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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마, 하지마, 하지마, 영재가 수백번이고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간절하게 힘찬에게 빌었지만 힘찬은 그 부탁을 들어 줄 리가 없는데다가 들리지도 않는 말을 억지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힘찬이 영재를 제 침대에 앉히고는 고정시킬 게 없어 제 가운을 찢어 손을 침대다리에 밀착시킨 채로 묶어버렸다. 영재가 그런 힘찬의 손을 물었지만 힘찬은 그 상태에서 약을 하나 더 준비하는 것 외에는 반응을 안 보였다.

 

"자, 침착해야지?"

 

영재가 안 들리는 근본적인 이유를 만든 그임에도 영재에게 잘만 말하고 있었다. 영재는 자신에게 차분하게 말을 거는 힘찬이 가장 무서웠다. 그럴 때 마다 항상 자신에게 무언가 하나씩 사라졌으니까. 예컨데 말을 할 수 있는 성대라든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력이라든지. 이번엔 더이상 사라질것도 없는데. 있다면 시력이라든지, 후각이 있겠지만 영재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용국의 모습이나 향기를 감지하는데 있어 필요한것들이 또 사라지는건 당연히 원치 않았다. 또 아니라면 다리나, 팔 같은것들이겠지만 그건 생각하기도 싫었다.

 

"용국이가 영재를 왜 데려갔을까? 응?"
"……."
"용국이 왜 따라갔어? 대답해 봐."

 

영재는 힘찬의 입모양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뜻을 알 수 없었다. 설령 알아차린다 해도 대답을 할 수도 없을거였고.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닐텐데 힘찬은 자신에게 반응을 하지 못하는 영재에게 화가 났다. '대답해.' 강압적인 어투라 치더라도 여전히 영재는 못 들을 말이었다. 영재는 힘찬을 올려다본 채 미세하게 떨 뿐이지 다른 행동을 보일 순 없었다. 예전엔 그래도 좋다고 생각했던 힘찬의 향기도 이젠 코끝으로 느껴지기만 해도 지독했다. 눈 앞에 보이는 이 사람이 이젠 지겹고 무서웠다.

우습게도 힘찬은 그런 생각을 다 분명 꿰고 있을텐데도 그걸 부정하기라도 하는 건지, 영재가 제게 웃어주기만을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실제 힘찬이 바라는건 겨우 그런것에 불과할 것이다. 영재가 자신에 대한것들을 잃은 후에 보여준 것들은 그렇게 제한적이었으니까, 그걸 어떻게든 넘으려고 했을것이고, 그건 모두 다 실패했다. 영재가 힘찬의 눈을 마주했다. 힘찬이 그런 영재의 눈을 같이 맞추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금만 자자, 편하게, 나랑."

 

힘찬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지금 중점적으로 두어야 할 사실은, 자신이 그 감정들을 다 깨달았다는 것에 있다. 힘찬이 영재의 팔목에 묶인 가운들을 천천히 풀었고, 영재는 그 사이에 일어나 연구실 밖으로 나가려 했다. 뛰쳐나가려는 영재를 보자마자 힘찬의 사고회로가 재빠르게 돌아갔고, 그는 영재를 놓자마자 바로 잡아야했다. 영재는 힘찬의 손에 잡힌채 그를 바라보았다. 왜 날 못놓아요. 그 목소리가 힘찬의 귀에 들리는 것만 같아 힘찬은 죽은 듯 평소엔 느껴지지도 않던 심장박동이 거세게 느껴졌다. 힘찬은 그 상태 그대로 영재를 벽에 밀어붙였다. 그 틈에 든 생각들은 말로 표현하기엔 광범위하고 또 복잡한 것들이었지만, 결국은 오로지 영재를 향한 감정들과 언어들일 뿐이었다.

 

"……영재야."
"……."
"……제발, 나 버리지 마."

