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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정지 오류. 위성지도가 뜬 창도 렉을 먹어 움직이지 않고, 표지훈의 행방마저 묘연해졌다. 다들 표지훈의 집 주변 CCTV까지 돌려보며 표지훈을 찾으려 애를 썼지만 멈춘 사람들 속에서 홀로 움직이고 있을 표지훈은 보이질 않는다. 초조하게 화면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결국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뒤돌아섰다. 그런 내게 일이나 하라며 욕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호출기 줬잖아. 호출기 쓰란 말야. 제발 호출기 좀 써라! 문제 생기면 쓰랬잖아. 왜 말을 안 들어? 보이지도 않는 표지훈을 향해 짜증을 부리며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엉켜대는 귀로 또박또박한 여자의 발음이 들려온다. 현재 7분경과. 만약 3분 내로 표지훈의 반응이 없으면 녀석을 찾기 위해 조사부에서 직접 2013년으로 가야 할 것이다. 가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겠지만 어딘지 찝찝한 기분에 후우하고 몇 번이고 숨을 내쉬다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화면을 바라보았다. 표지훈은 여전히 반응이 없다. "우지호 씨." 날 부르는 목소리는 이민혁이었다. 천천히 돌아보며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왜요'하고 물으니 퀭한 눈으로 입을 연다. 결국, 오류가 일어났어요. 나도 알아요. 내가 모를 것 같아요? 그런 내 말에 조금 힘없이 웃으며 손에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이거 박경 씨 줘요. 난 다시 가봐야 하니까. 그 종이를 받아들자마자 이민혁은 지친 발걸음으로 사령실을 나가버렸다. 상황만큼이나 복잡한 종이의 내용을 보다가 눈을 감고 이마를 쓸어올렸다. [보호는 무슨.] 멍청아. [감시겠지.] 진짜 멍청아. 10분이 지나고 소집된 조사팀에서 뽑힌 다섯 명. 왜 하필 거기에 내가 껴있는 건지 감이 오질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웃고 있는 김유권. 내가 한숨을 내쉬며 가운을 벗어 옷걸이에 걸고 있는데 껄렁거리며 내 쪽으로 와 말을 건다. 우지호, 왜 이리 축 쳐졌어? 그 말에 믿지 않게 눈을 홀기며 말했다. 네가 지나치게 방방 뜬 건 아니고? 그런 내 반응에도 그러려니, 히죽히죽 웃고 있는 김유권이다. "갑자기 조사팀으로 이동된 것까진 그러려니 했는데, 왜 나까지 가는 건데?" "왜긴 왜야. 네가 표지훈 관련 일 모두 맡는 거라니까?" 걔 되게 까칠하던데, 너 고생 좀 하겠다.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한 번 정돈한 김유권이 내게 어깨동무를 해온다. 내 어깨에 감긴 팔을 잡는데 새삼스레 떨리기 시작했다. 그동안 사령실에만 있었지, 한 번도 나간 적 없었는데. 괜히 김유권의 팔을 잡은 손을 꽉 쥐니 '긴장했어?'하며 킥킥. 대기하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나는 천천히 김유권의 팔을 놓았다. "이제 눈 떠도 돼요." 김유권의 말에 느릿하게 눈을 떴다. 나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도 김유권의 말과 동시에 눈을 뜬 듯하다. 아까 서 있던 커다란 흰 방 대신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아. 영상으로 질릴 만큼 봤던 곳. 분명 2013년 8월의 현장이다. 새파란 하늘 군데군데를 메우고 있는 흰 구름. 여름답게 눈을 찌를 듯 쏟아지는 햇빛. 그리고 그렇게 쏟아지는 햇빛을 잘게 조각내고 있는 나뭇잎들. 아무도 없는 조용한 소공원. 초록색 나무를 바라보다가 김유권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김유권. "일단 표지훈이 마지막으로 있었던 장소가, 표지훈 집이죠?" 