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엄청난 이웃
w. Aby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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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미안하다 사랑..응?
이건 하늘이 준 기회다. 이 때 아니면 내가 이성열한테 들이 댈 기회도, 아마 더는 없겠지. 조물주라도 더 이상의 찬스는 주지 않을 테다. 내가 여태 그런 짓(ex,화장실드립, 서민체험드립, 주운 거 드립 등등)만 하지 않았더라도 벌써 이성열이랑 만리장성을 쌓고도 남았겠네.
"그래서 내일부터 집 구하러 다녀야 할 판이다." "집이 구해지겠어? 이 겨울에?"
그나저나 저 김명순지 뭔지 하는 새끼, 참 거슬린다. 쟤 눈빛이 나랑 똑같아. 니가 뭔데 이성열 걱정을 해. 이성열은 나만 걱정할 거니까 넌 좀 빠지시지. 근데 이성열 진짜 멍청함. 얘 사실 바보 아냐? 밀당은 무슨. 애초에 눈치를 못 챈 게 맞는 듯.
"너 진짜 띨띨하다. 두 달 전에 등기를 보냈으면 알고 있어야 되는 거 아니냐? 나도 이쯤에 철거하는 거 알고 있었는데."
이성열이 내 앞에서 바보 짓하는 경우가 자주 없는 터라 이 때다하고 엄청 놀렸다. 이성열은 내가 대놓고 바보바보 해도 반격할 생각도 못하고 괴로움에 머리를 감싸고 엎드려 있다. 기분이 좋아져서 이성열한테 손가락질하면서 셀셀 웃고 있는데 미간을 찌푸리고 뭔가를 생각하던 김명수가 말했다.
"그런데, 이 건물이 철거 될 걸 알고 있었다구요?"
니가 뭔데 나한테 묻고 지랄. 대답해주기도 귀찮지만 이성열이 앞에 있으니까 대충 고개를 몇 번 끄덕거려 줬다. 안 들리면 귀를 파세여 니마.
"근데 왜 여기로 이사했어요?"
헐. 기.습.공.격. 이성열은 눈치도 못 채고 있던 근본적인 문제를 들춰내다니. 내가 당황해서 콧구멍을 벌렁 거리면서 어버버 거리고 있자, 저 새끼가 한 방 먹였다는 표정이었다. 와 진짜 얄미워.
"진짜 너 왜 여기로 이사했어?"
뭐, 뭐라고 대답해야 현명하다고 소문이 날까. 아, 이 현명은 그 현명이 아님! 나무현 김명스 그거 아님! 아 님드라 제발여! 똑똑하다 지혜롭다 명석하다 뭐 이런 뜻의 현명하다를 뜻하는 겁니다!! 됐고! 내가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 거냐고!! 개드립 발사 준비, 3, 2, 1....
"다...단기 체험!! 그래! 나 서민 체험하는 거 있잖아!! 나, 여기서 그렇게 오래 살 생각은 아니었어!!!"
왜 난 성열이가 무슨 말만 하면 좀 더 차분하게 대답하지 못하고 소리부터 버럭버럭 질러대는 거지.... 그리고 매번 무리수 개드립...
"내가 전에 말했지? 저 놈의 서민 체험 드립."
이성열이 얼굴을 찌그러트린 채로 김명수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김명수가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 자신의 드립력에 놀라 굳어버린 날 무시한 채로 이성열이 김명수와 마저 대화를 나눴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내일부터 집 보러 다녀야지. 돌아다니다보면 살만한 곳이 나올 거야." "부동산 같은 데 알아보면 안 돼?" "복비 아깝게 뭐 하러." "힘들 텐데. 요즘 빈 집 잘 안 나와." "그래도 어쩔 수 없지. 손 놓고 앉아 있을 순 없잖아."
이성열이 머리를 손으로 탈탈 털더니 매트리스로 가서 풀썩 누웠다.
"으아아 진짜 모르겠다. 안 되면 김명수 너가 나 데리고 살아."
...씨발, 여기서 김명수 이름이 왜 나와?
