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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일홍

01




















 지옥 같은 밤의 시작을 알리는 어둠이 서서히 잦아들었다이미 창밖은 어두컴컴해진 지 오래였다. 00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애꿎은 지우개만 손톱으로 벅벅 긁어대다 손톱마다 끼어있는 지우개 찌꺼기를 보고서야 그 행동을 멈추었다그것은 00 특유의 불안 증세였다생채기가 군데군데 서린 00의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그런 00의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준면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00을 주시할 뿐이었다준면의 시선 아래로 보이는 00의 정수리가 미세하게 떨렸다문이 열리고영영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적막이 일순간 깨뜨려졌다수염자국이 거뭇하게 자란 중년의 남성경구가 머리를 헝클며 들고 온 서류를 책상 위로 내팽개쳤다준면은 경구를 향해 짧게 목례를 했다.

 






선배님이게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이쪽도 복잡하게 됐다준면이 너오중흡 7연대라고 들어본 적 있지.


. 1996년도 말에 극비리로 창설된 그 부대 말씀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래맞다김정일을 지킨답시고 만들어진 부대 말이다. 3차 핵실험 직후 김정은이가 가장 먼저 찾은 곳도 바로 그 부대였지북한 내에서 굉장히 신뢰받고 있는 곳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어.

 






 경구가 턱 끝으로 00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오중흡 7연대 대장 딸의 탈북에도 꿈쩍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야.


그렇다면 저 여자가…….


그래맞아. 000. 대한민국 땅을 밟은 지는 정확히 삼 년하고도 아홉 달 됐지프랑스 유학 도중 탈북을 시도했고도중에 친오빠는 발각됐어총살당했지열여덟 발을 맞았어그리고 북에서는 즉시 000의 가족에게 전원 사형명령을 내렸고그런데 000의 아버지가 죽기 직전에 외쳤던 말이 뭔 줄 알아?





 00 쪽을 흘끔 쳐다보며 머뭇거리던 경구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통일은머지않았다.

 






 00은 숨죽여 흐느꼈다준면은 등골이 오싹해졌다북한 내 최정예부대인 오중흡 7연대그 명성은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었다그들은 죽고 죽이는 서로만의 전쟁을 반복하다 살아남는 자만이 명예를 얻을 수 있었는데이르면 대여섯 살부터 훈련을 받는다고 했다훈련이라는 단어로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동반하면서까지 그들은 부대의 일원이고자 하는 욕망 하나만으로 죽음에 맞섰다어쨌든그런 부대의 고위관직을 지닌 000의 아버지가 그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자 준면의 머릿속은 한없이 복잡해졌다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영문조차 알 수 없었다다만 지금 눈에 들어오는 것은가족 이야기에 경구와 자신을 등지고 애써 눈물을 삼키는 000 뿐이었다.

 






맞아통일은 머지않았지김정일이가 그렇게 죽지 않았더라면 말이야김정일이 죽고상황이 안좋아졌어김정은이 집권한지 일 년이 지났어준면이 너는북한 내부 상황이 어떤지 잘 알고 있을거다장성택숙청그리고 최룡해뭔가 준비를 하고 있다는 증거지좋은 쪽이든나쁜 쪽이든.


.


오중흡 7연대의 대좌오세훈이 오고 있어북한의 고위 세력과 극비 부대를 모조리 꿰차고 있을지도 모르는 000을 죽이기 위해서.


「선배님,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뇨.


고작표정 하나, 말투 하나에도 사람을 죽이는 나라라는 걸 잊었어이건 충분히 이유가 돼.

 






 준면의 표정이 일순간 굳어졌다경구는 이런 준면의 반응쯤은 예상했다는 듯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뜨기를 반복했다창문 사이로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경구가 무심히 던진 서류종이들이 일사불란하게 흩어졌다하지만 지금좁은 공간 속에서 침묵을 지키는 세 사람 중 그 누구도 그 소음에 반응하지 않았다경구가 창문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구두 굽 소리가 적막 속에서 아이러니하게 섞였다.

 






오세훈그리고 도경수


선배님도경수라면…….


맞아그 때내가 놓쳤던 조무래기.

 






 준면의 시선이 무심코 경구의 배꼽 언저리로 향했다그런 시선을 느끼기라도 한 듯 경구는 티셔츠를 들어 보이며 웃었다.

 






쬐끄만 놈이피투성이가 되어서도 끈질겼어어깨에 총을 두 발이나 맞고도 나를 죽이겠답시고 돌진했지독한 새끼어른 배에 이딴 상처나 만들고 말이야씹새끼지천하의 씹새끼.


선배님…….


세월이 이렇게 흘렀어. 000의 아버지의 사형집행 직후도경수가 대좌자리에 올랐지.


잘못되면모두 죽는다고 들었습니다선배님너무 위험합니다이건……상식적이지 못하잖아요.