 

결론은 겨우 그거였는데. 힘찬은 힘이 죽 빠진 영재의 팔목을 잡은 손에서 힘을 역시 뺐다. 영재는 들리지도 않고 말할수도 없는 상태에서 힘찬에게 무언가를 얻을 수 없었겠지만, 제 이름이 입모양으로 불리는 걸 봤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에 대한 편견 비슷한 감정들이 점점 얼음이 융해하듯 모양을 잃어갔다. 그 때에, 힘찬이 영재의 입에 제 입을 맞댔다. 전과 같이 강제적인 것이 아니었다. 힘찬이 영재의 입 속에 제 혀를 넣었다. 갑작스레 들어온 힘찬의 혀에 영재는 반쯤 감고있던 눈을 크게 떴지만 힘찬이 팔목을 잡던 손을 놓고 자신을 안았기 때문에 피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이젠 힘찬이 제 뒷머리를 한 손으로 감쌌다. 한 손에 다 들어오는 머리통이 힘찬에게서 새어나오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그렇게 몇 분을 있었다. 힘찬이 먼저 입을 떼고 그를 놓았다. 영재는 멍하게 있다가 갑자기 주저앉았다. 힘찬이 그런 영재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한참을 있었다.


 

 


힘찬은 모든 원인이 용국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 상태에서 갑자기 문을 박차고 들어와 제게 욕지거리를 남기고 영재를 끌고갔으니까. 공허한 느낌은 같은데 기분은 훨씬 더 더러웠다.

 

'넌 끝까지 쓰레기다, 개새끼야.'

 

단순히 잠만 자려고 했다. 물론 그 전엔 모르핀 주사를 준비했지만, 영재에게만 주사하려던 게 아니었다. 게다가 잠시 그 생각이 완전히 사그라들었었는데. 힘찬은 다시 그의 말을 곱씹었다. 끝. 끝? 저절로 미친사람과 같은 웃음소리가 났다. 용국이 말하는 게 진정한 파국을 뜻하는가 싶기도 했다. 힘찬은 용국과 영재 둘이 제 연구실을 나가도 영재만을 바라보았는데, 영재는 그 순간에서는 용국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항상 나보다 그새낀가, 싶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용국이 말하는' 평소의 힘찬이라면 그들을 붙잡고 무슨 짓거리를 했을 지 모르는데, 힘찬은 그저 바라봤다. 생기가 없어 살아있는지, 죽어있는지 구분도 못하는 평소의 영재와도 같았다.

 

"왜 그새끼 따라갔어."
"……."
"김힘찬 왜 따라갔냐고, 왜."

 

도리도리. 그 새에 영재를 끌고 간 용국이 영재에게 강압적으로 말하고 있었다. 하여간 친구라고 하는 말은 똑같았다. 누가 보아도 영재에게선 무서워하는 기색이 역력한데다 귀는 들리지도 않는데 용국은 평소같지 않은 행동을 비췄다.

 

"뭐? 자자고?"

 

용국의 말에는 많은 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 말 이후에 용국은 제 연구실에 영재를 들이고 자신 역시 들어오자마자 문을 잠궜다. 누구에게나 제 문을 개방한 채로, 쉽게 보자면 떳떳한 그가 왜 문을 잠궜는지는 그만 알 사실이다.

 

"씨발, 넌 그 새끼 말 들었냐?"
"……."
"그새끼가, 너 버리지 말라니까, 마음이 홱 돌아가? 그렇게 쉽냐? 몸 대주면, 그래. 그럼 다 풀리는거였어?"

 

다 들었다. 다 보았다. 용국은 대현과 준홍을 뒤로한 채로 연구실에 왔다가 영재가 없다는 걸 알아채버렸다. 가장 의심되던 힘찬의 연구실에서 어렵지 않게 그들을 발견했고, 그들이 하는 행동은 자신의 예상을 완전히 빗겨나갔었다. 힘찬이 영재에게 자자고 하질 않나, 버리지 말라고 하질 않나, 그걸로도 모자라 둘의 입술이 붙어있는 모습까지 다 제 눈으로, 제 귀로 확인했다. 그 상황에서 사실상 용국이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었을까. 용국은 제 두 눈을 먼저 의심하다가 모든게 제 욕심인가, 하는 허망함이 가장 먼저 들었다. 영재가 제 소유라는 이기심일지도 몰랐다. 무언가 행동해야한다는 결심을 한 것도 한참 후였다.

