도움이 하나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오세훈은 네가 알아서 잘 하라며 편의점을 나갔다. 김종인과 변백현 역시 '잘 해봐, 내 친구야.' 라는 오글스러운 말을 뱉고서는 나가버렸다. 나 외에 아무도 없는 편의점에는 최신 가요만이 울려퍼졌다. 우~ 이번 주 금요일. 우~ 금요일에 시간 어때요. 간드러지게도 잘도 부르네. 근데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모르겠다. 나는 왜 욕을 먹었는가! 물어볼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잠깐, 김종인.
"저 새끼 계산 안 하고 처 먹었네..."
**
"실력 좀 늘었더만?"
― 오빠가 이래, OO아.
"칭찬을 해줄 때는 잔말 말고 감사합니다~ 하는 거야."
비록 김준면의 예능 오프닝은 구경하지 못 했지만 다음 부분부터는 얘가 입담이 터졌는지 웃음이 터져나왔다. 데뷔 초 때는 지가 나온 거 보지 말라고 그렇게 애원을 하더니. 많이 컸네 우리 준면이! 칭찬을 해주니 능청의 극치를 보여주는 놈에게 사랑 담긴 욕을 퍼부었다. 정신 차려라. 인기는 한 때야! 잔혹하게 뱉어진 내 말에 그저 허허, 선비 웃음만 들려준다.
"그래서, 오늘 인터뷰는 잘 했고?"
― 내가 카메라 울렁증만 있는 거지, 말은 잘 한다고. 5년 차 배우로서 아주 극찬을 받았지.
"대중들은 이걸 알아야 돼. 김준면의 숨겨진 존나 병신적인 면이라든가..."
TV나 잡지에서 보는 배우 김준면은 굉장히 말끔하고, 적당히 순수하고, 모두에게 사랑받는, 뼛속까지 연기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그런 사람이다. 작년에는 영화 한 편으로 남자주연상까지 받아 뚜쉬뚜쉬 눈물로 가득한 소감까지 보여 줬는데. 왜 인간 김준면은 쌩 미친 놈인 걸까. 쯧쯧. 그래도 마지막은 수고했다는 말을 전했다. 맞는 말이긴 하니까.
― 놀러 갈까?
"어딜."
― 어디긴. 너네 집.
"지금 열두 시가 넘었어요, 아저씨. 집에 가서 잠이나 주무세요. 취해서는 스케줄 많다고 찡찡 댄 게 누구더라."
― 내일 쫙 비었는데. 술이나 한 잔 하자!
"나는 내일 회사를 간다, 미친 놈아."
― 야식은 뭘로 사갈까? 곱창? 기다려 우리 OO이, 오빠가 맛난 거 들고 갈게~
"문 안 열어준다!"
― 비밀번호 132457 맞지? 30분 안에 도착함.
그래 씨발... 알려주는 게 아니었어. 서로의 부모님들이 친한 관계이기에, 반 강제적으로 25년 째 친구인 김준면과 나는 서로 털어놓을 것도 많았지만,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친했다. 남녀 사이에 친구가 없다는 말은 우리한테는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필요 이상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데. 가끔 이런 상황에서는 친구가 아닌 남이었으면 좋겠는 모습도 많지만, 그래도 어떤 상황이 일어날지 모르니 알려준 거였는데. 비밀번호 바꾸는 방법이 뭐더라. 인터넷에 쳐보려고 방 어딘가에 놔둔 노트북을 찾으려 하는데, 그전에 보이는 집안 꼬라지가 눈에 밟혔다. 아무리 친구라지만... 널브러져 있는 속옷까지 보여주는 건 예의가 아니겠지. 옷가지들을 한 뭉텅이로 모아 세탁기에 넣었다. 밤에 세탁기를 돌리는 건 예의가 아닐 테니 아침에 돌리고 나가야겠다. 실은 몇 발자국 앞에 있는 세제를 집기 귀찮은 것도 맞긴 하다.
