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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마였다. 벌써 사흘 째였다. 

 굳이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될 법한 폭우 속에서 그가 서둘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와 다르게 조용한 길거리, 축축히 젖어버려 위아래의 색이 확연히 달라진 회색 교복 바지. 종대는 이 모든 것을 좋아했다. 하얀 눈이 온 마을을 덮을 때도 혹시 겨울비가 오지는 않을까 기다리던 그였다. 항상 종대가 하교할 때 지나치는 사람들로 붐비던 골목은 장마 때문인지 아주 한산했다. 평생 본 적 없던 인물들임에도 곁에 없다는 것은 꽤 허전한 일이었다. 괜히 외로워진 종대는 발걸음을 더욱 빨리하였다. 퍼붓는 비로 인해 흐린 시야로 자신이 앞으로 가는지, 옆으로 가는지도 가늠하지 못하던 그가 갑자기 뜀박질을 멈췄다. 물컹한 느낌이었다. 분명히 무언가 밟은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이런 골목에 뭐가 있나 싶어 살짝 고개를 돌린 종대는, 

  

  

 "우와아악!" 

  

 저도 모르게 큰 소리를 내어 온 동네를 울렸다. 사람이었다. 종대는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는 광경을 의심했다. 웬 성인 남성이 폭우가 내리는 길바닥에 쥐 죽은 듯 뻗어있었다. 몇 번이나 눈을 비벼봤지만 오히려 눈두덩이만 부어오르는 느낌이었다. 뭐지? 설마 내가 밟아서 이렇게 됐나? 별로 세게 밟지도 않은 것 같은데… 말로만 듣던 신종 사기? 종대의 머릿속에 별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가며 그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했다. 긴장하면 나오는 그의 특성이었다. 혹시나 여기서 가만히 있다가 제가 살인범으로 오해를 받거나 하지는 않을까 하는 마음에 종대는 황급히 쭈그려 앉고는 남자를 살폈다. 비 때문에 온몸이 흠뻑 젖은 상태였다. 가까이서 보니 더 심각해 보이는 모습에 종대는 본능적으로 우산을 기울여 남자에게 빗물이 덜 튀도록 하였다. 이 상태로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머리카락과 옷은 더 젖을 것도 없이 물이 뚝뚝 흐르며 고여있었다. 종대는 조심스레 손가락 끝으로 남자의 뺨에 손을 대어보았다. 차가웠다. 반사적으로 손가락을 휙 뗀 종대는 남자를 살살 흔들며 깨우는 것을 시도했다. 

  

  

 "저기요…." 

  

 연신 흔들다 조금씩 강도를 높였지만 강한 흔들림에도 남자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창백한 얼굴에 새파래진 입술, 돌덩이처럼 굳은 차가운 몸은 정말 이 남자가 죽은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렇다고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남자를 이대로 두고 가는 것은 종대의 심성이 허락하지 않았다. 감기 걸릴 텐데… 슬슬 걱정이 된 종대는 남자가 저체온증에 걸리기라도 하기 전에 어떻게 해줘야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집에 데려가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종대는 패기 넘치게 한 손으로는 우산을, 다른 한 손으로는 남자의 등 밑에 손을 넣고 받쳐 일으켰다. 

  

  

 "흐아아!" 

  

 그러나 또래 학생들보다도 체구가 작은 십대 남학생이 성인 남성과 우산 모두를 사수할 수는 없었다. 결국 보기 좋게 나동그라진 종대는 씩씩대며 몸을 일으켰다. 어떻게 해서든 데리고 갈 거야! 굳은 결심을 하며 종대가 선택한 방법은 결국 남자를 끌고 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정말 남자를 질질 끌고 갔다. 왠지 남자의 꼴이 더 망가지는 것 같았지만 그대로 길바닥에 버려두고 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비바람으로 인해 여름임에도 쌀쌀한 날씨였지만 종대는 땀을 뻘뻘 흘렸다. 보기보다 엄청나게 무겁네… 중간에 팔이 아파 그대로 쪼그려 앉아 잠시 쉰 것만 세 번이었다. 물론 우산을 남자에게 가까이 해주는 것도 잊지 않은 그였다. 간신히 집에 도착한 종대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픽 쓰러졌다. 목표를 달성하고 나니 다리가 풀려 털끝 하나도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한참 숨을 몰아쉬던 중에 그의 할머니가 손자의 귀가를 알아채고 달려왔다. 