 

"……나 때문에 저새끼랑 못잤지. 그래서 그래?"

 

영재의 얼굴에 비춰진 건 누가봐도 두려움인데, 용국이 읽은 건 제 삐뚤어진 마음에서 나온 다른 마음인것만 같았다. 용국이 영재의 옷 속으로 손을 넣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모른다. 힘찬과의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씨알도 안 먹힐 사과의 의미? 아니면 이제 갈 때까지 가자는 의미? 어쨌든 용국의 찬 손은 영재의 옷 속을 파고들었다. 그 순간, 영재가 바로 용국을 껴안았다. 좋아서 안는 게 아니다. 힘도 없는 얇은 팔이 용국의 몸을 꽉 껴안았다. 애원이었다. 하지말라는 애원을, 힘찬이 아닌 용국에게 하고 있었다. 용국은 무언가 깨닫는게 있었음이 확실했다. 재빠르게 제 손을 옷에서 빼냈다. 용국은 그제서야 영재의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도 기억났다. 자신이 영재의 난청을 어떻게든 더 보완하려고 했음에도, 이런 말도안되는 행동을 하고 있었다. 모순적인 자신의 행동이 무서웠다.

 

"……영재야."

 

용국은 씻을 수 없는 죄를 졌다. 용국이 동시에 영재를 껴안았다. 영재가 우는건지 제 가운이 젖어가는게 느껴졌다. 용국은 거대하고도 지우기 힘든 잘못들을 점점 쌓아가기만 했지, 없애지는 못하고 있었다. 더 꽉 안았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더 미안해, 아무 말도 더이상 잇지 않았다. 네 인생의 걸림돌이 나였나 보다. 용국은 영재가, 절대로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던 생각을 기어코 해버리고 말았다.


 

 


힘찬은 그러고 알약을 집어삼켰다. 종업이 전에 남겨두고 갔던 수면제였다. 그가 남겨두고 간 것이니 인체에 유해하다는 것까지 의심할 필요는 없었다. 약이 입안에서 이미 녹아들어 쓴맛이 베였다. 힘찬은 연구실에서 꽤 오랫동안 주인을 받들였던 침대 위로 누웠다. 눈을 감으니 예전 영재와 함께 잠들었던 때가 떠올랐다. 복도에서 용국이 소리지르는 것을 들었다. 자자는 의미가 그 뜻이 아닌데. 음란한 새끼. 힘찬은 제 친구가 한심했지만 웃음이 나진 않았다.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새끼. 비록 들은 건 그 말 뿐이었지만, 용국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야.'

 

구둣소리를 크게 내며 제 연구실로 들어선 용국의 표정을 보고 솔직히 조금 무서웠던건 사실이었다. 여태 그렇게 화난 표정은 처음이었으니. 그런 용국을 본 영재는 자신보다 배로 두려워하는 모양이었다. 용국은 바로 영재의 팔목을 잡아채 일으켰다.

 

'김힘찬,'
'…….'
'넌 끝까지 쓰레기다, 개새끼야.'

 

힘찬은 더이상 생각하기도 싫은건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눈을 감으니 깊은 잠이 자신을 먼저 유혹했다. 막상 잠에 빠지려니 자신이 하려던 일이 떠올랐다. 힘찬은 수면제를 복용한 상태에서 종업이 사다 둔 커피 한잔을 죽 들이켰다. 각성 효과는 그리 기대 못할테지만 아무튼, 힘찬은 잠을 깼다고 믿고는 약물들을 다시 정리했다. 모르핀, 그 글귀가 적힌 약물을 확인하자마자 눈이 저절로 감기기 시작했다. 힘찬은 자신의 발로 침대까지 발을 옮겼다. 그렇게 자고 싶진 않은데. 힘찬은 종업이 사준 커피는 잠에서 깨는 데 쓸모가 없다고 느꼈다.

