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백현은 일주일동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저 히트사이클 기간이 끝나기를 기다렸고, 욱신거리는 몸의 고통이 가라앉기를 바라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어차피 공부를 아무리 잘해도 저 멀리 바닥에 있는 알파를 더 인정해주는 모순적인 사회였다. 그럴 바에는 그 좋은 머리를 다른 쪽으로 굴려봐도 상관없을거라 백현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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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공주님 오셨네"
"진짜 왔어?"
웅성웅성, 저들끼리 백현이 지나가는 길마다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벌써 소문이 난것이라면 그럴만도 했다. 대학의 최고 양아치 3명이 벌인 일이였으니깐. 예쁜 오메가 한 명을 따먹었다고 자랑을 늘어놓고는 우쭐해했을 것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때마다 온갖 음담패설과 우롱적인 발언을 들어야 했지만 그런것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그리고, 저기 저만치에서 웃고떠드는 일주인 전 백현이 꾸었던 꿈의 악마들이 있었다.
"그래서 내가 그 년 가슴을,"
"야 변백현왔는데?"
세 쌍의 눈동자가 일제히 백현을 향했고, 백현 역시 그들을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분노를 품고 노려보는것 같기도하고, 원망의 눈길로 울먹이는 것 같기도했다. 백현이 다짜고짜 그들의 앞으로 와, 니 잘난 세놈들을 신고할 거라고 핏대를 세우며 말을했다. 수 초간의 정적이 흐른 뒤, 강의실은 웃음바닥 되었다. 백현만 완전히 소외된 채로.
"해, 해봐. 등신아"
"내가 말했지, 오메가는 그저 알파가 하는 말에 감사합니다하고 수구리는 거라고."
"..."
"그 때가 지금이야 썅년아!"
경수가 백현의 따귀를 내리쳤다. 맞은 볼기짝의 신경이 하나하나 움찔대는 것 같았다. 순간 어안이 벙벙해진 백현이 쏠린 고개를 어쩌지도 못하고 멍해졌다. 그러다 백현의 주먹이 꽉 쥐어졌다.
"쓰레기새끼들.."
"뭐?"
매사에 별 말이없던 종인까지 합세해 백현을 몰아붙였다. 나약한 오메가의 작은 저항에도 그들은 신경이 곤두서 밟아 뭉개뜨릴 기회만을 엿보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백현이 그 기회를 내준 것이었다. 종인이 백현의 손목을 잡고 강의실을 빠져나갔고, 세훈과 경수 역시 바로 뒤따라 나갔다. 백현은 주동자 세명이 정말이지 미웠지만, 그만큼 미운것은 강의실 내에서 굴욕적인 행위를 당했어도 자신을 아무렇지 않게 바라보는 다른 학생들이었다.
도착한 곳은 축제 용품이 가득차있는 창고였다. 먼지가 쾌쾌해 코안이 근질거렸지만 빠져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아주 희박했다.
"다시 말해봐."
"이 쓰레기들. 아! "
백현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종인이 백현의 복부를 걷어찼다. 먹은게 아무것도 없었지만 당장이라도 위액이 역류해 튀어나올 것 같았다. 마른기침을 하며 널브러져 있던 백현의 머리채를 잡아 종인의 따귀를 여러번 내쳤다. 짝짝대는 소리가 여간 난잡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 창고 안에서는 온전히 알파들의 정복욕과 그 정복욕의 희생양인 백현만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아주 이상하리만치 구타를 당하는 백현의 입가로 미소가 번져나왔다. 백현이 양쪽 바지주머니에서 신문지에 싸인 과도 두 개를 꺼내든 것은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폭행에 집중을 하고있던 세 사람이 반짝,하고 빛나는 날카로운 것을 발견한 것은 이미 과도에 피가 흥건히 묻어있는 뒤였다. 그래, 애초부터 백현은 넷이서만 있을 밀폐된 공간이 필요해서 그들을 유인한 것이였고, 백현의 예상대로 그들은 아주 보기좋게 덫에 걸려들었던 것이다. 종인이 백현을 향해 발길질을 하려는 순간 백현이 그의 발목을 잡고 아킬레스건을 사정없이 그었고, 종인이 넘어지면서 울부짖었다. 그 과정중에 손바닥이 꽤 크게 베었지만, 그런것 따위는 그다지 중요치 않았다. 남은 두 사람이 당황해 모든 행동을 멈췄을 때 백현이 세훈의 정강이뼈 옆의 근육을 일자로 그은 뒤, 겨우 일어나 무작정 보이는 배에 칼을 꽂았다. 제발 그 곳이 치명타이길 바라며 백현은 하나 남은 과도를 들고 경수에게 갔다. 경수가 뒷걸음질치다가 그만 플라스틱 의자에 걸려 넘어졌고, 그의 눈은 금세 공포심으로 가득차게 되었다.
"알파가 따먹으면 그저 오메가들은 감사해야한다고?"
"사,살려줘, 백현아, 제발,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게. 돈 필요해? 다줄게. 지금 당장 줄 수도 있어"
"니 새끼들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기는 해?"
"내가 하자고한거 아니야, 오세훈 저새끼가,"
"나는 너한테 감사해."
"이렇게 너를 내 손으로 죽일 기회를 줬으니깐."
가차없었다. 스스로도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을 백현은 새삼 깨달았다. 피에 묻은 자신의 옷이 검붉게 굳어가기 시작했지만 저기 엉금엉금 기어가는 우스운 꼴의 종인에게 가할 행동을 멈출 생각은 없었다. 백현이 종인에게 걸어가 크게 베인 아킬레스건을 밟았다. 귀를 찢는 듯한 비명에 백현이 인상을 썼고, 지난 가을 축제때 썻던 현수막을 종인의 입에 쳐박았다. 베인 아킬레스건이 조금만 덜 파였어도 도망쳤을텐데 달랑거릴만큼 깊게 상처가나서 백현은 무지 흡족해했다.
"종인아, 노숙자가 왜 무서운지 알아?"
"잃을게 없기 때문이야."
"종인아."
"나는 더 이상 잃을게 없어."
피로 물든 백현의 청춘이 약하게나마 신호를 보내오고 있지만 곧있으면 신호가 끊길 것 같이 위태로웠다. 그리고 그다지 달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왔다.
"변백현?"
찬열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