  

  

 "우리 강아지, 비 많이 맞았제?" 

 "아니야, 할머니~ 나 대신 여기, 이 아저씨 좀 빨리 닦아주세요. 길바닥에 쓰러져 계시던데." 

 "응? 아저씨라니, 누구 말하는 거여?" 

  

  

 누구? 종대는 잠시 벙 져 있다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고는 자신의 옆에 둔 남자를 손가락으로 콕 집으며 말했다. 

  

  

  "여기, 이 아저씨~ 얼른요, 할머니. 이 아저씨 완전 얼음 덩어리야." 

  "…우리 강아지, 많이 피곤혀? 비를 쫄딱 맞고 와서 그려? 얼른 방에 들어가서 쉬어." 

  "에? 아니, 할머니! 그게 무슨… 여기 아저씨…" 

  

 그러나 종대의 외침은 그의 방 안으로 그를 우겨넣는 할머니의 손길에 의해 처참히 끊기고 말았다. 홀딱 젖었음에도 어서 푹 자라며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까지 덮어주시는 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틈도 없이 닫힌 방 안에 혼자 남겨진 종대는 멍하니 천장을 응시했다. 그런 종대의 머릿속에 또다시 온갖 상념이 자리잡았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할머니가 결국 눈이 침침해지셨나? 아니야, 난 정확히 알아보셨는데… 손자라서 그런가? 뭐지? 뭐야? 머리를 웅웅 울리듯 쏟아지는 추측을 하나하나 되새기다 종대는 문득 자신이 현관에 남자를 엎어두고 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맞다! 아저씨! 벌떡 몸을 일으킨 종대는 빗물을 뚝뚝 흘리며 할머니에게 의심을 받지 않고 남자를 방으로 무사히 데려오는 법을 고민했다. 그러나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고, 결국 종대는 방문을 빼꼼 열어본 뒤 할머니가 화장실에 가신 틈을 타 남자를 데려오기로 마음먹었다. 하나, 둘, 가자! 화장실 문이 닫힘과 동시에 재빠르게 튀어나온 종대는 남자를 꽉 잡고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순식간에 방까지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혹시 몰라 현관부터 방문 앞까지 떨어진 빗물을 닦아놓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까 전 할머니가 제게 했던 것처럼 남자를 침대에 눕힌 뒤 이불을 턱까지 올려준 종대는 책상에 있던 휴지를 뽑아 남자에게 남아있는 물기를 대충 닦아주었다. 물기를 닦고 보니 뽀송한 남자는 꽤 잘생긴 외모의 소유자였다. 하얀 피부, 다시 돌아온 빨간 입술색까지. 종대가 넋 놓고 남자를 구경하던 중, 드디어 남자가 미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저도 모르게 감격의 비명을 지르려던 종대는 간신히 제 입을 막았다. 눈썹을 꿈틀거리던 남자는 자꾸만 표정을 찌푸렸고, 이내 살짝 눈을 떴다. 초점 없는 눈동자는 한동안 허공을 맴돌았고, 잠시 후 종대에게 고정되었다. 

  

  

 "으… 뭐…" 

 "정신이 드세요?!" 

  

 감격스러움에 남자의 차가운 손을 꼭 잡은 종대가 눈을 반짝였다. 남자는 현재 상황을 파악해보려는 듯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 종대의 손을 휙 뿌리치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종대를 노려보았다. 공격적인 시선에 멈칫한 종대는 한 발짝 물러서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저… 나쁜 사람 아니에…" 

 "뭐냐." 

 "네?" 

 "뭐냐고." 