그 말에 단발 머리 여자가 조르르 나와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하나를 펄럭인다. 마지막으로 보이던 위성 지도. 표지훈의 집 주소가 적힌 종이다. 잠시 여자와 뭐라뭐라 얘기를 하던 김유권이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비롯한 컨트롤러들을 향해 돌아섰다. "일단 먼저 표지훈 집으로 갑니다. 여기서 걸어서 10분 정도니까 서둘러요. 설마 지금 이 상황에 밖에 나가려 들진 않겠지만."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나를 뺀 모두는 한 번씩은 이렇게 과거에 나온 적 있는 사람들. 그 중에서도 김유권은 아예 행동 대장으로 통하고 있다. 나만 여기서 경험이 없다는 점은 물론, 처음으로 과거에 왔다는 것 자체가 갑자기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공기, 보고 있는 광경. 이 모든 것이 2013년의 것이다. 사람들이 빠르게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고 나도 뒤를 쫓아 걷기 시작했다. 앞장서서 걷고 있던 김유권이 힐끗, 뒤를 보며 나와 눈을 마주치더니 걸음을 늦춰 내 옆에서 걷기 시작한다. "긴장 돼?" "시끄러."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김유권은 다 안다는 듯 쿡쿡 목소리를 낮춰 웃는다. 사람들과는 조금씩 거리가 멀어지고 있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 김유권은 오히려 걸음을 늦추기까지 하고 있었다. 뭐가 이렇게 여유로워. 내가 처음이라 그런가. 낯설게만 느껴지는 환경 탓인지 긴장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근데 우지호. 표지훈한테 호출기 쓰는 법 제대로 알려준 거 맞아?" "맞아. 세 번이나 말해 줬어." "근데 왜 호출기를 안 쓰냐?" 안 그래도 계속 걸리던 부분을 김유권이 콕 찝자 갑자기 기분이 상하고 말았다. 내가 눈살을 찌푸리고 아무 말도 않자 김유권이 '에이, 왜 그래. 막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그러지 마라'하며 옆구리를 쿡쿡 찌른다. 지금 이 녀석이 이렇게 여유롭고 태연한 건 경험도 경험이지만 아마 천성이 이래서일 거다. 분명해. 네 천성이야. 내가 작게 투덜거리자 김유권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스트레칭을 한다. 소공원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게 좀 이상하게 느껴졌는데, 공원을 나오니 사람이 꽤 보인다. 막 공을 발로 차고 있던 어린아이에게 눈이 간다. 환하게 웃으며 한 쪽 발을 들어 힘차게 공을 차려는 모습.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공은 굉장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꼭 조각상 같네. 잘 만든 조각상. 그 아이 말고도 교복을 입고 핸드폰을 귀에 댄 채 입을 살짝 벌리고 있는 여학생, 막 아이들을 태우고 차 문을 닫던 학원 버스, 장바구니를 들고 걷고 있던 아주머니까지. 모두 멈춰 있다. "아!" "우지호!" 주변을 둘러 보느라 앞에 서 있던 사람과 그대로 부딪히고 말았다. 다만 그 사람이 2013년 당시의 사람, 즉 멈춘 사람인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단단히 굳어서 꼭 사후 경직이라도 일으킨 것만 같은 몸. 나와 부딪히자마자 조금의 움직임도 없이 똑같은 자세로 바닥 쪽으로 쓰러진다. 가방을 메고 있는 여학생. 넘어지는 여학생을 급히 받아 겨우 넘어지는 걸 막고 일으킨 김유권이 밉지 않게 눈을 홀겼다. "정신 똑바로 안 차려?" "미안." "똑바로 해. 혹시라도 우리가 이 사람들과 접촉해서 문제가 생기면 야단 나니까." 그 말에 별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라도 사람들과 부딪혀 문제가 생기면 곤란하니까. 갑자기 눈을 한 번 깜박였는데 내가 바닥에 넘어져 있다거나, 언제 생긴 지도 모르는 넘어져서 다친 상처가 무릎에 나 있다면 굉장히 당황스러울 것이다.