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축한 여름 바람이 좁은 틈새를 비집고 들어왔다. 창문 틀에 피어난 곰팡이가 몸을 일으켰다. 눅눅한 곰팡이 냄새가 곳곳에 퍼졌다. 무료히 거실 바닥 위에 가만히 누워있어도 기승을 부리는 더위는 기어코 몸의 온도를 높혔다. 땀방울이 이마 위로 맺혔다. 닦아내고자 했으나, 닦아낼 힘조차 없었다. 곰팡이 냄새를 가득 품에 안은 축축한 바람이 주위를 맴돌았다.
아, 비 냄새.
비가 왔던 모양인지, 혹은 비가 올 예정인지. 코끝을 맴도는 빗방울 특유의 냄새와, 더위를 품고 한없이 올라가는 습도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언제쯤 이 더위는 부리던 기승을 몸 안에 감추고 사라질까.
천장에 언제 달아놨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작은 일본 후우링이 바람에 흔들려 맑은 소리를 냈다. 잔잔한 물결 위로 멀리 퍼져나가는 파도를 보듯, 가만히 누워 하염없이 그 모습만 바라봤다. 본래의 속도보다 느려지며 천천히 움직이는 후우링. 눈에 보이는 바람결. 햇빛 속에서 흩날리는 미세한 먼지들.
그리고 눈 앞에 드리운 태초의 어둠.
뒤로 밀려나듯 속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바깥을 보며 세훈은 깊은 생각에 빠졌다. 몸 구석구석에서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며 올라왔지만 개의치 않았다.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깊은 곳으로 잠식되게끔 만들었다.
택시는 평소 가던 방향과는 다른 길을 택했다. 빠른 길을 피해서 가는 택시기사를 보며 세훈은 무의미한 생각들을 허공으로 띄워올렸다. 아무말도 않는 옆자리의 승객. 작은 술주정을 하며 뻗어있는 뒷자리의 승객. 그리고 쉽게 입을 열지 못하는 자신. 택시기사는 남은 행선지의 거리를 힐끔 쳐다봤다. 아. 한참이나 남은 상태였다. 달갑게 여기지 않는 침묵이 계속 찾아오자, 택시기사는 결국 하나의 방안을 택했다.
─ 하하. 그러시구나. 그 다음은 어떤 이야기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라디오를 트는 방법이었다. 평상시엔 듣기 싫어서 주파수를 돌려 달라 했겠지만 딱히 듣고 싶은 노래도 없었기 때문에 세훈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세훈을 어디까지 잠식시킬지 계속 발목을 잡고 밑으로 끌어내리던 생각의 손이 옅어졌다. 힘이 빠졌다. 잠식되던 세훈은 수면으로 고갤 내밀었다. 라디오에서는 여러 말이 흘러나왔지만 방해받는 느낌이 싫었다. 세훈은 제 생각을 음소거했다.
─ 정말요? 땅에서 주운 수표를 주머니에 넣고 세탁기에 돌리는 사람이 어디있을까요. 사모님께 혼 많이 나셨겠네요.
“하하, 정말 바보 아니야? 내 앞에 수표가 떨어지면 난 정말 이 일은 때려치웠을거야. 저런 멍청이.”
옆에 앉아서 운전을 하던 택시기사가 폭소를 했다. 왜 폭소를 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저 그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듣고 웃었다는 것을 알 뿐. 그 이후로 웃지 않던 택시기사는 무언가의 단어가 튀어나오자마자 전과 같은 폭소를 내뱉었다.
재미없어.
무언가의 단어는 요즘 뜨는 유행어였나보다. 웃음을 쉽게 그치지 않는다. 생각을 하는 나는 나만의 섬에서 나무를 키운다. 나무는 생각을 먹고 자라났다. 작고 초라했던 한 가닥의 나뭇가지는 벌써 깊은 숲을 이뤘다. 이곳은 나만의 섬이다. 섬. 홀로 남은 섬.
뒤를 돌아 여전히 잠을 자는 종인을 바라봤다. 무엇 때문에 술을 그리 진탕 마셨는지 이유를 모른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재차 물어도 종인은 답이 없었다. 그저 묵묵히 술잔을 비우는데 급급했다. 털어놓기 싫어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종인 덕에 세훈 또한 여러 번 캐묻지 않았다. 그저 어깨를 다독여줬을 뿐이다.
