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깜빡하고 뜨니 벌써 좀비놈들은 몰려들어왔다. 한 놈은 다리가 잘려 절뚝이는 놈. 또 한 놈은 팔이 없어 뛰어오는 폼이 꽤나 웃겼다. 아니, 이런 생각 할 시간이 없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좀비들은 점점 더 빨리 제게로 달려오고 있었다. 어금니를 꽉 깨물고서 전기톱을 꽉 쥐었다. 원래 손이 땀이 잘 안 나는 성격인데, 벌써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땀이 흐른다고 할 정도로. 아, 이건 과장인가. 이제 카운트만 세면 공격을 실시해야 한다.
3…
2…
1…!
팔을 마구 휘둘렀다. 이제 다, 죽었나? 눈을 슬며시 떴다. 정말 슬며시 떴다. 밑을 보니 다 죽은 것 같았다. 긴장을 해서 그런지 관자놀이에서는 땀 한 방울이 흘렀다. 문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정말 죽을 것만 같았다. 내가 여기서 좀비에게 물린다면, 물린다면… 선배가 생각났다. 급히 눈을 뜨고 문을 열어 다시 안으로 들어가보니 준면선배가 여전히 땅에 주저앉아 눈물을 뚝뚝 떨구고 있었다. 지금 나가야 한다. 조금 있으면 해가 지기 때문이다. 좀비들은 햇빛을 피하기 위해 이 병원 안으로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꼼짝도 못 하고 물린 다음 흉칙한 저들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서 사람들을 찾아다닐 게 뻔하다. 젠장.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혹시 모를 다른 생존자를 만날 수도 있어 옆에 있는 크로스 백에 진통제와 붕대, 마취제 등등 약을 다 쓸어담았다. 그 가방을 어깨에 메고 준면에게로 다가갔다. 여전히 가만히 앉아 눈물만 뚝뚝 떨구고 있는 모습을 보니 답답하고 화가 나기도 했다.
"선배, 일어나요."
"…어떡해."
"선배."
"……"
제 말에는 대답 하지 않고 어떡해, 라는 말만 조용히 중얼거리는 준면을 보니 화는 더 치밀어 올랐다. 준면의 손목을 꽉 잡고서 시계로 시선을 돌려 지금 시각을 봤다. 3시 48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병원에서 나가 구조될 때까지 먹고 잘 수 있는 장소를 찾아야만 했다. 그렇다고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됐다. 영화에서는 그랬지. 항상 깐족대고 무리에서 혼자 나가 살아보겠다고 나대는 놈들이 항상 죽는 법. 이럴 때일수록 더 침착해야 했다. 그래. 평소 모습과는 다른 준면이였다. 수술할 때 어디 하나 잘못 건들여 환자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고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다시 수술을 이어가 그 환자를 살려냈던 준면이였는데. 이런 준면이, 나는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김준면!"
"……"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리 끔찍하고 무서운 일이 닥쳐와도 꿈쩍도 안 하던 그가, 1분도 안 돼 무너지고 말았다. 그게, 나는 너무 화가 나고 답답하고 또, 안쓰러웠다. 제 소리에 놀랐는지 울음을 그치고 토끼눈으로 저를 쳐다보는 준면 선배가 보였다. 그 와중에도 예뻐보이다니. 오세훈 언제부터 호모새끼가 됐냐. 무릎을 꿇고 제 가운에 피를 말끔하게 닦아냈다. 가운은 벌써 검붉은 피로 물들었고, 제 손은 원래 손으로 돌아왔다. 준면 선배의 얼굴을 붙잡아 큰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엄지로 닦아주었다. 그리고는 최대한 침착하게 준면을 제 품 안에 안아 등을 토닥였다. 물론 저도 놀랐다. 영화에서만 보던 좀비가 실제로 나타나다니. 영화를 보며 좀비가 나타다면 다 쓸어버리고 혼자서 남아 이 나라를 구하겠다고 몇 번을 다짐했었다. 물론, 그게 철없는 어린 아이같은 생각인 것도 알았다. 하지만 난 진심이였다. 그때도 내가 준면 선배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가족 말고도 누군가를 꼭 지키고 싶었다는 마음이 들었으니까. 의대에 오기 위해 고등학교 때는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고 공부만 했다. 그렇다고 반에서 왕따는 아니였다. 선생님이든, 반 친구든 다 날 좋아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민망하지만 정말 그랬다. 그러다가 2학년 때 친구들을 잘못 만나 잠시 방황을 했었다. 아마도 1년동안. 그러다가 오토바이를 타다가 사고가 난 제일 친한 친구가 있었다. 의사새끼는 병신처럼 못 살린다고, 장례 준비를 해야 된다고 했었다. 내가 봐도 친구놈을 살릴 수 있었다. 씨발, 젠장. 그 이후로 다시 공부를 시작하고 나는 의대를 가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1년동안 책 한 번 안 펼쳐보다가 보려니 너무나도 힘들었다. 때려칠까, 하다가 다시 그 의사새끼가 떠올라 펜을 다시 고쳐잡고는 했다. 다들 그랬다. 의대는 다 가는 거냐고. 오세훈 저 새끼 의대 절대 못 간다에 내 손목을 건다. 심지어 선생님들까지 그랬다. 하지만, 나는 갔다. 의대에 갔고 이렇게 인턴까지 왔다. 동창회에 가면 내가 의대에 못 간다고 가슴을 떵떵 치며 말했던 놈들이 보이기도 했고, 아예 자신의 인생이 쪽팔리거나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어 동창회에 나오지 않는 놈들도 있었다. 나왔던 놈들은 중국집 배달 알바를 하고 있거나, 사업이 망했거나. 어쨌든 잘 살고 있는 새끼는 하나도 안 보였다. 그렇게 남의 인생에 참견하지 말고 자기 인생이나 잘 챙기라고. 이 한 마디만 하고 나왔다. 그리고는 혼자 술을 마시러 갔다. 쓰레기같은 사회.
