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Prologue [그 해 여름]
“경수야....!”
"의사선생님 불러와, 빨리!"
“경수 의식 차렸어! 주치의 불러와야해!”
삐-----
“정신이 들어? 나 누군지 알아보겠어?”
힘겹게 떠올린 눈이 제일 처음으로 마주한 것은 병실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조명이었다. 그 빛이 너무 밝아 눈을 뜨자마자 다시 감아버리긴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눈꺼풀을 올렸다. 병실 안이 조금 혼잡한 듯하다. 익숙한 목소리가 의사선생님을 부르는 소리도 들리고, 얼굴도 어렴풋이 보인다. 누군지 알아보겠냐는 질문에 대답을 할 수 있을 만큼 내겐 여유가 없었기에 눈을 작게 감았다가 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게 대답이라는 건 알아보았을까? 의문이 들었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다시 그 상태로 잠에 빠졌던 걸로 기억한다.
내가 다시 일어났을 때는 해가 질 무렵이었다. 그 때는 눈을 뜨자마자 시계를 보았다. 이번에는 주위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손을 뻗어 옆의 커튼을 살짝 걷어보았지만 내 옆의 침대에는 누군가가 지낸다 할 만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이불이 곱게 개켜져 있는 것부터가 아무도 없다는 뜻일까. 사실, 많이 걷어보지도 못해서 내가 제대로 보지 못 했을 수도 있다. 아직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기에는 몸이 많이 무겁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굴까?
“... 겨...경수야!”
아, 엄마였구나...
아직 말 할 기운까지는 없어서 엄마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많이... 마르셨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잔걸까. 정신이 한 번 들기 전 내 마지막 기억은 ---(사고 무슨사고로하지.... )--- 었다. 그 뒤로 나는 정신을 잃었고, 이제야 깨어났다. 엄마가 아주 안쓰러운 얼굴로 나를 보신다.
“일어난 거야? 엄마는... 엄마는 알아 보겠어?”
“...”
여전히 말 할 기운은 남아있지 않다. 사실 지금 눈을 뜨고 있는 것도 굉장한 고역이다. 하지만 눈을 뜬 이상 엄마에게 더 걱정을 끼칠 순 없다. 지금도 눈에서 당장이라도 눈물이 흘러내리실 것만 같이 생겼다.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오는 엄마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래... 그래....... 엄마가 의사선생님 불러올게.. 저번처럼 자지 말고 있어야 해?”
“....”
“금방 올게, 자면 안 된다? 엄마랑 약속. 엄마 정말 빨리 갔다 올게.”
“....”
눈을 꾹 감았다 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엄마는 정말 급하게 병실을 나가셨다. 사실 지금 당장이라도 잠이 들것만 같다. 왜 이렇게 졸린지 모르겠다. 한참을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도 또 잠이 온다. 그러고 보니 긴 꿈을 꾼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참, 나는 아직 내가 여기 있는 제대로 된 이유도 모르는구나... 내 꼴이 어떤지도 모르고........
“아..”
이런 저런 잡념에 너무 깊게 빠진 것 같다. 금세 또 졸아버렸다. 애써 참으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끝에 내린 결론은 주변을 좀 뒤적거려 보는 것이다. 뭐라도 나올지 모르니까 말이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굳어버린 몸을 가볍게 풀고 일어났다. 평소 중력의 두 배를 받는 듯한 무게감이 느껴진다. 아직 움직이면 안 되는 건가?
“헐, 이게 무슨...”
지금의 나는 한마디로 굉장히 ‘추하다.’한 번도 나 자신에게 추하다는 단어를 써 본적이 없다. 낮추는 것과 깎아내리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나는 나를 아낀다면 아꼈고, 깎아내리기 보단 낮추는 편에 가까웠다. 그런 내가, 심지어. 생전 써본 적도 없는. ‘추해’ 라는 단어를 누구도 아닌 나에게 쓰게 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처음으로...