"뭐? 야, 안 돼. 나랑 살아." "어? 내가 너랑 왜 살아. 김명수면 모를까."
이성열이 어이없다는 웃음을 팍 터트리며 내 말을 받아쳤다.
"왜 쟨데?" "김명수가 내 베픈데 내가 쟤랑 살면 살았지 왜 너랑 사냐."
대수롭지 않은 어투로 툭툭 말하는 이성열과 그 말에 승리자의 미소를 짓는 김명수. 넌 나한테 안 돼. 말하지 않아도 눈빛에서 느껴지는 자신감에 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가만히 있었어야 할 드립력이 또 출동했다.
"너, 나랑 살래 밥 먹을래?" "뭐하냐." "나랑 살래 뽀뽀할래?" "...미친." "나랑 살래 아님 같이 잘....!!!"
이성열이 던진 베개에 얼굴을 정통으로 얻어맞고 정신이 들었다. 소간지님. 제가 미쳤나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집 밖으로 나왔다. 아마 오늘부터 이성열은 집을 구하러 다닐 거다. 오늘 내내 따라다니다가 틈새시장을 노려서 이성열을 내 집으로 끌고 들어와야지. 혼자 굳은 결의를 하며 마음을 다잡고 있을 때, 삐리릭 현관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한 손에 캡을 든 이성열이 자기 집 문 앞에 어정쩡하게 서 있는 날 보고 흠칫 놀란다.
"....너 뭐하냐." "...어... 서민 체험?" "그 드립은 지겹지도 않냐." "별로."
이성열이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더니 모자를 고쳐 쓰고 내 어깨를 밀치면서 밖으로 나왔다.
"할 일도 없냐."
할 말도 없어. 라임 돋는군. 멀뚱히 서 있다가 먼저 성큼성큼 계단을 내려가는 이성열 뒤를 졸졸 따라갔다. 내 쪽을 힐끔 본 이성열이 물었다.
".......따라 올 거냐??"
응!!!!! 최대한 귀여운 얼굴을 하고서 고개를 마구 끄덕이자 얼굴을 옆으로 돌려 토하는 시늉을 한 이성열이 먼저 앞서 걸어갔다. 다다다 뛰어서 이성열 옆에 찰싹 달라붙었다. 귀찮아하며 나를 밀어내는 이성열에게 심심하지 않게 해준다며 살살 꼬드겼다. 꺼지라며 욕을 하던 성열이도 내 애교 어택에 지쳐서 내가 뭘 하든 가만히 있다. 성열의 어깨를 끌어안아도 때리거나 밀쳐내지 않는다. 역시, 깔창을 세 개 정도 까니까 성열이랑 키가 맞네. 남자라면 깔창이지.
"으힉. 그렇게 비싸요?" "아유, 이건 비싼 것도 아니야. 요즘 다 이래요. 방 구하러 처음 다녀요?" "아, 그, 그건 아니지만."
이성열 얼굴색이 안 좋다. 저게 비싼 건가? 연예인으로 살다보면 현실적인 돈 감각을 자주 잃는다. 내가 지금 벌고 만지는 돈이 일반인들에게는 평생가야 보지 못할 그런 금액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 현실적인 부분과 마주하게 되면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성열이와 함께 벌써 7개도 넘는 방을 둘러봤지만 이성열의 마음에 드는 곳이 없는 것 같다. 성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기보다는 금액이 맞지 않는다는 게 더 큰 문제였다. 어딜 가든지 하나같이 성열이가 생각한 액수보다 더 많은 돈을 요구했고 그 때마다 이성열은 한숨을 폭폭 내쉬면서 발길을 돌렸다. 지금 같은 상태면 오늘이 아니라 내도록 돌아다녀도 집은 구하지 못할 것 같다. 터덜터덜 언덕을 내려오면서 내가 이성열에게 슬쩍 말을 걸었다.
"우리, 커, 커피 마실래?"