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보며 김유권은 입술을 한 번 삐죽이곤 돌아섰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새 표지훈이 사는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표지훈 동 어디야." "백십칠동." 백십칠동? 어느 쪽이야. 잠시 종이를 보며 인상을 쓰던 김유권이 이내 '저 쪽이다'하고 걸음을 옮겼다. 가까워지고 나니 느릿하던 아까와는 달리 조금 서두르는 기색. 그런 김유권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가 잠시 멈춰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시간이 멈춘 마당에 구름이 움직일 리가 없다. 새파란 하늘에 굳은 듯 조금도 움직이지 않는 뭉게구름. 구름을 멍하니 쳐다보다가 뒷걸음질을 쳤다. 내가 멀어지는 줄은 모르고 그대로 표지훈의 집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 나는 그들이 가는 쪽과는 다른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아무도 없는 길을 혼자 걷는다는 것은 굉장히 묘한 일이었다. 더군다나 움직이는 게 나 혼자라는 점은 더더욱. 조용한 아파트 단지 안. 지금쯤 내가 없어진 걸 알아챘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아무렇지도 않았다. 어쩐지 표지훈은 집에 없을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표지훈. 평범한 고등학생에서 졸지에 그 어느 시간에도 포함되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만 아이. 낙오자가 8월이 끝나면 어떻게 되는가는 2순위. 1순위는 낙오자까지 이끌고 무사히 8월을 완성시키는 것이다. 난 원해서 낙오된 것도 아니고 다 여기 기관, 그 TC인가 뭐시깽인가 하는 곳 실수잖아요. 그래. 녀석은 휘말린 것이다. 졸지에 '낙오자'로 불리기 시작하고,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을 저 혼자만 느낄 수 있게 됐다. 나는 한 번도 느낀 적 없지만 아마 계속 불안한 상태겠지. 아무 곳에도 속해있지 못하다는 건. 갑자기 표지훈 녀석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제 겨우 열여덟 살. 교우 관계, 학업 스트레스 따위로 복잡할 녀석에게 어마어마한 짐덩이를 떠안긴 것만 같아 미안함까지 들었다. 지금 이 시간대엔 분명 나 뿐만 아니라 표지훈을 비롯해 다른 컨트롤러 아홉 명까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있자니, 이 넓은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기분. 표지훈은 이런 기분이였을까.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는 순간, 저 혼자만 움직일 때 기분은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 느리게 옮기던 걸음을 멈췄다.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던 발걸음 소리가 턱, 멈추고. 내 앞에 보이는 건 아파트 앞 검은 아스팔트 바닥 위에 서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 뭘 보고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 시선을 쫓아 든 고개. 내 눈에 들어온 건 새파란 하늘과 그 자리에서 더는 움직이지 않는 흰 구름. 그리고 해. 날이 여름답지 않게 시원하다. 어디선가 바람이라도 부는 기분. 천천히 발을 앞으로 내밀었다. 녀석의 머리카락이 살짝 움직인다. "표지훈." "…." "여기서 뭐해." 녀석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새파란 하늘. 눈부신 해 덕에 그늘진 녀석의 얼굴. 그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느리게 걸음을 옮겼다. 나와 마주 보고 선 표지훈. 녀석의 얼굴은 무표정이었지만 어딘지 울 것만 같았다. 그런 녀석을 보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실룩, 아래로 내려간다. 주먹을 한 번 꽉 쥐었다가 이내 표지훈을 향해 내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계속 내 얼굴을 바라보는 검은 눈. 그 눈을 보며 입을 열었다. "가자." "…." "가자, 표지훈." 녀석은 내 손을 잡았다. |