그 놈들이 상식적이지 못한 이상우리가 하는 일도 상식적이지 못할 수밖에 없어김준면잘 들어라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르는,내 명령이니까.


선배님!.


도경수오세훈모두 죽인다그리고 000.


「…….


무조건 살린다.

 






 00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준면과 경구의 시선이 일제히 그녀를 향했다.

 






……미안해요.

 






 이십 분여 간 자신을 죽이러 남한으로 온다는 최정예요원들과 끔찍한 악몽이었을 가족의 사형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꾸려진대한민국에서 내로라하는 실력파 요원들만으로 이루어진 팀불편할법한 이야기를 묵묵히 듣던 그녀가 처음으로 내뱉은 말은강하게 떨렸고눈물로 가득 차올랐으며애써 삼키려 어금니를 꽉 깨문 듯이 어설픈 발음이었다.














*










 

우리는 남으로 떠난다적을 모조리 무찌르고 돌아온다.

 






 한껏 낮게 가라앉힌 근엄한 목소리가 내부를 울렸다김일성의 사진 아래로 우뚝 솟은 승범의 신장은 적어도 백 팔십 센티쯤은 되는 듯 했다승범의 눈에는 독기가 서려있었다그것은 잔뜩 긴장된 자세로 서 있는 경수와 세훈 역시 매한가지였다그들은 일제히 승범을 향해 거수경례를 했다.

 






84-526 도경수공화국을 위해 죽겠습니다적을 모조리 무찌르고 영웅이 되어 돌아오겠습니다.


25-727 오세훈적을 처단하기 전까지는 결코 돌아오지 않겠습니다.

 






 승범 역시 비장한 각오를 내비춘 그들을 향해 거수경례로 답했다그들의 임무는 오중흡 7연대 전 대장이자 대한민국과의 통일을 위해 힘쓴 내부 반역자 상일의 딸을 죽이는 것이었다북한은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정부의 일을 도맡은 이들의 방해가 있다면그들 역시 죽여도 된다고 명령했다그들은 북한의 개였다. 경수와 세훈은 조국의 명령이라면 당장이라도 자결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여섯 살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등지고 오중흡 7연대 예비대로 들어가 혹독한 훈련을 받아야했던 세훈은 어느덧 스물 네 살의 어엿한 청년이 되어있었다아주 어린 아이였을 때부터 시작된 날짜계산은 날이 갈수록 늘어가기만 할 뿐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세훈은 어머니가 보고 싶었다그 품이 그리웠고젖내음이 그리웠으며미소가 그리웠다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며 방심하는 사이상대의 칼은 허를 찌르기 마련이었다그렇게 얻어 낸 수십 개의 상처들 중 하나세훈의 쇄골 아래로 깊게 파여진 상처는 그야말로어머니였다어머니를 애타게 부르다 새겨진 이 영광에서세훈은 늘 어머니를 느꼈다.


 경수의 집안은 대대로 조국에 목숨을 바친 이들과 고위관직을 지닌 이들이 가득했다어려서부터 방어와 공격을 넘나들며 반 강제적으로 단련된 경수의 몸은 아주 탄탄했다특수부대 출신인 아버지의 추천을 받아 들어가게 된 오중흡 7연대는 비밀부대답게 철저한 보안 속에서 이뤄졌다내로라하는 실력자들만이 모인 부대였지만 그 중 경수의 실력은 단연 최고를 뽐냈다아버지는 그런 경수를 자랑스러워했고사형당한 무용수인 어머니는 얼굴마저 가물가물했다그리고 경수는그런 아버지를 미쳤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것은 아버지에 대한 불신과 분노일 뿐 조국에 대한 충성은 변할 겨를이 없었다. 경수는 어쩔 수 없는 북한의 개였다.

 





이번 일에 대 공화국의 미래가 달려있다죽이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는다죽이지 못하면 살지도 않는다.

 






승범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기나긴 여정의 서막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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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글 [EXO] 백일홍 01  6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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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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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4.39
대작냄새가 나네여ㅠㅠㅠㅠ짱잼... 북한이랑 남한이라니ㅠㅠㅠ앞으로 기대할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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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없음
고마워요!!! 대작이라니 ㅠㅠ 과찬이지만 정말 응원해주신만큼 글 열심히 쓸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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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헢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이거 연재 하는 거 맞져?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헐 진짜 완전 금손이심..... 대작 될 삘인데여??? 신알신할게여 좋은 글 감사함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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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없음
네!!! 아마 중장편에서 장편이 될 예정이에요! 금손이라니.. 대작이라니.. 고맙습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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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헐 ㅠㅠㅠㅠㅠ대박이다 ㅠㅠㅠㅠㅠㅠㅠ 잘보고가여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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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헉 진짜 재밌에 읽었어요 나중에 2편도 보러 다시 올게요 작가님 수고하셨습니다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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