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선 내 여자, 안에선 내 남자♥♡
12
종인의 슬픈 고백에도 불구하고 경수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울다 결국 집을 나왔다.
종인은 경수가 서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넋을 놓았다.
그저 사람이 하나 나간 것 뿐인데, 그리고 이런 결과를 익히 예상했는데, 왜 정신이 멍하고 속이 먹먹할까.
차마 뒤따르지 못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종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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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부장님이 오늘 나오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사정이 있어서 내가 나오지 말라고 했어"
"예. 회장님"
비서의 보고가 끝나고 종인의 아버지 역시 한숨을 쉬었다.
참 좋은 아이였는데...이렇게 단숨에 보내게 되다니...
비록 탐탁치 않았지만, 아들의 남자와이프라는 것이 께름칙했지만, 사람 하나만 놓고 봐서는 예뻐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었다. 도경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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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후.
"이제 3차만 남았나?"
"네. 원장님"
"도 선생님은 워낙 사람이 착실해서 뭘 하든 잘 될거야"
"감사합니다~"
"우리학원측에선 도선생 같은 선생을 놓치는게 너무 아까운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경수가 하하 하면서 웃고, 학원 원장 또한 그런 경수의 등을 토닥이며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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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사장님. 급히 해결해야할 결재 안건이 있으십니다"
"알겠어. 나 아메리카노 한잔만."
"네"
비서와의 통화가 끝나고 종인은 의자에 기대어 앉아 결재서류 파일을 뒤적였다.
늘 같은 이야기들. 어디에 얼마가 필요하다. 사장님께 이런 것을 결재받아야한다.
승진을 해도 지루한 이 일상이 답답했지만, 종인은 절대 백화점에 가지 않았다.
그가 나에게 바란 일이었으니.
사실 그렇게 헤어진 후 누군가 연락을 먼저 할 법도 했지만, 전혀.
서로에게 괜히 상처가 될까봐 섣불리 연락하지 못했다.
도경서라는 가상의 인물과 종인의 이혼은 삽시간에 국민들에게 퍼져나갔고, 더불어 경수 아버지의 구속 또한 세상에 알려졌다.
다행히 지금 시대는 공무원 선발에 연좌제는 걸리지 않아 경수의 임용고시 1,2차 합격 자격이 취소되지는 않았다.
3차 시험에 합격하면 교단에 서게 될 것이고, 몇달간의 기억은 곧 일에 미쳐 잊혀질 거라고. 경수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종인도 그랬다.
주주들의 반대를 이겨내고 억지로 부사장자리를 차지해 일에만 몰두했다. 당연히 인정은 받았고, 최연소 부사장이라는 명예도 얻었다.
하지만, 둘 다 외로웠고, 서로가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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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수야.."
"네 엄마"
"선...을 보는 건 아직 너무 이르니?"
"엄마...전 결혼은 안해요"
"그래도..."
집에 돌아온 후 늘 경수를 안쓰럽게 보는 어머니인지라, 경수는 되도록이면 어머니와도 마주치지 않은 채 일과 공부에만 몰두하던 찰나였다.
아버지의 면회도 단 한번도 가지 않았고, 압류된 회사를 복구시킬 생각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아예 종인과 만날 것 같은 루트를 차단해버렸다.
하지만...운명이란건 둘을 남남으로 만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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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아들?"
"어. 오늘은 사탐 봐주는 날인데 걔가 법정보거든. 내가 가야되는데 오늘 여자친구 생일이라서 그래...좀 부탁해!!!"
"선배!!!!"
선배의 일방적인 부탁에 거절할 새도 없었고, 거절할 의사도 없었던 경수는 문자로 날아온 학생의 주소를 보고 그래,까짓거 사탐 봐주는데 1시간이면 되지. 싶은 마음으로 차를 몰아 출발했다. 가벼운 경차는 경수의 마음가짐을 나타내는 하나의 축이었다. 그리고 회사와 재산을 거의 모두 잃은 채 집 한채만 남겨진 자신과 가족들의 삶을 내포하는 그런 차였다.
딩동-
"누구세요?"
"과외선생입니다"
"네"
문이 열리고, 경수가 집에 들어갔다.
그리고,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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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
종인이 업무용가방을 들고 현관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경수는 그 현관을 향해 들어가고 있었다.
세상에....교수님 집에서 만나게 되다니...
경수는 종인이 말을 걸어보기도 전에 바로 현관문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종인은 꿈인가..?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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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의 그분이랑은 연락하고 있는거니?"
"아니요..."
"아버지 4개월 후면 나오신다. 슬슬 재건 준비를 해야하지 않니..?"
"아뇨. 전 회사일에 손 안대요 엄마"
"그럼..아버지회사는..."
"그건 아버지가 알아서 하실거예요. 저는 회사경영이 싫어요 어머니"
"그래서 경영대학원 진학을 포기한거니?"
"네."
"못된 자식."
어머니가 저에게 처음으로 던진 나쁜 말이었다. 경수는 거실소파에서 일어나려다가 다시 털썩 앉았다.
"...?"
"아버지가 널 위해서 이 회사를 위해서 얼마나 일하셨는지 옆에서 보고 자랐으면 회사일에 손도 대지 않겠다는 말을 그렇게 쉽게 꺼내면 안되지"
"엄마도 결국 아버지랑 같은 분이셨네요"
".."
"전, 아버지의 회사발전을 위해서 제 인생까지 바치려고 했던 사람이예요. 그 옆에서 가슴아파하셨던 분은 바로 어머니시구요. 선생님이 되고 싶은 제가 굳이 경영대학원 진학준비를 하고 있던 이유도 아버지 회사 때문이었죠. 그 회사는 아버지의 회사예요. 제 회사가 아니구요."