라디오에서는 누군가의 신청곡이 소개됐다. 전에 저 또한 빠져살았던 노래였다. 참 좋아했더 슬픈 노래. 곡을 신청한 사람은 혼자 있을까. 혼자 있을 때 들으면 알 수 없는 위로를 선사해주던 노래. 신청자는 홀로 외로운 밤을 보내고 있을까? 긴 하루가 잠시 잠드는 그 어딘가.
목적지에 도달했다. 택시기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차에서 내렸다. 그러더니 뒷좌석 문을 열고 종인을 부축하기 시작한다. 집 앞에서 마중나와있던 종인이의 어머님이 보였다. 세훈은 창문을 열고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어머님, 안녕하세요.”
시선, 대답, 행동. 그 어느 것 하나 돌아오지 않았다. 제 아들이 걱정되어 택시기사에게 택시비를 지불하고 서둘러 집에 들어간 종인의 어머니를 한참 바라보던 세훈이 고개를 돌렸다. 내려갔던 차 창문이 다시 올라갔다. 틈 조차 보이지 않도록 끝까지 올렸다. 택시기사가 다시 택시에 올라탔다. 받은 돈을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세훈은 생각했다.
나는 술을 마셨었나. 술 자리에는 종인의 술잔 외에 나의 술잔도 자리하고 있었나.
과연 나는 취했었나.
자리에 멈춰 하늘을 바라보던 세훈의 옆으로 들려오는 큰 통화소리.
“이 새끼야. 네가 한 달 전부터 잡은 술 약속을 네가 깨?”
─ 그건 정말 미안하게 됐다. 갑자기 야근이 걸리는 걸 어떡하냐.
“그렇게 잘난 입으로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던 놈이 잘 하는 짓이다.”
─ 내가 걸리고 싶어서 걸렸냐? 왜 성질이야. 그렇게 술이 고팠으면 혼자 포장마차에 가서 거하게 마시던가.
“…새끼, 말이면 단 줄 알아.”
전화는 거칠게 끊겼다. 남자는 통화에 토라진 듯 보였다. 입술이 댓발 튀어나왔다.
“…오랜만에 보는 거라서 이야기 좀 하려 했더니 그놈의 망할 회사가 다 망쳐놓네.”
남자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이리저리 헐은 자국이 보이는 지갑을 열어 투박한 손으로 지갑을 살살 쓸었다. 가족사진이었다. 목에서 끌어 올린 가래를 땅바닥 위로 거칠게 내뱉은 남자는 투덜거리며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약속 잡힌 술 모임이 취소 됐나보다. 전자파를 품고 들려온 통화 내용이 계속 귓속을 맴돌았다. 모래와 뒤섞인 가래가 남아있는 땅바닥을 바라보다 남자의 발자취를 눈으로 좇았다.
곁눈질로 봤던 남자의 가족사진이 허공을 떠다녔다. 남자가 방황하게 되는 건, 집이 없어서 혹은 갈 갈이 없어서일까. 갈 곳은 많아도, 그 어디에도 저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일까.
오래된 집 문을 열었다. 듣기 싫은 소리가 적막을 뚫고 멀리 울려퍼졌다. 깊게 내려앉아있던 먼지들이 허공을 부유했다. 이리저리 부산스레 움직이는 먼지. 코를 찌르는 눅눅한 곰팡이 냄새. 몇 가닥의 빛이 들어오는 초라한 작은 방.
청소를 언제 했더라. 기억조차 나지 않는 까마득한 예전 일에 세훈이 혀를 찼다. 당장에라도 이 먼지들을 없애버리고 싶었으나 그러기 싫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환기라도 시킬겸 창문을 열고 싶었으나 언제부터 오기 시작했는지 모를 비가 내리고 있었다.
창가로 다가가 작은 틈 사이로 길죽한 손가락을 내민 세훈이 입을 벌렸다. 차가운 빗방울이 제 손가락 위로 쉬지않고 떨어지는 모습에 멍해졌다. 시선을 밑으로 내리니 빗물이 고인 길 바닥이 시야에 들어찼다. 비가 내린지 한참됐을 무렵이었나 보다.