6 |
내 손을 잡음과 동시에 쓰러지듯 내게 기댄 표지훈. 그런 표지훈을 부축하며 다른 동료들에게 향한 나. 어디 갔다 왔냐며 화를 내려던 김유권은 내게 기대어 힘없이 비죽비죽 걷고 있는 표지훈을 보고선 입을 꾹 다물었다. 얘 뭐야, 어디 아파? 다급히 묻던 김유권에게 고개를 저었고, 곧바로 우린 다시 TC로 돌아가야 했다. TC로 돌아오자마자 모두 표지훈을 살피기 시작했고, 수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표지훈은 말 한 마디 하지 않고 저를 이끄는 사람들을 따라 흰 복도를 걸었다. 김유권은 표지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뜨는가 싶더니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 이탈한 건 안 물을게. 일단 표지훈 데려 왔으니까. 그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번만 더 이런 일 있으면 그 땐 위에 보고할 거야.” “그래.” 대화는 그걸로 끝. 김유권은 뒷걸음질을 치는가 싶더니 반대쪽으로 조금 급한 걸음으로 걸어가기 시작했고, 나는 표지훈과 김유권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내 표지훈 쪽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여자가 종종걸음으로 표지훈을 앞질러가 이마를 짚어주는가 싶더니 이내 ‘열나요’하고 말한다. 그와 동시에 표지훈을 둘러싼 사람들이 좀 더 시끄러워진다. 하나같이 다들 걱정하고 있는 모습. 그리고 그런 사람들 속에서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무뚝뚝한 얼굴로, 윗입술로 아랫입술을 꾹 누르며 애써 아무렇지 않게 걷고 있는 표지훈. 불안정하고 흔들리는 뒷모습. 저마다의 틀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 속 그 어떤 지지대도 없이 홀로 공중에 떠있는 것만 같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열은 이제 없을 거야.” 침대 위에서 눈을 뜬 표지훈을 향해 내가 말하자 녀석은 잠시 주변을 살피는가 싶더니 이내 끙하는 소리와 함께 눈을 감고 자세를 고쳐 눕는다. 그런 녀석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푹 내쉬며 나는 물었다. 나를 비롯한 모두가 표지훈에게 묻고 싶어 했을 질문. 자칫하면 녀석을 자극할 수도 있을 말. 표지훈, 하고 이름을 부르니 눈도 뜨지 않고 ‘왜요’하고 불량스레 묻는다. “왜 호출기 안 썼어?” “...” “설마 쓰는 법을 잊어버렸어?” 차라리 그렇다면 좋겠다. 잊어버려서. 까먹어서 그랬어요. 퉁명스럽게 그렇게 말해주면 소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표지훈은 내 기대를 참 쉽게 무시했다. 아뇨. 그 굵직한 목소리에 나는 후하고 숨을 불어 앞머리를 한 번 띄웠다.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 쪽을 보이지 않게 가린 녀석을 보며 나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랬어. 왜 그랬어.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만 고르고 있던 내게 말을 먼저 건 것은 표지훈이다. 그렇게 간단한 것 정도는 안 잊어 버려요. 지금 저 새끼 저거. 그렇게 잘 알면서. 어? 턱 끝까지 차오른 말을 결국 다시 삼켜내고 애써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왜 호출기 안 썼어?” 그 말에 방금 전만 해도 잘만 나불대던 입은 다시 다물린다. 