"하지만 미래에는.."
"미래에 저는 사무실에서 근무하지 않고 교무실에서 근무할거고, 결재서류를 받기보단 수업자료를 준비하겠죠. 제 노력은 이혼서류에 도장찍던 날로 끝났어요 어머니."
경수는 일어섰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면접준비를 위해 자료를 펼치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내 의지가 아니었던 결혼이 내 마음을 이렇게 지배할줄이야...
사랑이라는 것이 성을 불문하고 이뤄질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경수였기에, 오늘 잠깐 본 그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그래. 원래 오랫동안 못봤던 사람 보면 반가운 것처럼.오늘도 그런거야.괜히 부풀려 해석하지 말자 도경수. 니 목표가 눈 앞에 와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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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SN그룹 회장 손녀랑 미팅있다. 가봐라"
"아버지."
"너가 게이든. 아니든. 이제 상관 없다. 그 전에 너가 IK를 위해 경수를 버린것처럼. 그렇게 IK를 위해 결혼하면 돼. 나는 너가 약한 놈인줄 알았지만,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깨달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로 마음이 확고해졌어. 만나서 잘 대접해드리고 계속 이어가보도록 해"
"아버지!!!!"
"언제까지 이혼남으로 살 생각이냐. 재벌3세면 기업 운용에 대해 어느정도 희생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는 걸 잊은거야? 난 이미 수차례 양보했다. 이제 너도 양보할 차례야"
"평생...사랑도 하지 않는 여자와 어떻게 사나요."
"나는 우리 회사를 아버지대보다 2배로 불리는데 성공했고, 그 공은 네 엄마한테 있어. 삶에 있어서 사랑가지고 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아버지는 지금 행복하세요?"
"나는 회사가 구설수 없이 잘 돌아가는 걸 보면 행복해. IK를 위해선 너도 앞으로 그래야하고"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세워진 회사인데, 왜 이젠 회사의 안위를 위해 사람들이 매달려야 하는거죠? 전 싫습니다"
"그렇게 거역하다간, 내쫓아버리는 수가 있어. 너따위의 스펙과 재능으로는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기 전에 잠자고 이 아버지 말 들어라"
"그렇다면...제 스펙과 재능으로 이 세상에서 무얼 할 수 있는지 한번 나가볼까요?"
"지금 무슨 소리냐"
"최소한의 생활비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냥 지금 입고 있는 이 옷 한벌만 기부차원에서 주십시오. 전 앞으로 아버지의 아들이 되지 않겠습니다. 26년동안 키워주셔서 감사했습니다."
"..."
종인은 집을 나왔다. 누구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시는 아버지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커밍아웃 이후에 절대로 불효를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이렇게 시계도 지갑도 핸드폰도 놓고 출가를 선언해 가슴아프게 해드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오늘 만난 그 사람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져서 결국 자신의 멘탈이 터져버린게 분명하다.
집을 나오고 후회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종인은 주머니에 몰래 꽁쳐놓은 만원짜리 한장으로 수원행 지하철을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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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도 아니고...회장님께서 그런 얘기를 하셨단 말이야?"
"그래서 일단 집을 나왔는데..사실 대책이 없어"
"나도 여기서 오랫동안 재워주진 못해"
"나도 형처럼 확 의사나 해버릴까?"
"이게 말이면 다인줄 알아"
준면이 주먹을 확 들었다. 종인이 쪼는 모습을 취하자 웃으며 넘겼지만.
"구내식당도 맛있네~"
"너가 회장님아들이라 입이 비싼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싼 맛도 즐길줄 아는거보면"
"형. 내가 신기한거 알려줄까?"
"뭔데"
"나 지금 6개월 넘게 백화점 끊었다."
".....뻥치지마"
"진짜야. 나 회원카드도 부러뜨려버렸어"
"...혹시 요즘 해가 서쪽으로 떴나? 맨날 야근해서 모르겠다"
"형!!!!!"
"말도 안되잖아"
"와...실망이야...내가 사줬던거 다 내놔"
"너가 저번에 다 내놓으래서 다 줬잖아. 쪼잔한 자식"
"아...그랬나?"
"돌려줘"
"싫은데"
"돌려줘어어"
"우리집에 들어가서 찾아오던가!!!"
"아 맞다. 너 이제 IK 도련님 아니지?"
"어. 나 이제 노숙자야. 형이 나 책임져"
"미쳤니?"
"아 왜~~~~"
종인이 들러붙자 준면이 저리가라며 종인의 손등을 찰싹찰싹 때렸다.
블랙셔츠를 입은 까맣고 키 큰 종인과 의사 가운을 입은 하얗고 아담한 준면이 붙어있으니 가까이서 보지 않는 한 마치 다정한 연인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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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지막시험이니?"
"네."
"끝나고 아버지 좀 뵙고오렴. 많이 보고싶어해"
"시험끝나고 바로 일하러가봐야해서.."
"너는 어떻게 외동아들이라는 놈이 그렇게 매정할 수가 있니?"
"저 나가볼게요"
"너는..불효자야. 그것만 알아둬라"
어머니의 마지막 한마디에 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지만, 경수는 꿋꿋하게 울지 않고 집을 나섰다.
이 시험 합격하고, 나가살면 그만이야. 아버지 어머니 안보고 사는 자식들 얼마나 많아. 불효자여도 어쩔 수 없어 그 전엔 최선을 다했으니까.
수십번 수백번 수천번 합리화를 해도 경수는 어쩔 수 없는 아버지어머니의 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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