빗방울들은 땅바닥 위로 곤두박질쳤다. 수없이 반복되는 행동을 보던 세훈의 눈 앞에 작은 잔상이 일었다. 깨끗한 물로 가득 들어찼던 물 웅덩이가 검붉게 물들었다. 희미한 시야 속으로 비춰지던 밝은 그림자. 돋보기로 바라보듯 확대되어 뚜렷하게 보이던 교통사고 전광판. 사망이란 단어 옆에 숫자 1이 어찌나 외롭게 보이던지.
바닥에 누워 힘없이 축 늘어진 나는 어찌나 외롭게 느껴지던지.
종인이 마른 세수질을 했다. 어떤 이가 제 옆에서 저를 다독이며 함께 술을 같이한 듯 했으나, 제 기억 속에서의 외딴 남자는 그 어디에도 자리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던 사람은 오로지 저, 하나 뿐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 쳐다본 종인은 급하게 출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어제 회식이 있던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해서 야근이었던것도 아니었다. 지각을 하면 그동안 윗 상사에게 쌓였던 모든 스트레스들이 저에게 쏟아질 것을 눈치 챈 종인은 빠르게 움직였다. 방을 벗어나 거실을 가로지르던 종인을 멈춰세운건 그의 어머니였다.
“…종인아.”
“…….”
“이제 그만 세훈이…”
“다녀오겠습니다.”
단칼에 말을 자른 종인에 그의 어머니의 표정은 빠르게 굳어졌다. 무언의 말을 덧붙이려 입술이 옴짝달싹 했으나, 뱉어진 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떤 말이 쏟아질까 내심 두려웠던 종인이 재빨리 집을 벗어났다.
짙은 외로움을 담은 얼룩같은 존재. 세훈은 종인에게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고, 수면위로 드러나는 존재였다. 연인이었지만 자신이 내버린 사고로 인해 모든게 틀어져버린 그런 존재. 꽁꽁 감춰서 숨을 돌린다 싶으면 그의 주변인에 의해 숨기고 싶은 존재는 하염없이 그 좁은 틈을 빠져나와 제 곁을 맴돌았다. 정상인 듯 싶었으나 정상이 아니었다. 겉은 누가 봐도 정상이었지만 속은 깊게 문드러져 짓밟혀있다는 사실을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한 순간의 실수로 만든 타인의 죽음 앞에서 제가 할 수 있는거라곤 그저 울음을 토해내는 짓 뿐이었다. 크고 작은 산들을 같이 넘어서 기뻐하던 찰나, 제 손으로 그 모든 것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과연 나는 살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그 누구보다 사랑했던 제 연인을, 제 연인이 하염없이 아껴주던 작은 사람이 죽음이란 검은 물을 존재 위로 뒤엎었다.
빛나던 존재는 한순간에 검은 물을 뒤집어 쓴 초라한 존재로 추락했으며, 저는 그 일의 가해자임과 동시에 방관자였고, 그와 동시에 피해자였다.
자리에 멈춰서서 눈을 감고 깊게 생각하던 종인이 천천히 눈을 떴다. 메마른 입술 표면으로 붉은 혀가 가볍게 훑고 지나갔다. 새삼스럽게 손 위로 식은 땀이 맺히기 시작했다. 혈액이 몸 속을 빠르게 돌았다. 입안이 축축해졌다. 그러고선 제 옆을 바라봤다.
저를 지켜보며 전과 다를 바 없는 미소를 얼굴 위로 띄운 오세훈을.
세훈아.
나의 안타까운 연인, 내게서 빛나는 영원한 얼룩같은 존재.
긴 하루가 잠시 잠드는 곳에서 영원히 잠들어버린,
내 단 하나뿐인 연인아.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EXO/세종] 긴 하루가 잠시 잠드는 곳
11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EXO/세종] 긴 하루가 잠시 잠드는 곳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d/c/4/dc4baac67781e2ee8634cb685443d44b.jpg)
![[EXO/세종] 긴 하루가 잠시 잠드는 곳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3/3/6/336fb0602870351b867f2c6b7849b5fa.jpg)
현재 못입는 사람은 평생 못입는다는 겨울옷..JPG