얄팍한 입술이 닫히고, 눈은 감겨 있고. 저걸 어찌 해. 답답함에 그저 한숨만 내쉬던 나는 볼펜을 세 번 정도 딸칵거린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인기척을 느끼곤 조금 움찔한 표지훈의 모습도, 금세 모른 척 아까와 똑같은 표정을 짓는 모습도 봤지만 굳이 뭐라 하진 않았다. 그래. 나는 녀석을 이해해야 한다. 힘들겠지. 혼란스럽겠지. 하지만 저런 녀석의 태도에 슬슬 짜증이 나는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어디까지 이해해주고 응석을 받아줘야 하는데? 하지만 결국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문손잡이를 잡았다. “이해해. 많이 힘들겠지.” 표지훈은 아무 말도 없다. “우리도 노력 중이야. 지금 네 상태를 최대한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고, 8월이 모두 복구되면 너도 다시 원래대로, 네가 있던 시간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하려고 준비도 하고 있어. 그러니까.” “...” “너도 우릴 좀 믿어줬으면 좋겠다, 표지훈.” 거기까지. 거기까지만 말하고 나는 문고리를 돌렸다. 내가 복도로 나와 조금 세게 문을 닫을 때까지도 표지훈은 아무 말도 없었다. 문을 닫고서 잠시 문에 기대어 있던 나는 이내 눈을 감고 심호흡을 했다. 어떠한 상황에서 아무런 정보도 없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아무도 모르는 개척되지 못한 분야라면 더더욱. 그리고 지금 TC의 상황이 그러했다. 마지막 작업. 예상치 못한 낙오자 발생. 지금까지 낙오자란 존재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낙오자에 대한 정보는 아무 것도 없다. 그저 예상만 할 뿐. 그런 막막한 상황 속, 가장 혼란스러울 낙오자는 현재 상황에 큰 불만을 가지고 마음을 닫아 버렸다. 제대로 된 협조를 해주지 않고 혼자 투정부리는 것으로만 보이는 모습. 갈수록 틀어지면 틀어졌지, 일이 쉽게 풀릴 리가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건, 왠지는 모르지만 기계가 혼자 오류를 복구하고 있다는 점이네요.” 멍하니 빛덩어리를 보며 이민혁의 말을 듣다가, ‘뭐라고요?’하고 되물었다. 이민혁은 어딘지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날 보며 다시 한 번 말해주었다. 혼자 복구를 해? 내가 멍청하게 눈을 꿈벅거리니 이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표지훈과 헤어지고 나서 곧바로 이민혁에게 왔다. 원래는 오류 관련해서 물어보려고 온 건데 어쩌다 보니 저 혼자 은은하게 움직이고 있는 빛덩어리를 구경하는 신세가 되었다. 복잡한 사람들과는 달리 여유롭게까지 보이는 빛덩어리. 답답하던 마음이 느슨해지는 기분이다. “사실 지난 번에도 그렇고, 우리가 한 일은 거의 없어요. 순전히 저 기계 혼자 한 거예요.” “그게 가능해요?” “글쎄요. 어쨌거나 저건 사람의 기술로 만든 게 아니잖아요. 애초부터 존재했던 거지. 사람의 몸은 그 자체만으로도 우주라고 하잖아요. 하물며 시간은 어떻겠어요. 굉장히 추상적인 존잰데 어쨌거나 평범하진 않겠죠.” 그렇지. 저건 사람이 만든 게 아니니까 뭔 이상한 짓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얇은 실이 위로 부드럽게 올라왔다가 내려왔다를 반복하며, 어쩐지 조금 또렷하고 차가운 털실뭉치처럼 보이기도 하는 빛덩어리를 빤히 쳐다보다가 이민혁은 리모컨을 눌렀다. 그와 동시에 빛덩어리가 보이던 투명한 유리는 불투명하게 변하고 눈을 자극하던 빛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눈이 좀 피곤하네요. 조만간 병원이라도 좀 가봐야겠어. 눈두덩을 손등으로 꾹꾹 누르던 이민혁이 뒤돌아섰다. 이번 달은 계속 이렇게 피곤할 것 같은데, 어쩌죠. 피곤한 목소리다. 시간에 대해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시간에 대해 일반인보다는 훨씬 잘 안다. 