그런데 또, 부정할 수 없는 게 확실히 거울로 본 내 모습은 나로서는 조금 충격적이었다. 머리는 덥수룩하게 자라있는데, 그 자란 머리를 붕대가 누르고 있어 한쪽 눈을 완전히 덮었다. 무슨 중2병 일찍 온 초딩같이 생겼잖아. 키도 작은데... 누워만 있어서 머리를 못 감으면 이렇게 되나? 기름기도 가득해 보이고... 아, 설마 이런 모습을 친구들이 봤을까... 안 봤을 리가 없지... 하하, 망했군.
“경수-야... 세상에...”
아뿔싸, 엄마 돌아오셨나 보다. 내가 화장실에 있는 걸 모르시고 걱정하고 계신 듯하다. 급한 대로 옆에 있는 변기의 물을 내렸다. 소리가 요란하게도 난다. 좀만 더 조용히 내려가면 좋을 텐데. 밖에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보니 내가 여기 있다는 걸 아신 것 같다. 거울을 한 번 더 보고서는 화장실 문을 열고 나왔다.
“엄마 놀랐잖아! 어디로 사라진 줄 알고...”
“내가 뭘 사라져, 사라지긴... 걱정했어? 미안해.”
많이 걱정하셨나봐, 내가 어디로 사라진다고...
“도경수!”
“경수야...”
“헐......”
“얘들...아...?”
어어...? 어안이 벙벙하다. 엄마만 있는 줄 알았는데 다들 있었을 줄이야... 어쩐지, 의사를 부르러 가는 것 치고는 너무 늦는다 했어! 다들 오랜만에 보는 느낌이라 반갑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하다. 아직 볼 준비는 안 되어있었는데 말이지... 하... 이 중2병머리를 가지고 보다니... 이건 평생 놀림감이야...
“깨어나기는 하는 거였구나.”
“난 이대로 네가 식물인간이 되면 어쩌나...”
“야, 오세훈, 박찬열. 니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막 깨어난 애한테 그게 무슨 소리야?”
“아, 반가우니까 하는 소리지! 완전 오랜만이잖아. 경수야, 일로 와 봐. 형이 좀 안아줄게ㅠㅠ”
어..? 나 더러운데..?“오지마, 야, 오지마. 나 지금 더럽다.”
“내 친구는 안더러워, 임마. 괜찮아.”
“박찬열... 못말린다. 정말 하나도 안변했네.”
“그럼 변하길 바랬어?”
“철 좀 들길 바랬지.”
“형님 간다.”
“아아, 에이. 장난인 거 알면서. 삐졌어?”
“설마? 나도 장난이었어.”
진짜, 하나도 안변했다. 다들 그대로다. 박찬열부터 시작해서 오세훈, 김종대, 정수정에 이지은까지... 모두들. 다. 하나도 안변했어.... 조금 감동이랄까. 근데...
“근데, 너네 OO이는 어디 두고 너네끼리만 왔어? 이왕 올 거 같이오지.”
“아...”
“그게,”
갑자기 서로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말도 더듬고... 무언가 숨기는 게 있는걸까, 하지만. 뭘 숨겨서 뭐하게? 딱히 숨길만한 게 있나...?
“그, 어머니 제사를 지낸대, 오늘.”
“어, 맞아... 그래서 못왔어.”
어머니 제사?
“거짓말 하지 마.”
“....”
“왜 다들 말이 없어? OO이네 제사 안 지내는 거 알잖아... 그리고 어머니 기일도 오늘 아닌데?”
“어.......경수야,”
“응?”
단호하게 받아쳤다. 왜 거짓말을 하는 걸까. 거짓말을 하는 걸 알면서도 내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게다가 그걸 알면서도 이 아이들은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OO이네 집이 어머니 제사를 지낸 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는데... 순간적으로 방 안의 공기가 미묘하게 뒤틀렸다. 내 대답으로, 내 질문으로 인해 병실 안은 순식간에 숨소리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불편한 공간이 되어 버렸다. 뭐라고 말을...
“도경수 환자?”
“네?”
깜짝이야.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누군가 했더니, 드라마에서나 보던 흰 가운을 입은 의사다. 내 주치의? 뒤에 간호사들도 있네... 나는 평생 이런 장면 보지 못할 줄 알았는데 실제로 보니 신기한 것 같기도. 아, 이럴 때가 아닌가?
“벌써 움직이고 계시네요. 일단 침대에라도 앉아서 얘기할까요?”
“아, 네.”