다행히 성열이는 아메리카노 짱팬이라 커피를 사준다는 내 말에 금세 싱글싱글 웃으며 나를 따라왔다. 아씨, 이성열. 불안해서 밖에 못 내놓겠다. 변태 같은 아저씨가, 아저씨 따라오면 아메리카노 사줄게, 하면 따라갈 것 같다. 통장을 다 꺼내서 금액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확인하던 성열이가 머리를 감싸 쥐고 테이블에 엎드렸다.
"야. 이래가지고 너 방은 얻겠냐." "그러게나 말이야. 이렇게 비쌀 줄이야."
내 말에 발딱 일어나서 스트로를 쭉 빠는 성열이. 커피 벌써 다 마셔간다.
"내 년에 복학도 해야 되는데. 이래가지고 돈을 어떻게 모아. 자퇴를 해버릴까."
스트로를 잘근잘근 씹으면서 성열이는 미간을 찡그렸다.
"고시원을 알아봐야 하나... 물건은 또 언제 처리 해. 아, 몰라 몰라. 몰라!! 아 짜증나!!"
어린애처럼 몸을 마구 흔들면서 떼를 쓰는 성열이. 다시 멘붕 상태가 찾아온 것 같다. 지금이면 내가 뭐라고 꼬셔도 넘어올 것 같다. 그래, 이 때다.
"너 우리 집 들어올래?"
말해버렸다. 이성열이 그 큰 눈을 꿈벅꿈벅하면서 물었다.
"내가 왜?" "이, 일하는 아주머니가 그만 두셔서. 너 갈 곳도 없고 돈도 벌어야 한다며. 나도 일할 사람 필요하고. 상부상조 하는 거지."
무슨 일로 말이 청산유수다. 오늘은 무리수 개드립 열매를 안 먹었구나!! 그라췌!! 내 말에 이성열이 갈등하는 듯한 눈치여서 서둘러 덧붙였다.
"너 복학도 해야 된다면서. 학교 그만 둘 거야?" "그건 아닌데..." "그럼 내 말대로 해. 일단 우리 집에 들어와서 청소나 빨래 깨끗이 하고 꼬박꼬박 밥이나 차려주면 돼. 나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 아니다. 우리 집에서 일하는 게 너한테도 편할 거야. 언제까지 편의점에서 노동력 착취당하면서 일 할래. 비전도 없는 거. 아무튼 매니저 형한테는 내가 말해둘 테니까. 당장 짐 싸." "그래도.. 그건 좀... 어떻게 그래." "누가 공짜로 내준대? 대신 보증금 같은 건 안 내도 되니까 방세나 꼬박꼬박 내고 살어."
60%정도 넘어온 것 같다. 성열이가 하는 편의점 일은 생각보다 고되다는 걸 그간의 투정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야간에 하는 일이라 밤낮이 바뀐 생활도 건강에 무리를 주고 있다는 점도 눈치 챘다. 지금 이성열의 상황에서 내 제안은 꽤나 솔깃한 것이리라.
"월급도 잘 줄 거.." "어, 명수 전화 왔네. 여보세요?"
또 저 노무 색기.... 지겨워 죽겠네.
"어어, 아, 뭐 거의 다 구해진 것 같긴 한데..."
이성열이 날 불만스러운 눈길로 쭉 훑었다. 뭐야, 왜. 난 도리어 당당한 태도로 시선을 마주쳤다. 내가 꿀릴 게 뭐가 있어.
"어? 아니, 아니야. 다 구했어. 진짜야."
저 새끼한테 무슨 말을 들었는지 이성열이 도리도리 고개짓을 하면서 다급하게 말한다. 아유, 귀여워. 나랑 통화할 때도 저럴까? ...저렇게 다정한 목소리 생라이브로도 들어본 적 없어서 모르겠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괜찮아, 명수야. 신경써줘서 진짜 고마운데, 나 정말 집 구했어."
이성열이 날 힐끔 보고는 아주 한숨을 푹 쉰다. 뭐야. 왜 저래.
"진짜야.. 나, 우현이네 집 들어가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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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ㅋㅋㅋㅋㅋ
딴짓하느라 본 우열에 충실하지 못함.........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