  

 남자의 물음에 종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덩이처럼 굳었다. 본인이야말로 남자에게 상황 설명을 요청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풍겨나오는 어두운 오오라와 소심한 성격 탓에 섣불리 먼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은 없지만 왠지 남자에게 잘못했다고 빌어야 할 것만 같았다. 아, 자신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그저 집에 빨리 가려다 밟았다는 것뿐이겠지만 그걸 이 남자가 알고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만 꼬물거리다 아무 말 없는 남자에 살짝 고개를 든 종대는 여전히 자신에게 박혀있는 따가운 시선에 황급히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에 남자는 답답한 듯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종대는 그런 남자의 눈치를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왜 여기 있냐. 너는 또 누구고." 

 "아니, 저는 그냥…" 

 "그냥 뭐." 

 "그냥, 지나가다 쓰러져 계시길래…" 

 "쓰러져 있었다고?" 

  

 말을 잇던 종대는 남자에게 어깨를 잡혀 컥, 하고 숨을 내쉬었다. '쓰러져 있었다' 는 말에 남자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정말 이런 곳에 쓰러져 있었냐며 어깨를 흔들어대는 남자의 말에 종대가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개를 끄덕이자, 신경질적으로 종대를 밀듯이 손을 놓은 남자는 이마에 손바닥을 짚고는 종대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아니, 설마. 진짜로? 그래도 설마. 아, 씨발…" 

 "……." 

  

 남자의 눈치를 보며 애꿏은 손톱만 만지작거리던 종대는 남자를 올려다봤다,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봤다 하며 계속 시선을 오르락내리락 하였다. 한참 욕설을 읊조리던 남자는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고개를 휙 들고는 종대를 불렀다. 

  

  

 "야." 

 "네, 네?" 

 "너 인간이냐?" 

  

 대체 정체가 어떻게 되세요. 아까부터 종대의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차마 뱉지 못하고 있는 말이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인간이냐고 물으면 듣는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종대가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남자는 코끝을 찡그리더니 계속 제 할 말을 했다. 

  

 "게다가 내가 보이는 것도 같고." 

 "저기, 대체 아까부터 무슨…" 

 "됐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받아들이지, 뭐." 

 "네?" 

  

 종대는 정말이지 혼란스러웠다. 이 사람 진짜 뭐래? 할머니, 저 좀 살려주세요. 손자가 방에서 혼잣말을 하는데 궁금하지도 않으세요? 여전히 내뱉지 못하는 말들을 씹어삼키던 종대를 재밌다는 듯이 바라보던 남자가 말했다. 

  

  

 "이름이 뭐냐." 

 "저요?" 

 "너 말고 누가 있는데." 

 "…종대요. 김종대." 

  

 김종대, 종대. 남자는 종대의 이름을 듣고서는 노래를 부르듯 한참 읊조렸다. 종대는 그런 남자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는 종대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먼저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종대를 눈치챘는지 그에게로 시선을 옮긴 남자가 한 마디 툭 던졌다. 

  

 "변백현." 

 "네?" 

 "너 혹시 귀머거리야? 아까부터 하는 말이 뭐, 네? 네? 밖에 없냐." 

 "아, 아니거든요!" 

  

 백현. 처음 만난 지 거의 한 시간 만에 알게 된 남자의 이름이었다. 이제와서 저체온증이 도지는지 춥다며 이불을 바짝 끌어올리는 백현을 흘낏 쳐다보며 종대는 그와 백현이라는 이름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속으로 계속 되뇌어보았다. 변백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설정된 작가 이미지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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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우오오 재밌어 보여요! 신알신 할게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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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앗! 덧글을 이제서야 봤네요 감사합니다!
11년 전
대표 사진
독자2
ㅠㅠㅠㅠㅠㅠ 재밋어여 신알신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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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덧글을 이제 봤네요! 감사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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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재미있을거같아여ㅠㅠ 잘보고갑니당!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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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감사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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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우왓? 재밌을거같은 냄새가? 잘읽었어요~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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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인즈
쪽지가 왔길래 뭔가 했더니 덧글을 달아주셨군요 ㅠㅠ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11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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