더군다나 TC는 이십 년 가까이 되는 역사까지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간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게 어딘가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시간도, 저 빛덩어리도, 낙오자도. 모든 게 다. 표지훈 그놈에 대해선 언제쯤 잘 알 수 있으려나. “아무튼 이대로 가면 여섯 시간 내엔 복구될 것 같아요. 그런데 낙오자가 지금 몸이 좀 안 좋으니까, 컨디션 괜찮아지는 대로 돌려보내면 될 것 같고.” “지금 걔 멀쩡해요.” 그래요? 아파 보이던데. 이민혁이 웃으며 아직도 쓰고 있던 고글을 벗었다. 아, 위에서 그러더라고요. 돌려보내기 전에 교육 좀 시키라고. 지난 번에 우지호 씨가 대충 알려주긴 했을 텐데 그래도 시간에 대해서 개념 정도는 아는 게 더 낫겠다면서요. 그걸 누가 하냐고 내가 묻자 이민혁은 어깨를 으쓱한다. 박경 씨랑 신지민 씨. 두 사람이던데. 나는 내가 아니란 점에 조금 안도하며 ‘그럼 됐어요’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표지훈과 관련된 일은 모조리 나한테 떠맡기고, 지난 번엔 아예 낙오자에 대한 모든 일을 내게 책임을 맡기기까지 해서 거의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만약 이 일도 나한테 시켰다면 아마 소리를 빽 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럼 가서 좀 주무세요. 되게 피곤해 보이네. 오늘 처음으로 현장 나갔다면서요.” “예, 시원하게 말아 먹고 왔죠.” “그래요? 김유권 씨는 우지호 씨가 낙오자 찾아냈다고 칭찬하고 다니던데.” 그놈이 그래요? 내가 무기력하게 묻자 이민혁이 고개를 끄덕인다. 별 다른 말은 없고요? 예. 그렇구나. 안 그래도 오늘 이탈한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걸리는 점이 많았는데 갑자기 불편하던 마음이 가벼워졌다 “그럼 전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예.” “아, 그런데요.” 내가 돌아서다 말고 말하니 이민혁이 뭐냐는 듯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이민혁 씨 생각보단 좋은 사람인 것 같네요.” 생각보다? 이민혁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고 나는 킥킥 웃으며 기계실을 나갔다. 생각보다란 게 무슨 뜻인데요! 이민혁이 소리치는 것을 들으며 나는 문을 가볍게 닫았다. “낙오자는 지난 번에 이민혁 씨가 말했듯이 불안정한 상태겠지. 어느 시간에도 속해있지 못한 건데.” 쉽게 말하자면 뭐, 그 뭐지. 있잖아. 트램펄린. 트램펄린 위에서 신나게 콩콩 뛰고 있다가 갑자기 바닥으로 떨어진 거야. 계속 뛰고는 있는데 몸은 무겁고, 트램펄린 위에서처럼 쉽게 움직여지지도 않고. 그러니까 낙오자는 시간 외의 외력을 모두 맨몸으로 받는 거잖아. 박경의 설명을 듣던 김유권이 ‘흠’하는가 싶더니 박경의 이마에 다짜고짜 딱밤을 날렸다. “아! 왜 때리는데!” “쉽게 말하자면 이라면서. 그럼 쉽게 말해야지. 애초에 비유가 잘못된 것 같은데?” “이씨. 이걸 말로 표현하기가 드럽게 어려운데 뭐 어쩌라고!” 투덜거리는 박경을 보며 나는 표지훈과 처음 만난 날을 떠올렸다. 시간에 대해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표지훈에게 어째서 우리가 이런 일을 하고 있는가를 설명하려 애를 쓰던 날. 박경의 심정이 괜히 이해가 간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다고 치면. 갑자기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진 거야.” 내가 말하자 김유권은 물론 박경까지 인상을 쓴다. “비유가 너무 극단적인데요, 우지호 씨.” “닥치세요. 어쨌거나 그렇다고 쳐. 근데 롤러코스터에 몸이 밧줄로 묶여있는 거지.” 야! 그 정도면 호러지! 팔을 휘적거리는 두 사람을 보며 혀를 찼다. 왜 지들이 더 난리야. 하긴. 좀 무서운 것도 같다. 멀쩡히 달리는 롤러코스터에서 떨어졌는데 몸이 밧줄로 묶여 있어서 땅에 떨어지지도 못하고 빠른 속도로 달리는 롤러코스터에 대롱대롱 매달려 쫓아가는 꼴이라니. “그래서 강제로 롤러코스터를 따라가긴 따라가는데 되게 힘든 거야. 