대충 치우고 진동이 울리는 휴대폰을 보니, 나와서 주차할 곳 좀 찾아보고 있으라는 김준면의 부탁 같은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집업을 걸치고 나왔다. 세상이 어떤 세상이냐고 할 땐 언제고,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착한 이미지의 연예인의 이중성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집을 나와 눈을 굴리며 찾아보니 다행히 집 근처에 차 댈 곳이 있었다. 위치를 대충 문자로 말해주고, 이왕 나온 거 기다려야겠다 생각하고 휴대폰을 켜 노트북으로 검색하지 못 한 '도어락 비밀번호 바꾸는 법'을 쳐보았다. 뭐야, 종류가 많잖아?
"존나 복잡하잖아..."
뒤적거리다 찾은 건 그저 복잡하고 종류가 많은 도어락들이었다.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고갤 들고 보니, 아까 그 편의점 고딩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어, 그게, 따라 온 건 아니고 지나가다가..."
"...그래. 계속 가."
알지도 못 하는 사람과 계속 마주치는 것은 꽤나 어색하고 불편했다. 지나가겠거니 하고 휴대폰 화면으로 고갤 돌렸다.
하지만 계속해서 느껴지는 눈빛에 다시 고갤 세웠다. 찝찝한 표정의 고딩이 서있었다.
"...무슨 할 말 있니?"
"...네."
"뭔데."
설마 내 훈계에 화가 나서 날 보복하려는 건가...? 은근한 두려움과 경계심에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손이나 발이 움직이지 않고 입을 뗐다 붙였다, 우물쭈물하는 걸 보면 때리려는 건 아닌 거 같은데... 순식간에 때리려는 건가. 존나 무서워. 김준면 언제 오지. 이 새끼는 이런 중요한 상황에 쓸모가 없어!
"저 잘못했어요?"
"응?"
"아니... 뭐 잘못한 것 같아서요."
이상한 언어구조가 날 혼란에 빠뜨렸다. 무슨, 무슨 소리지. 저 잘못 했어요, 라는 건 이해가 되지만 뒤에 물음표가 붙는 말투는 반성의 태도를 연상시키기엔 힘들었다.
그러게. 너 뭐 잘못했을까. 오히려 내가 되묻고 싶은 심정이다. 다행히 후에 말해주는 말로 나를 이해시키기 충분했다.
"편의점에서, 욕하고 가시길래..."
"...내가?"
"네. 미친! 이러고 가셨거든요."
"내가 그랬다고?"
"...저 금방 나타났을 때도 존나, 뭐 이렇게 말하신 것 같은데..."
곰곰히 편의점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았다. 맥주와 야식거리를 골랐고, 그걸 계산하고, 시계를 보고, 늦은 걸 확인하, 아.
"그거 너한테 욕한 게 아니야."
"예?"
"따로 사정이 있었거든. 금방도 너 때문에 그런 거 아니야."
"...제가 오해한 거네요?"
그러면서 헤실헤실 웃는 걸 보여준다. 으응, 그래. 그러니까 이제 가줘도 되는데...
그랬던 거구나, 하며 가지도 않고 그냥 웃어보이는 고딩이다. 김준면은 언제 올까. 불편한 이 상황에서 얼른 구제를 해주었으면 좋겠다.
"저는 박찬열이에요."
"...그래. 안녕."
"제 소개도 했는데. 누나는 소개 안 해줘요?"
내가 왜? 언제부터 친했다고? 갑작스레 능청을 떨며 친한 척을 해오는 이 학생에게 큰 당황을 느꼈다.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겨...
"누나는 저 처음 보죠?"
"..."
"저는 누나 많이 봐왔는데."
다른 사람이 이런 멘트를 뱉었다면 스토커라고 신고하기 바빴을 텐데, 왜 이 남고딩한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걸까. 참 이상했다.
+++
분량 맘에 드시나요...? 너무 긴 것 같기도 하고 어정쩡한 것 같기도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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