병실을 싸고도는 어색함이 불편해 질 정도가 되려던 찰나에 의사선생님이 들어와 그 흐름을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의사선생님과 대화가 조금 길었기에 약간의 어색함은 사라진 정도. 하지만 내가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자기들끼리 눈길을 주고 받고 내 눈길을 피하느라 바쁜 듯하다. 다 보이는데... 의사선생님이 뭐라고 자꾸 질문을 걸어오지만 귀에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다.
“밥 먹고, 몸 가볍게 움직이는 것부터 시작해요. 간단히 정원에 산책을 나가도 좋아요. 풀어주는 정도면 돼요. 그럼 쉬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시 적막인가. 그래, 내가 만들었으니 내가 깨뜨려야지.
“이유가 뭐야?”
“무슨 이유...”
“나보다 너네가 잘 알텐데.”
“....”
“얘들아, 난 이런 걸로 싸우고 싶지도 않고, 싸워야 할 건덕지도 안 되는거야, 이건.”
“그렇..지..”
“그치? 너네도 알잖아. 이제 말해줘. 왜 나에게 거짓말을 했어?”
“방금 깨어났는데, 충격 받으면 안 되잖아..”
다들 얼굴빛이 좋지 않다. 충격이라는 단어를 써야할 정도까지 큰 일인가.
“무슨, 충격?”
“그러니까..”
“음료수 가져왔다!!!”
대화 주제가 빗나갈 것 같아 걱정했지만 충격이라는 단어에게서 느낀 두려움이 더 컸을까.
세훈이가 좀 예뻐 보이네.
“뭐야, 분위기 왜 이래.”
“세훈아, 너가 얘기해.”
“뭘 내가...아..? 근데 왜 내가...?”
“알잖아, 우리 중 걔를 언급할 자격이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
“야, 너네 뭐야?”
뭐야? ‘언급할 자격’ 은?
“걔가 뭐라고 언급할 자격까지 필요해?”
“있어, 그냥 들어.”
“정수정 단호한 거 봐. 네가 말해도 될 것 같네.”
“오세훈, 상황 파악 좀 해.”
“야, 도경수만 걔 좋아했어? 나도 좋아했어.”
지금 이게,
“오세훈! 말이라고 막 하지마.”
“박찬열, 넌 뭔데.”
“정수정도 이해할 줄 좀 알아.”
“내가 지금 이지은 배려 안하고 있는 건 안보이고?”
뭐하는 상황이지?
“야, 지금 너네 싸워?”
“...”
“어이없네, 잘못은 너네가 나한테 했는데, 왜 니네 잘못 서로 떠넘기다가 너네끼리 싸워? 너희들 지금 나한테 사과해야 할 상황이 먼저인 건 몰라?”
얘네 오늘 왜 이래. 평생 않던 거짓말에, 싸우기까지... 나까지 화나게.
“...미안하다.”
“박찬열, 넌 맨날 미안하다 한 마디면 다 돼?”
“.........”
“오세훈, 너도 분위기 파악 좀 해. 거기서 네가 시비 걸 타이밍이 아니지 않냐?”
“하지만,”
“뭘 잘했다고 하지만? 너 잘한 거 있어? 말해봐.”
“....그래, 미안.”
“정수정, 도대체 걔가 뭐라고 언급할 자격까지 갖춰야 하는 건데? 어? 말해봐, 이지은.”
“도경수, 너도 우리 좀 배려할 줄 알아야 해.”
“애초에 거짓말 안했으면 됐잖아.”
“우린 너를 위해서 거짓말 한 거야. 우리 입장도 좀 생각해 줄 순 없어?”
“그럼 좀 말이라도 되는 거짓말을 갖다 붙이던가. 어머니 제사? 안 지내는 거 내가 누구보다 잘 아는데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도경수, 너 오늘 좀 실망이다.”
“나도 오늘 너네한테 좀 실망이다. 이지은, 네가 말해. 뭔데.”
“얘들아, 나 말한다.”
“...어.”
“마음 꽉 붙잡아라.”
도대체 뭐길래, 그렇게 중요한.........
“OOO, 죽었어, 경수야.”
어?
“너 처음 눈 떴던 날, 먼저 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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