원래는 편하게 앉아만 있어도 롤러코스터는 알아서 달리는데, 지금은 밧줄에 억지로 끌려가는 기분인 거지.” 뭐, 이 정도면 대충 이해되지 않아? 어차피 비슷비슷한데, 다. 그리고 시간이랑도 얼추 맞지 않아? 롤러코스터가 오르막 올라갈 땐 느려지고 내려갈 땐 빨라지고 속도도 제멋대로잖아. 그니까 시간도 속도 제멋대로인 거랑 대충 비슷하지 않아? 내 말에 박경은 흐으음, 하고 길게 소리 내며 관자놀이를 볼펜 뒤로 꾹꾹 눌렀다. 그러다가 이내 탁하고 펜을 내려놓으며 기지개를 켰다. “나쁘진 않은데 너무 극단적이야. 너 언제부터 그렇게 무서운 생각하고 살았냐.” “무섭긴 무슨.” “애초에 이건 심의에 걸려, 심의에. 이건 기각! 표지훈은 미성년자야!” 기껏 생각해놨더니. 내가 투덜거리고 있자니 박경이 책상에 머리를 쾅쾅 박는다. 아아, 짜증나! 왜 낙오자 관련 연구한 인간은 한 명도 없냐! 낙오자가 있어야 연구를 하지, 병신아. 김유권의 말에 박경이 흐느적거리며 ‘짜증나’하고 중얼거린다. 표지훈 교육에 들어가기에 앞서 낙오에 대해 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냐며 울상을 짓고 찾아온 박경 덕분에 김유권과 나는 덩달아 머리를 싸매고 열심히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었다. 다만 쓸모 있는 아이디어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저 알아서 이해는 하겠지. 나름 고등학교 2학년이신데 설마 이 정도도 이해 못 하겠어? 그런 내 말에 눈을 가늘게 뜨는 건 김유권이다. 야, 왜이리 삐딱하게 굴어? 내가 뭘? 내가 태연하게 어깨를 으쓱이니 박경이 키득거리다가 이내 벽에 걸린 전자시계를 오려다 본다. “슬슬 들어가야 될 것 같은데.” “그래?” 응. 지민 씨랑 만나기로 한 시간이야. 박경과 함께 표지훈 교육에 들어갈 여자. 박경은 방금 전까지 우리가 온갖 낙서를 해대고 있던(롤러코스터라던가)종이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번에 네가 뭐라고 했었지?” “난 뭐, 대충 파이프 그런 걸로 얘기했는데.” “흠.” 그래. 네 말대로 뭐 지 혼자 이해 할 수 있겠지. 그 정도도 못 하면 우리가 뭣하러 도와줘? 박경은 금세 귀찮다는 듯 체념한 얼굴을 하며 방을 나갔다. 나와 김유권 둘만 남은 방은 조용해졌다. 어쩐지 졸린 기분에 잠시 쪽잠이라도 자려 하는데 김유권이 툭툭 내 팔을 치며 말을 걸어 왔다. 야, 우지호. 왜. “표지훈 말이야.” “그 놈 얘기 할 생각은 하지 마라.” 생각만 해도 열불 나니까. 나도 모르게 말이 날카롭게 나갔지만 김유권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어깨를 한 번 으쓱일 뿐이었다. 딱히 중요한 얘기는 아니었는지 김유권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해대며 혼자 낄낄대다가 이내 가봐야겠다며 내 어깨를 툭툭 치곤 일어났다. 나는 잘 가라며 대충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 주머니에 손을 꽂아넣고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었다. 졸리네. 눈가를 대충 슥슥 비비다가 이내 고개를 들어 전자시계를 보았다. 8월 4일 15시 35분 49초. 이제 겨우 8월 초일 뿐이다. |
한지배경 위에 시뻘건 색 참 매혹적이네요 |
이번엔 지난주에 못온만큼 두 편으로 묶어 왔지요 잘했져는 사실 좀 짧은 감이 있어서 걍 붙였음... 인터넷 안되니까 공부도 잘 되고 글도 더 빨리 써지고...^^... 제가 글 쓰다가 좀 질리거나 그럴 때 뭐했는지 알아요? 스파이더 카드 놀이ㅎㅎㅎ지뢰찾기ㅎㅎㅎ내가 기록 다 깸 일주일 내로 글 못 올릴 것 같다 해놓고 왔네요 저희 집이 지난 번에도 와이파이 고장나고 그랬을 때 거의 한 달만에 고쳤거든여 그래서 이번에도 겁나 오래걸릴 줄 알았는데 이번엔 겁나 빨리 해서 씐나옇 한글로 썼더니 싱기해 맨날 인티로만 쓰다가 한글로 쓰니까 신기하네여 무튼 지난 번에 걱정해주신 분들 다 거마워여...ㅠㅠ이런 멍청이한테 막 그렇게 걱정해주시고 그러시면 고맙고 죄송해여...ㅠㅠㅠ그냥...스릉한다구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