 

'영재 지금 몸에 기운이 없으니까, 포도당 정맥주사하고……'

 

용국이 했던 말들을 기록하며 잠들었다. 눈을 감으면 둥둥 떠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의 형상이 아직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주는 듯 싶다가도, 정신이 아른해지는 게 자신은 이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지각

약속도 잘 못지키는 나란 호구...ㅋ...ㅠㅠㅠㅠ

자꾸 늦네요ㅠㅠ 요번주에 제가 몸이 안좋아서도 있지만 그래도 정말 죄송합니다ㅠㅠ

수면이 끝으로 가고 있네요. 텍스트파일은 원래부터 만들고 있긴 했지만.. 수정할 부분이 꽤 많더라고요

제 글 좋아해주셔서 전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ㅠㅠ 이걸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항상 힘이 납니다! 그만둘까 하면서도 덧글 보면 마음을 접어요.. 그만큼 저한테 큰 부분을 차지하세요!

사랑합니다..♡고맙구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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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찬이는 보면볼수록 안쓰러운 느낌이 들어요...수면이 끝을 달린다는 사실에 현실도피하고싶네요ㅠㅠㅠㅠ정말 재밌게 보고있으니까 작가님 힘내세여!
11년 전
독자2
어멐 제가 일빠네여ㅠㅠㅠㅠ이런 영광이ㅠㅠㅠㅠ혹시 암호닉 받으시나여ㅠㅠㅠㅠ??
11년 전
DF
네 받습니다! ㅎㅎ
11년 전
독자5
암호닉 순봄이루 해주세요ㅠㅠㅠ감사합니당!
11년 전
독자3
항상감사해요ㅠㅠㅠㅠㅠ구독료도안받으시고 이렇개 좋은글써주셔서ㅠㅠㅠㅠㅠ엉엉 사랑해요 징쨔로..
11년 전
독자4
진짜..구독료도 안받으시고 이런 글 써주시는거 진짜 감사합니다ㅜㅜㅜㅜㅜㅜㅜㅠ용국이..불쌍해요..잘보고갑니다ㅜㅜㅡ♥♥
11년 전
독자6
빵친입니당!!ㅠㅠㅠㅠㅠㅠ힘찬이에게 짝하나 만들어드려야겠어요....예를들면 천사라던가.....웃는게 이쁜 애라던가...이름에 업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애로요!^^
11년 전
독자7
ㅠㅜㅠ구름이에요ㅠㅠㅠㅜㅜㅠ 요번화왤케아련터지고좋죠ㅠㅜㅠㅠㅠㅠㅠㅠㅠㅠ텍파꼭만들어주셔야되요ㅜㅜㅠ안그럼울거에요ㅠㅜㅠㅠㅠㅠㅠㅜㅜㅜㅠㅠ
11년 전
독자8
진짜 항상 잘 보고 있어요ㅠㅠㅠㅠ 텍파 꼭꼭입니다! ㅠㅠㅠ 수면에 밥돌이들은 다 불쌍해요ㅠㅠㅠ
11년 전
독자9
미더예요ㅠㅠㅠㅠㅠㅠㅠ갈수록 김힘찬캐릭터 좋네요 푹빠져읽어요 감사합니다ㅠㅠㅠㅠ
11년 전
독자10
양말이에요ㅠㅠ오랜만에댓글쓰는것같네요ㅠㅜㅠㅠ정말분위기도좋고ㅠㅠ내용도좋고ㅜㅠㅜㅠ작가님도넘글잘쓰시고ㅠㅜㅠㅜ넘잘읽고갑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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