"미안해요."
"…세훈아."
"미안해요, 선배."
"……"
"우선 여기서 빠져나가야 돼요."
준면 선배를 일으키고는 가방를 제대로 멨다. 저는 전기톱을 들고 가면 되지만, 준면은? 무기로 사용할만한 것이 있나, 싶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막대기가 보였다. 급하게 그 막대기를 들고 수술용 칼로 앞부분을 뾰족하게 갈았다. 학창시절 다들 샤프 사용할 때 나만 연필을 사용했다. 또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지 않았다. 그냥, 내가 직접 칼로 깎아서 연필을 쓰는 게 좋았다. 내가 필기를 하면 할수록 사라지는 연필심을 보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그래서 줄곧 연필만 사용해왔다. 그래서 그런지 막대기 역시 연필처럼 깎으니 뾰족하게 잘 깎였다. 뿌듯하게 쳐다보고는 준면의 고운 손에 쥐어줬다.
"선배, 저 괴물새끼들이 달려오면 이걸로 찔러요."
"어…?"
"무조건 머리를 찔러요. 그래야 죽으니까. 그게 어려우면 쫓아오지 못 하게 다리라도 찔러요. 알겠죠?"
꽤나 잔인한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준면의 손목을 잡고 문 손잡이를 잡았다. 손에 다시 땀이 차 심호흡을 하고 땀을 가운에 대충 슥슥 닦고서 다시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덜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굳은 피가 묻은 전기톱을 들고, 한 손에는 준면의 손목을 꽉 잡았다. 아직 손을 잡기엔, 부끄러워서.
엘레베이터 쪽으로 가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했다. 걷기에는 너무 시간이 지체되고, 뛰기엔 좀비들이 발소리를 듣고 달려들 것 같아 최대한 빠르게 걸었다.
"저 새끼들은 죽은 시체에요. 영어로 하면 워킹데드. 아, 미안해요. 아는 척 좀 해봤어요. 좀비라고 부르는데 햇빛을 보면 타들어가서 낮이면 항상 건물 안으로 들어가요. 낮에만 활동을 할 수 있고, 먹는 건 사람이에요. 물론, 새들도 먹겠죠. 아마. 동족을 뜯어먹진 않아요. 지능도 없어요. 그래서 문 열지도 못 하고, 병신처럼 문을 두드리기만 해요. 아, 힘은 진짜 세요. 그러니까 선배가 힘들면 그냥 포기하고 저 불러요."
"지금, 저게 왜 나타난 건데?"
"…글쎄요."
그러게 말이에요. 그래도 전 솔직히 좀비가 나타나서 좋은 거 같아요.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전 진심이에요. 선배랑 이렇게 손도 잡을 수 있으니까. 어느새 준면 선배의 손을 잡던 제 손은 준면 선배의 손과 맞잡아 깍지를 끼고 있었다. 손에 열이 났다. 너무 좋아서. 언제부터 호모가 됐냐, 오세훈. 그렇게 조용히 웃으며 걸어가다가 엘레베이터가 보여 달려가려다가 좀비떼들이 무언갈 뜯어먹는 게 보였다. 뭘 먹는 거야. 인상을 쓰며 그 곳을 보는데, 아… 교수님이셨다. 다 먹었는지 피를 질질 흘리며 일어나는 좀비들을 보다가 준면 선배에게 작은 소리로 말했다.
"어디 가지 말고 여기에 있어요. 괴물들 오면 그 막대기로 머리 찌르는 거 잊지 말고. 저 새끼들부터 어떻게 해야 우리가 여기서 엘레베이터를 타고 빠져나가든 뭐든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세훈아."
제 말을 들으며 불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준면이 가려는 제 손목을 잡았다. 머뭇거리더니 입을 천천히 열었다.
"우리, 살 수 있기는 한 거야?"
뭐야. 그런 말 하려고 날 붙잡았던 거야? 준면 선배도 귀여운 면이 있다니까. 작게 웃으며 준면 선배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선배는 꼭 지킬테니까 걱정 마요."
그리고는 표정을 잔뜩 굳히고서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정말이다. 내가 죽는 한이 있어도 준면 선배는 꼭 지킬 것이다. 나 물론 영화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고. 전기톱 전원을 키자 위잉, 하는 소리가 나고 그와 동시에 좀비들은 뒤를 쳐다봤다. 저를 발견하고는 입을 쩍 벌리며 괴기한 소리를 냈다. 나는 땀이 흥건한 손으로 전기톱 손잡이를 꽉 쥐었다.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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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력이 딸려서 집중이 안 되실 수도 있겠네요. 맞춤법이랑 띄어쓰기도 틀린 게 많아서 집중 안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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